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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 없는 세상 - 제6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많은 분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아내가 결혼했다>를 보려고 도서관에 예약을 해놨는데 몇 주가 지나도록 내 손에 들어올 생각을 안한다. 그래서 계속 이 책을 기다려야하는가하는 생각에 작가의 다른 작품을 먼저 한 번 맛보기로 읽어보겠노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집어든 것이 바로 이 책 <동정 없는 세상>이다.
수능이 끝난 후, 미래에 대한 별다른 계획없이 그저 여자친구인 서영에게 '한번 해보자'며 졸라대는 열아홉살 주인공의 이야기. 책 표지에 쓰여있는 것처럼 이 책은 '한 번 하자'에서 시작해서 '한 번 하자'로 끝난다. 하지만 두 발화의 사이에 담긴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은 성장한다. 수능이 끝나고 집에서 친구들과 빈둥거리면서 시간을 보내고(pc방도, 당구장도 이미 고3내내 뻔질나게 드나들어 지겨울 지경이었다), 서영이 그에게 "넌 뭐가 되고 싶어?"와 같은 질문을 던지면 머릿속에는 온통 '한번 하는' 생각뿐이면서도 겉으로는 "글쎄."하며 우물쭈물한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결심을 하게 되지만 자신도 모르게 "한 번 하자"는 말을 내뱉는 모습을 보인다.
다소 가벼운 문체는 달리 생각하면 아직은 미성숙한 주인공을 삼고 있기때문에 충분히 용서 가능한 항목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남자들은 소년에서 어른으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꼭 지나가야하는 것은 '동정을 떼는' 일이다. 아무리 야동이니 야설이니 잔뜩 보면서 마스터베이션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 주인공은 그런 아쉬움과 함께 어른이 되고 싶다는 열망에 어떻게든 동정을 떼보려고 애쓴다.아니, 용쓴다. 10대 특유의 경박함은 느껴지지만 그 경박한 캐릭터마저 따뜻한 눈길로 바라봐지는 책이었다.
책 속에서 주인공을 둘러싼 몇 안되는(다 해봐야 5명 밖에 안된다) 사람 중에 중요한 인물이라면 엄마인 숙경씨, 외삼촌 명호씨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엄마, 삼촌이라고 부르지 않고 숙경씨, 명호씨라고 부름으로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멘토처럼 지내는 모습은 누군가는 콩가루집안이라고 말할 정도로 묘하긴 했지만 왠지 훈훈하게 느껴졌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았지만 가족의 정을 갖고 있는 느낌이었다랄까? 또, 대학을 못 갔지만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엄마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지만 백수로 지내는 삼촌의 모습을 보면서 학력이냐 능력이냐라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가벼움이 느껴진 소설이었지만 그 가벼움이 독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책을 손에서 놓고 아무리 오래 기다리게 되더라도 <아내가 돌아왔다>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몇 작품 내지 않은 작가이지만 앞으로 어떤 행보를 할 지 궁금해졌다. 젊은 작가의 젊은 소설을 읽고 싶을 때 빼놓으면 안 될 것 같은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