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백두산 관련 책을 쓰고 있어, 여러가지 백두산 관련 글과 사진을 찾아보고 있는 중이다. 나름대로 전공자이기 때문에 일반인보다야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거기까지였다. 나의 부족함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게 한 둘이 아니더라. 우선 도대체 백두산은 어떤 나라의 산일까? 사실 이건 질문 자체가 이상한 것이다. 왜 우리들은 이건 누구꺼고 저건 누구것일까는 구획에 의한 소유의 문제에만 초점을 둘까? 이런식의 질문과 대답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건 객관적인 '지리적 지식'이 필요하다. 산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자. 국어사전,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땅의 부분", 영영사전에 찾아보면 "A mountain is a very high area of land with steep sides."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국어사전보다는 영영사전에 더 잘 나와있다. 즉, 산이라는 것은 '점'적 공간이 아니라 '면'적 공간이다. 'area'을 가지고 있는. 그러니 여러 국가와 공유하고 있는게 당연한게다.
유럽에서 가장 긴 도나우 강을 보면 길이는 무려 2,800km이고 독일 남부의 슈바르츠발트에서 발원하여 본류는 독일·오스트리아·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유고슬라비아·불가리아·루마니아·우크라이나 등 여러 나라를 지나고, 빈·부다페스트·베오그라드 등 각국의 수도가 모두 그 본류 연안에 위치한다. 지리에서는 이런 하천을 국제하천이라고 한다.
Herbert von Karajan conducts The Blue Danube Waltz by johann strauss jr.
당연히, 기분은 나쁘지만 백두산은 한반도에 있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이 중국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중국인들은 그들 나름의 이름으로 그 산을 칭하고 개발에 열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적으로 백두산의 이름과 '산'에 대한 주도권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백두산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과의 관계가 불안정하다보니 체계적인 연구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단적인 예가 백두산 천지 외륜산에 있는 수십개의 산 봉우리 이름조차도 통일된 것이 없다. 출처마다 다르고 높이도 다르다. 그러다 보니 그 틈새를 중국이 들어와 자기네식 이름을 붙이고 변경하고 그것으로 인정받으려 하고 있다.
동해와 독도도 마찬가지다. 얼마전에 '파인드 코리아'에 대한 기사를 스크랩한 적이 있는데, 제 3국은 동해든 일본해든, 독도든 다케시마든 상관없다. 왜? 자기네와 하등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다른 나라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제 학교에서 세계지리 보충 수업을 하는데 문제집에 버젓이 대만이 중국영토로 표시된 자료(중국측 자료라 그렇다)가 나온 문제가 나오더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문제가 나오더라도 학생뿐 아니라 교사들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왜, 나하고 관계가 없는 것이라 생각하니깐. 그러니 다른 나라 지도에서 웹사이트에서 독도를 다케시마로, 동해를 일본해로 사용한다 한들 그들에게 우리들이 '퐈이야'할 명분은 사실 없는 것이다.
진정으로 우리의 것을 찾기 위해서는 때론 타인의 것도 찾아줄수 있는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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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171호 고지도를 보니 동해·일본해 논쟁 해답이 보이네
19세기 이전 서양 고지도에는 ‘한국해’ 표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이후 ‘일본해’가 이를 대체하기 시작한다. 그 기록을 토대로 문제를 풀어가면 동해·일본해 표기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다.
독도는 우리 땅이고 동해는 우리 바다이다. 우리는 분명히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런데 독도는 왜 우리 땅이고 동해의 이름은 왜 동해일까? 아니 질문을 바꿔보자.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독도가 우리 땅이고, 동해의 이름이 동해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세종실록지리지> 50쪽 셋째 줄’에 근거해서?
독도 영유권과 동해 표기에 대한 우리와 일본의 주장은 정반대다. 그렇다면 타자의 시선에서는 어떨까? 우리와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현재 동북아역사재단 등은 해외 주요국 지도에 일본해로 표기된 것을 동해와 병기하게 하거나, 동해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해양경찰청 제공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왜 독도(사진)가 우리 땅인지 설명할 수 있는가? 서양 고지도에 그 해답이 있을지 모른다.
왜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되어 있을까? 도대체 얼마나 많은 지도가 일본해로 적었을까? 언제부터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되어 있었던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서양 고지도를 살폈다. 결국 독도·동해와 관련된 최종 승부처는 우리 주장이 받아들여지느냐, 일본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느냐 하는 것이다. 서양 고지도는 그 승부를 가늠할 수 있는 ‘타자의 시선’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동북아역사재단 등을 중심으로 서양 고지도를 수집하는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고지도 확보를 통해 우리 주장을 더 공고히 하고 일본의 주장을 적절히 반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이 수십 년 동안 체계적으로 수집해놓은 것과 비교하면 양적으로 절대 열세다. 이미 제국주의 시대부터 서양 고지도를 수집해놓은 일본은 이 부분에서 한국을 훨씬 앞선다.
‘파인드 코리아’ 운영자인 김태진씨(티메카 대표) 고지도 확보 전쟁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는 “포커 게임으로 표현하자면 우리는 액면만 가지고 베팅하고 일본은 히든카드를 들고 베팅하는 셈이다. 우리는 관련 지도가 발견되기만 하면 앞다퉈 발표하는데, 일본은 꽁꽁 숨겨놓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고지도 한두 개 새로 발견된 것보다 전체 맥락을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국제지도수집가협회 한국대표인 그를 통해 서양 고지도에 나타난 동해 표기와 독도 영유권 문제를 살폈다.
먼저 살필 부분은 우리의 ‘아킬레스건’이다. 독도 영유권 및 동해 표기와 관련해 우리가 지닌 최대 약점은 놀랍게도 한국이 보물로 지정한 고지도다. 일본은 우리가 보물 제849호로 지정한 <곤여만국전도>를 이용해 동해가 일본해라고 주장한다(외무성 홈페이지 참조). <곤여만국전도>는 청나라에 왔던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제작한 것으로 여기에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되어 있다.
1810년 일본 다카하시 가게야스가 제작한 <신정만국전도>.
1785년 일본 하야시 시헤이가 그린 <삼국접양지도>. 독도를 ‘조선의 것’으로 표시했다.
<곤여만국전도> 제작 과정을 들여다보면 미스터리는 더욱 증폭된다. 서울대 규장각에서 보관 중인 <곤여만국전도>는 마테오 리치가 제작한 목판본 원본이 아니다. 현재 원본은 전 세계에 일곱 부가 있는데 이 중 세 부가 일본에 있다. 규장각 소장본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던 소현세자가 귀국할 때 가져온 원본 모사도를 다시 모사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원본에 대한 모사가 조선에서 이뤄져 몇몇 부분에 가감이 있었는데도 유독 일본해 부분만 고치지 않고 남겨두었다는 것. 심지어 단순 표기된 일본해에 상자를 그려넣어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기까지 했다.
<곤여만국전도>는 한국의 ‘아킬레스건’
이에 대해 경희대학교 혜정박물관의 김혜정 관장은 단지 동해의 일본 쪽 바다를 일본해로 불러준 것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일본해 표기는 일본 쪽에 치우쳐 있으며 작게 표기되어 있다. 한국 쪽 바다 위에는 조선에 대한 해제가 들어가 있어서 ‘동해’ 혹은 ‘한국해’ 표기가 생략되었다고 유추할 수 있다.
<곤여만국전도>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서는 역사적 맥락을 들여다봐야 한다. 마테오 리치는 이탈리아의 예수회 선교사였다. 서양의 동양 진출은 페르디난드 마젤란과 바스코 다가마를 배출한 포르투갈에서 출발한다. 포르투갈이 스페인에 정복되면서 스페인으로 넘어간 뒤에는 콜럼버스를 배출한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를 거쳐 프랑스, 영국, 독일 순서로 동양 진출이 이어진다. 이 순서는 서양 고지도, 특히 해도가 작성된 순서와 대략 일치한다. 그런데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제작한 동양 고지도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당시는 세계지도를 극비 문서로 취급해 널리 유포하지 않았다. 또한 동판 인쇄가 아니라 직접 모사하는 방식으로 지도를 제작해 지도가 희귀했다. 현재 우리는 이 시기 자료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태이다. 그리고 이들이 참고한 아랍의 고지도 역시 확보하지 못했다.
서양 고지도의 한국해 표기는 상대적으로 프랑스 지도에 많이 나타난다. 18세기에는 세계 경도의 중심을 파리로 표시할 만큼 프랑스가 지도 선진국이었기에 프랑스 해도가 세계적으로 통용되었다. 프랑스 해도에는 동해가 한국해나 동방해 혹은 동해로 표기된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탈리아 출신인 프랑스 지도 제작자 카시니와 그에게 영향을 받은 기욤 드릴, 샹숑 등이 한국해로 계속 표기함으로써 이를 일반화시켰고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끼쳤다.
빈센조 마리아 ‘중국해’, 1692년, 이탈리아.
브리에 ‘동양해’, 1650년, 프랑스.
존 세넥스 ‘동해 혹은 한국해’, 1725년, 영국.
질 로베르 ‘한국해 혹은 일본해’, 1750년, 프랑스.
라피에 ‘일본해’, 1832년, 프랑스.
가장 영향이 컸던 지도는 청나라 강희제가 프랑스 선교사들에게 주문해 9년간(1708~ 1717) 제작한 최초의 실측 지도인 <황여전각도>였다. 당시 프랑스 선교사들이 비밀리에 지도를 빼내 본국에 보낸 것을 기반 삼아 왕실 지리학자였던 당빌이 <신중국지도첩>을 제작했는데, 이 지도는 동양에 대한 최고 권위를 가진 지도로 대접받았다. 이를 보고 듀 왈드 등이 <중국지리지>를 편찬하기도 했는데, 여기서 동해가 한국해로 표기되었다.
김민희씨(성신여대 대학원)가 석사학위 논문에서 ‘파인드 코리아’ 사이트의 서양 고지도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서양 고지도의 동해 표기 흐름은 이렇다. 일단 16세기까지는 중국해(혹은 동양해-Ocean Oriental)라는 표기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1615년 이탈리아 고딩호가 제작한 지도에 한국해(Mar Coria)라는 표기가 최초 등장한 이후 17세기 전반부터는 한국해 표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17세기 후반에 들어서면 한국해 표기가 보편화되고(중국해 20곳, 동양해 20곳, 한국해 8곳, 일본해 1곳), 18세기 전반에는 한국해 표기가 완전히 자리를 잡는다(한국해 72곳, 중국해 또는 동양해 36곳, 일본해 5곳).
‘동양해’나 ‘청해’로 부르자는 주장도
그런데 18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일본해(21곳)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던 한국해(160곳) 표기가 19세기 들어 역전되기 시작한다. 곧 19세기 전반 일본해(66곳) 표기가 한국해(34곳) 표기보다 빈번하게 나타나기 시작하더니(한국해와 일본해 병기는 4곳), 19세기 후반으로 가면 일본해(71곳) 표기가 한국해(4곳) 표기를 압도한다(한국해와 일본해 병기는 1곳). 동해 표기가 이런 분포도를 나타내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적 맥락을 보자고 주장하고, 일본은 절대량을 보고 판단하자고 주장한다(19세기 지도가 압도적으로 많다).
18세기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일본해 표기는 찾기 힘들었다. 그런데 왜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일본해 표기가 압도적으로 늘어난 것일까? 이에 대해 고지도 전문가인 양보경 교수(성신여대)는 “지도제작자 두 사람 때문이다. 한 명은 프랑스 루이 16세의 명을 받고 동해를 탐험한 라 페로즈이고, 다른 한 명은 독일 출신 네덜란드 학자 시볼트이다”라고 말했다.
1787년 제주도를 시작으로 울릉도를 거쳐 캄차카 반도까지 탐험한 라 페로즈는 본국에 탐사 자료를 넘겼다. 그 자료를 바탕으로 1797년 항해기와 항해도첩이 제작되었다. 이때 항해기에는 한국해, 항해도첩에는 일본해로 동해가 표기되었는데 그 뒤 안타깝게도 항해도첩이 서양지도 제작의 전범이 되면서 일본해 표기가 널리 퍼지게 되었던 것이다. 나가사키에서 20여 년간 살았던 시볼트는 식물 생태 등 자연과학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인물로 일본 난학(네덜란드학)의 시조가 되었다. 그는 고국으로 돌아갈 때 다카하시 가게야스가 막부의 명을 받고 제작한 <일본변계약도>를 가져가 <NIPPON>이라는 책을 냈다. 여기에 동해가 일본해라고 표기됨으로써 일본해 표기가 보편화되었다. 더 안타까운 점은 원본에 ‘조선해’라고 표기되어 있던 것을 시볼트가 임의로 변경했다는 사실이다. 이 두 가지 사건을 거치면서 일본해 표기가 서양에서 일반화되었다.
이제 동해 표기는 우리의 과제가 되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해 표기는 세계적으로 일반화되었다. 2008년 성신여대 대학원 최미선씨가 발표한 석사학위 논문에 따르면, 세계 주요 100대 사이트는 동해를 주로 일본해로 표기하고 있다. 표기 현황을 보면 일본해가 41곳, 병기 3곳(동해 우선 병기 1곳, 일본해 우선 병기 2곳), 복합 표기 10곳, 별다른 표기가 없는 곳이 46곳에 이른다.
동해 표기와 관련해서 일본이 우리 쪽 지도를 바탕으로 반박하는 것처럼 일본 고지도를 통해 일본 측 주장을 반박할 수 있다. 일본 막부의 명을 받고 지도 제작 관료인 다카하시 가게야스가 제작한 <신정만국전도>(1810년)를 비롯해 주요 지도에 조선해라는 표기가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독도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으로 귀화한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역시 일본 지도에 독도가 제대로 표기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바탕으로 독도 영유권 주장을 펼친다.
이것 외에는 동해 표기와 관련해 어떤 논리를 펼 수 있을까? 김혜정 관장은 세계 지도상의 바다 명칭 표기 사례를 중심으로 그 답을 제시한다. 일단 세계적으로는 대륙 중심 표기가 일반적이다. 그래서 러시아 오호츠크 동쪽 바다는 오호츠크해로, 중국 동쪽 바다는 오키나와 서쪽에 있지만 동지나해로, 중국 남쪽 바다는 필리핀 북쪽에 있지만 남지나해로 부른다. 이것이 섬나라 일본보다 대륙인 한국 쪽 이름을 우선해야 하는 이유다.
일본이 ‘동해’ 표기를 반대하는 논리 중 하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가 어떻게 바다 이름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해’처럼 방위를 표기한 모델이 없지는 않다. 이 지역은 영국의 동쪽 바다지만 유럽 대륙의 북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북해라고 불린다. 아시아 대륙 동쪽에 있는 ‘동해’ 역시 비슷한 논리를 전개할 수 있다. 실제로 서구에서 동해를 ‘동양해’로 불렀던 것은 타르타르(만주)의 동쪽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한국해와 일본해를 병기해야 한다는 주장은 노르웨이와 그린란드가 전범이 될 수 있다. 노르웨이와 그린란드는 각각 자국 쪽 바다를 노르웨이해와 그린란드해로 표기하고 있고 세계적으로도 이렇게 통용된다. 그밖에 바다의 색깔 등 특성을 따 ‘흑해’나 ‘황해’처럼 푸른 동해를 ‘청해’로 부르자는 주장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동해가 불리하지만은 않다. 여기에 식민지 경험이 있는 지역, 특히 아시아권 지명에 대한 세계적 추세는 외래 지명(exonym)보다는 고유 지명(endonym)을 국제 표준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양보경 교수는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인도 봄베이가 뭄바이로 바뀐 것이다. 우리도 동해의 영문 표기를 ‘Donghae’로 해서 고유명사화하고, 이를 국제 표준으로 삼자는 주장을 펼칠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