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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 보이
팀 보울러 지음, 정해영 옮김 / 놀(다산북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997년에 나온 이 책은 영국 카네기 메달상 후보에 해리포터와 함께 후보에 올랐다가 해리포터를 제치고 만장일치로 메달을 수상했다고 한다.
왜 해리포터와 비교를 하는가. 해리포터와 비교되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누가 상을 받았느냐를 넘어서 해리포터의 뛰어넘을 수 없는 인기를 확인시켜주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그럼으로써 이 책에 대한 선입관, 즉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고 해리포터 정도와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되겠다는 짐작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나도 아마 그래서 이 책이 그렇게 눈에 많이 들어왔음에도 지금에서야 읽게 되었나보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어느 분이 책을 좋아하는 엄마가 아직 이 책을 안 읽었다고 하니 엄마는 어떻게 아직도 이런 책을 안 읽을 수 있냐고 했다길래 함께 읽어보자고 해서 나도 읽게 되었다.
출판사의 광고가 어떠했던 간에 해리 포터는 해리 포터이고 리버보이는 리버보이인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의 심리란 참 이상해서, 그렇게 주입이 되고 나니 읽고 나서도 나도 모르게 해리 포터와 비교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게 된다. 해리 포터에는 있고 이 책에 없는 것이 있을 것이고 이 책에는 있으나 해리 포터에서는 두드러지지 않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제목 '리버 보이'는 할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완성시키고 싶어하는 그림 제목이기도 하며, 할아버지의 손녀인 제스가 강가에서 우연히 만난 어떤 소년에게 붙인 이름이기도 하다. 책의 중반 쯤 왔을 때 나는 이 리버보이의 정체가 짐작이 되었다. 그러고나니 이야기의 흥미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가 되었다. '강'의 이미지가 그러하듯 이 책의 내용도 잔잔하기 그지 없다. 파도가 아니라 작은 물결 정도. 하지만 파도치지 않고 지속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어야 함을 가르쳐주고 있다. 빨리 가기가 아니라 오래, 쉼없이 가기 위한 지혜인 셈이다. 이 책에 더 이상의 이야기거리는 없다.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생활력 하나로 인생을 꿋꿋이 살아온 할아버지가 오늘 내일 하고 있는 가운데 할아버지는 병원에서 집중 보호를 받아도 시원찮을 판에 병원에서 나와 어릴 때 살던 시골 구석으로 들어가 다만 며칠이라도 살고 싶어한다. 아들, 며느리, 그리고 손녀 제스는 이런 할아버지를 모시고 당분간 시골 마을로 들어간다. 따분하기도 할 시골 생활이지만 할아버지와 각별한 친밀감으로 관계를 맺어온 손녀 제스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시간을 슬퍼하면서 끝까지 할아버지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드리려고 애쓰는 가운데 그가 완성시키고자 하는 그림이 있음을 알게 된다. 손목 하나 가눌 힘이 없는 할아버지를 도와 제스는 드디어 그 그림의 완성을 보지만 기대와 달리 어두컴컴한 강물 그림에 지나지 않는 것을 보고 다소 실망도 하지만, 나중에 그것이 단순한 강물 그림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강에서 만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년과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그와 맞물려 할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겪으면서 제스는 삶과 죽음에 대한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얻는다. 강이 시작되는 시원지를 찾아 모험을 단행하고, 위험을 견딘 댓가로 보고자 하던 것을 마침내 보게 되고, 그 강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넓은 바다까지 조망하며 감격하지만, 결국 그 강은 바다로 흐르게 되어 있고 그 흐름그렇게 바다로 흘러들어감은 슬픈 일도, 아쉬워 할 일도 아닌, 극히 자연스런 일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 죽음과 잘 비유되어 그려져 있다. 죽음에 관한 슬픔은 그래서 자연스럽고 당연한 슬픔이라고 제스는 깨닫는다. 이런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부분이 아마 굳이 비교하자면 해리포터에는 없고 리버보이에 있는 것이 아닐까. 밋밋하기 짝이 없는 스토리를 지루하지 않게 끌고 나가면서 거기에 철학을 담을 수 있다는 것. 아무나 할 수 없는 고품격 문학이 아닐까. 해리포터에는 아마 다른 방식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사는 것이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요즘 들어 자주 생각하는 문제였다. 이 세상에 죽음처럼 허망한 것이 있을까. 그렇다면 삶 역시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것 아닐까. 이런 쪽으로 생각이 흘러 우울로 빠지기 일수였다. 그러는 중에 이 책을 읽었고, 죽음에 대한 다른 관점과 만났다. 흐르는 강물을 보며 더 깊이 생각에 빠져보고 싶다.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오고 싶다. 그것은 바다가 아니라 꼭 강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