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을 맞은 아이에게 가고 싶은 곳이 있나 물어봤더니, 좋은 호텔에서 하룻밤 자보는 것이란다. 지난 여름 방학 때인가, 같은 반 친구 하나가 방학 동안 가족들과 두바이에 다녀왔는데 그 호텔이 얼마나 호화스러운지 얘기하는 것을 듣고 자기도 한번 그런 호텔에 가보고 싶었나보다.
"그래? 하룻밤 정도 못할 것도 없지."
그러고는 서울의 한 호텔에 예약을 했는데 아이가 생각했던 '좋은'호텔은 물론 아니고, 남편의 직장에서 무려 50%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아주 착한 가격의 '그저 그런' 호텔이었다. 그래도 아이는 좋아했다. 홈페이지에서 사진으로 본 것과 비교해 생각보다도 시설이 낡은 호텔을 보고 오히려 실망한 것은 나 ^^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제일 먼저 간 곳은 호텔에서 가까운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훈데르트바서 전시회. 가기 전부터 아이에게 전시 홈페이지에 들어가 이 사람 작품을 보여주고 내 노트북 바탕 화면으로 저장해놓으며 관심을 끌어 놓은 덕에 군말없이 동행해주었다. 화가이자 환경운동가이자 건축가이기도 했던 (남편은 그에게 건축가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에 완전히 동의를 하지 않았지만) 그는 오스트리아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자연주의자였던 그가 2000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한 후 잠든 곳은 위 사진의 나무 아래.
관도 없이 내가 심은 나무 아래 묻혀 나무의 부식토가 되기를 고대한다는, 그가 남긴 말이다.
다음은 다양한 그의 작품들. 배우 지진희의 목소리로 녹음된 오디오를 두개 빌려 아이와 하나씩 들고 설명을 들으며 함께 구경을 했다.

직선을 피하고, 물 흐르듯 곡선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그의 기법이 여실히 드러난다.
건물의 '창'을 매우 중시하여 창의력의 원천이라고 했고, 한 건물의 창들을 다 다르게 그렸다. 생태주의자이기도 했던 그의 작품에 녹색 식물들은 어디에나 있다. 건물의 위, 아래 심지어는 높은 중간에도.

전시회 입장권을 사면 저렇게 발바닥 모양의 스티커를 주는데, 잠비아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를 짓는데 입장 요금 일부가 쓰인다고 한다.
전시회를 보고, 도록을 사고 기념 우표를 사고.
그리고는 아이의 요쳥에 따라 광화문 교보문고로. 지난 여름 수리가 끝난 후엔 안 가보았다.
가벼운 책 한권은 바로 구입하고, 두꺼운 책은 제목을 기억해서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구입하기로 했다. 남편 생일 선물로 다이어리를 사고, 이어폰을 불편해하는 아이를 위해 아예 큼지막한 헤드폰을 사주었더니 이후로 내내 그 헤드폰을 끼고 가져온 mp3의 노래를 들으며 다녔다.
호텔에서 하룻 밤 자고 다음날인 어제는 남대문 시장을 구경하기로 했는데 날이 너무 추워, 자세히 구경은 못했고, 서울역 근처 서점에 또 들어가서 한동안 시간을 보낸 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올때 되니 집에 혼자 있는 펏지 (Fudge, 며칠 전에 산 기니픽 이름)가 잘 있을지 궁금해한다.
나로서는 서울에 있는 호텔에서 잠을 자본 것도 처음, 그러면서 서울 구경을 한것도 참 색다른 경험이었다. 아이 덕분에. ^^
매일 아침 눈뜨면 새날.
1월 1일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다.
어제까지 힘들었더라도 오늘 눈뜨면서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새로 시작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