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반납한다 - 위로받는 청춘을 거부한다
안치용.최유정 엮고 씀 / 인물과사상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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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읽은 날짜 : 7월 어느 날

 

 

 하루만에 다 읽었다. 시원하고 조용한 1층 열람실에서 뭐에 홀린 사람마냥 죽죽 훑어내려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야기꾼의 이야기가 그냥 '~다'로 끝나는 서술형 문체보다 좋은 이유는 그만큼 쏙쏙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인터뷰집을 엮은 거여서 95% 정도가 구어체였고, 그래서 더더욱 빨리 흡수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 책의 가장 반대편에 있는 책은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아닐까. 도발적인 책이다. 실은 그다지 도발적이거나 발칙하지 않은데, 사회에서 말하는 나약하고 지쳐 있는 청춘의 범위에서 벗어났다는 것만으로 저항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서문에서 저자가 오디션에 나오는 출연자들이 너무나 착하기만 하다고 딴죽을 거는 것만 봐도, 이 책이 앞으로 어떻게 나갈지 예상할 수 있다. 한 번 읽어내린 의도는 첫 인터뷰이의 이야기 제목으로 그대로 이어진다. '안철수의 위로는 필요 없어'라고. 주제의식이 명확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매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구성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20대의 이야기여서 좀 더 친근하게 느꼈던 것도 있고.

 

 10명의 20대들을 보면서 느꼈던 건 모두 다 진하고 선명한 '자기 자신의 색'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표현력이 부족해 색色이라고 표현했을 뿐이지 낡은 색깔론에 나오는 그런 색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보통 결핍된 것을 욕망하듯, 나 역시 아직 뚜렷한 내 정체성을 가지지 못한 것 같아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 지에 대해 어느 정도 갈피를 잡은 것 같아서, 거기까지 다다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생각하니 대단해 보였다. 나는 그저 일개 독자로서 결과(실은 대부분 20대이기에 지금 이룬 성과들이 인생에서 만든 결과 전부인 것도 아니다)만 보고 판단할 뿐이지만, 스스로 원하는 길을 찾기까지 얼마나 헤맸을까. 나도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이리 저리 휘젓고 다니고 안팎의 문제로 흔들리기도 했다. 그런데도 나를 찾는 일이 이다지도 멀어 보인다는 건, 내 방황이 그다지 유익하지 못했기 때문일 테다.

 

 책에 나온 사람들은 개성 강한 청춘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물론 각자가 가진 개성이 서로 매우 달라 캐릭터를 비교하며 볼 수 있었다. 자립을 꿈꾸는 10대 시위꾼 공기, 종북 세력의 스타 드러머 권용만, 나는야 잡초 오지라퍼 김도원, 장애인을 배제하는 세상에 멘션을 날리는 박현진, 꼰대성을 극복하는 방랑 좌파 조병훈, 딜도 파는 모태 페미니스트 랭, 게으른 전복을 꿈꾸는 자유주의자 피코테라, 국보법이 낳은 젊은 투사 박정근, 직업 유랑기 거친 고졸 청년 김슷캇, 움직이고 실천하는 강남 좌파 프리스티까지. 이름 앞에 붙은 수식어만 봐도 보통 사람들은 아니란 느낌이 딱 왔다.

 

 첫 인터뷰이는 10대 시위꾼 공기였다. 학교를 그만두고 일제고사 반대모임 NO에서 활동하고, 공부모임을 꾸려 자발적으로 세미나를 여는 적극적인 소녀였다(93년생이니 올해 성인이 됐다). 우습지만 나는 그동안 스스로를 나이에 비해 조숙한 편이라고 믿었었다. 10대 청소년 시기에 더더욱. 그때만 해도 남들 다 관심 가지는 외모나 남자친구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드물게 신문 보는 집안이어서 다른 친구들보다 사회 문제에 더 밝고, 책을 많이 읽어 아는 것도 많다고 생각했다. '너희와 나는 달라' 이런 생각으로 우월감에 빠졌었던 것 같다. 그때 충격을 주었던 책이 『너, 행복하니』였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입시 공부에만 매달리지 않고 진짜 하고 싶은 걸 하는 또래 얘기를 담고 있었다. 그때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듯 정신이 퍼뜩 들었다. 결국 나도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모범생의 길로 의심없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까닭이다. 공기는 그때의 충격을 다시 느끼게끔 해 주었다. 단순히 세상에 불만만 토로하는 게 아니라, 부족한 점을 메우기 위해 공부도 하고 남들은 넘기는 문제를 재고하는 똑똑한 소녀였다. 청춘들의 아픔을 어루만졌던 청춘콘서트에서 희망 서포터스를 무급으로 '착취'했다는 점을 비판할 때는 괜히 아픈 곳을 찔린 기분이었다. 나 역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다면 무보수 노동력을 제공하려 했던 시절이 있었으므로.

 

 비마이너라는 장애인 시위 전문 매체를 만들어 기사를 썼던 박현진 씨의 이야기도 한 글자 한 글자 놓칠세라 열심히 읽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쓰는 '병신'이란 말이 장애인에게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지는지 단 1초도 고민 안했다니 낯이 뜨거웠다. 글쓴이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을 지라도' 결과적으로 누군가 그 발언에 피해입고 상처받는다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새삼스레 지나치게 격정적인 내 언어생활을 반성하게 됐다. 다른 장애인들에 비해서는 장애가 약한 편이라고는 했지만, 없는 것을 만들고 장애학을 공부하며 발로 뛰며 기사도 쓰는 모습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의지와 실행력의 차이였다. 아, 나는 그동안 얼마나 무수한 핑계를 대며 해야 할 일을 무시해 왔을까. 기자를 준비하는 내게 특히 귀감이 됐던 인터뷰다.

 

 한때 트위터를 난리나게 만들었던 투사 박정근의 이야기가 여기 실린 건 당연한 거였을까. 트위터를 안해서 몰랐는데 비로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았다. 김정일 만세라는 노래는 버젓이 불리는데, 비판과 조롱의 의미로 트위터에 북한과 김정일을 언급하는 건 왜 안 되느냐는 물음에 누구 속 시원히 대답할 사람이 있을까. 국보법을 아예 없애야 하는지는 아직 판단이 서지 않았지만, 현재의 국보법이 무고한 피해자를 양산한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겠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법이 있어선 안 되지 않을까. 국보법은 구시대의 유물 치고도 한참 유물인 듯하다.

 

 한양대에서 16년이나 살아남았던 엿 같은 강좌 폐강운동을 벌인 랭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보면서 가장 열 받았던 편이 랭의 '성의 이해 폐강 운동'이었는데, 어째서 그런 과학적이지도 않고 비뚤어진 성 관념을 키울 수 있는 위험한 강좌를 그대로 두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여성 수강생은 생각도 안 하고 더러운 성 농담을 입에 담으며 낄낄거리는 거야 지금도 횡행하는 일이지만, '에이즈는 많이 해서 걸리는 거다', '성폭력은 남자의 고유한 본능이다' 따위의 헛소리를 하는 작자를 그냥 놔뒀다니... '교양'을 배우는 자리에서 무슨 망발인지. 불의을 참지 않고 직접 행동에 나선 랭은 진정한 투사였다. 나라면 과연 어떻게 대응했을까. 한숨만 나온다.

 

 대필작가는 고용 형태가 불안정해서 유령노동자로 취급받아 제대로 된 대우를 받거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는 사실은 김슷캇이 들려줬다. 문득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라는 책 제목이 떠올랐다. 대필작가가 있다는 것쯤은 알았지만, 그게 아르바이트 자리로 나올 만큼 수요가 많은지-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는 자리인 줄은 몰랐다. 글은 단순히 글자의 조합이 아니라 한 사람의 정체성과 생각이 담긴 고유한 저작물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돈으로 글을 사려는 이들이 한심해 보이기까지 했다. 현실은 때로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하다더니, 그 말이 꼭 맞다. 상식적이지 않다고 생각되는 일들이 너무도 빈번히 일어난다. 나 또한 이 책을 안 읽었다면 몰랐을 테지.

 

 예전에 '작은 책'이라는 잡지에 너무 어둡고 우중충하고 미래가 안 보이는 얘기만 실려 있어서, 조금 밝은 이야기도 봤으면 좋겠다고 독자 의견을 보낸 적이 있다. 이제는 조금 알겠다. 현실이 실제로 너무 팍팍해서 좋은 면만 편집해서 보여주기 어렵다는 걸. 불편하고 얼굴이 찌푸려지더라도 현실을 자주 마주할 이유는 이걸로 충분하다. 이상적인 동화 속 세상에만 노출돼 있다가는, 놓치는 게 가득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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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별 거를 다 고려하게 된다. 이왕이면 한글이면 좋겠고, 나만의 특색이 드러났음 좋겠고,

그렇다고 해서 내 신상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적나라하면 안 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들어갔으면 좋겠고, 다른 닉네임과 겹치지 않았으면 좋겠고 등등.

 

그뿐이랴. 내 마음에 들어야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남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도 무척 중요한 요소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타인의 시선에 집요하게 신경쓰는 사람이 되었을까.

내가 마음에 드느냐 안 드느냐보다 남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먼저 생각한다.

 

달콤달빛도 만들 적에는 무척 마음에 들었지만, 지금은 너무 오글거리는 것 같아서 바꿨다.

문제는 내가 오글거림을 느끼는 게 순수하게 내 감정과 느낌인 건지

남의 반응과 시선을 의식한 후 자체검열이 돼서 나온 건지 모르겠다는 거다.

 

예전에는 닉네임 한 번 정하면 몇 년을 썼는데, 이젠 변덕이 심해져서 그러지도 못한다.

서늘한달빛은 얼마나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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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만에 4권의 책을 다 읽겠다는 건 아니다. 예전에는 책을 하나 고르면

그 책 읽기를 포기하거나, 아님 다 읽을 때까지 딴전 피우지 않았는데 요즘은

전방위 독서(이런 좋은 말을 여기다 갖다붙여도 될까)를 하고 있다.

 

 

『청춘 착취자들』은 거의 다 읽었다. 50쪽도 안 남은 것 같다.

너무 기대 많이 한 책은 생각보다 시시하다는 것을 알려준 책.

미국에서도 인턴들이 그렇게 대접 못받으며 무급으로 일하는 줄 몰랐다.

천조국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

아메리칸 드림이란 말도 다 옛말이 된 듯.

 

『잡문집』은 의외로 재미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어둠의 저편』을 읽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을 쓰는 괴짜

작가로만 생각했는데, 왜 잘 나가는지 사랑받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일본어 번역은 왜 항상 비슷한 느낌이 날까!

딱 알맞은 표현을 지금 짚어낼 순 없지만, 일본에서 나온 책들은

한데 묶이는 같은 분위기가 있다.

이 책을 시작으로, 나는 하루키를 비소설 분야에서만 만날 것 같다.

잠들기 전 읽기 좋다.

 

『고마워, 디자인』은 단지 제목이 좋아서 빌렸다.

깔끔한 표지도 마음에 들었다. 요새 빌린 책 중에 디자인이

가장 마음에 든다. 역시 디자인 분야에 있는 사람 책이라 그런가.

아직 목차밖에 안 봤다. 반납하려다가도 군데군데 읽은 글 한 켠이

좋아서 다시 가져왔다. 10페이지는 읽고 잘 테다.

 

『유혹하는 에디터』라니! 너무 도발적이지 않은가?

한겨레 기자였던 고경태의 책이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 궁금하다. 요새는 왠지 모르게 출판이나 편집 쪽

책이 끌린다. 제 2, 3의 진로로 생각하기 때문일까.

 

 

 

방학도 점점 끝이 보인다.

더 많은 책을 읽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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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지식채널 - 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본의 모든 것
조양욱 지음, 김민하 그림 / 예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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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 읽은 날짜 : 8월 5일 일요일

 

 

 한 꼭지가 2~3페이지 정도밖에 되지 않고, 일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쓴 일본 이야기여서 금방 읽을 수 있겠구나 했다. 요새 올림픽하느라 반일 감정(?)이 치솟는데도 이 책을 고른 이유는 하나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일본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싫어하거나 비난하기는 싫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작문이나 논술을 쓸 때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적고 나니 두 번째 이유는 너무 가벼운 느낌.....이지만 하는 수 없다.

 

 책이 그-렇게까지 재미있지는 않다. 전여옥이 쓴 일본 책(제목은 가물가물하다)이 더 재미있었다. 단순히 더 잘 읽히느냐 안 읽히느냐로 따지면. 그냥 상식을 쌓는 셈치고 읽으면 편하다. 일본에 대한 정보나 일본인들의 풍습, 일본인의 국민성이 드러나는 일화 등 내용의 풍부함, 다양함 면에서는 엄지를 들 수 있겠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알고 있고 가지고 있는 게 많다는 증거일 테니.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우리나라와 유사한 사회현상이 꽤 많았다. 또 일본어가 우리말과 발음도 비슷해 대충 유추할 수 있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일본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보통 일본 체류 기간이 길거나 일본에 호감을 가진 편이 많아서, 그들이 쓴 책에서는  '지나친 일본 호감(정도가 격할 경우 일빠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분위기가 쉽게 감지된다. 중간중간 그런 부분들이 튀어나와서 '역시 예상대로군' 하고 생각했는데, 기자 출신이라 그런지 우리나라와 연관되어 있는 민감한 이슈는 그냥 넘기지 않고 꼭꼭 짚어주는 점이 눈에 띄었다. 나라사랑이 비뚤어진 방향으로 나가 극보수, 우익으로 치우치는 모습에 대해서도 일침을 아끼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그 동안 일본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나마 최근 사회 이슈나 문화 현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데, 역사적 배경은 거의 몰랐다. 물론 이 책은 방대한 일본 역사 가운데 극히 일부분만을 선택해 담은 거라, 내가 알게 된 것도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일본의 옛 모습을 훑는 것은 현재의 일본을 가늠하고 파악하는 데 유용했다는 점만으로 의미가 있었다. 우리나라가 취약한 분야에서 선전하고 있는 일본을 보며 시기심과 함께 부러움도 느꼈다. 위기이다 못해 거의 몰락 직전인 한국 만화계를 보며 일본의 탄탄하고 질 높은 만화 시장이 몹시 부러웠다. 꼭 일본이 잘하는 걸 다 따라잡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간극이 워낙 크다 보니 상실감이 더 컸다.

 

 부족한 지식을 채우기에 좋은 가벼운 대중교양서다. 주요 일간지에 실리는 고정 연재란을 묶어 놓은 것처럼 내용과 구성이 알찬 편이다. 저자의 자료수집/정리 능력에 박수를 보낸다. 책 하나 쓰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닌데, 저자는 '쓰는 사람이 성실해야 독자가 좋은 결과물을 볼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꽤 잘 알고 있었나 보다. 저자의 노력 덕분에 게으른 독자인 나는 좀 더 쉽게 지식을 흡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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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날씨가 무덥다. 밤인데도 더위는 쉬이 가시지 않았다. 전기로 움직이는 것들을 켜두어봤자 더위만 심해질 것 같아 책을 펴들었다. 컴퓨터, TV에서 멀어졌지만 계속 덥기만 했다. 결국 동네 카페로 대피했다.

 

 

 2. 보통 카페 안은 약간은 살 떨리는 정도의 과한 시원함을 유지하는 편인데, 오늘 갔던 라피쉬는 적당히 시원했다. 기분좋은, 쾌적한 수준의 시원함이랄까. 에어컨이 습기를 먹어주고 온도를 낮춰준 상태에서 선풍기가 돌아가니 딱 좋은 상태가 유지됐다. 핑크레몬에이드 한 잔으론 뭔가 심심해 미니와플을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3. 나처럼 더위를 피하러 온 사람들이 꽤 되어서 어쩔 수 없이 의자 3개짜리 테이블에 앉았다. 조금 민폐가 아닐까 싶었지만, 금세 잊었다. 이미 『나의 토익 만점 수기』를 펴들었기 때문이다. 열대야에 뒤척이다 일어난 어느 날 새벽에 무심코 집었다가 4장까지 읽었던 그 책! 가게에서 일하며 짬짬이 읽었더니 이제 거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191쪽부터 읽었다. 있음직하면서도 예기치 못한 살벌한 일도 종종 일어나는, 이 동적인 소설은 독자를 끌어당기다 못해 거의 빨아들였다. 와플을 조금씩 조각내 먹으며, 너무 단 듯한 핑크 레몬에이드를 마시며 책장을 휘휘 넘겼다. 그리고 끝을 봤다. 별안간 주변 공기가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코끝이 찡해졌다. 토익을 졸업하지 못한 토익 장수생의 울분과 회한에서 나온 감정이었을까. 토익 만점이라는 쾌거를 이루었지만 한 쪽 눈은 잃은, 허무맹랑해 보이지만 대담한 답을 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나도 빨리 앞길을 찾아야 하는 취업준비생이라는 사실을 퍼뜩 깨달아서 그랬던 것 같다. 소설을 자주 읽지 않는 편인데 우연히 만난 한국소설들에 손 쓸 도리 없이 빠져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에도 그랬다. 처음 알게 된 '심재철'이라는 작가의 다음 작품이 몹시 기대된다. 완독하느냐 여부와 상관없이 아마 읽게 될 것이다. 우연한 만남에서 느낀 '좋은 감정' 덕에 김애란, 박주영, 김언수, 김중혁의 다른 작품을 읽었던 것처럼.

 

 

 4. 강렬한 소설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는데 무리하게 다른 책을 읽은 건 좋지 못한 선택이었다. 미안하게도『일본 지식 채널』은 처음 읽을 때의 소소한 재미마저 거의 잃은 채로 겨우겨우 읽었다. 나쁜 독서 습관이다. 많이 읽겠다는 욕심이 일을 그르쳤다. 그래도 어제 읽은 세 권의 책 중에서 정보성은 가장 높았다. 새로 알게 된 사실이 많은 건 분명 수확이다.

 

 

 5. 세 번째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이다. 작년엔가 나와서 사람들이 막 읽을 땐 관심도 없다가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대표적인 일본 작가라 『어둠의 저편』이란 소설에 도전해 보았다가 처참하게 튕긴 기억이 있어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소설과 수필 등의 비소설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역시나! 존댓말과 반말이 고루 나오는 하루키의 '여러 가지 글'은 참 재미있었다. 그가 소설만 쓰는 사람이 아니라 재즈에도 매우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잡문집을 보고 알았다. 각종 시상식에서 상 받았을 때 한 수상소감이나 다른 이들의 책 소개글 등, 소설보다 가벼운 글 속의 하루키는 어떤지 알 수 있어서 반가웠다. 굳이 첫 페이지부터 읽지 않아도 되는 개방성 때문에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보고 싶을 때 보고 있다. 아마 내일 즈음 다 읽을 듯하다.

 

 

 6. 시원한 곳에서 읽고 싶은 책을 맘껏 읽는 게 유난히 무더운 올 여름 할 수 있는 최고의 피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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