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날씨가 무덥다. 밤인데도 더위는 쉬이 가시지 않았다. 전기로 움직이는 것들을 켜두어봤자 더위만 심해질 것 같아 책을 펴들었다. 컴퓨터, TV에서 멀어졌지만 계속 덥기만 했다. 결국 동네 카페로 대피했다.

 

 

 2. 보통 카페 안은 약간은 살 떨리는 정도의 과한 시원함을 유지하는 편인데, 오늘 갔던 라피쉬는 적당히 시원했다. 기분좋은, 쾌적한 수준의 시원함이랄까. 에어컨이 습기를 먹어주고 온도를 낮춰준 상태에서 선풍기가 돌아가니 딱 좋은 상태가 유지됐다. 핑크레몬에이드 한 잔으론 뭔가 심심해 미니와플을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3. 나처럼 더위를 피하러 온 사람들이 꽤 되어서 어쩔 수 없이 의자 3개짜리 테이블에 앉았다. 조금 민폐가 아닐까 싶었지만, 금세 잊었다. 이미 『나의 토익 만점 수기』를 펴들었기 때문이다. 열대야에 뒤척이다 일어난 어느 날 새벽에 무심코 집었다가 4장까지 읽었던 그 책! 가게에서 일하며 짬짬이 읽었더니 이제 거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191쪽부터 읽었다. 있음직하면서도 예기치 못한 살벌한 일도 종종 일어나는, 이 동적인 소설은 독자를 끌어당기다 못해 거의 빨아들였다. 와플을 조금씩 조각내 먹으며, 너무 단 듯한 핑크 레몬에이드를 마시며 책장을 휘휘 넘겼다. 그리고 끝을 봤다. 별안간 주변 공기가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코끝이 찡해졌다. 토익을 졸업하지 못한 토익 장수생의 울분과 회한에서 나온 감정이었을까. 토익 만점이라는 쾌거를 이루었지만 한 쪽 눈은 잃은, 허무맹랑해 보이지만 대담한 답을 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나도 빨리 앞길을 찾아야 하는 취업준비생이라는 사실을 퍼뜩 깨달아서 그랬던 것 같다. 소설을 자주 읽지 않는 편인데 우연히 만난 한국소설들에 손 쓸 도리 없이 빠져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에도 그랬다. 처음 알게 된 '심재철'이라는 작가의 다음 작품이 몹시 기대된다. 완독하느냐 여부와 상관없이 아마 읽게 될 것이다. 우연한 만남에서 느낀 '좋은 감정' 덕에 김애란, 박주영, 김언수, 김중혁의 다른 작품을 읽었던 것처럼.

 

 

 4. 강렬한 소설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는데 무리하게 다른 책을 읽은 건 좋지 못한 선택이었다. 미안하게도『일본 지식 채널』은 처음 읽을 때의 소소한 재미마저 거의 잃은 채로 겨우겨우 읽었다. 나쁜 독서 습관이다. 많이 읽겠다는 욕심이 일을 그르쳤다. 그래도 어제 읽은 세 권의 책 중에서 정보성은 가장 높았다. 새로 알게 된 사실이 많은 건 분명 수확이다.

 

 

 5. 세 번째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이다. 작년엔가 나와서 사람들이 막 읽을 땐 관심도 없다가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대표적인 일본 작가라 『어둠의 저편』이란 소설에 도전해 보았다가 처참하게 튕긴 기억이 있어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소설과 수필 등의 비소설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역시나! 존댓말과 반말이 고루 나오는 하루키의 '여러 가지 글'은 참 재미있었다. 그가 소설만 쓰는 사람이 아니라 재즈에도 매우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잡문집을 보고 알았다. 각종 시상식에서 상 받았을 때 한 수상소감이나 다른 이들의 책 소개글 등, 소설보다 가벼운 글 속의 하루키는 어떤지 알 수 있어서 반가웠다. 굳이 첫 페이지부터 읽지 않아도 되는 개방성 때문에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보고 싶을 때 보고 있다. 아마 내일 즈음 다 읽을 듯하다.

 

 

 6. 시원한 곳에서 읽고 싶은 책을 맘껏 읽는 게 유난히 무더운 올 여름 할 수 있는 최고의 피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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