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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ㅣ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책을 선택할 때 아무래도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어떤 작가의 작품이냐라는 점이다. 딱히 책 선택시 모험을 하고 싶지 않을 때는 믿을만한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다면 실패할 염려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이사카 코타로도 나에게 그런 면에서는 '보증 수표'같은 존재. 게다가 또 하나의 보증 수표인 '일본 서점대상'까지 수상했다니 일단 어느 정도 재미는 보장. 생각보다 두꺼워서 '금방 읽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었는데 이런 걱정도 잠시, 책을 잡자마자 이야기 속에 빠져들어 나 또한 주인공 아오야기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숨막히는 며칠 간을 보냈다.
사건의 시작, 사건의 시청자, 사건 20년 뒤, 사건, 그리고 사건 석 달 뒤라는 총 5부로 구성된 이야기는 초반에는 사건의 바깥을 보여준다. 그렇게 궁금증을 잔뜩 안겨주고서는 4부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아오야기가 겪는 일들이 그려진다. 초반에는 너무 개별적인 사건들이 등장해서 집중하기 힘들었는데, 본격적으로 아오야기의 이야기가 그려지는 '사건'에서부터는 아오야기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꽤 긴장감있게 진행되서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작가도 밝혔다시피 이 책의 소재는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과 꽤 비슷하다. 존 F 케네디의 암살범으로 알려진 오스왈드가 사실은 암살범이 아니다 류의 음모론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리고 있다. '음모'라는 단어는 사람들의 호기심과 욕망을 자극하는 구석이 있는지, 케네디 암살 음모 뿐만 아니라 911테러와 같은 큰 사건이 터지면 으레 음모론은 터져나온다. 이 책에 등장하는 총리 암살 또한 하나의 음모로 사건 20년 뒤에도 총리 암살에 대한 이야기는 호사가들의 관심사가 된다. 하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누가 죽였을까'지 '그 때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이 이야기에서 아오야기가 겪는 일들을 꽤 조마조마하면서 볼 수 있었다.
사실 총리 암살범으로 아오야기가 몰린 것에는 뭔가 이유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원한 관계가 있다던지, 혹은 그저 오해일 뿐이라던지, 그런 류의 이야기가 숨어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실상은 전혀 달랐다. 택배 배달을 하며 평범하게 지내던 중 우연히 아이돌 스타를 구해낸 아오야기. 반짝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지만 2년이 지난 이제는 악질적인 장난때문에 택배 회사도 그만두고 백수로 지내며 살아가고 있을 뿐. 하지만 어느 날 8년 만에 대학교 친구로부터 연락이 오며 그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한다. 자신이 간 적이 없는 장소에 자신과 닮은 사내가 있는 CCTV가 찍혀있고, 자신이 알던 사람들조차 믿을 수 없는 상황. 그런 상황 속에서 아오야기는 왜 쫓기는 것인지 이유도 알 수 없이 쫓기도 또 쫓긴다. 외통수에 걸려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 그런 상황 속에서 아오야기는 마무리로 달려가는데...
엔터테인먼트 대작이라고 해서 단순히 오락적인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걱정도 했는데, 분명 소재 자체는 그럴 지 몰라도 그 속에 담겨있는 내용은 꽤 생각해볼만한 거리가 있었다. 예를 들어, 미디어가 어떻게 사실을 왜곡하는지, 정보를 통제하는 것이 얼마나 간단한 것인지, 대중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구워삼는 것이 얼마나 간단한 일인지와 같은 거대 권력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에 대해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기존에 서점대상을 수상한 작품들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른 편이었고, 이사카 코타로의 기존 책들과도 다른 느낌이었지만 만족스러웠던 책이었다. <도망자>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후회하지 않을 책. 꽤 두껍지만 조금만 더 읽어야지 조금만 더 읽어야지하다가 끝까지 달려갈 지도 모르니 이왕이면 주말에 느긋하게 보는 것이 어떨까 싶은 책이었다.
덧) 어지간해서는 책을 다 읽고 다시 중간으로 돌아가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사건 20년 뒤 챕터를 다시 한 번 읽어봤다. 처음에 읽을 때는 어떤 성격의 사람들인지 모르고 읽어서 크게 재미있다는 생각을 안 했는데 끝까지 읽고 다시 돌아가서 읽으니 의외로 재미가 쏠쏠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