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나의 며칠 동안의 독감 증세도 이제 거의 나아가고, 밤에 있을 시어머님 제사 준비도 다 해놓았고, 제사 때마다 남편에게 부탁하는 파트, 즉 집안 청소가 이루어지는 몇 시간 동안 나가서 오랜만에 바깥 바람도 쐴겸 영화를 보고 들어오고 싶었다. 몇 안 되는 극장을 둘러보아도 별로 보고 싶은 영화가 없다. 할 수 없다. 인터넷 영화 포털에서 검색을 하다가 이 영화를 골랐다. 

블루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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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개봉된 독일 영화이다.
잘 나가는 피아니스트 '이리스'는 자신이 다발성경화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잃고 싶지 않다는 절실한 생각에 체세포복제학자인 피셔 박사를 설득하여 자신과 동일한 복제 인간 딸을 낳게 된다.
이렇게 해서 아버지 없이 태어난 딸 '시리'는 엄마에게 피아노를 배우며 착한 딸로 잘 자라고 있었는데 자신의 과학적 업적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피셔 박사가 이리스와의 약속을 어기고 매스컴에 알리게 됨으로써 자신이 복제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 때무터 엄마와의 갈등,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방황을 겪게 된다. 엄마와의 듀오 연주회를 마치고 나오며 스스로 '복제품'이라는 이름표를 자기 가슴에 붙이고 보란 듯이 걸어나오기도 하고 자해 시도도 하는 딸은 결국 집을 나가 외딴 섬에서 사진을 찍으며 홀로  안정을 찾는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자신의 재능을 자식에게 재현시키고 보전하고 싶어한 엄마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엄마의 복제품으로 계획되어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딸. 인류를 위해 결국 좋은 일을 한거라고 믿는 과학자. 각기 다른 입장들을 보는 관객의 마음은 착잡하다.
계획된 탄생은 축복받을 수 없는 것인가? 누군가의 대리 인생이란 느낌으로 살 수 밖에 없는 것인가? 만약 그것이 영원히 비밀로 붙여진다면 그럼 상관 없는 것인가?
비록 체세포 복제 방법에 의해 엄마와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자식이 태어난다고 해도 그 엄마의 완전한 복제품은 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모든 유전 정보가 발현되는데는 환경이라는 변화 요소가 영향력을 미친다. 엄마가 가지고 있는 유전 정보와 딸이 가지고 있는 유전 정보가 동일하다 할지라도 그들이 각각 얼마나, 어떻게 발현되는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란성 쌍동이들이 정확히 같은 성질을 보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인드일지도 모른다. 내가 누군가의 보조품이나 대리품으로 '제작'되었다고 받아들일 때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긴박감있게,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는 영화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볼만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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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0-12-27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못 본지 좀 되었네요
님이 알려주셨는데 감사하단 인사도 못해드린 것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하늘바람 2010-12-27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인지 크리스마스인지 감각이 무뎌져서 살고 있네요

hnine 2010-12-27 10:15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얼마나 몸도 마음도 힘드시면 태은이 소식도 사진도 통 못 올리고 계신지 알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하늘바람님 건강 주의하시고, 너무 무리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어제 리뷰 올린 책 <아벨라, 그리고 로사, 그리고>는 <빨간 모자 울음을 터뜨리다> 리뷰가 채택되어 보내는 사은품이라고 배달된 책인데 저야말로 감사하다는 인사도 못드렸어요.
새해에는 뭔가 새로운 일이 생길거예요. 우리 희망을 가져보기로 해요.

마녀고양이 2010-12-27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동네는요,
CGV랑 메가 박스가 있는데 둘이 얼마나 히트작 위주로만 선정하는지
조금 예술성 있겠다 보고 싶은 영화네 하는 영화는
상영을 전혀 안 하거나, 며칠만 살짝(그것도 하루 1회 정도) 해주고 그친답니다.
글쎄,,, 이번 톨스토이 생애를 그린 영화도 상영 안 했어요!! 아, 짱나요~

나인 언니, 행복한 연말되셔요~

hnine 2010-12-27 10:21   좋아요 0 | URL
서울 한복판에 살때 버스 한번만 타고 나가면 흔한게 영화관이었던 그때가 생각나는 순간이지요. 저는 그래서 요즘 이렇게 한가하게 다운받아서 영화를 보는 것도 괜찮더라고요. 보다가 잠깐 부엌에 나가 가스불을 끄고 들어올 수도 있고요, 아줌마 생활 방식에 적합하지요? ^^
저는 사실 코미디 영화가 보고 싶어 얼마전에 혜덕화님께서 소개해주신 로맨틱 할러데이를 볼까 했었어요. 검색 중에 저 영화가 먼저 눈에 띄어 보게 되었지요. 요즘 듣는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마지막 멘트를 이렇게 하더군요. "여러분, 하시고 싶은 것 꼭 하면서 사세요!" 그 말이 참 좋더군요. 내가 하고 싶은 것, 소신있게 하면서 사는 사람은 보기에도 멋있어요. ^^ (It's YOU!)

카스피 2010-12-27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는 이 책을 구해서 봤어요.sf소설이라고 해서 사봤는데 뭐랄까 흔히 우리가 아는 sf소설이라기 보다는 좀더 철학적인 내용이더군요^^

hnine 2010-12-27 21:39   좋아요 0 | URL
SF소설로 분류될 수도 있겠어요. 저는 그냥 사전 정보 없이 우연히 눈에 들어오길래 보게 된 영화인데 카스피님은 원작을 읽어보셨군요.
영화도 그냥 흥미 위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그런 식은 아니었어요.

2010-12-27 2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8 0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30 1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0-12-28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으로 다운 받아 보셨다는 거군요.
전 한번도 안해봤어요, 시작하면 왕집착하게 될까봐...
저도 모든 유전 요소에는 환경이라는 변화 요소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해요.

어찌보면, 계획이란 건 틀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매력적인 게 아닐까요?^^


hnine 2010-12-28 09:41   좋아요 0 | URL
왕집착하게 되지 않으실걸요? ^^
계획이란 틀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매력적이라는 말씀, 맘에 듭니다. 유전학, 생물학의 매력이기도 한 것 같아요.

진주 2010-12-29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로 나왔군요.
저는 책으로 읽었는데, 예전에 학생들 가르칠 때 말이죠. 무분별한 과학의 발전은 끝내는 인간을 더 불행하게 한다는 정도의 주제로 몇권의 책들을 묶어 읽고 감상문도 쓰고 토론도 했었죠. 으..지난 번 이사하면서 누군가에게 책은 줬나봐요. 책꽂이에 없네요.

hnine 2010-12-29 13:38   좋아요 0 | URL
어디까지가 '무분별'한 것인지, 누구도 명확하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 같아요. 이런 주제로 감상문 쓰고 토론을 하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네요. 저는 이 제목도 처음 보고 고른 영화였는데 이 영화 (혹은 책)를 알고 계신 분들이 꽤 계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