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도 아프다
연송이 지음 / 민트북(좋은인상)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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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매력적인 제목이 아니다. 저자의 이름도 낯설다. 그러면서도 나도 모르게 책장을 들춰보게 되는 것은 대체 무슨 얘기를 써놓았나 궁금하기도 하고 혹시 조금이라도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을까 해서일 것이다.
읽어보니 글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쓰여져 있기는 하다. 마치 옆집의 입심 좋은 아줌마의 한바탕 수다를 깔깔거리며, 무릎을 쳐가며 듣고 난 기분이랄까. 속이 좀 후련한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해본 사람은 안다. 그것이 순간적인 공감은 줄 지언정 아무런 해결책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왜 우리 아줌마들은 어느 순간 반 우울증 환자가 되고, 매사에 의욕을 잃으며, 한때 좋아서 결혼까지 한 남편이 그저 귀찮고 무심한 존재가 되며,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았나 한숨 쉬게 되는지, 금방 공감이 되게 글을 쓰는 저자의 능력은 탁월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리고 평소의 나의 생각을 보태어 제안하고 싶은 것을 이 기회에 한번 정리해보고 싶다. '결혼을 앞둔 후배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뭐 이런 질문에 대한 나의 의견이 될수도 있겠는데 막상 결혼을 앞둔 후배가 직접 물어온다면 그냥 겪어보라고 할 것 같다. 

1. 경제력
가사 노동, 육아, 이런 것들에 하루 24시간을 다 소비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내 역할을 인정받기는 힘들다. 현실이다. 남이 인정해준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 내가 내 자신에 불만족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남편에게만 의존하지 않는, 자기의 수입원을 놓지 말아야 한다. 시댁, 친정, 기타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다면 아이를 낳은 후 잠시 일을 손에서 놓을 수 밖에 없는 순간이 어쩔 수 없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 이때에도 일을 놓는 것이 '무한 기간'이 되어서는 안된다. '유한 기간' 놓는다는 마음 가짐이어야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 본인이 길을 터놓아야 한다.  이거, 거저 되지 않는다. 남편이 해주지 않는다. 기대하지 말자. 내가 해야할, 온전히 나의 몫인 일이다.

2. 나를 위해 살자
나 역시 책 속 저자의 말처럼 나는 절대 '일하는 엄마'는 되지 말자고 어릴 때부터 결심을 했던 사람이다. 즉 보통 여자라면 일과 육아, 둘 다 만족스럽게 잘 할 수는 없다는 것을, 혹시 본인은 그런대로 잘 하고 있다고 여기더라도 그 자식은 늘 결핍 상태로 자라고 있음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시기부터 내 일과 육아가 오버랩되는 시기가 왔고 그때 나는 일을 놓았다. '일하는 엄마'가 되지 말자는 생각의 실천이었다. 이후로 나의 온 신경과 관심은 아이를 키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가 커감에 따라 그 신경과 관심은 조금씩 늦추고 다시 나 자신에게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싶다. 말 못하고, 엄마가 먹여주고, 놀아주고, 재워주고, 그래야하는 서너살 시기가 지나면 이제 아이는 혼자 스스로 하는 것을 점차 배워가고 거기서 만족과 기쁨을 느껴간다. 우리 나라 엄마들, 아이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서까지 아이가 엄마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생활을 계속 이어가는 생활을 하며 자식의 (학업)성과에서 보람을 찾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의 저자가 그랬듯이).  NO, NO, NO.
생활 패턴의 스위치가 누구나 쉽지는 않지만, 늘어지지 말고 적절한 시기에 전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3. 내 인생은 나의 것, 그래서 내 책임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더 적극적이고 추진력 있지 않으면 안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즉 알아서 내 앞가림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남 탓, 주위 환경 탓, 실컷 하되 한번으로 족하다. 그것을 계속 마음에, 입에 담아두고 나의 앞으로의 행보를 막는 구실이 되어서도 안되고 변명이 되어서도 안된다. 내가 하고 싶고 내가 앞으로 해야할 일을 누가 알아다 던져주기 전에 스스로 찾고 뚫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아줌마만 아프겠는가? 아저씨도 나름 아플 것이고, 아무 걱정 없어보이는 아이들도 나름의 고민과 걱정이 다 있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괜찮다, 괜찮다 덮어두며 살아 큰 병이 되기 전에, 이렇게 '나는 아프다'고 만방에 알리는 것, 자신으로 하여금 인정하게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엔 대책이 와야한다. 나의 주변 상황, 주변 인물들을 개조시키기 위한 대책이 아니라, 나를 움직이는 대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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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1-05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공감해요. 타인을 개조시키기 위한 대책이 아닌 나를 움직이는 대책에서 특히.

여자들은 어릴 때부터 타인에게 민감하도록 키워지잖아요. 요즘은 좀 덜 하려나요?
여하간... 내 욕심 보다는 가족을 우선할 때가 많죠.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포인트는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라는 말씀...... 저 진짜 긍정해요. ^^

hnine 2011-01-05 11:03   좋아요 0 | URL
가족, 아이 위주로 사는것에 대해 사람마다 각자 가치관이 다르니까 뭐라 할 문제는 아니지만, 나중에 아이도 엄마의 그런 지나친 관여가 부담스럽고 귀찮아 질때가 올지도 모른다는 것, 그때 상처 받지 않고 아무렇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사는 것, 나 자신이 챙겨야 할 문제인데, 나도 모르게 누구때문에, 어떤 상황때문에 라는 말을 저부터 대화나 글 중에 자주 쓰고 있는 것 같네요. 그렇게 생각하니 그런 말이 나오고 그런 글이 써지는 것이겠지요.
오늘도 제일 먼저 달려와 공감, 긍정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섬사이 2011-01-05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도서관 엄마들과 미술관에도 가고, 콘서트도 가고, 독서모임도 해요.
엄마들의 공통된 의견이 남편들이 그런 아내들을 '낯설어' 한다네요.
가사일과 아이들하고 세트로만 묶어 생각했던 아내가
어느 날 그럴 듯한 책을 읽고,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해 미술관에 간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하더랍니다. 그리고 엄마들은 그런 남편들을 보며 일종의 쾌감을 느끼는 것 같더라구요.
저는 경제적 독립에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나를 움직이는 대책'이 와야 한다는 말에 박수치며 공감해요.

hnine 2011-01-05 12:02   좋아요 0 | URL
'가사-아이들-나' 이렇게 세트로 묶어져 생각되어지는 것은 많은 주부들의 공통점일거예요.
도서관 엄마들과의 미술관, 콘서트, 독서모임. 가족들이 나를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이 당연할 것 같아요. '엄마가 무슨 심부름꾼일줄 아느냐, 오늘 하루 종일 엄마 시간은 한 시간도 없었다...' 저도 모르게 아이에게 이런 말을 퍼붇고 있는 것을 알고 제 자신이 참 싫어지더라고요. 다른 가족들에게 뭐라고 하기 전에 우리가 우리 스스로, 나를 중심으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지금 이 나이까지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잘 못해서 다른 엄마들과의 모임에 참석을 잘 못하고 있네요.

BRINY 2011-01-05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드신 어머니들에게는 이런 얘기도 함부로 못하고...그냥 안타까울 뿐이에요.

hnine 2011-01-05 17:24   좋아요 0 | URL
우리 어머니들이 살아오신 것을 보았으니 우리는 뭔가 달라야 하지 않을까 해요. 대책을 세운다고 다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한번 사는 인생인데 우리도 그대로 답습하고 우리 딸들이 또 그것을 그대로 답습한다면 너무한 여자의 일생 시리즈가 되지 않을까요?
나이드신 어머니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없답니다.
 
발이 닿지 않는 아이
권하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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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하은이라는 이름은 벌써부터 내 귀에 익어 있었다. 무슨 문예지 공모를 통해 등단한 작가도 아니고 여러 권의 책을 낸 작가는 더더욱 아닌, 어떻게 보면 신인 작가임에도 그녀의 이름이 여기 저기서 조용조용히 거론되는 것을 나도 가만가만이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나 보다. 지금까지 두권의 소설을 발표했는데 이 책은 그녀의 두번째 소설이고, 조만간 그녀의 첫 소설 <바람이 노래한다>도 찾아 읽게 될 것 같다. 따로 청소년 소설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 않아서 좋다. 언젠가 그녀가 인터뷰에서 하는 말을 들었다. 자신은 따로 청소년 소설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며 쓰지 않았는데 책이 나오고 나니 청소년 소설로 분류되고 자신을 청소년 소설 작가로 부르는 경우가 있어 좀 뜻 밖이었다고. 아무튼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 아마 나로 하여금 관심을 더 끌게 하는 요인이었던 것은 맞다. 주인공 '나'가 소설의 화자가 된다. 주인공이 아기때 엄마는 집을 나갔고 아빠는 별 다섯개 전과자. 고등학생이 된 '나'는 그래서 쪽방에서 혼자 살고 있다. 뭐든지 늦고 서툴고 제대로 하는 것이 없는 자신을, 발이 땅에 닿지 않고 공중에 떠있는 것 같은, 발이 닿지 않는 아이라고 혼자 생각한다. 물건을 훔치는 버릇까지 있는 '나'는 담임으로부터 반 아이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무차별 구타를 당하고, 그러면서 변명 한 마디 제대로 못하는 그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우등생 친구 (여기서 '군중1'이라고 호칭된다)와 가까와 진다. 폐휴지를 모아 고물상에 넘기고, 동네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는 어느 날 '군중2'라고 호칭되는 반 여자 친구의 호감을 사게 되고, 잘 안 어울릴 것 같은 이 셋은 점차 가까와져간다.
수감중인 아버지가 탈옥하는 사건이 벌어져 형사가 '나'의 집을 감시하는 일이 생기자 문득 아버지와 엄마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무작정 엄마가 있다는 B도시에 가보기로 하는 주인공을 친구인 군중1이 동행해준다.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 친구가, 자신이 위기 상황에 처할 때마다 함께 해주는 것을 보며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저렇게 강하면서 단순한 녀석들이 바로 나중에 커서 세계 평화를 위한다면서 핵무기 발사 버튼을 누르는 그런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어차피 사람이란 자신이 겪고 경험한 거 외엔 절대 알 수 없는 거 아닐까, 그래서 그 녀석을 좋아하면서도 싫어한다는 주인공은, 내가 보기엔 절대 남들보다 모자라는 아이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부정을 폭로하기 위한 작업에 주인공을 끌어들인 여자 친구 '군중2'는 아버지의 외도로 마음의 상처를 받아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는 엄마를 이해하면서도 그런 엄마를 이해해야한다는 사실때문에 이중으로 마음이 괴롭다. 그녀의 엄마는 수시로 이삿짐 싸는 것이 취미라며, 주인공에게 너의 도둑질은 우리 엄마의 이삿짐 싸기와 같은 맥락으로 여겨진다고 말한다.
폐휴지 모으는 일을 함께 하며, 어떻게 보면 주인공과 경쟁 상대이던 동네 할머니 집을 우연히 찾아간 주인공이 눈 앞에 펼쳐진 암울한 상황을 그냥 등돌리지 못하고 나름대로 수습하는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은 독자로 하여금 웃어야할지 울어야 할지 애매하고 복잡한 심경을 불러일으킨다. 할머니의 네 살짜리 손자를 주인공이 리어커에 싣고 그 집을 뜨는 그 마지막을 희망적인 결말이라고 봐야하는가, 또다른 찌질한 인생의 시작이라고 가슴 아파야 하는가.
이 책은 순전히 작가 자신을 위해 쓰였기 때문에 작자도 자신이지만 독자도 자기 자신이라고, 그래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소설이라고 말한 작가 후기도 인상적이다. 340kg의 체중으로 호흡곤란때문에 서른 여덟살에 죽은 '이즈'라는 가수가 부른 'somewhere over the rainbow'  라는 노래도 이왕이면 들어봐달란다. 이 책 중에도 나오고, 실제로 이 책을 쓰는 중 계속 들은 노래라고.
뭐든지 모자라고, 발육이 늦고,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처음부터 묘사해놓고, 그런 아이가 주인공이 되어 말하는 투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이 어딘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아 눈에 거슬려, 책을 읽는 중반까지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앞과 잘 맞물려 가는 구성이라든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 작가만의 특별한 그 무엇이 전해져와 마지막 페이지까지 책을 내려놓을 수 없게 되었다.
정말 무지개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우리가 자장가에서나 들어오던 꿈이 있고 상상 속의 파랑새가 날고 있을까? 그 노래 역시 What a wonderful world가 노래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불려질 수 있는 것임을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았다.  

( * 지난 달에 작가의 세번째 소설 <비너스에게>가 나왔음을 리뷰를 올리고 난 후에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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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1-04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소년소설 하면 대부분 가정환경이 열악한 아이들만 주인공일까 하는 의문점을 갖기도 하지만 작가 자신을 위해 쓰여졌다고 하니 호기심이 생깁니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 노래 참 좋죠. 340kg의 거구라니 꽥!!

hnine 2011-01-04 22:28   좋아요 0 | URL
쓰면서 작가가 자기 속의 많은 응어리를 풀어낼수 있었다는 뜻 아닐까 생각해요.
'이즈'라는 가수가 노래 부르는 동영상을 찾아보니 목소리가 참 편안하더군요. 이 가수의 이 노래를 계속 들으면서 이 소설을 썼대요.

hnine 2011-01-10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노래를 들으며 이렇게 처량한 기분을 느낀 건 처음이다. 모두 이 작가때문, 이 소설때문.
 

겨울방학을 맞은 아이에게 가고 싶은 곳이 있나 물어봤더니, 좋은 호텔에서 하룻밤 자보는 것이란다. 지난 여름 방학 때인가, 같은 반 친구 하나가 방학 동안 가족들과 두바이에 다녀왔는데 그 호텔이 얼마나 호화스러운지 얘기하는 것을 듣고 자기도 한번 그런 호텔에 가보고 싶었나보다.
"그래? 하룻밤 정도 못할 것도 없지."
그러고는 서울의 한 호텔에 예약을 했는데 아이가 생각했던 '좋은'호텔은 물론 아니고, 남편의 직장에서 무려 50%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아주 착한 가격의 '그저 그런' 호텔이었다. 그래도 아이는 좋아했다. 홈페이지에서 사진으로 본 것과 비교해 생각보다도 시설이 낡은 호텔을 보고 오히려 실망한 것은 나 ^^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제일 먼저 간 곳은 호텔에서 가까운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훈데르트바서 전시회. 가기 전부터 아이에게 전시 홈페이지에 들어가 이 사람 작품을 보여주고 내 노트북 바탕 화면으로 저장해놓으며 관심을 끌어 놓은 덕에 군말없이 동행해주었다. 화가이자 환경운동가이자 건축가이기도 했던 (남편은 그에게 건축가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에 완전히 동의를 하지 않았지만) 그는 오스트리아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자연주의자였던 그가 2000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한 후 잠든 곳은 위 사진의 나무 아래.
관도 없이 내가 심은 나무 아래 묻혀 나무의 부식토가 되기를 고대한다는, 그가 남긴 말이다. 

다음은 다양한 그의 작품들. 배우 지진희의 목소리로 녹음된 오디오를 두개 빌려 아이와 하나씩 들고 설명을 들으며 함께 구경을 했다. 

 

 

 

 

 

 

 

 

 

 

 

 

 

 

 

 

 

 

 

 

 

 

 

 

 

 

 

 

 

 

 

 

 

 

 

 

 

 

 

 

 

 

 

 

 

 

 

 

 

 

 

 

 

 

 

 

 

 

 

 

 

 

 

 

 

 

 

 

 

 

 

 

 

 

 

 

 

 

 

 

 

 

 

 

 

 

 

 직선을 피하고, 물 흐르듯 곡선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그의 기법이 여실히 드러난다.
건물의 '창'을 매우 중시하여 창의력의 원천이라고 했고, 한 건물의 창들을 다 다르게 그렸다. 생태주의자이기도 했던 그의 작품에 녹색 식물들은 어디에나 있다. 건물의 위, 아래 심지어는 높은 중간에도.

 

 

 

 

 

 

 

 

 

 

 

 

 

 

 

 

 

 

 

 

 

 

 

 

 

 

 

 

 

 

 

 

 

 

 

 

 

 

 

 

 

 

 

 

 

 

 

 

 

 

 

 

 

 

 

 전시회 입장권을 사면 저렇게 발바닥 모양의 스티커를 주는데, 잠비아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를 짓는데 입장 요금 일부가 쓰인다고 한다.

전시회를 보고, 도록을 사고 기념 우표를 사고. 

그리고는 아이의 요쳥에 따라 광화문 교보문고로. 지난 여름 수리가 끝난 후엔 안 가보았다.
가벼운 책 한권은 바로 구입하고, 두꺼운 책은 제목을 기억해서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구입하기로 했다. 남편 생일 선물로 다이어리를 사고, 이어폰을 불편해하는 아이를 위해 아예 큼지막한 헤드폰을 사주었더니 이후로 내내 그 헤드폰을 끼고 가져온 mp3의 노래를 들으며 다녔다.

  

호텔에서 하룻 밤 자고 다음날인 어제는 남대문 시장을 구경하기로 했는데 날이 너무 추워, 자세히 구경은 못했고, 서울역 근처 서점에 또 들어가서 한동안 시간을 보낸 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올때 되니 집에 혼자 있는 펏지 (Fudge, 며칠 전에 산 기니픽 이름)가 잘 있을지 궁금해한다.
나로서는 서울에 있는 호텔에서 잠을 자본 것도 처음, 그러면서 서울 구경을 한것도 참 색다른 경험이었다. 아이 덕분에. ^^ 

 

매일 아침 눈뜨면 새날.
1월 1일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다.
어제까지 힘들었더라도 오늘 눈뜨면서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새로 시작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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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Journey 2011-01-01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텔에서의 하룻밤, 저의 로망이기도 해요. 출장일 때 말구요. ㅎㅎ
소개해주신 전시회에 꼭 가봐야겠어요. 별찜 꼭, 추천꾹입니다. ^^

hnine 2011-01-01 21:24   좋아요 0 | URL
펜션보다 저렴한 호텔도 있더라고요 ^^
저 전시회는 아이들 데리고 가보실만 해요. 그림이나 건축 등, 그냥 아름답고 보기 좋게 그리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 신념, 철학을 담아 어떻게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지,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예가 될 것 같네요.

stella.K 2011-01-01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에 살아도 서울에서 뭘 하는지 모를 때가 너무 많아요.
좋은데 다녀오셨군요. 아들내미 덕분에.
서울에서의 하룻밤이 너무 짧지 않으셨어요?
정선 사는 울언니도 서울이라고 오면 하룻밤 밖에는 안 자고 후딱 내려가죠.
언니 생각이 났습니다.ㅎㅎ

hnine 2011-01-01 21:25   좋아요 0 | URL
저도 모르고 지났을 것은 브론테님 서재에서 소개 받고 알았지요.
언니 분께서 정선에 사시는군요. 내일 모레는 안그래도 강원도 가서 또 1박2일 하고 오려고 하는데...^^

깐따삐야 2011-01-01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데 다녀오셨네요. 저는 어디가 됐든 혼자 있고 싶네요. 새해부터 이상하죠. 기왕이면 온천이 있는 호텔로.^^

hnine 2011-01-01 21:27   좋아요 0 | URL
혼자 있는 시간이 하루에 1시간이라도 없다면 저는 아마 못견딜거예요. 온천있는 호텔, 깐따삐야님 사시는 곳 주변이라면...수안보 온천이 제일 가까우려나요? 오늘 같은 날씨, 정말 온천이 딱인데 말이지요.

마노아 2011-01-01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의 깜짝 소원이 예뻐요. 덕분에 알차고 재밌는 1박2일 여정이 되었어요. 전시회 도록을 사서 평일 관람권을 얻었는데 조만간 다녀와야겠어요. hnine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hnine 2011-01-01 21:59   좋아요 0 | URL
2박 3일이면 벌써 짐도 많아지고 일정 짜느라 부담도 가는데 1박 2일은 안그래서 좋더군요. 전시회 도록, 저도 사왔는데 도록을 사면 입장권이 제공된다고 들은 것 같아요. 꼭 가보세요! ^^
마노아님의 글과 표정에서 저는 이미 복이 많이 따라갈 것이 느껴져요. 건강하시고요.^^

상미 2011-01-01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넌 서울로, 난 남쪽으로 ㅎㅎ
장흥 가서 경희한테 문자보냈지~~

hnine 2011-01-01 22:01   좋아요 0 | URL
잘 돌아왔니? 우린 서울 가면서도 눈이 많이 왔다더라, 가도 괜찮을까, 걱정했는데 역시 너희 가족은 다르다 했단다. 그 추진력과 단결력이면 안될일이 있을까 싶어. 가족 모두 건강한 새해가 되도록 우리가 신경 많이 쓰자. 우선 우리 자신부터~ ^^

무스탕 2011-01-01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이 참 쉬운듯 하면서도 정교하게 정성껏 그린 느낌이 들어요.
이것도 관심 전시에 등록 시켜놓고!
다린이의 소원과 우리 애들의 소원이 아마도 같을거에요. ㅎㅎㅎ

hnine님이랑 다린이랑 남편님, 가족분들 모두 건강하시고 새 해 복 그득히 넉넉히 많이많이 받으세요~ ^^

hnine 2011-01-01 22:05   좋아요 0 | URL
정교하고 정성껏 그린 느낌,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 자신의 철학을 담았다고 해서 보는 사람이 갸우뚱하게 어렵게 표현하지도 않았고요. 3월 까지 한다니까 시간 되실때 한번 가보셔요.
무스탕님, 빈 자리로 인해 마음이 서늘할 때가 많았던 2010년이었어요. 무스탕님은 여기 계속 있어주실거죠? 건강하시고요, 귀찮아서 영화 보러 자주 못가는 제게 영화 리뷰로 자극도 팡팡 주시고요. 아 참, 오늘 심 형래 영화 보고 왔어요. 옆에서 아이가 얼마나 깔깔거리고 웃던지...새해 첫날 많이 웃을 수 있는데 한 몫 했답니다.

카스피 2011-01-02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아이의 소원이 이루어졌으니 아마 평생의 즐거운 기억으로 남지 않을까 싶네요^^
hnine님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hnine 2011-01-02 06:14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세실 2011-01-02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텔에서의 하룻밤도 멋진데요. 다린이 참 ㅋㅋ
전시회에 호기심을 갖도록 하는 님의 배려 한수 배웠습니다.

1월에 아이들과 ktx 타고 샤갈전 다녀오려구요. 미리 샤갈 그림 많이 보여줘야 겠어요.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지금처럼 행복한 일 가득하시길^*^


hnine 2011-01-02 18:08   좋아요 0 | URL
샤갈전도 좋지요. 색감이 화려하고 환상적이어서 마음을 더 포근하고 환하게 해줄 것 같아요. 전시회는 어른이나 아이나 조금 예비 지식을 가지고 가면 훨씬 눈에 더 잘 들어오는 것 같더라고요.
세실님, 여러가지로 새로운 한해가 되시겠지요. 화이팅입니다! ^^

꿈꾸는섬 2011-01-02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를 위해 호텔을 예약하는 부모님..참 멋지세요.
서울에 오셔서 전시회 구경하고 서점 다녀오시고 남대문시장까지...시간이 너무 짧았겠네요. 그래도 즐거운 시간 보내셨겠어요.^^

hnine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nine 2011-01-02 18:10   좋아요 0 | URL
가끔 호텔에 가서 자고 오면 저도 좋지요. 밥 안해도 되고, 청소 안해도 되고, 아이가 어지르는 것에 신경 곤두세우지 않아도 되고요~ ^^
아침에 출발했더니 세군데 구경하는데 별로 시간이 촉박하지는 않더군요.

꿈꾸는 섬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프레이야 2011-01-02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월1일이라고 특별할 건 없다.
매일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감사하며...
이 말 새겨읽혀요.
다린인 참 깜찍해요.^^
님, 새해에도 사소한 행복 잘 가꾸며 살아가길 바래요, 우리^^

hnine 2011-01-02 18:14   좋아요 0 | URL
오늘 어떤 책을 읽는데 거기 '프레이야'라는 단어가 나오길래 안그래도 님 생각했답니다.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신~ ^^
아침에 눈 뜰때마다 한숨부터 쉬며 오늘 하루 무사히 지낼 수 있을까 마음이 무겁던 때가 있었어요. 지금은 그에 비하면 정말 좋은 시절이라 생각해요. 물질적으로 풍요로와서가 아니라 아침에 눈 떠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게 그냥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네요. 그러다가 몇 시간 안되어 또 복잡한 일상으로 들어가 투덜거리긴 하지만요 ^^
그래요, 프레이야님. 사소한 행복이 그게 사소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우치게 되는 시간들을 만들어보기로 해요. 건강하시고요 ^^

... 2011-01-03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페이퍼로 흔적을 남기시니 더 즐거워져요! 훈데르트바서, 정말 좋지요? ^^

hnine 2011-01-03 22:58   좋아요 0 | URL
브론테님 덕분입니다. 옆에서 하고 있는 다른 전시회까지 둘러볼 여유가 없어 아쉬웠는데 오늘 브론테님 서재에 들르니 역시, 제 아쉬움을 달래주시는 페이퍼를 올리셨더군요 ^^

2011-01-03 04: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4 0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혜덕화 2011-01-03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심코 한 생각들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모두 이루어져있는 것을 느낄 때가 있어요.
생각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다린이가 생각한 일들이 이루어지는 새해, 정말 멋진 새해 선물을 주셨군요.
늘 맞이하는 아침이지만, 어제보다 더 행복한 나날 되기를 기원합니다.^^

hnine 2011-01-03 23:07   좋아요 0 | URL
사실 서울에 간 것은 새해가 되기 전이었고, 선물이란 생각보다는 그냥 저도 함께 마음이 움직여 실천에 옮겨본 것이지요. 지금은 저 강원도 영월에 와있습니다. 역시 1박 2일이요 ^^
비록 1시간 후면 마음이 언제 그랬냐는듯이 달라지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건강한 몸으로 또 이렇게 새로운 하루가 주어졌다는 것이 참 감사하게 생각되어요.

순오기 2011-01-03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여행도 참 좋겠어요. 다린이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고?^^
훈데르트바서~~~~ 그림이 환상적이네요. 동화 속 나라를 여행하는 기분...

hnine 2011-01-03 23:09   좋아요 0 | URL
그림 정말 환상적이지요? '동화 속 나라를 여행하는 기분' 맞아요.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적절한 문구가 생각 안 나고 있던 중인데 그 말씀이 맞네요.
1박2일 여행은 부담이 없어서 좋더군요. 일정도, 비용도요. ^^

마녀고양이 2011-01-03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서울 1박2일 여행 좋은데요?
전시회 가셨군요. 저는 항상 예술의 전당 전시회들이 탐이 나는데,
일산에서 가기 너무 멀답니다. 서울 근교면서 이런 투덜거림이라니.
하지만 진짜루 가는데 2시간반~3시간 걸려요! ^^

즐거운 새해 되셔염!

hnine 2011-01-03 23:11   좋아요 0 | URL
일산에서 멀지요...애매하게 멀어서 저처럼 날잡아 1박2일 하면서 구경하시기도 그렇고요. 일산 킨텍스에서도 가끔 보면 보고 싶은 전시 많던데요? 저야말로 일산까지 가기엔 너무나 멀어 아쉽더라고요.
 
윈터걸스 개암 청소년 문학 8
로리 홀스 앤더슨 지음, 공경희 옮김 / 개암나무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나는 계획 없이 먹는게 뭔지 기억 못 한다. 칼로리와 지방 함유량을 계산하고, 내 엉덩이와 허벅지를 가늠해서 그 음식을 먹어도 되는지 가늠한다. 보통은 안 된다고, 먹을 자격이 없다고 결정한다. 그러면 거짓말과 변명을 늘어 놓으며 피가 나도록 혀를 깨물고 입을 꾹 다문다. 그 사이 눈먼 촌충 한마리가 내 기관을 감싸고, 킁킁대며 내 뇌의 열린 틈을 찌른다. (261쪽)

내가 개인적으로 이런 내용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있다. 섭식장애를 가지고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사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친구이자 소아과 의사로 부터 이 주제를 한번 소설로 다뤄보라는 권유를 받아 쓰게 되었다는 이 이야기는 대학 진학을 앞둔 한 소녀 '리아'와, 그녀의 절친이었다가 한동안 관계가 소원해진 동안 결국 혼자 모텔에서 쓸쓸히 세상을 등진 '캐시', 그리고 그 둘의 가족들이 등장 인물로 나온다. 캐시는 죽기 전에 계속 리아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지만 리아는 그 전화를 무시했고 그 죄책감때문에 캐시가 죽은 후에도 사방에서 그녀의 환영을 보며 괴로와 한다. 죽기 전 캐시는 뚱뚱한 자기 모습 때문에 고민하고 잃어하는 자신감을 찾기 위해 먹고 토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리아는 캐시의 그런 모습을 혐오하기 보다는 동정하고 도움을 주어왔다. 그런 둘 사이가 멀어지게 되자 마음이 의지할 곳을 잃은 캐시는 더 방황을 하게 되었고 리아는 신경을 끄고 있던 중이었다.
삐쩍 마른 신체를 가지고 있는 리아는 먹는 것을 극도로 제한하여 음식이 나오면 일단 칼로리부터 계산을 하는 타입. 비정상적으로 말라가는 그녀를 가족들은 정신과 의사에게 데려가기도 하고 요양원에 입원시키기도 하지만 그 어느 쪽도 리아에게는 더 거부감만 일으킬 뿐이다. 심장 전문의인 엄마와 역사학과 교수인 아빠를 둔 리아. 엄마는 늘 바빴고 자로 잰듯 철저한 사람이었으며 부모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다. 결국 부모는 이혼을 하고 리아는 새엄마와 새엄마가 데리고 온 이복 동생과 새로운 가족 구성 속에서 살게 되는데 리아의 문제점을 안 새엄마는 매일 리아의 체중을 재면서 그녀를 지켜보는 책임을 맡았고 이런 새엄마의 눈을 속이기 위해 리아는 체중계에 올라가기 전 주머니에 돌멩이를 잔뜩 숨겨 넣고 몸무게를 속이고, 다른 식구가 먹은 접시를 자기가 먹은 접시인양 꾸미는 등, 먹을 것을 거부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자기 몸을 면도칼로 긋는 자해 행위를 하며 내 몸 속의 온갖 독소가 빠져나간다고 생각하는 것 하며, 학교에서 점심 시간에 카페테리아에 모여 있는 학생들을 보며 꾸역꾸역 모여드는 수족관을 연상하는 리아는 현실을 현실로 보기 보다는 혐오스럽고 피하고 싶은 도가니로 볼 뿐이다.
'윈터 걸'. 완전히 산 것도 아니고 완전히 죽은 것도 아닌 사람을 말한다. 죽은 친구 캐시의 환영은 리아에게 너도 이쪽 세계로 오라고 권한다. 리아 자신도 먹을 것을 극도로 거부함으로써 온전한 삶을 꾸려나가질 못한다. 즉 윈터 걸로 지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은 비록 그런 상태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자기를 믿고 따라주는 이복 동생 엠마를 위하는 마음, 자신의 극단적인 행동이 어린 엠마에게 또다른 상처와 회복되기 힘든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눈물을 흘리는 리아를 보며 그녀의 순수하고 여린 본성이 다시 살아날 수 있기를, 제발 그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길 바라며 조마조마 했다.
이 책은 번역본이긴 하지만 눈에 띄는 개성있는 표현들 때문에 더 좋았다. 
다음은 망가져가고 있는 자기 몸을 리아가 상상하는 부분이다.

고름 색깔의 지방 덩어리가 내 허벅지와 배를 짓눌렀지만, 의료진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내 뇌가 줄고 있다고 말했다. 두개골 안쪽에 전기 폭풍우가 밀어닥쳤다. 내 지친 간은 가방을 싸고 있었다. 내 콩팥은 모래 바람 속에서 길을 잃었다. (238쪽)

다음은 리아를 또 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한다는 말을 하는 아빠를 보며 리아가 하는 생각을 표현한 부분이다.

땅콩 버터가 아빠의 입술을 딱 붙여 버렸으면 좋겠지만, 그 정도로 끈끈하지 않다. (263쪽) 

 작가는 어떻게 보면 일반인으로서는 공감하기 힘들지도 모를 리아의 심리 묘사를 참 특이한 방법으로 잘 해놓고 있었다. 훌륭했다.

내 이야기로 실을 잣고 내 세상이란 천을 짜고 있다. 어린 요정 무용수는 나무 인형이 되었다. 무신경한 사람들이 그 인형에 달린 줄을 홱홱 당겼다. 나는 통제력을 잃고 빙빙 돌았다. 먹는 게 힘들었다. 숨쉬기가 힘들었다. 사는 것은 가장 힘들었다. (345쪽)

마지막 페이지의 그녀의 힘겨운 한마디는 어떤 결의보다도 감동적이다.

나는 내 언어와 환상을 물레질하고 짜고 뜨개질한다. 삶이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할 때까지. 마법의 치료 따위는 없다. 뭐든 영원히 떨쳐 버릴 수도 없다. 다만 작은 발걸음으로 나아갈 뿐이다. 좀 수월한 하루, 예상치 못한 웃음, 이제는 중요하지 않은 거울. (345쪽)

참으로 삶은 극복해야할 일 투성이이다. 그건 꼭 나이와 상관 없다. 그 한가지를 극복해낸 주인공 리아는 마지막 부분에서 내게는 십대 소녀가 아니라 거인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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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30 0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0-12-30 05:35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훨씬 많은 수가 섭식장애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더군요. 이 책에는 음식 거부증 뿐 아니라 자기 몸에 자해하는 행위까지 나와요. 자기 몸에 대한 이런 자해 행위는 지구 상에서 인간들만이 하는 행동이 아닌가 싶어요. 원인이 뭘까 파헤쳐 보고 싶기도 하고요.

세실 2010-12-30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은 숨쉬기조차 힘들때가 있지요. 그 느낌 알아요.
그렇게 아파하고, 고민하면서 크는거죠. 전 아직도 크는 느낌이예요.
몸도 마음도. ㅋㅋ
내년엔 딱 5킬로만 뺐으면 좋겠어요.
오늘은 온 세상이 하얘요. 조금 미끄럽기도 했지만 출근길이 참 예뻤어요.
마무리 잘 하시길^*^

hnine 2010-12-31 22:26   좋아요 0 | URL
세실님, 나이가 들어가면 사는게 좀 더 수월해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저 책에서는 참 위태위태한 십대를 보내는 이야기라서 마음이 아팠어요.
어제 오늘 서울 다녀왔는데 남대문 시장을 다녀오는 계획은 제대로 실행을 못했네요.
우리, 긍정적인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다독여주며 2010년을 보내기로 해요.

stella.K 2010-12-30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원더걸스란 책도 있었구나 했더니, 원터걸스였군요.
나인님은 청소년 문학이 좋은가 봐요.^^

hnine 2010-12-31 22:27   좋아요 0 | URL
하하, 원더걸스 ^^
원터걸스도 아니고 윈터걸스랍니다. 윈터걸의 뜻은 위에 적어두었어요.
stella님에게도 들켰네요, 저 청소년 소설 정말 좋아해요 ^^

마녀고양이 2010-12-30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ㅠㅠ

저두 사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라고 되뇌이던 때가 있었는데.
인용구의 섬세한 문장이 참 좋네요. 청소년 문학이라고 한정짓기에는 너무 공감가네요.

hnine 2010-12-31 22:29   좋아요 0 | URL
세상이 하도 험하고 덧없기도 하다보니, 그저 하루 하루 이렇게 제 정신과 움직일수 있는 몸으로 숨쉬고 산것도 감사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래도 뭐가 모자라 투덜거릴 때가 더 많지만요. ^^
청소년문학이라고 쟝르를 꼭 나눠야하나, 그런 생각이 가끔 들어요. 우리 모두 경험을 한 시기라서 그런지 공감이 더 잘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순오기 2010-12-30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섭식장애~~~~ 이런 현상을 겪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죠.
인생이란 어느 나이를 막론하고 견디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hnine 2010-12-31 22:30   좋아요 0 | URL
외모, 비주얼을 강조하는 시대에 살다보니 더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것이 완전히 한 사람을 파멸로 몰아갈 수도 있고 완전히 치료되기도 힘들다고 하네요. 인생이란 누리기보다는 견디는 것, 슬프지만 저도 완전 공감합니다.

2010-12-31 0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31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와 나의 며칠 동안의 독감 증세도 이제 거의 나아가고, 밤에 있을 시어머님 제사 준비도 다 해놓았고, 제사 때마다 남편에게 부탁하는 파트, 즉 집안 청소가 이루어지는 몇 시간 동안 나가서 오랜만에 바깥 바람도 쐴겸 영화를 보고 들어오고 싶었다. 몇 안 되는 극장을 둘러보아도 별로 보고 싶은 영화가 없다. 할 수 없다. 인터넷 영화 포털에서 검색을 하다가 이 영화를 골랐다. 

블루 프린트

블루프린트
 

 

2007년에 개봉된 독일 영화이다.
잘 나가는 피아니스트 '이리스'는 자신이 다발성경화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잃고 싶지 않다는 절실한 생각에 체세포복제학자인 피셔 박사를 설득하여 자신과 동일한 복제 인간 딸을 낳게 된다.
이렇게 해서 아버지 없이 태어난 딸 '시리'는 엄마에게 피아노를 배우며 착한 딸로 잘 자라고 있었는데 자신의 과학적 업적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피셔 박사가 이리스와의 약속을 어기고 매스컴에 알리게 됨으로써 자신이 복제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 때무터 엄마와의 갈등,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방황을 겪게 된다. 엄마와의 듀오 연주회를 마치고 나오며 스스로 '복제품'이라는 이름표를 자기 가슴에 붙이고 보란 듯이 걸어나오기도 하고 자해 시도도 하는 딸은 결국 집을 나가 외딴 섬에서 사진을 찍으며 홀로  안정을 찾는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자신의 재능을 자식에게 재현시키고 보전하고 싶어한 엄마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엄마의 복제품으로 계획되어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딸. 인류를 위해 결국 좋은 일을 한거라고 믿는 과학자. 각기 다른 입장들을 보는 관객의 마음은 착잡하다.
계획된 탄생은 축복받을 수 없는 것인가? 누군가의 대리 인생이란 느낌으로 살 수 밖에 없는 것인가? 만약 그것이 영원히 비밀로 붙여진다면 그럼 상관 없는 것인가?
비록 체세포 복제 방법에 의해 엄마와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자식이 태어난다고 해도 그 엄마의 완전한 복제품은 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모든 유전 정보가 발현되는데는 환경이라는 변화 요소가 영향력을 미친다. 엄마가 가지고 있는 유전 정보와 딸이 가지고 있는 유전 정보가 동일하다 할지라도 그들이 각각 얼마나, 어떻게 발현되는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란성 쌍동이들이 정확히 같은 성질을 보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인드일지도 모른다. 내가 누군가의 보조품이나 대리품으로 '제작'되었다고 받아들일 때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긴박감있게,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는 영화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볼만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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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0-12-27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못 본지 좀 되었네요
님이 알려주셨는데 감사하단 인사도 못해드린 것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하늘바람 2010-12-27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인지 크리스마스인지 감각이 무뎌져서 살고 있네요

hnine 2010-12-27 10:15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얼마나 몸도 마음도 힘드시면 태은이 소식도 사진도 통 못 올리고 계신지 알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하늘바람님 건강 주의하시고, 너무 무리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어제 리뷰 올린 책 <아벨라, 그리고 로사, 그리고>는 <빨간 모자 울음을 터뜨리다> 리뷰가 채택되어 보내는 사은품이라고 배달된 책인데 저야말로 감사하다는 인사도 못드렸어요.
새해에는 뭔가 새로운 일이 생길거예요. 우리 희망을 가져보기로 해요.

마녀고양이 2010-12-27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동네는요,
CGV랑 메가 박스가 있는데 둘이 얼마나 히트작 위주로만 선정하는지
조금 예술성 있겠다 보고 싶은 영화네 하는 영화는
상영을 전혀 안 하거나, 며칠만 살짝(그것도 하루 1회 정도) 해주고 그친답니다.
글쎄,,, 이번 톨스토이 생애를 그린 영화도 상영 안 했어요!! 아, 짱나요~

나인 언니, 행복한 연말되셔요~

hnine 2010-12-27 10:21   좋아요 0 | URL
서울 한복판에 살때 버스 한번만 타고 나가면 흔한게 영화관이었던 그때가 생각나는 순간이지요. 저는 그래서 요즘 이렇게 한가하게 다운받아서 영화를 보는 것도 괜찮더라고요. 보다가 잠깐 부엌에 나가 가스불을 끄고 들어올 수도 있고요, 아줌마 생활 방식에 적합하지요? ^^
저는 사실 코미디 영화가 보고 싶어 얼마전에 혜덕화님께서 소개해주신 로맨틱 할러데이를 볼까 했었어요. 검색 중에 저 영화가 먼저 눈에 띄어 보게 되었지요. 요즘 듣는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마지막 멘트를 이렇게 하더군요. "여러분, 하시고 싶은 것 꼭 하면서 사세요!" 그 말이 참 좋더군요. 내가 하고 싶은 것, 소신있게 하면서 사는 사람은 보기에도 멋있어요. ^^ (It's YOU!)

카스피 2010-12-27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는 이 책을 구해서 봤어요.sf소설이라고 해서 사봤는데 뭐랄까 흔히 우리가 아는 sf소설이라기 보다는 좀더 철학적인 내용이더군요^^

hnine 2010-12-27 21:39   좋아요 0 | URL
SF소설로 분류될 수도 있겠어요. 저는 그냥 사전 정보 없이 우연히 눈에 들어오길래 보게 된 영화인데 카스피님은 원작을 읽어보셨군요.
영화도 그냥 흥미 위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그런 식은 아니었어요.

2010-12-27 2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8 0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30 1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0-12-28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으로 다운 받아 보셨다는 거군요.
전 한번도 안해봤어요, 시작하면 왕집착하게 될까봐...
저도 모든 유전 요소에는 환경이라는 변화 요소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해요.

어찌보면, 계획이란 건 틀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매력적인 게 아닐까요?^^


hnine 2010-12-28 09:41   좋아요 0 | URL
왕집착하게 되지 않으실걸요? ^^
계획이란 틀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매력적이라는 말씀, 맘에 듭니다. 유전학, 생물학의 매력이기도 한 것 같아요.

진주 2010-12-29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로 나왔군요.
저는 책으로 읽었는데, 예전에 학생들 가르칠 때 말이죠. 무분별한 과학의 발전은 끝내는 인간을 더 불행하게 한다는 정도의 주제로 몇권의 책들을 묶어 읽고 감상문도 쓰고 토론도 했었죠. 으..지난 번 이사하면서 누군가에게 책은 줬나봐요. 책꽂이에 없네요.

hnine 2010-12-29 13:38   좋아요 0 | URL
어디까지가 '무분별'한 것인지, 누구도 명확하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 같아요. 이런 주제로 감상문 쓰고 토론을 하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네요. 저는 이 제목도 처음 보고 고른 영화였는데 이 영화 (혹은 책)를 알고 계신 분들이 꽤 계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