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 2011년 6월호에 실린 김용택 시인이 쓴 "노을 아래 가난했던 당신"을 옮겨 봅니다. 개인적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아름다운 글이었습니다. 요즘처럼 풍요로운 세상에 어찌보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일 수 있겠지만, 부족하던 시절 날 생각해주는 친구, 사람간의 '정'이 있던 시절이 그리운건 아이러니 하지만, 결핍의 기억과 결핍의 공유, 결핍의 나눔이 삶의 자양분이 되어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건 어쩔수 없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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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다닐 때 내 소원은 소풍날 반찬으로 멸치 볶음을 가져가는 것이었다. 고추장에다가 빨갛게 볶은 멸치나, 아니면 볶은 멸치에다 고춧가루를 섞은 양념을 넣어 버루린 멸치. 다른 아이들의 멸치 볶음을 보면 나는 기가 죽기도 하고 부럽기 그지없었다.

어쩌다가 한 번쯤 멸치 볶음을 얻어먹을 때의 그 맛은 참말로 대단했다. 그러나 나는 초등학교 6년 동안 소풍 때나 보통 때 도시락 반찬으로 멸치 볶음을 가져간 적이 없었다. 소풍 갈 때의 반찬은 늘 볶은 소금이었다. 소금을 볶은 다음 깨를 넣고 고춧가루를 치고 참기름을 조금 넣으면 맛있는 깨소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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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6년 동안 자취를 했기 때문에 반찬은 늘 김치뿐이었다. 김치 이외의 반찬을 나는 먹어본 적이 없었다. 어쩌다가 큰아버님이나 아버님께서 순창 장에 오셔서 국밥을 사먹은 적이 있고, 친구 집에 가서 밥을 먹을 때 외엔 한 번도 김치로부터 해방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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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디신 김치, 궁댕내가 풍풍 나는 신 김치, 그 김치로 6년을 살았어도 나는 지금 신 김치를 새로 담은 김치보다 좋아한다. 어쩔 땐 김치마저 모자라 시디신 김치 국물을 아껴가며 몇 끼 밥을 때웠던 적이 많았다. 그렇다고 새 김치가 맛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까지 사는 동안 나는 한 번도 맛이 없는 음식을 먹어보지 않았다. 무엇이든지 먹는 것은 지금도 다 맛이 있다. 어떤 음식이 맛이 있고 어떤 음식이 맛이 없는지 나는 모른다. 반찬 투정이니 뭐니 하는 것을, 나는 말로만 들었다. 어떻게 먹는 음식이 맛이 있고 없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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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6년 동안 차비와 등록금 이외의 그 어떤 용돈도 써본 기억이 없다. 군것질을 할 수 없는 나의 유일한 군것질 거리는 늘 생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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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김치로만 중고등학교 6년을 살았으니, 소풍을 가도 나는 한 번도 멸치 볶음은커녕 도시락 한번 제대로 싸가지고 소풍을 가본 적이 없다. 소풍, 하면 나는 잊을 수 없는 친구 둘이 생각난다. 시계방을 하던 백운행이란 친구와 문종해라는 친구이다. 소풍날이면 그냥 밥만 덜렁 싸가지고 가는 나를 위해 이 친구들이 내 도시락 반찬까지 많이 싸가지고 왔다. 점심시간이 되면 우리들은 같이 앉아서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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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가 치는 추운 겨울, 깔아 놓은 이불 속에 발을 넣으면 냉랭하다 못해 발이 시려오던 내 자취방에 앉을 자리가 없어 멍하니 서 있을 때 이따금 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연탄불로 따뜻해진 아랫목 이불 속에 내 손발을 넣어 몸을 녹이게 하고 밥을 주던 종해와 종해의 어머니. 어머님은 아마 돌아가셨겠지만 종해는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6년, 그리고 중고등학교 6년 동안 소풍 때 그렇게도 싸가고 싶었던 멸치 볶음을  끝내 한 번도 싸가지 못하고 나는 그만 졸업을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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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는 당신도 딸랑거리는 빈 도시락 통 허리에 질끈 동여매고 해 저문 강 길을 가 보았을 것이다. 그 아름답던 노을 아래 가난했던 당신.
나는 멸치에 대한 글을 자주 썼다. 오늘도 또 쓰고 말았다.
  

ps : 여러분 과연 어떤 '음식' 어떤 '친구'가  떠오르나요? 오늘 그 '음식'을 그 '친구'와 함께 먹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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