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978년 동생 영주의 탄생에서부터 1981년 영주의 죽음에 이르는 4년 간의 이야기를 어린 소년 동구의 눈으로 바라보는 책은 얇지만 탄탄하게 무게감있게, 그리고 재미있게 진행된다. 딸을 낳았다고 잡아먹을 것 같이 며느리 구박을 하는 할머니, 그런 할머니의 역정을 꾸역꾸역 참아내는 엄마, 이야기를 하기 싫을 땐 회피하거나 자신의 뜻을 강요하는 아빠. 그리고 난독증으로 고생을 하지만 4학년 때 만난 담임선생님 덕분에 늦게나마 글을 배우게 되는 동구, 그리고 똘똘하지만 누구보다 자기 감정표현을 잘하는 영주. 이런 구성원으로 이뤄진 가족은 박정희 암살, 광주사태 등 사회의 격변기 속에서 삐걱삐걱 살아간다. (물론, 이런 사회적인 현상은 어린 동구에게 하나의 '구경거리'에 불과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책은 고부 간의 갈등을 그린 이야기다. 아니 어린 동구가 성장해가는 과정이 그려진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짧지만 모두의 마음 속에 깊이감을 남긴 영주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이야기를 기대하고 읽게되더라도 분명 독자는 만족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제대로 성장하고 성숙한 어른이라도 이해하기 힘든 상황. 그런 상황이 어린 동구의 눈에는 얼마나 불합리해보이고 이해가 되지 않겠는가? 이 책 속에서 비춰지는 모습들은 초등학생인 동구에게도, 대학생인 나에게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 했고, 왜 그런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을까? 사회의 희생양이 되어 사라져야만 했던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영주의 죽음으로 가족에게 가까스로 피어오른 희망의 불꽃이 꺼지는 과정, 이런 경험을 통해 조금은 성장해 다시 그 꺼져가는 불꽃을 살려내는 동구의 모습이 이 책 속에는 당시 사회상과 잘 어울려져있었다.

  이 책을 펼쳐들었을 때만 해도 나는 몰랐다. 앞으로 내가 어떤 감정의 변화를 겪게 될 지. 밖에서 책을 읽느라 나오는 눈물을 꾸역꾸역 참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일 것인지를. 심윤경 작가의 첫 작품인 이 책은 신인답지 않은 짜임과 감동으로 내게 찾아왔고, 그 덕에 지금 내 책상에는 심윤경 작가의 책들이 나의 손을 기다리며 올려져있다. 매번 반복되는 비슷한 스토리를 찍어내는 한국 여성작가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내게도 드디어 좋아하는 여성작가가 한 명쯤은 생긴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물론, 남은 작품들도 읽어봐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겠지만) 화해와 용서, 그리고 희망과 감동. 이 모든 것이 이 책 속에는 녹아들어있었다. 생명력 있는 캐릭터, 그리고 웃음과 감동이 있는 이야기를 찾는 독자라면 놓치지 말고 꼭 읽어야 할 작품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별 다섯개를 줘도 아깝지 않은, 내 가슴에 깊이 남는 책이 등장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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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nara 2006-12-03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이 작가의 데뷔작이란게 놀랍죠?
'달의 제단'이나 '이현의 연애'도 만족하실겁니다.^^

이매지 2006-12-03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리 읽고 싶은데 시험기간이라 바빠서 못 읽고 있어요 ㅠ_ㅠ
공부도 안하면서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