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거닐다 - 교토, 오사카... 일상과 여행 사이의 기록
전소연 지음 / 북노마드 / 2009년 1월
절판


내가 아는 한 사람은 누군가와 마음을 다해 만날 때면 '사귄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산다'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너를 산다" 그 말이 그렇게 근사할 수 없었다. 그 어떤 표현보다 진하게 들리는 '너를 산다'는 것은 어쩌면 여기가 아닌 그곳을 사는 여행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낯선 도시에 가서 사는 것. 긴 호흡으로 사는 여행이 불가능하다면 짧은 여행이더라도 일상적인 여행으로 여행의 방식을 바꾸면 그만인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한동안 그곳에 살았다'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26쪽

한 권의 책이 여행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공감할 것이다. 공감이 안 된다면 당신은 취미란에 '독서'라고 한번도 쓴 적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39쪽

그것은 나에게 빈틈을 만드는 일이었다. 살면서 빈틈을 만드는 일은 삶을 무언가로 채우는 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요한 만큼 쉽지 않다. 언제나 그랬다. 중요한 건 쉽지 않았다. 어떻게든 마련하고 싶은 내 생의 빈틈은 '산책'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때로는 '여행'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겹겹이 쌓여진 일상에서 어떤 빈틈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면에서 산책과 여행은 닮은꼴이었다.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혹은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은 5월의 미루나무 잎사귀를 흔드는 바람의 의지 같은 것이어서 자주 나를 바깥으로 내몰았다. 다시 말하면 산책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간신히 몸을 돌려 코에 바람을 넣는 일이었고 나는 콧바람을 몹시 좋아했다. -54쪽

여행의 기회가 적은 사람들에게 휴가라는 이름으로 어렵사리 시간이 주어지면 내 인생의 다시 오지 않을 발걸음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짧은 시간 동안 빡빡한 일정으로 발도장 찍는 여행을 하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대답만 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교토에서 맛있는 것을 찾아다닌 것처럼. -115쪽

셔터를 누르는 순간 나와 당신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야기가 시작되기까지 나는 당신을 지켜볼 것이고
가끔씩 미소를 보내기도 할 것이다.
당신과 나와의 거리는 가까워지거나 혹은 멀어질 것이다.
그러나 가깝고 먼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당신이 내 뷰파인더 안에 있느냐 없느냐이다.
당신 주변을 서성거리던 나는 호흡을 멈추고 셔터를 누르게 될 것이다.
당신과 나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결정적 순간은
불과 몇 초 안에 찾아온다.
그러니 타이밍을 놓치지 말자. 사랑이든 사진이든 타이밍의 문제다. -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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