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이 닿지 않는 아이
권하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권하은이라는 이름은 벌써부터 내 귀에 익어 있었다. 무슨 문예지 공모를 통해 등단한 작가도 아니고 여러 권의 책을 낸 작가는 더더욱 아닌, 어떻게 보면 신인 작가임에도 그녀의 이름이 여기 저기서 조용조용히 거론되는 것을 나도 가만가만이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나 보다. 지금까지 두권의 소설을 발표했는데 이 책은 그녀의 두번째 소설이고, 조만간 그녀의 첫 소설 <바람이 노래한다>도 찾아 읽게 될 것 같다. 따로 청소년 소설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 않아서 좋다. 언젠가 그녀가 인터뷰에서 하는 말을 들었다. 자신은 따로 청소년 소설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며 쓰지 않았는데 책이 나오고 나니 청소년 소설로 분류되고 자신을 청소년 소설 작가로 부르는 경우가 있어 좀 뜻 밖이었다고. 아무튼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 아마 나로 하여금 관심을 더 끌게 하는 요인이었던 것은 맞다. 주인공 '나'가 소설의 화자가 된다. 주인공이 아기때 엄마는 집을 나갔고 아빠는 별 다섯개 전과자. 고등학생이 된 '나'는 그래서 쪽방에서 혼자 살고 있다. 뭐든지 늦고 서툴고 제대로 하는 것이 없는 자신을, 발이 땅에 닿지 않고 공중에 떠있는 것 같은, 발이 닿지 않는 아이라고 혼자 생각한다. 물건을 훔치는 버릇까지 있는 '나'는 담임으로부터 반 아이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무차별 구타를 당하고, 그러면서 변명 한 마디 제대로 못하는 그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우등생 친구 (여기서 '군중1'이라고 호칭된다)와 가까와 진다. 폐휴지를 모아 고물상에 넘기고, 동네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는 어느 날 '군중2'라고 호칭되는 반 여자 친구의 호감을 사게 되고, 잘 안 어울릴 것 같은 이 셋은 점차 가까와져간다.
수감중인 아버지가 탈옥하는 사건이 벌어져 형사가 '나'의 집을 감시하는 일이 생기자 문득 아버지와 엄마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무작정 엄마가 있다는 B도시에 가보기로 하는 주인공을 친구인 군중1이 동행해준다.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 친구가, 자신이 위기 상황에 처할 때마다 함께 해주는 것을 보며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저렇게 강하면서 단순한 녀석들이 바로 나중에 커서 세계 평화를 위한다면서 핵무기 발사 버튼을 누르는 그런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어차피 사람이란 자신이 겪고 경험한 거 외엔 절대 알 수 없는 거 아닐까, 그래서 그 녀석을 좋아하면서도 싫어한다는 주인공은, 내가 보기엔 절대 남들보다 모자라는 아이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부정을 폭로하기 위한 작업에 주인공을 끌어들인 여자 친구 '군중2'는 아버지의 외도로 마음의 상처를 받아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는 엄마를 이해하면서도 그런 엄마를 이해해야한다는 사실때문에 이중으로 마음이 괴롭다. 그녀의 엄마는 수시로 이삿짐 싸는 것이 취미라며, 주인공에게 너의 도둑질은 우리 엄마의 이삿짐 싸기와 같은 맥락으로 여겨진다고 말한다.
폐휴지 모으는 일을 함께 하며, 어떻게 보면 주인공과 경쟁 상대이던 동네 할머니 집을 우연히 찾아간 주인공이 눈 앞에 펼쳐진 암울한 상황을 그냥 등돌리지 못하고 나름대로 수습하는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은 독자로 하여금 웃어야할지 울어야 할지 애매하고 복잡한 심경을 불러일으킨다. 할머니의 네 살짜리 손자를 주인공이 리어커에 싣고 그 집을 뜨는 그 마지막을 희망적인 결말이라고 봐야하는가, 또다른 찌질한 인생의 시작이라고 가슴 아파야 하는가.
이 책은 순전히 작가 자신을 위해 쓰였기 때문에 작자도 자신이지만 독자도 자기 자신이라고, 그래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소설이라고 말한 작가 후기도 인상적이다. 340kg의 체중으로 호흡곤란때문에 서른 여덟살에 죽은 '이즈'라는 가수가 부른 'somewhere over the rainbow'  라는 노래도 이왕이면 들어봐달란다. 이 책 중에도 나오고, 실제로 이 책을 쓰는 중 계속 들은 노래라고.
뭐든지 모자라고, 발육이 늦고,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처음부터 묘사해놓고, 그런 아이가 주인공이 되어 말하는 투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이 어딘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아 눈에 거슬려, 책을 읽는 중반까지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앞과 잘 맞물려 가는 구성이라든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 작가만의 특별한 그 무엇이 전해져와 마지막 페이지까지 책을 내려놓을 수 없게 되었다.
정말 무지개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우리가 자장가에서나 들어오던 꿈이 있고 상상 속의 파랑새가 날고 있을까? 그 노래 역시 What a wonderful world가 노래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불려질 수 있는 것임을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았다.  

( * 지난 달에 작가의 세번째 소설 <비너스에게>가 나왔음을 리뷰를 올리고 난 후에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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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1-04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소년소설 하면 대부분 가정환경이 열악한 아이들만 주인공일까 하는 의문점을 갖기도 하지만 작가 자신을 위해 쓰여졌다고 하니 호기심이 생깁니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 노래 참 좋죠. 340kg의 거구라니 꽥!!

hnine 2011-01-04 22:28   좋아요 0 | URL
쓰면서 작가가 자기 속의 많은 응어리를 풀어낼수 있었다는 뜻 아닐까 생각해요.
'이즈'라는 가수가 노래 부르는 동영상을 찾아보니 목소리가 참 편안하더군요. 이 가수의 이 노래를 계속 들으면서 이 소설을 썼대요.

hnine 2011-01-10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노래를 들으며 이렇게 처량한 기분을 느낀 건 처음이다. 모두 이 작가때문, 이 소설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