
<베이징 다스란 부근 후통 - 국제도시 베이징의 중심 반경 약 10킬로 정도가 이런 후통으로 구성되어 있다>
베이징은 십여년 전 두 시간 거리인 천진에 사는 동안 두세번 다녀온 적이 있다. 마지막 방문은 2010년도였는데 저장성 닝보에 거주할 때 분실처리한 신규 여권을 받기 위해 올라온 때이다. 그 당시 여권이 없어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버스와 기차로 북경에 도착(지금은 여권 없이 버스와 기차도 불가하다)했는데 무려 버스 5시간, 기차 21시간의 험난한 여정이었다. 그때의 기억이 선명한 건 상해-천진의 입석 기차 때문이다. 상해에 도착한 날 천진행 고속철이 매진되어 어쩔 수 없이 입석을 타게 되었다. 고속철이 8시간 걸리던 시절이라 입석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노선부터가 내륙 지역을 통과하고 왠만한 역은 전부 정차하는 느려 터진 기차였다. 중간중간 자리가 날때마다 긴 나무 의자 한쪽 귀퉁이를 차지하였는데 잠시만 자리를 비우면 바로 사라져 버렸다. 밤이 되자 낡은 기차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윗통을 벗어제낀 남성들이 노트북 하나에 영화를 틀고 커다란 스피커를 연결해 밤새 기차 한 칸을 서라운드 돌비 시스템 영화관으로 만들어버렸다. 객석 위에 위치한 짐칸에는 짐들 사이로 사람이 기어 올라 짐들과 한 덩어리로 잠들어 버려 짐을 내려야 할지 사람을 내려야 할지 구분이 안 갈 지경이었다. 낡은 의자 밑에도 누군가 코 고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오곤 했다. 내가 잠시 차지한 의자 밑에는 어느 앳된 여성 농민공이 잠들어 있었는데 자리를 양보하려 해도 그냥 슬며시 웃음만 짓던 그 모습이 얼마나 먹먹하고 아련하던지 위아래로 서로 쳐다보며 어색한 웃음 짓던 그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21시간 만에 끊어질 듯한 허리를 짊어지고 내리며 그들에게 무운을 빌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먼 39시간 짜리 단둥행 열차였다.

<스차하이 후통의 저녁 나절>

<스차하이 후통의 아침 나절>
베이징 후통北京胡同은 원나라 시기에 형성되기 시작해 명,청을 거치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중국의 전통 골목길이다. 전통가옥 사합원四合院이 거미줄 구조로 골목길을 형성하고 골목을 중심으로 공동체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자금성을 중심으로 다스란大栅栏, 스차하이什刹海, 난뤄구샹南锣鼓巷 등의 유명한 후통 골목이 있다. 골목길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 항상 골목길 위주의 여행을 하곤 했다. 실제 골목을 거닐기 전 후통은 그저 잘 보존된, 중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꽤나 큰 골목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현대화의 물결 앞에 무너지는 흐름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도심 구석에 고인돌처럼 보존된 생명이 다한 지역이라 생각했다. 따스란에 도착 후 걸어 들어간 후통은 단순히 보존을 목적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며 관리되는 골목이 아니었다. 베이징 시민이 아침을 맞이하고, 이웃을 만나고, 저녁을 먹고, 거리를 산보하고, 늦은 밤 하나 둘 불이 꺼지며 잠드는 그들이 여전히 삶을 영위하는 현장이었다. 단순히 생활의 편의성 만으로 그들의 삶을 제단할 수는 없다. 또한 그 규모에 깜짝 놀라게 된다. 자금성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는 후통은 직경이 대략 10킬로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각각의 명칭을 가진 후통이 거미줄처럼 엉키고 설켜 베이징 후통을 구성한다. 베이징 시민의 후통에 대한 자부심은 엄청나다고 한다. 중국의 정치,경제,사회, 문화적 상징성이 살아있는 후통은 당분간 사라질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아, 중국의 청와대격인 중난하이中南海도 후통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유명한 북경 오리집 췐쥐더, 문대통령 내외도 방문한 곳이다>

<요리사가 직접 시연을 보여준다>
후통은 개발이 불가한 이유로 현지인도 공중 화장실을 사용한다. 동행한 친구가 공중 화장실에서 튀어나오며 '도저히 안될 것 같다'는 푸념을 털어놓을 때 그저 불결한 위생 상태에 대한 불만인 줄 알았다. 상태를 확인할 겸 화장실 문을 여니 엉덩이를 깐 남성이 담배를 물고 핸드폰을 바라보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사선으로 빗겨서도 아니고 바로 정면에 조금의 동요도 없이 그가 당당하게 앉아 있었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습에 내 마음을 빼앗겨 버렸네~~~~(이건 배경음악) ' 추억은 똥가루를 타고 그 먼 길을 기어코 달려 오고야 말았다.그러니까 문이 없는 개방된 화장실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12년 상해 남부 터미널이다. 배낭여행을 할 때는 내륙 오지 지방이었으니 그러려니 받아들였으나 상해에서 마주한 장면은 경험에도 불구하고 꽤나 충격적이었다. 상해는 열 몇 칸 정도의 긴 화장실에 앞 뒤로 허리 높이의 칸막이가 쳐져 있고 옆이 개방된 형태이다. 상해 남부 지역으로 가는 승객수가 우리 명절때보다 많으니 항상 대기자가 길게 옆에서 기다리는 상황이다. 담뱃불을 빌리다 한국인임을 들켜버린 후 나는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게 되었는데 친절한 아저씨는 그 공간까지 들어와 친히 담뱃불을 붙여주며 말을 걸었다. 한국 드라마가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 그들은 자기의 주장을 뒷받침할 엉덩이 깐 한국인을 옆에 두고 '김희선이냐 이영애냐'로 의견이 갈라졌고 긴장감에 뒤가 길어지던 난 엉덩이를 깐 채 짧은 중국어로 뭐 그리 열심히 김희선과 이영애의 얼굴 품평을 하고 있었던가. 똥가루 난분분하던 그 곳에서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며 굳세게 마주잡던 굳은 악수는 또 어떻고. 일정 시간 단위로 수세식을 가장한 수로가 열리며 맨 뒤부터 똥물이 콰~~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면 쪼그려 쏴 자세에서 기마 자세로 긴급히 바꾸며 뜻하지 않게 파도타기를 하며 장강의 똥물이 튀는 걸 피하곤 했다. 그때 얼쑤~ 하는 추임새가 절로 나오곤 했다. 그와의 눈맞춤을 통해 상해 화장실의 잔상이 기어코 그 먼 길을 추억으로 달려왔다. '너에게 가장 잊지 못할 중국여행이 될거야' 라며 친구의 얼굴을 보니 여전히 똥색이었다.

<오래된 북경 자장면집>
중국여행에서 전자화폐의 사용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듯 하다. 물론 현금이나 카드로도 불편을 감수하며 지낼 수는 있으나 택시 이용만큼은 전자화폐없이 불가능해 보인다. '띠띠따쳐嘀嘀打车'로 알려진 공유택시가 호황을 누린 이후 일반 택시는 거의 멸종 위기에 처한 듯 하다. 막 도착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공항 영업외에 일반 관광지에서 택시를 본 기억이 없다. 중국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은 알리페이나 웨이신페이를 사전에 준비하고 방문해야 원만한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사용하니 그 편리함은 가히 막강하다. 한 번의 현금 사용도 없이 이번 여행을 마쳤다.
숙소나 음식점등 편의 시설을 추천하지는 않는 편인데 이 곳은 그냥 지나치기 아까워 이 곳에 정보를 남긴다. 스차하이什刹海에 위치한 호텔이다. 후통에 위치하여 번잡함 없이 조용하다. 중국 전통 사합원을 개조한 호텔인데 중간의 정원 자리를 그림자 연극 무대로 바꾸었다. 정통 사합원의 풍취를 느낄 수 없는 점이 좀 아쉽다. 이 곳 주인장이 중국 그림자 연극 전수자로서 호텔을 그림자 연극 관련 예술관으로 병행 사용하고 매주 화,목,토에 그림자 공연을 진행한다. 숙박자에 한하여 공짜다. 외지에서 관란시 100RMB이다. 스차하이피잉이수관(什刹海皮影艺术馆 스차하이 그림자 연극 예술관)과 스차하이피잉원화주티쥐덴(什刹海皮影文化主题酒店 스차하이 그림자 연극 문화 주제 호텔) 두 개의 명칭을 사용한다. 구글맵에서 검색이 가능하다.

<시끄러운 걸 좋아하는 중국에서 조용한 술집을 찾기는 힘들다. 대부분이 디스코텍 수준이다. 발품을 팔아 어렵게 찾은 조용한 라이브 술집, 스차하이 호수변에 위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