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월
구판절판


책은 점점 더 시장과 자본의 논리에 순응해야만 하는 일종의 상품이 되어 갔다. 대량 생산된 책은 돈만 지불한다면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책의 소유가 곧 소유자의 지적 능력을 나타내지 않게 되었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책을 실내를 꾸며주는 고상한 장식품 용도로 사용하곤 했다. 그리고 이런 관습은 현재에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또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사회적 신분이나 지식의 유무를 드러내는 가치 척도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것도 대략 이 시기와 일치한다.



-p.179쪽

책을 읽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어쩌면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주변에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세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을 통해 얻게 된 고독의 순간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고독하게 책을 읽는 사람을 빨아들일 정도로 강한 궤적을 남기면서 삶은 독자의 주위를 지나가고, 책으로 이루어진 보이지 않는 성벽은 삶의 흡인력을 막아낼 정도로 견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p.188쪽


< 회복기의 환자> 1923, 24년 피츠윌리엄 박물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우리는 이 그림에서 피곤해 보이지만 몹시 단호한 표정의 병약한 젊은 처녀를 본다. ... 그림을 그릴 때 사용된 주저하는 듯한 양식은 화가와 그림 속 인물 모두가 피곤한 상태라는 것을 암시한다. 실패의 위험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대단히 많은 힘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감각 기관의 과민 반응, 자극에 쉽게 반응하는 신경 상태, 점증하는 자아 집중과 함께 진행되는 신경 쇠약 상태에서 그녀의 많은 동시대인은 지금의 시기와 예술에 어느 정도 상응하는 그웬 존의 감정 상태를 보았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다음과 같은 가정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즉 이런 감정 상태에서는 독서가 도움이 될 수 있고, 다른 경우라면 신경과 의사가 맡았을 역할을 자기 자신이 맡을 수도 있다는 가정이 바로 그것이다. 병든 사람은 외부에서 생긴 추동력을 필요로 하지만, 이런 개입이 동시에 그의 내면에서도 완수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프루스트는 그것이 정확하게 독서의 정의, 오직 독서에만 해당하는 정의라고 말했다. 독서는 피곤한 상태에서 다시 정신력과 강한 의지를 돌려주는 치료제처럼 작용한다. 독서의 보호를 받으면서 우리는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p.227쪽

<<메릴린 먼로가 <율리시즈>를 읽다.>> 1952년

"그녀가 읽었을까, 아니면 읽지 않았을까?" 이런 질문을 자제하기는 상당히 힘들다. 20세기 금발의 섹스 표상인 메릴린 먼로가, 20세기 고급 문화의 표상이며 많은 사람들이 현대 소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창조물이라고 평하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었을까? 혹은 그냥 읽는 척하는 것일까? 왜냐하면 같은 사진집에 연속해서 찍은 다른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사진에서도 메릴린이 읽고 있는 것은 바로 조이스의 책이기 때문이다.
문학 교수 리처드 브라운은 그것이 궁금했다. 결국 연속 사진 촬영이 이루어지고 난 지 30년이 지나서 그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을 사진 작가에게 편지를 썼다. 이브 아널드는 즉시 자신은 메릴린이 이미 <율리시스>를 읽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대답했다. 메릴린이 자신은 그 책의 어조를 좋아하며, 그것을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소리 내서 읽고 있지만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고 사진가는 말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 두 사람이 미리 약속한 장소에 멈추었을 때 메릴린은 <율리시스>를 읽고 있었으며, 그동안 이브 아널드는 필름을 끼우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그녀는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p.249 쪽

책을 읽는 사람은 깊이 생각을 하게 되고,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독자적 생각을 갖게 된다. 자신의 독자적 생각을 가진 사람은 대열에서 벗어나고, 대열을 벗어나는 자는 적이 된다.


-p.256쪽

"여자가 읽은 것을 배웠을 때, 여자의 문제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마리 폰 에브너 에셴바흐Marie von Escenbach의 말이다. 책을 읽는 여자는 근거를 묻고, 그리고 근거를 묻는 것은 단단하게 맞물린 세상의 규칙을 파괴한다.
-p.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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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6-05-03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험하다면서 이리도 많이 읽으시나이까!!!

icaru 2006-05-03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는요~ 무신... 그동안 칩거생활의 묵은 때를 벗고 있는 중이랄까요~ 호호..(여승 같은 말을 하고 있네요^^) 잉과장님은 어찌 그리 뜸하셨을꼬~

하루살이 2006-05-04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경우엔 책을 읽는 사람이 깊이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고, 벽을 쌓는 건 맞는것 같아요. 님은 반대이실거라 믿으면서...

2006-05-14 1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