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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도 괜찮아 -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0년 7월
평점 :
정확하게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동화 읽는 어른의 지역모임에서 <십시일反>이란 책을 만났다. 만화라기에 아무런 부담없이 펼쳐들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세상의 절반을 차지했음에도 남성에 비해 홀대받는 여성을 비롯해 지방대 출신자. 장애인, 동성애자...들을 이야기하는 책. ‘10인의 만화가가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여태까지 보던 만화와 사뭇 다른 내용과 전개. 그리 길지 않은 단편이 수록된 만화를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부대꼈다. 하지만 한편으론 속이 후련했다. 그래, 이런 생각, 나도 해봤는데...아마, 다른 사람도 했을거야. 소리내어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헌법의 풍경>, <불멸의 신성가족> 등 그간 법과 관련한 책을 출간해 온 저자는 이번에 인권을 가지고 우리 곁으로 왔다. 책은 ‘청소년’, ‘성소수자’, ‘여성과 폭력’, ‘장애인’, ‘노동자의 차별과 단결’, ‘병역거부’, ‘검열’, ‘인종차별’, ‘제노싸이드’ 모두 아홉 개의 장에 걸쳐 인권과 국제적인 문제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의 주제만 보면 왠지 골치 아프고 까다로운 내용일거란 생각이 들지만 실제 속 내용은 경쾌한 분위기로 전개된다. 인권과 경쾌함?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단어의 조합인데, 실제 그걸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의 모든 내용에 ‘영화’가 곁들여져 있어서이다. 우리 사회를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존재하는 각종 인권의 문제들을 그 자체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관련한, 혹은 확장하여 생각해볼 여지를 지닌 영화들을 함께 얘기함으로써 인권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청소년 인권을 다룬 1장 [네 멋대로 해라]의 예를 들어보면 저자는 자신의 딸의 예를 빌어 설명한다. 어느날 갑자기 부모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시작한 딸의 반항을 통해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동안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지랄 총량의 법칙’이란 것을 알게 된다. 그 후에는 딸이 아무리 이해할 수 없고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게 다 자신에게 주어진 ‘지랄’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 털어놓는다. 이런 이야기들을 저자는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영화 ‘날아라 펭귄’ ‘발레교습소’와 같은 작품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좋은 조건을 가진 아이들의 조기유학 성공담 때문에 수많은 평범한 아이들과 부모들이 병들어 가고 있다며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다. 여성의 인권, 여성과 폭력을 다룬 3장의 ‘빰따귀로 사랑 표현하기’도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강의하다 실수로 건넨 성차별적인 발언을 시작으로 저자는 우리 사회 문화전반적으로 얼마나 폭력이 만연해 있는지, 폭력의 위험에 여성이 얼마나 노출되어 있는지 짚어준다. 그 일례로 저자는 ‘빵따귀’ 때리는 걸 꼽으면서 이런 얘길 한다. ‘누군가 저에게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기회가 있다면, 먼저 최근 10년간 한국 드라마에서 따귀 때리는 장면만 모두 모아서 보여준 뒤 그 문제점을 지적해보고 싶습니다. 이 다큐멘터리의 초반 10분 동안은 그냥 아무 설명 없이 따귀 장면만 계속 보여주겠습니다. 짝, 짝, 짝, 짝……(97쪽)’
‘불편해도 괜찮아.’ 처음엔 책제목이 지닌 의미가 무얼까 궁금했다. 사회의 약자들, 그들이 받는 수많은 차별과 불합리한 대우를 접하면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부당하고 불편한 이야기는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고 또 그래야 한다는 것. 학교나 직장, 혹은 가정에서 불편한 환경이나 여건이 있으면 그것을 나아지도록 개선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인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와 내 가족, 이웃의 누군가, 혹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처한 부당한 환경은 모두가 함께 나서서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우리 사회도 앞으로 한걸음 발전할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책에 관한 책을 읽을 때 내가 읽지 못한 책을 만나면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하지만 앞으로 내가 만나야할 책을 알게 되어 반갑기도 한데 이 책에서도 그랬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드라마와 영화들. 내가 꼭 읽어봐야 할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