꾿빠이, 이상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원래도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시에 대한 겁을 먹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이상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로 이어지는 오감도는 어린(?) 내게 너무 혼란스럽게 느껴졌다. 때문에 '시=난해한 것'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졌고, 국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그 편견은 여전하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도서관에서 이상에게 "굳빠이"라고 하는 이 책을 만나게 되었고 어떤 책일까 궁금한 마음에 들었다가 다시금 난해한 인물 이상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3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이 세가지 이야기는 이상을 둘러싼 한 가지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이상의 데드마스크를 갖고 있다는 제보를 접하고 이를 기사화할 것인가를 판단하기 위해 이상에 대해 파고드는 김연 기자의 이야기, 이상을 추종하여 그의 발자취를 쫓는 서혁민의 이야기, 한국계 미국인으로 자기를 찾기 위해 이상을 연구하기 시작한 피터 주의 이야기. 이 모든 이야기가 이상의 데드마스크가 정말로 존재하느냐, 하지 않느냐, <오감도 시 제 16화 실화>는 있느냐 없느냐, 그리고 이상의 삶은 어디까지가 '이상으로의 삶'이고, 어디까지가 '김해경으로의 삶'인가에 초점이 맞춰서 진행된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각 인물들은 마치 뭔가에 홀린 것처럼 이상이란 인물에 매료되고, 그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허우적거린다.

  고등학교 시절에 이상의 시를 읽고서 다시는 그의 시를 읽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이 책을 읽고나서는 이상의 산문과 시를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끊임없이 '진실'을 밝혀내려고 했지만 결국 밝혀지지 않았던, 아니 밝혀질 수 없었던 진실을 조금이나마 그 속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다. 이 책 속에서 말한 것 처럼 '김해경'은 죽었다. 하지만 '이상'은 남았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 그의 작품을 다시 접한다면 인간 김해경에 대해, 그리고 그의 난해해보이는 작품세계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정체모를 용기마저 생겨났다.

  이상의 텍스트와 김연수의 상상력. 이것이 잘 결합되어 정말 '그럴싸한' 하나의 이야기로 탄생했다.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여 하나의 코드로 묶인 그들의 이야기는 난해하지만 한 편으로는 광기어린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섬뜩한 느낌도 없잖아 들었다. 이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물론 한 번 읽어봄직하지만 나처럼 이상에게 '굿바이'를 외치고 싶었던 사람이라도 이 책을 다시 접한다면 금새 '굿바이'라는 말을 거둬들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처럼 탄탄한 한국소설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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