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벌레 소년의 사랑 사계절 1318 문고 27
이재민 지음 / 사계절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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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슴벌레 소년이 있을까요? 얼마나 가슴 설레는 첫사랑이 있을까요? 누군가를 좋아하고 꿈꾸고 애틋하게 여기면서도 때로는 질투도 하는 이름 모를 짝사랑을 우리는 첫사랑이라 부르며 가슴에 아로새기며 잊지 못합니다. 아름다워서 슬프고, 슬퍼서 더 아름다운 첫사랑은 인생을 살면서 단 한번 볼 수 있는 사랑의 맨얼굴이었습니다.


‘제1회 사계절 문학상 수상작’인 이재민의『사슴벌레 소년의 사랑』에는 첫사랑이 달맞이꽃으로 피어납니다. 시골에서 자란 중1 은수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하거나 소에게 먹이를 줘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온갖 꽃과 곤충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잘 알고 있습니다. 누가 가르쳐준 것은 아니라 시골에서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은수는 마송리 약수터에서 묘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피부병을 고치기 위해 엄마와 함께 약수터에 갔는데 그곳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폐병에 걸린 순희 누나를 만나게 됩니다. 그 순간 놀랍게도 가슴이 뛰고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여자 친구와는 사뭇 다른 사춘기(思春期)라는 독특한 에너지가 콩닥거렸습니다. 이 에너지는 짝사랑으로 물결치며 은수의 몸을 더욱 근질거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은수는 이성에 눈을 뜨고는 누나에게서 달맞이꽃 향기를 맡으며 사랑에 빠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인지 소설을 읽다보면 이 책의 제목이 달맞이꽃 소년의 사랑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습니다. 은수는 누나를 사랑한 나머지 달맞이꽃이 되었으니까요. 누나는 이 세상에 많고 많은 별이 아니라 단 하나 밖에 달이었습니다. 하지만 누나는 은수에게서 달맞이꽃 향기를 맡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은수를 자신보다 9살 어린 정(情)이 많은 소년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누나에게는 결정적으로 남자 친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은수는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불타오르는 질투심 때문에 누나의 남자 친구를 ‘쪼다’라는 말로 뭉갰습니다. 또한 누나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거나 속 썩이는 사람들을 상대하려면 더 이상 달맞이꽃으로 맞설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은수는 “나는 누나를 지켜주는 사슴벌레가 될 거야.”(120p)라고 다짐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강하고 멋진 보기보다 순한 곤충은 없었습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누구나 은수처럼 되고 싶지 않을까요? 여기에 사랑에 대한 해롭지 않은 진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은수에게 사랑은 사슴벌레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사슴벌레는 은수 자신인 동시에 짝사랑하는 누나의 분신이었습니다. 그러니 더욱 사슴벌레에 집착하고 소유하려는 열망에 사로잡힙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사랑 때문에 혼란스러운 은수의 성장통이 무엇이며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누나가 말했듯이 “진정으로 사슴벌레가 좋다면, 사슴벌레가 자유롭게 살게 해 주어야 하는 거야.”(140p)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누군가를 구속하는 즐거움이 아니라 자유롭게 해주는 아름다움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슴벌레 소년의 사랑』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 사이 20년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흘렀습니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거리는 가까워졌으나 깊이를 재는 게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산책을 하거나 숲길을 거닐다가 상수리나무에 있는 사슴벌레를 발견한다면 놀라게 될 것입니다. 단순히 과거를 그리워한 나머지 아름다운 삶이었다고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대가 변해도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생각하게 할 것입니다. 비록 이보다 더 아픈 고통이 없더라도 사랑은 영원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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