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아리아나 프랭클린 지음, 김양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고 가만 생각해보니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장르소설이 제법 많다. 얼핏 떠오르는 것만 해도 캐드펠 시리즈, <장미의 이름>, 최근에 읽은 <대지의 기둥> 정도가 있으니 배경 자체만으로는 그리 신선하지 않다. 배경보다는 중세시대 법의학자가 여주인공이라는 말에 끌려 읽게 된 책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여기 의학으로 유명한 살레르노 출신의 여의사 닥터 베수비아 아델리아 라헬 오르테즈 아길라가 있다. 중세 케임브리지에서 일어난 연쇄 아동 살인사건 조사를 위해 이곳에 도착한 아델리아. 살레르노에서였다면 직접 나서서 부검도 하고 사인을 규명했겠지만, 중세 잉글랜드에서 여의사는 마녀라 불렸기에 아라비아인 만수르와 유대인 시몬의 도움을 받아 사건의 실체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눈꺼풀이 도려진 채로 처참하게 발견된 아이들. 그리고 시체 주위에 남겨진 다윗의 별과 비슷해 보이는 물건이 남아 있었기에 유대인이 범인으로 몰린다. 하지만 헨리 2세는 자신의 수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유대인을 쫓아내고 싶지 않았기에 그 또한 사건의 조사를 위해 사람을 파견한다. 반 유대 감정 속에서 쫓고 쫓기는 조사.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십자군, 마녀사냥, 반유대, 남녀차별, 왕과 대주교의 다툼 등 중세는 실로 혼란의 시기였다. 이런 혼란의 시기 속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사건은 분명 '자극적'이다. 하지만 배경만 중세다 뿐이지,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속 이야기는 여성 법의관이 주인공인 <스카페타 시리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돼지가 부패해가는 모습을 통해 시체의 부패 정도를 공부했다는 부분을 읽으며 <시체농장>이 떠올랐고, 좀체 속을 알 수 없지만 어쩐지 매력적인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이나 일과 사랑 중에 고민하는 모습도 스카페타를 떠오르게 했다. 

  또한, 중세만의, 아델리아만의 매력을 느끼기에는 전문적인 요소가 너무 부족했다. <장미의 이름>과 CSI의 결합이라는 문구에 대한 만족은 둘째치더라도, 적어도 아델리아라는 캐릭터 자체가 매력이 있었더라면 그 점에라도 만족했을 텐데, 독특한 외모에 별 고생 없이 자라 세상 물정에 약간 어두운 왈가닥, 하지만 의학에 있어서는 최고인 캐릭터는 그리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나 마지막에 그 인정에 호소하는 모습은 인간적이라기보다는 되려 고집적으로 보였다.) 주인공인 아델리아보다는 되려 주변인물로 등장하는 질사나 시몬, 로울리 경에 호감이 갈 정도로 주인공에 대한 몰입이 약했다. 후속작인 <죽음의 미로>에서는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지 모르겠지만,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으로만 보기에 이 책은 의외로 높은 평점에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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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fu 2011-02-09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분히 즐겁게 읽긴 했는데 아델리아 캐릭터가 너무 도드라지더군요. 나쁜 의미로요. CSI부검실에서 일하는 현대여성이 옷만 바꿔입고 그대로 중세로 타임워프 한 느낌이랄까. 아델리아라는 캐릭터가 개성적인 걸 넘어서서 지나치게 현대적이에요. 아델리아의 생각이나 행동, 사상은 그냥 현대여성이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이 할 법한 것들이 절대 아니죠.

아델리아의 생각이 주인공만이 가질 수 있는 특수한 개성이자 능력이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작가는 최소한 캐릭터에게 그런 고민의 흔적이라도 줬어야 한다고 봅니다. 보는 내내 주인공이 능력자라는 느낌보다는 히스테리 부리기 일보 직전처럼만 보이더군요




이매지 2011-02-09 09:22   좋아요 0 | URL
roofu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저도 이야기 자체는 즐겁게 읽었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아델리아라는 캐릭터의 다음 이야기에는 큰 호기심이 생기지 않네요. 말씀 듣고 생각해보니 정말 캐릭터가 현대여성과 크게 다르지 않네요. 그래서 저도 스카페타가 떠올랐던 건가봐요 ㅎㅎ
 
신과 함께 : 저승편 세트 - 전3권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고려불화대전'이 열렸다. 불화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일명 '물방울 관음'이라 불리는 <수월관음도>가 전시된다고 해서 일부러 <수월관음도>의 전시일인 전시 마지막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찾은 전시회에서 <수월관음도>의 아름다움보다 나를 잡아 끈 것이 있었으니, 바로 <시왕도>였다. 흔히 그림을 두고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말하지만, 불화에 대해서는 거의 백지상태로 갔던 터라 그림에 담긴 의미나 그 깊은 맛을 느끼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었다. 부족한 대로 전시장에 붙어 있는 설명을 읽고 있는 내게 같이 간 남자친구가 네이버 카툰에 연재중인 <신과 함께>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얼핏 들어보니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싶어 <신과 함께>를 정주행하려는 찰나 이렇게 단행본으로 만나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신과 함께>는 우리 문화에 대한 이야기다. 평생 남한테 싫은 소리도 한 번 못하고 살다가 노총각으로 죽은 김자홍이란 인물을 통해 죽음 이후 저승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다. 49재, 저승사자, 노잣돈, 삼도천 등 우리가 저승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에 대해 풀어나간다. 아무래도 내용 자체가 김자홍이 저승에서 7명의 시왕을 상대로 재판을 벌이는 것이 주가 되기 때문인지 시왕에 대한 부분만큼은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레 배울 수 있었다. 진광대왕의 칼로 이루어진 산인 도산지옥에서부터 펄펄 끓는 거대한 무쇠솥이 랜드마크인 초강대왕의 화탕지옥, 얼음감옥인 송제대왕의 한빙지옥, 잎사귀가 칼인 숲속에 있는 오관대왕의 검수지옥, 입으로 지은 죄를 심판하는 염라대왕의 발설지옥, 강력범죄 전문 심판관인 변성대왕의 독사지옥, 상법 전문 심판관인 태산대왕의 거해지옥. 일주일에 한 명의 재판관(시왕)을 만나기 때문에 49재가 생기는 것. 이 심판 결과에 따라 지옥에 떨어지느냐, 가축 또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느냐가 결정된다고 하는데, 차근차근 재판을 받는 모습을 보면 정말 죄 짓고는 못 살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지극히 교훈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작가는 이야기를 고루하게 풀어가지 않는다. 중간중간 잘 녹아들어간 유머가 저승에 대한 지식 외에도 재미만 봐도 여느 만화에 뒤지지 않았다. 네티즌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요소들을 대사에 녹여내기도 하고("페이퍼 타올이 여기 있네") 다양한 패러디(헬벅스, Joogle, 호텔 헬리포니아 등)와 유머가 <신과 함께>에는 담겨 있다. 이야기 서술 방식도 하나의 이야기만 다뤘다면 지루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를 텐데 두 가지 이야기를 교차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변화를 준 점도 좋았다. 죽도록 일하다가 술병 때문에 죽은 김자홍이 저승삼차사의 손에 이끌려 초군문 행 기차를 타고 저승에 입국해 진기한 변호사와 함께 재판을 받는 이야기와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한다는 말년병장 유성연이 말년 휴가를 하루 앞두고 사고로 총에 맞아 죽은 뒤 원귀과 되어 저승삼차사의 추적을 받는 이야기. 전혀 다른 삶과 전혀 다른 두 개의 이야기가 그려지지만 거기에 담긴 '죽음'에 대한 그리고 '삶'에 대한 메시지는 읽는 이의 마음을 짠하게 만들었다.

  저마다 목표하는 바는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인간답게 살고 싶어한다. 무엇이 인간답게 사는 것인지, 무엇이 우리 삶에서 중요한 요소인지. <신과 함께>를 통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고 나니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에도 절로 신중해졌다. 새해부터 네이버 웹툰에 <신과 함께-이승편>도 새롭게 연재되기 시작했다. 이승편에서는 초반에 가택신들이 등장하던데,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펼쳐갈 지 궁금해진다. 저승편, 이승편, 신화편. 내년까지 이어질 <신과 함께> 3부작을 통해 우리 문화를 더 가깝게 느낄 수 있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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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1-01-16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요새 급관심 둔 책이에요. 서평단도 신청했는데 경쟁률이 쎄요. 요새 보충수업하는 학생도 이 책 사겠다고 막 자랑질 하던걸요. 제가 짐작했던 것보다 더 전문적인 이야기가 나오네요. 반짝반짝+_+

이매지 2011-01-16 15:45   좋아요 0 | URL
연재에는 없는 이야기들도 마지막에 실려 있더라구요.
<시왕도>도 수록되어 있고, 지장보살에 대한 내용 등.
저승에 대해 쉽게 이해하기에는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저는 헬벅스 텀블러가 몹시 탐이 나더라구요 ㅎㅎㅎ

웽스북스 2011-01-16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재에 없는 이야기도있군요. 저는 턴님 추천 덕에 추석에 네이버에서 정주행했지말입니다 ㅋㅋ 이승편 시작해서 너무 기뻐요 ㅎㅎㅎ

이매지 2011-01-16 19:36   좋아요 0 | URL
책에는 강림도령의 4컷만화도 있지말입니다 ㅋㅋㅋ
이승편 그 김자홍이 내복 사준 할머니 얘기인 것도 같던데 어떻게 흘러갈 지 궁금해요 ㅎㅎ

루체오페르 2011-01-17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 눈여겨 보고 있었는데 이 작품으로 잘되는것 같아 다행입니다.^^

이매지 2011-01-17 09:53   좋아요 0 | URL
재미도 재미지만, 소재 자체가 좋은 거 같아요.
저는 뒤늦게 <짬>도 찾아볼까 하구요 ㅎㅎ

하이드 2011-01-17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동에서 요즘 이 책 유행인가요? ㅎ 해라님 포스팅 보고 다 봤어요. 헤헤

이매지 2011-01-17 09:56   좋아요 0 | URL
해라님도 포스팅하셨군요 ㅎㅎㅎ
저는 책 나오자마자 보고, 리뷰 쓰기 전에 다시 한 번 봤는데
정말 깨알 같은 재미가 가득한 이야기!
이승편도 어여 보세요~~

하늘바람 2011-01-17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전 만화책 잘 몰랐는데 궁그ㅡㅁ하네요

이매지 2011-01-17 09:57   좋아요 0 | URL
일단 맛뵈기로 저승편 1화 한 번 읽어보세요 ㅎㅎ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119877&no=2&weekday=mon

다이조부 2011-01-20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주호민 좋아하는데 반갑네요 ㅋ

이 사람이 짬 시리즈 같은것만 그리다가 짬(?)될줄 알았는데

진화해서 스토리텔러의 가능성을 보여준 무한동력을 거쳐

재능을 꽃 피우기 시작한 이번 작품까지 동년배 로서 응원하고 싶어지네요 ㅎㅎ

이매지 2011-01-20 09:41   좋아요 0 | URL
주호민 작가님은 응원하시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더라구요 ㅎㅎㅎ
오랫동안 지켜보신 분들이 <신과 함께>의 성공에 더 기뻐해주시는 듯^^

무스탕 2011-01-20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다 봤어요. 이매지님 소개로 말이지요. 으.. 무섭기도 하고 작가의 다음 작품도 무척 기대도 되고 말입니다. 좋은 작품 소개해 주셔서 감사해요~ :D

이매지 2011-01-20 13:54   좋아요 0 | URL
오오, 무스탕님도 다 보셨군요^^
정말 무섭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한 번 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
이제 이승편 시작됐어요. 한 편 한 편 보려니까 감질나네요 ㅎ
 
가만히 거닐다 - 교토, 오사카... 일상과 여행 사이의 기록
전소연 지음 / 북노마드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왜 여행을 할까? 사람마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관광지를 눈도장 찍듯 보고 왔다고 해서 우리가 그곳을 '안다'고 이해할 수 있을까? 걷는 건 좋아하지만 딱히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는 몇십 년째 살고 있는 서울도 때론 낯선데, 국외로 떠난다고 해도 풍경이 바뀌는 것 말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렇기에 해외여행에 대해서도 다소 심드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언젠가 한번 이렇게 외국에서 일상을 보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품게 됐다. 일상을 벗어나는 것이 아닌, 또 다른 일상을 거닐 기회. 그런 기회를 여행에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졌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여행 에세이가 아니다. 물론, 교토와 오사카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니만큼 금각사 같은 관광지에 대한 언급도 등장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는지에 대한 감상이 주가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발길 닿는 대로, 때로는 지나가는 아무 버스나 잡아타보기도 하고, 때로는 낯선 커피숍에 들러 차 한잔 마시기도 하면서 가만히 거니는 나날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된다. 일상을 담은 사진과 감성적이지 않은 글. 이 두 가지 요소가 과하지 않게 어우러져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교토를 편안한 도시로 만든다. 

  교토나 오사카 여행에 앞서 이 책을 읽는 것은 여행 정보 차원에서는 적절치 않을 지 모른다. 하지만 여행에 임하는 자세 또는 여행의 목적을 생각해보는 데 있어서는 분명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정하고서야 여행은 의미를 갖는다고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는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며, 나도 이렇게 느긋한 여행을 즐기고 싶어졌다. 빡빡한 일상 속에서 잠시 여유를 찾고 싶을 때. 서울에서도 가만히 조용히 함께 거닐어줄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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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01-12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에 앞서~
와
언제나 님이 읽는 책을 따라 읽고 싶어요

이매지 2011-01-12 16:34   좋아요 0 | URL
올해는 한번 여행을 떠나보려구요^^
기웃기웃 달력을 넘기며 간보고 있어요 ㅎ

아이리시스 2011-01-15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훗; 금각사도 등장한단 말이죠?
일본중에 유일하게 좋아하는 건데요, 금각사.
그 스산함과 신비감이 일본스러움이라고, 미시마 유키오를 처음 읽을때 생각했었거든요.
리뷰 잘 읽었어요.^^

이매지 2011-01-15 14:26   좋아요 0 | URL
금각사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많이 등장하지는 않아요 ㅎㅎ
저는 금각사 예전에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다가 반납해서 아직 끝까지 못 읽었어요. 올해는 마저 읽어야 할 텐데 ㅎㅎㅎ


2011-01-15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5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을 훔친 위험한 冊들 - 조선시대 책에 목숨을 건 13가지 이야기
이민희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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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국방부에서 불온서적을 지정해 논란이 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불온도서 선정은 비단 오늘날에만 있는 일이 아니었다. 조선시대를 뒤흔든 책들. 새로운 시대를 바라보는 눈이 되어주었던, 현재의 폐단을 바로잡을 수 있었던 조선시대의 불온서적. 그런 책에 관한 이야기가 <조선을 훔친 위험한 冊들>에 담겨 있었다.

  <조선을 훔친 위험한 冊들>에는 시대를 잘못 타고나 찢겨지고 불태워진 책들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역사에는 '만약'이란 게 있을 수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그 '만약'을 떠올렸다. 한 권의 책이 과연 역사의 커다란 흐름을 바꿀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만약 어득강의 상소처럼 서점이 전국에 설치되어 독서가 일부 계급의 전유물이 아닌 가난한 선비들의 지적 목마름을 해소해줄 수 있었다면, 만약 『연병지남』 같은 병서를 받아들여 화차를 이용한 전술을 발전시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막을 수 있었더라면, 소현세자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기록한 『심양장계』를 인조가 불길한 징조로 보지 않았더라면 조선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론에서는 진지하게 조선시대 위험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갔다면 조선의 책 이야기에서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이야기가 배치되어 있어 완급을 조절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지금으로 말하면 독서 대여점이라 할 수 있을 세책점에 대한 이야기나 책을 빌려달라는 사람도, 빌려주는 사람도, 읽고 돌려주는 사람도 바보라는 삼치설에 대한 이야기, 일종의 독서휴가라 할 수 있는 사가독서제, 천여 권의 책을 쌓아놓은 이에게 책을 팔아 아들을 장가보내라고 하자 차라리 자손이 없는 게 낫다며 거부한 이야기 등을 통해서 책을 사랑한 이들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재미는 다양한 사진 및 그림 자료였다. 사실 이 부분은 장점도 단점도 될 수 있을 듯하지만, 본문과 연관되는 이미지를 통해 본문의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 오늘날의 불온서적과 비교해 여러 모로 비슷하게 느껴졌던 조선의 위험한 책들. 책을 덮으며 어쩌면 이런 위험한 책이 더 많은 이들에게 읽힐 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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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1-12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런 종류의 불온 서적들도 있네요.전 조선시대 금서라고 해서 금병매와 같은 음서를 생각했네요^^;;;
어느 책에서 보니 흔히 중국에서 말한 음서란 책들이 조선시대에도 상당히 은밀히 들어왔다는 자료를 본적이 있읍니다.유학을 숭상하던 조선시대에서 사람 사는것은 다 매한가지 였나 봅니당^^

이매지 2011-01-12 23:26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것 같은 소설에 대한 내용도 있지만,
그보다는 사회 변혁적인 내용을 담은 책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어요 ㅎㅎ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건 다 매한가지인 듯^^
 
가만히 거닐다 - 교토, 오사카... 일상과 여행 사이의 기록
전소연 지음 / 북노마드 / 2009년 1월
절판


내가 아는 한 사람은 누군가와 마음을 다해 만날 때면 '사귄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산다'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너를 산다" 그 말이 그렇게 근사할 수 없었다. 그 어떤 표현보다 진하게 들리는 '너를 산다'는 것은 어쩌면 여기가 아닌 그곳을 사는 여행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낯선 도시에 가서 사는 것. 긴 호흡으로 사는 여행이 불가능하다면 짧은 여행이더라도 일상적인 여행으로 여행의 방식을 바꾸면 그만인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한동안 그곳에 살았다'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26쪽

한 권의 책이 여행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공감할 것이다. 공감이 안 된다면 당신은 취미란에 '독서'라고 한번도 쓴 적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39쪽

그것은 나에게 빈틈을 만드는 일이었다. 살면서 빈틈을 만드는 일은 삶을 무언가로 채우는 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요한 만큼 쉽지 않다. 언제나 그랬다. 중요한 건 쉽지 않았다. 어떻게든 마련하고 싶은 내 생의 빈틈은 '산책'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때로는 '여행'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겹겹이 쌓여진 일상에서 어떤 빈틈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면에서 산책과 여행은 닮은꼴이었다.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혹은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은 5월의 미루나무 잎사귀를 흔드는 바람의 의지 같은 것이어서 자주 나를 바깥으로 내몰았다. 다시 말하면 산책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간신히 몸을 돌려 코에 바람을 넣는 일이었고 나는 콧바람을 몹시 좋아했다. -54쪽

여행의 기회가 적은 사람들에게 휴가라는 이름으로 어렵사리 시간이 주어지면 내 인생의 다시 오지 않을 발걸음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짧은 시간 동안 빡빡한 일정으로 발도장 찍는 여행을 하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대답만 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교토에서 맛있는 것을 찾아다닌 것처럼. -115쪽

셔터를 누르는 순간 나와 당신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야기가 시작되기까지 나는 당신을 지켜볼 것이고
가끔씩 미소를 보내기도 할 것이다.
당신과 나와의 거리는 가까워지거나 혹은 멀어질 것이다.
그러나 가깝고 먼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당신이 내 뷰파인더 안에 있느냐 없느냐이다.
당신 주변을 서성거리던 나는 호흡을 멈추고 셔터를 누르게 될 것이다.
당신과 나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결정적 순간은
불과 몇 초 안에 찾아온다.
그러니 타이밍을 놓치지 말자. 사랑이든 사진이든 타이밍의 문제다. -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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