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해도 괜찮아 -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확하게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동화 읽는 어른의 지역모임에서 <십시일反>이란 책을 만났다. 만화라기에 아무런 부담없이 펼쳐들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세상의 절반을 차지했음에도 남성에 비해 홀대받는 여성을 비롯해 지방대 출신자. 장애인, 동성애자...들을 이야기하는 책. ‘10인의 만화가가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여태까지 보던 만화와 사뭇 다른 내용과 전개. 그리 길지 않은 단편이 수록된 만화를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부대꼈다. 하지만 한편으론 속이 후련했다. 그래, 이런 생각, 나도 해봤는데...아마, 다른 사람도 했을거야. 소리내어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헌법의 풍경>, <불멸의 신성가족> 등 그간 법과 관련한 책을 출간해 온 저자는 이번에 인권을 가지고 우리 곁으로 왔다. 책은 ‘청소년’, ‘성소수자’, ‘여성과 폭력’, ‘장애인’, ‘노동자의 차별과 단결’, ‘병역거부’, ‘검열’, ‘인종차별’, ‘제노싸이드’ 모두 아홉 개의 장에 걸쳐 인권과 국제적인 문제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의 주제만 보면 왠지 골치 아프고 까다로운 내용일거란 생각이 들지만 실제 속 내용은 경쾌한 분위기로 전개된다. 인권과 경쾌함?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단어의 조합인데, 실제 그걸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의 모든 내용에 ‘영화’가 곁들여져 있어서이다. 우리 사회를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존재하는 각종 인권의 문제들을 그 자체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관련한, 혹은 확장하여 생각해볼 여지를 지닌 영화들을 함께 얘기함으로써 인권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청소년 인권을 다룬 1장 [네 멋대로 해라]의 예를 들어보면 저자는 자신의 딸의 예를 빌어 설명한다. 어느날 갑자기 부모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시작한 딸의 반항을 통해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동안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지랄 총량의 법칙’이란 것을 알게 된다. 그 후에는 딸이 아무리 이해할 수 없고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게 다 자신에게 주어진 ‘지랄’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 털어놓는다. 이런 이야기들을 저자는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영화 ‘날아라 펭귄’ ‘발레교습소’와 같은 작품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좋은 조건을 가진 아이들의 조기유학 성공담 때문에 수많은 평범한 아이들과 부모들이 병들어 가고 있다며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다. 여성의 인권, 여성과 폭력을 다룬 3장의 ‘빰따귀로 사랑 표현하기’도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강의하다 실수로 건넨 성차별적인 발언을 시작으로 저자는 우리 사회 문화전반적으로 얼마나 폭력이 만연해 있는지, 폭력의 위험에 여성이 얼마나 노출되어 있는지 짚어준다. 그 일례로 저자는 ‘빵따귀’ 때리는 걸 꼽으면서 이런 얘길 한다. ‘누군가 저에게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기회가 있다면, 먼저 최근 10년간 한국 드라마에서 따귀 때리는 장면만 모두 모아서 보여준 뒤 그 문제점을 지적해보고 싶습니다. 이 다큐멘터리의 초반 10분 동안은 그냥 아무 설명 없이 따귀 장면만 계속 보여주겠습니다. 짝, 짝, 짝, 짝……(97쪽)’




‘불편해도 괜찮아.’ 처음엔 책제목이 지닌 의미가 무얼까 궁금했다. 사회의 약자들, 그들이 받는 수많은 차별과 불합리한 대우를 접하면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부당하고 불편한 이야기는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고 또 그래야 한다는 것. 학교나 직장, 혹은 가정에서 불편한 환경이나 여건이 있으면 그것을 나아지도록 개선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인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와 내 가족, 이웃의 누군가, 혹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처한 부당한 환경은 모두가 함께 나서서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우리 사회도 앞으로 한걸음 발전할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책에 관한 책을 읽을 때 내가 읽지 못한 책을 만나면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하지만 앞으로 내가 만나야할 책을 알게 되어 반갑기도 한데 이 책에서도 그랬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드라마와 영화들. 내가 꼭 읽어봐야 할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08-09 0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W 2 : 세계와 나
MBC 'W' 제작팀 지음 / 삼성출판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었다. 시댁이라 잠자리가 바뀐 탓도 있다. 평소대로 잠이 올 때까지 책을 읽으면 좋으련만 불을 밝힐 수도 없었다. 자정을 넘기고 나서 할 수 없이 텔레비전을 켰다. 그리고 만났다. [W]를. 일찍 잠드는 시댁 식구와 한 방에서 곤히 잠든 가족들 깰까봐 소리를 완전히 줄이고 본 프로그램, 때문에 어떤 내용인지 자세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무엇을 전하려고 하는지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집을 떠난 어린 아이들에게 모진 학대와 폭력을 가하며 노예 부리듯이 하던 장면을 보며 순간 분노가 치솟았다. 먼 과거가 아닌 바로 지금, 지구의 반대편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실로 충격적이었다.




그날 이후 기회가 되면 [W]를 챙겨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리고 잊고 지냈는데 얼마전 [W]를 다시 만났다. 아니,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온전하게 시청한 적이 한번도 없으니 내겐 첫 만남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그런데 [W]가 벌써 방송 5주년을 맞았다고 한다. 최근 출간된 책도 두 번째라니. 놀랍고 또 반가웠다. 내가 모르고 있던 세상의 여러 모습들이 이렇게 많았나 싶어서 놀랐고 정말 보고 싶었던 프로그램을 책으로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




책은 프랑스 파리의 무인 자전거 대여 서비스인 ‘벨리브’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대기오염과 교통체증의 주범인 자동차의 사용을 줄이는 동시에 고유가 시대를 맞아 경제적인 교통수단으로 떠오른 자전거. 파리는 자전거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자전거 투어상품을 내어 놓았는데 이를 통해 숨 쉬는 도시, 친환경 도시 파리로의 탈바꿈을 계획하고 있었다. 또 가속화되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인도양의 보석’ 지상낙원으로 통하는 몰디브가 점점 가라앉고 있다는 사실을 전한다. 삶의 터전인 바다가 해수면이 높아짐에 따라 자신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 속에서 몰디브 사람들은 여러 가지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어서 결국 ‘집단 이주’를 할 수 밖에 없다는 몰디브 대통령의 얘기를 통해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가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지 느낄 수 있었다. 두 아이를 기르는 엄마여선지 아이들에 관한 내용이 눈에 띄었다. 가난 때문에 위험하고 가혹한 노동의 현장으로 내 몰리는 엘살바도르의 아이들. 가족 혹은 친구와 함께 즐겁게 뛰어놓아야 할 어린 아이들의 손에 쥐어진 담배와 약물중독.... 실로 가슴이 아팠다. 가난과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을 위해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구호의 손길을 보내지만 이곳의 아이들에게 전해지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이집트가 처한 식량위기 사태도 충격적이었다. 오랫동안 밀을 생산하고 빵을 주식으로 했던 이집트에서 식량의 자급자족이 원활하지 못해서 밀을 수입하고, 그런데도 빵을 구하지 못하다니. 그들의 모습에서 쌀이 남아돈다며 논을 갈아엎고 공장이나 아파트를 짓는 우리에게 언젠가 닥칠지도 모르는 암울한 미래가 보이는 듯해서 섬뜩했다.




<세계와 나 W2>. 책에는 19개의 이야기, 세계의 모습들이 담겨있다. 그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좋았다고 따질 수 없을 만큼 각각의 내용은 모두 인상적이었고 깊이 생각해봐야 할 여지를 남겼다. 세상을 또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와 내 가족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던 렌즈를 좀 더 넓게 확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 속에 속한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 내 주변, 혹은 더 멀리에서 벌어지는 일에도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 책장을 덮으며 갑자기 궁금해졌다. 여기의 내용들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어땠을까. 책으로 볼 때와 어떤 느낌이 들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 vs 역사 - 책이 만든 역사 역사가 만든 책
볼프강 헤를레스.클라우스-뤼디거 마이 지음, 배진아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역사.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기보다 무조건 암기하는 걸로 대신했던 기억 때문인지 역사는 왠지 어려운 학문이란 생각이 컸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불혹을 넘기고 보니 역사만큼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학문은 없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가깝게는 나 개인, 혹은 가족의 태어나고 성장하는 역사에서부터 일상 속에서 늘 접하는 수많은 물건들의 역사,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도시, 나라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역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책의 역사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책’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으며 어떤 것들이 ‘책’으로 남겨졌는지, 그 ‘책’들로 인해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으며 미래는 얼마나 달라지는지 알고 싶은 것 투성이거든요.




마침 이번에 제 궁금증을 풀어줄만한 책을 만났습니다. <책 VS 역사>. 제목이 정말 의미심장하지요? 책장을 넘기기 전에 한참 생각했습니다. 책과 역사에 관한 어떤 이야기가 담겼을까. 표지의 그림과 사진, 거기다 ‘책이 만든 역사, 역사가 만든 책’이라는 부제를 보면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지만 그래서 왠지 더 궁금해지네요.




‘책의 나비효과’.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 수도사들이 목숨을 잃는 이유가 됐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에 대한 이야기로 책은 출발합니다. 세계사에 있어 큰 사건의 중심에 존재했던 인물과 그의 책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짚은 저자는 ‘수많은 책이 의도하는 바는 그 책을 읽는 독자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는 것’이라며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치고 중요한 의미를 남긴 책 50권을 소개합니다.




책은 ‘고대 : 기억의 역사가 시작되다’에서 ‘중세: 중교를 위한 책에서 학문을 위한 책으로’, ‘근대: 세상을 정복한 책’, ‘현대: 생활매체로서의 책’으로 이어지지만 저자는 책의 순서에 상관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읽어도 무방합니다. 그래서 저도 마음이 가는대로, 보고 싶은 책을 먼저 읽었습니다. 제일 처음 소개된 [사자의 서]는 책 제목만 알고 있는 책인데요. 그 책이 역사상 최초의 책이자 사후 인간의 삶과 영원에 이르는 여행을 다룬 여행안내서라니! 뜻밖이었습니다. 고고학적 대사건(?)이라는 하인리히 슐리만의 트로이 발견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연결된다는 것과 [오디세이아]로 인해 영화 ‘스타 트랙’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대목도 흥미로웠습니다. 그뿐인가요?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하학 원론]. 이 책이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은 인쇄 부수를 기록한 책인데,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구조나 설계, 계산이 [기하학 원론]이 있기에 가능했다니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 이 외에도 인류 역사상 최고의 연애 이야기로 손꼽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롯해 황량한 외딴 섬에 난파되었다가 돌아오는 모험을 다룬 [로빈슨 크루소]와 독특하면서도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걸리버를 통해 당시 세계를 풍자했던 [걸리버 여행기] 등의 책에 대해서 작가와 줄거리, 그 책이 당시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려주는데요. 본문의 부분부분마다 해당 책의 내용이나 관련 이야기를 수록해놓고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제가 사랑하는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말괄량이 삐삐]와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었습니다. 주근깨 투성이 얼굴에 양갈래로 땋은 머리의 천방지축 소녀 삐삐. 어린 시절 텔레비전에서 본 삐삐를 보면서 왠지 후련한 기분이 들었는데요. 알고보니 [말괄량이 삐삐]를 통해 당시의 성 역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는군요. 대단하지요?




두툼한 책을 이리 왔다, 저리 갔다 뒤적이며 읽고 나서 생각해봅니다. 책이 만든 역사, 역사가 만든 책. 저자는 50권의 책을 소개했지만 난 그것보다 훨씬 많은 책, 더욱 길고 긴, 광대한 역사의 장면 장면을 지켜본 느낌입니다. 우리의 과거가 어떠했을까요? 현재의 모습은? 미래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그 모든 것이 책에 담겨 있다는 것. 그 속에 흐름이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케치 글쓰기 특강 - KBS방송문화연구소장이 총정리한 뉴스로 배우는 글쓰기
이준삼 지음 / 해냄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 나만을 위한 한 권의 책을 받았다. 국내의 모 온라인서점에서 작년 한 해 동안 100권의 책을 읽고 서평을 쓴 사람들 중에서 100명의 회원을 선정해서 기념서평집을 제작했는데 거기에 나도 포함되었다. 해당 온라인서점으로부터 작년에 내가 올린 200개가 넘는 서평 중에 100개를 뽑아달라는 메일을 받고 뛸 듯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에이, 그냥 다 해주지. 뭘 100개만 뽑으라는 거야. 귀찮게스리.’했다. 하지만 막상 100개의 서평을 고르려니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예전에 내가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니 왜 그리도 뒤죽박죽 엉망이던지. 너무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서툰 글도 부지기수여서 이 중에서 과연 100개를 추릴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책을 읽고 느낌과 감상을 글로 남기기 시작한 게 벌써 몇 년 째인데, 내 글은 왜 발전이 없지? 나의 글쓰기에 부족한 점은 뭔지 알고 싶었다.




<스케치 글쓰기 특강>을 선택하게 된 데엔 나의 글을 지금보다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가슴을 울리는 글, 마음을 사로잡는 글’이란 표지의 문구처럼 나도 다른 이의 가슴을 울리고 마음을 사로잡는 글을 쓰고 싶었다. 나의 꿈이었다.




책은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스케치’가 무엇이고 ‘스케치 문장’이란 어떤 글인지 알려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스케치가 어떤 사람이나, 동물, 사물의 특징을 단순하게 쓱쓱 선을 긋거나 명암으로 나타내는 표현법이듯이 스케치 문장이란 어떤 모습이나 현장을 그림처럼 묘사하는 글이라고 한다. 단,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저 있는 그대로, 보이는 대로만 써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각각의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 정경, 사람들의 느낌을 마치 카메라로 사진을 찍듯 순간 포착해서 글로 표현할 수 있어야 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스케치 기사, 문장을 잘 쓰는 방법으로 세 가지를 알려준다. ‘좋은 글을 외우고 베껴 쓸 것’, ‘개념을 정리하는 훈련을 할 것’, ‘언어의 용법을 넓힐 것’. 이런 것들을 평소 뉴스나 신문을 통해 자주 접하는 평범하고 상투적인 문장과 분위기와 느낌이 잘 살아있는 스케치 문장과 비교해서 설명해놓고 있어서 스케치 문장이 어떤 글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 뉴스에서 자주 등장하는 스케치 기사의 유형을 휴일, 성묘, 귀성, 장례, 명절 등으로 나누어 각각의 경우마다 범하기 쉬운 실수나 식상한 표현을 소개하고 어떻게 수정하면 좋을지 알려준다.




초반엔 책을 읽으면서 ‘그래, 바로 이거였어.’ 저절로 무릎이 쳐졌다. 하지만 저자가 짚어주는 상투적인 문장, 피해야할 문장을 보면서 왠지 위축되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썼던 글이 어떤 글이었는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았다. 가슴으로 쓰는 글이 제대로 된 스케치 문장이라고 했는데 난 눈으로 쓰는 글에 매달려왔다는 걸, 내가 추구하는 글을 쓰기까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참으로 길고 험난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늦은 건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저자가 알려준 ‘추억 더듬기’ 훈련을 조금씩 해나가면 언젠가는 나도 가슴을 울리고 마음을 사로잡는 글을 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분명 희망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묘 18현 - 조선 선비의 거울
신봉승 지음 / 청아출판사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는 조선시대 당시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이 자리하고 있는데, 바로 그곳에 ‘문묘’가 있다. 조선시대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의 제사와 유학교육을 담당하던 곳이었던 문묘는 교육을 위한 공간인 명륜당과 제사를 위한 공간인 대성전으로 나뉘는데 특히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한 그의 제자와 우리나라 명현 18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문묘 18현>은 바로 그 성균관의 문묘, 대성전에 배향된 18명의 명현에 관해 이야기한다. 신라의 명현인 최치원과 설총, 고려의 석학 안향과 정몽주, 그리고 조선시대의 명현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김인후, 성혼, 이이, 조헌, 송시열, 송준길, 김장생, 김집, 박세채. 해동 18현으로 추앙되는 18명의 명현들. 학창시절 수업을 통해 이름만으로도 그의 업적과 일생이 어떠하였는지 선명하게 떠오르는 이가 있는가하면 낯선 이도 있다. 그런데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사약으로 죽어 천 년을 산다’는 표지의 문구였다. 그동안 난 ‘사약’이 역모 같은 대역죄인에게 내려지는 처벌의 하나로 알고 있었는데 사약으로 죽어 오히려 천 년을 산다니. 그들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그의 삶이 갑자기 더 궁금해졌다.




기존의 유학과는 달리 우주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탐구하는데 주력한 성리학은 고려말에 전래되었는데 조선 왕조 건국 후 시대의 이념으로 성리학이 자리잡게 된다. 이렇게 조선의 성리학은 인간의 심성을 연구하여 혼란한 시대에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가정을 평안히 하는데 주력했는데 당시 외래사상인 성리학을 조선에 맞는 성리학으로 확립할 수 있었던 것은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명현들에 의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생동안 경건하고 겸허한 자세로 올곧은 행동을 하며 옳지 않은 일에는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더라도 왕에게 직언 올리기를 서슴지 않았던 이들. 조선을 사대부의 나라라 일컫는 이유는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문묘 18현, 조선 선비의 거울>은 18명의 명현들을 4장에 나누어 소개하고 있는데 자신이 배운 바를 몸소 실천에 옮기기를 한 치도 어긋남 없이 행했던 인물 김굉필을 시작으로 문묘에 오른 18명의 인물들의 출생과 배경을 비롯해 성장과정, 학문과 정계에 들고 난 후의 일들을 알려주는데 본문 곳곳에 그들이 임금에게 올린 상소문이 수록되어 있다. 길이가 긴 시를 보듯 아름답고 부드럽게 혹은 자식을 꾸짖듯 매섭고 간곡하게 써 내려간 상소문을 보면서 당시 그들의 심정을 헤아려보게 됐다. 이 글이, 직언으로 인해 어쩌면 자신의 목숨이 내놓아야 하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올곧은 선비로서의 자세를 굽히지 않았다. 특히 이언적의 상세하고 긴 상소문은 현대의 우리에게도 전하는 바가 크다. 저자의 말대로 대통령에게 ‘밑줄을 그어가면서 읽어야 하고, 이해한 대목은 실천에 옮겨야만 나라의 형편이 편다’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역사서적을 꾸준히 읽었다곤 하지만 아직도 우리의 역사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다행히 책의 내용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18명 명현들의 삶과 사상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다. 소개해야할 인물에 비해 책의 분량이 적은 게 아닐까 싶었다. 책을 읽고 나서 궁금해졌다. 이 18명의 명현들의 얘기에 당시 임금들이 모두 귀를 기울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의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지금의 우리에겐 이렇게 국가의 최고 권력자에게 강건하고 강직한 직언을 올릴 수 있는 인물, 올곧은 삶을 최고의 명예로 여기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조선의 역사를 통해 오늘의 우리 시대를 돌아볼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