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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굴레에서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평점 :
우리는 하루 24시간을 보내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여느 동물과 같이 그저 먹고 마시며 잠만 자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깝다. 우리는 저마다 인생을 멋지게 살려고 한다. 세상에는 하고 싶은 일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한 사람이 모든 일을 한다는 것은 너무 지나친 욕심이다. 이 중에서 자기에게 맞는 인생을 찾아 땀 흘리며 사는 것이 무엇보다도 행복하다. 만약 우리가 아무 할 일없이 어슬렁거린다면 우리는 스스로 인간으로 태어난 행복을 차버리는 셈이다. 이로 인해 일찍이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깃털이 없는 두발 동물과 다르지 않아서 팔자(八字)가 셀 수밖에 없을 지경에 이르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인생을 선택하는데 있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오늘 만의 문제는 아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그만큼 인생을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운명이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가령,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부자연스러울 정도의 뜨거움’ 속에 사는 부자가 아닌 자연인은 살고자 했다. 반면에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스쿠루지는 얼마나 구두쇠인가? 이 두 사람을 보더라도 인생의 방향 즉 인생의 의미가 어디에 달려있는가에 의해서 한 사람은 행복하고 또 한 사람은 불행하다.
그렇다면 왜 사람은 불행에 빠져드는 것일까? 저자는 약 1000페이지가 넘는 『인간의 굴레에서1, 2』라는 책을 통해 앞서 말한 무거운 질문에 대해서 싱겁다고 생각이 들만큼 간단하게 답하고 있다. 뭔가 새로운 미사여구를 기대한 나로서는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사람은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다는 현실이다. 예전에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았던 저자의 말이 이토록 강한 메시지를 남길 줄 상상도 못했다. 그러고 보면 나 스스로도 아직까지 인간적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인생이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이 책을 읽는 그 자체의 즐거움을 너무 등한시 했는지 모른다.
인생이 의미 있어야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지 않고 인생이 무의미하다면 사람이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살아있는 게 아니다. 그림자만 사람이다. 우리가 더욱 값진 인생에 집착하는 것은 이러한 까닭이다. 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 옳고 그름의 경계선이 그려져 있다. 현실과 이상은 충돌하게 마련인 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한쪽으로만 쏠리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우리가 현실 쪽으로만 기울어진다면 지루한 일상을 반복하게 된다. 그렇다고 이상만을 추구하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모한 열정 때문에 삶이 엉망이 되고 만다. 이로 인해 인생이 의미 있다는 것은 현실이 곧 이상이어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현실과 이상의 경계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필립이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와 자기에게 사랑을 주는 여자 사이에서 결국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를 선택한다. 필립은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참다운 인생이라 말한다. 그러나 필립이 사랑하는 여자는 사람의 기준에 따르면 불합리하다. 하지만 불합리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인간의 굴레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사람들이 보기에는 매우 모순이지만 정작 그 모순에 그동안 우리가 무관심했다. 그만큼 사람으로서 사는 재미를 제대로 맛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인생! 인생은 분명 살만한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한다는 것은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우리가 인생에다 너무 의미를 두다보니 우리가 두 발로 땅에 서 있다는 사실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이제는 무의미속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따지고 보면 일상이 무의미하다고 보는 것은 곧 인간이 인간을 구속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슬픈 현실을 보며 언제까지 우리가 이런 모순에서 살아야 하는지 이 책은 묻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