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이라는 명분에 바쳐진 제물

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너무 재미있게 봤고, 우연찮게 최근작인 <이현의 연애>가 손에 들어와서 고민할 것 없이 집어든 책이 바로 그 두 작품 사이에 낀 <달의 제단>이었다. 젊은 작가치고 탄탄한 실력으로 무장한, 작가의 말에서도 쿨한 것을 떠나 뜨거움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그녀의 말처럼 이 작품은 소위 쿨하고, 말랑말랑한 소설과는 격을 달리 한다. 이제 몇 작품 쓰지 않았지만 만나면 만날수록 기대되는 작가랄까? 얇지만 이 탄탄한 작품을 나는 한숨도 쉴 새 없이 읽고 또 읽어갔다.

  명맥이 끊겼던 종가를 살리려는 일념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결국 가문을 일으키고 뿔뿔이 흩어져서 지내는 친척들을 모아 위신을 세우기에 이른다. 종가집의 풍습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 다른 종가집에 가서 조언을 얻기도 하는 할아버지. 의지가 굳은 그런 할아버지의 밑에는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반대하던 여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상룡이라는 인물이 있다. 서자인 처지라 원래대로라면 끼지도 못했겠지만 어떤 연유인지 상룡은 집안의 장손이 되고, 완강한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며 얽매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 전공도 자신의 뜻대로 선택하지 못하고, 대학에 가서도 할아버지가 모든 것을 꿰뚫고 있어 마음대로 연애도 하지 못하고, 친구도 사귀지 못하는 상룡. 그에게 유일한 휴식처는 어머니같은 달시룻댁의 따스함과 다리병신인 정실의 품 속 뿐이었다. 이런 장손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상룡이 할아버지에게 지시받은 일은 집안의 옛 고문을 해석하는 것. 그 고문 속에는 집안이 가장 흥하던 시기에 종부로 살아갔던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이 그려지고 있었다.

  이 책의 배경이 되고 있는 효계당은 이제는 사라진 풍습이 마지막으로 남은 곳. 현대화의 물결이 미처 밀려올 생각을 못하는 곳이다. 고지식한 할아버지가 21세기라는 시간대에서 조선시대를 살아가는 것처럼 지내는 공간이 바로 효계당이다. 가문에 뭔가 득이 되는 일인지를 먼저 생각한 뒤에 행동해야 하고, 예를 차리기 위해 지나치게 예법에 얽매이는 생활. 이런 것들이 할아버지로 하여금 시대착오적인 행동을 하게끔 만든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리의 옛 풍습이나 문화는 중요한 것이지만 이것은 시대에 따라 융통성있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가문을 위해, 신념을 지킨다는 명분하에 할아버지가 행하는 일들은 과연 용서할 수 있는 일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치않은 종손 노릇을 해야하는 상룡도, 그의 아버지도, 그리고 정실과 달시룻댁, 해월당 어머니도 모두 이런 관습 위에 바쳐진 제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무하기도 하지만 먹먹함이 많이 남았던 이야기. 전통이라는 축을 중심으로 충돌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 그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계기가 되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여 이 책을 읽고 심윤경에 대해 실망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두번째 작품을 읽고나서도 역시 심윤경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책. 그녀의 꾸준한 이야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