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하나님께 원망부터 시작하십시오

 

전창수 지음

 

 

많은 목회자들이 하나님께 원망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하십니다. 물론,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말을 하는 목회자분들은 성도들과의 소통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힘듭니다. 힘들 때 사람들은 기댈 곳을 찾습니다. 그리고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이렇게 불평을 늘어놓다 보면, 사람들은 마음이 편안해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불평을 늘어놓을 때가 마땅치는 않습니다. 사람에게 하는 불평은 사람을 불편하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불평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 하나님께 하셔야 합니다. 믿음의 시작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예전에 저는 어떤 사람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투정을 해도 다 받아주시는 하나님이라서 편하다고. 그 말이 제겐 믿음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제가 어렵거나 힘들 때마다 하나님께 불평을 늘어놓았고 원망을 하기도 했습니다. 실컷 불평하고 원망하면 마음이 편안해져서 다시 살아갈 용기가 생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믿음은 조금씩 자랐습니다. 저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께 불평을 늘어놓는 것부터 시작하였습니다.

 

내가 불평하는 것, 내가 원망하는 것을 받아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에게 불평하는 것은 사람을 불편하게 할 뿐입니다. 하나님께 기대고 하나님께 불평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십시오.

 

하나님은 이렇게 기대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나에게 이렇게 위로하십니다. 그러냐, 내게 기대라. 그리고 내게 불평해라. 나를 원망해라. 너의 맘 내가 다 안다. 그러니 사람에게 그러지 말고 내게 하라. 그러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원망부터 시작하십시오. 그렇게 믿음의 크기를 키워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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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예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전창수 기도

 

 

 

1. 나를 위한 기도

 

하나님, 저의 앞길에 어려움 없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나님, 제가 사는 데에 문제 없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나님, 제가 앞으로 무엇을 하든, 저를 지켜주세요.

하나님, 저의 삶이 문제 없을 수 있도록 항상 저를 보아주세요.

 

 

 

2. 신앙을 위한 기도

 

하나님, 제가 하는 일이 맞는지, 확인시켜 주세요

그러나 하나님, 이 모든 게 하나님 뜻에 맞게 해 주세요

하나님께서 제 앞길을 책임져 주세요.

 

 

 

3. 예수님의 사랑을 위한 기도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져서 예수님의 사랑이 내 안에 가득차게 도와주세요

저는 할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도와주시면 할 수 있습니다.

제 안에 사랑이 들어차서, 그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도와주세요.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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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자 목사, 전도사] 의 자세

 

전창수 지음

 

 

예전에 어떤 교회에서 청소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같은 성도들끼리 하는 청소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거기에 전도사나 목사들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장로님이나 권사님이 다른 시간에 청소했었는지 안 했었는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자원봉사를 하라고 성도들에게는 강조하면서 정작 청소가은 기본적인 일조차도 하지 않는 목사, 전도사를 과연 사역자로서의 자세를 갖췄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정작, 성도들에게는 이것저것 다 일만 시키고 정작 자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을 리더라 할 수 없는 것처럼, 사역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역자들은 성도들에게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하는 자리입니다. 교회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나 전도사가 먼저 모범을 보인 후에, 설교를 해야 사람들이 그 설교에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됩니다.

 

목사나 전도사의 자리는 사람들을 이끄는 자리입니다. 사람들을 이끈다는 것은 먼저 모범을 보이고 솔선수범을 하는 자리입니다. 리더가 먼저 모범을 보이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 리더를 따르지 않습니다.

 

리더의 자리에 서 있다 보면,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을 기회가 있습니다. 목사나 전도사가 먼저 솔선수범을 하지 않을 때, 목사는 사람들과 소통을 하기 어렵습니다. 이랬을 때, 설교는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진짜 설교란,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사람들과 나눈 대화 속에서 찾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설교, 그저,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설교,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조롱하거나 비아냥거리는 설교는 결코 좋은 설교가 아닙니다.

 

앞에서 목회자들은 나오지 않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그때 청소하기가 싫었습니다. 왜냐하면, 목회자가 하지 않는 청소를 내가 왜 하느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저는 초신자였고, 교회를 제대로 다닌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목회자들의 이런 행동은 결국, 자신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들 목사, 전도사들 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입니까? 성도들을 죽는 그날까지 예수님과 동행할 수 있도록 섬기는 것입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설교만 준비하고 설교만 하고 있다면, 그 설교자를 믿을 수는 없습니다.

 

그냥, 학습으로서만 얻은 지식으로서의 설교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합니다. 몸소 체험하고 몸소 경험하고 섬김을 실천하는 사람만이 진짜 사람들이 공감하는 설교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설교를 하기 전에 먼저 사람들과 소통하고 섬김을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섬김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교회를 청소할 때 성도들과 같이 청소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섬김의 자세입니다. 정말, 실천하는 목회자가 되시고 싶으십니까? 정말,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목회자가 되고 싶으십니까?

 

사람들을 훈계의 대상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성도들에게서 배우려는 자세로 심김의 자세로 사역을 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 말은 일반성도가 사역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는 정말로 일반성도의 답답함을 토로한 메시지입니다. 그르므로, 진짜 섬기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목회를 내려놓고 일반성도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목회는 섬기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섬기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가는 삶은 섬기는 삶입니다. 이걸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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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의 마음 여유 글쓰기] 오늘은

 

 

전창수

 

예배를 보는 여유로운 시간들. 그 시간들은 나를 즐겁게 한다. 때로는 넘어지는 산이 있더라도, 그 산을 뒤집을 수 있는 힘은 예배를 보는 마음에 있다. 그렇게 살아가는 시간이다. 예배를 볼 수 있는 행복, 매일의 예배를 쌓아가는 행복, 그 행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평일에는 TV로 예배를 보기로 한다. 새벽기도를 하고 찬양을 하고 예배를 보는 즐거움, 그리고 일요일에는 교회에서 예배를 보는 즐거움. 그 즐거움들을 놓친다면, 인생이 별다른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예배가 나를 살맛나게 한다. 예배가 시작이다.

 

그렇게 예배를 보면서 신문을 보기도 하고, 글도 쓰기도 하고, 노래도 듣기도 하고, 또 드라마나 영화, 다큐프로그램이나 경제TV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볼 때, 즐겁고 신이 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하더라도, 예배를 보지 않는다면, 예배를 보지 못한다면, 신이 나지 않는다.

 

오늘도 어떤 예배를 볼 수 있을까,를 기대해 본다. 기대하는 삶 속에 행복이 있다. 이 행복의 날이 인생 끝날까지 이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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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이유]


 


전창수 지음


 


 


많은 목사님들의 설교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라”는 설교를 많이 합니다. 즉, 사람을 지으신 목적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삶이라고 합니다. 물론,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진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은 아닙니다.


 


초신자들에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기 위해 사람을 지으셨다고 한다면, 당장 교회를 떠나가 하나님에 대한 불평을 돌릴 것입니다. 뭣하러 사람을 만들어가지고, 이 고생을 시키면서, 자기한테 영광을 돌리라고 강요하냐고. 왜냐하면, 초신자들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라고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 감사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사는 것이 너무 좋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삶을 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을 나누어주고 싶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 자체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줄 곳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기 위하여, 그래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만물을 지으신 후, 마지막 날에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시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그래서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감사해서,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셨으면 하는 것이지,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삶을 살라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감사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므로, 그래서 그 삶이 너무 좋아서, 우리 스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그 삶이 진짜 삶인 것은 맞지만, 거기에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 없다면, 사람은 진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니다. 한없이 약한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예수님의 마음을 보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의 마음을 느껴 보십시오. 그것이 먼저입니다. 여러분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신학] 우리는 죄를 짓고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원죄는 없습니다)


전창수 지음


 


최초의 사람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생명이 탄생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담의 곁에 이브를 두셨습니다. 이 모두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동산에서 먹을 것을 마음껏 먹으라 하셨지만, 생명나무의 실과만은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뱀의 꾀임에 빠진 이브는 그 실과를 먹었고, 이브의 유혹에 아담도 그 실과를 먹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지 말란 행동을 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된 그들이 영생을 할까 하여, 에덴동산에서 내쫓으셨습니다.


 


선악과를 먹었기에,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된 아담과 이브는 더 이상 순수한 사람이 아니기에, 에덴 동산에서 온갖 죄를 지을 것을 걱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영원토록 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를 내쫓으셨고, 죽음이란 선물을 주셨습니다. 즉,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영원히 지옥에서 살 수밖에 없는 그들을, 에덴동산에 쫓아내어서 “죽음”을 선물함으로서 사람을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죄가 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억울해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지 않게 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는 말합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를 짓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태어납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이란 곳에서 아담과 이브를 쫓아낼 때, 그들에게 죄를 짊어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죽으면 천국에서 살 수 있게 하려고 내보내신 것입니다. 


 


이 글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태어나는 것이지, 태어날 때 죄를 갖고 태어나는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학을 연구하는 여러분! 원죄에 초점을 맞추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은 축복입니다. 축복된 삶에 초점을 맞추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의 나라는 정말로 바로 세워질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축복을 바랍니다.


 







[신학]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전창수 지음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그분의 사랑을 보여주셨죠. 하나님은 자신이 지은 세상을 보고 한탄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분께서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죄은 지를 회개하셨습니다. 바로,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린 죄. 사람들에게 고난을 준 죄.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은 너무도 아프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할 방법이 어떤 것일까를 고민하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직접 사람이 되어서, 사람에게 준 고통을 스스로 겪으려고 내려오셨습니다. 그렇게 몸소 사람에게 고통을 주신 죄를 스스로 벌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고통을 받으신 이유는, 사람이 지은 죄를 대신 짊어진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하나님의 사랑이 먼저입니다. 하나님도 회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며 닮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인류애입니다.


 


모든 은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삶을 살아갑니다.


 





[신학] 사람이 죄를 지어서 받게 된 것은


 


전창수 지음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이 명령한 것을 듣지 않으셨기에, 죄가 들어간 아담과 이브를 그냥 두실 수는 없으셨습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이 아닙니다. 아담과 이브가 지은 죄로 인하여, 여자는 임신할 때에 아주 어렵게 임신을 하게 됩니다. 난자의 주기를 따져야 하고, 남자와 성관계를 할 때도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아무하고나 성관계를 해서도 되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는 고통이 있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하고 성관계를 할 때, 임신의 고통이 더해집니다. 즉, 여자는 “임신”이란 고통을 통해서 더 성숙해지며, 인생을 더 많이 알게 됩니다. 그렇게 여자는 세상에 대해서, 그리고 삶의 신비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에 있을 때는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무엇이든지 다 먹을 수 있었지만,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음으로서 이제는 “노동”이란 걸 해야 했습니다. 즉, 죄의 댓가는 “임신의 고통을 더하는 것”이고 “노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임신의 고통을 더하고 노동을 통해 사람들이 인생의 모든 것을 알게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일의 보람을 알고, 통해서 사람의 마음을 알고, 또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남자는 여자가 임신했을 때,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의 짠함을 느낍니다. 저렇게까지 하고 아이를 낳으려 하다니, 하면서 생명탄생의 경외함을 느낍니다. 여자는 이렇게까지 힘들지만, 내 아이니까, 반드시 낳아야 해, 라는 사명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아이를 갖고 나면 힘든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생명은 소중하니까, 내 아이니까, 그래서 꼭 낳고 싶으니까, 낳게 됩니다. 내 배 아파서 낳은 내 아이라서, 진짜 소중한 사람이니까, 아이를 낳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서 또 가족을 위해서 사람은 노동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때로는 내 자신을 위해서 노동을 하게 됩니다. 노동은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지요. 노동을 통해서 세상을 알게 되고, 자신의 삶을 알게 되고, 자신의 인생을 알게 됩니다. 


 


힘든 노동이지만, 힘든 노동을 통해서 인생의 보람을 느낍니다. 땀을 흘리고, 일을 하고, 또 수고해서 벌어가는 과정을 통해서 인생의 의미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댓가로 임신의 고통을 더하고 노동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벌을 주셨지만, 그 벌 뒤에는 더 큰 축복을 놓아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사람에게 주실 축복을 모두 준비해 놓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태어났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것을 명심할 때, 우리 인생이 정말로 의미있어집니다. 축복받은 여러분의 삶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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