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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트 - 인간의 행동 속에 숨겨진 법칙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지음, 강병남.김명남 옮김 / 동아시아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우연히 [Numbers]란 미국드라마를 본 적이 있습니다. 수학천재인 동생이 FBI 수사관인 형을 도와서 사소한 절도범에서부터 크게는 테러범을 추적하는 등 수많은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의 드라마인데요. 처음 볼 땐 왠지 과장되고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아무리 수학이 논리적이고 다른 학문의 기초가 되는 학문이라 하더라도 미궁에 빠진 사건의 실마리를 풀고 범인을 추적하는데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근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국가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행동과 성향들을 수학천재인 동생이 분석과 추론, 예측의 단계를 거치는 수학적인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데요. 아무리 난해한 사건도 수학을 이용해서 도전적인 자세로 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난데없이 웬 드라마 얘기?’싶지만 이번에 <버스트>란 책을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올랐던 게 바로 그 드라마였습니다. 왜냐면 이 책 <버스트>의 부제이자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바로 드라마 속 수학천재가 역할이자 임무인 ‘인간의 행동 속에 숨겨진 법칙’이었거든요.
책은 우리 인간의 행동이 얼마나 예측가능한지 하산이라는 사람의 일화를 통해 알려주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하산은 설치예술가라는 직업과 뉴욕 억양을 쓰는 엄연한 미국인이었지만 9.11 테러가 벌어진 이후였기에 FBI는 ‘하산’이란 이름과 짙은 피부색의 외모, 잦은 해외방문에 초점을 맞추고 그가 틀림없는 무슬림, 그것도 폭탄물을 소지한 테러리스트라고 짐작해버립니다. 터무니없는 오해 때문에 오랫동안 FBI로부터 심문을 받은 하산은 이후 자신의 모든 행적을 낱낱이 FBI에 보고하는가 하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만인에게 공개하기에 이릅니다. 또 고든 벨과 데브 로이도 하산처럼 자신의 모든 행동과 일상을 사진과 데이터로 저장해두는데요. 이들의 일상과 행동들이 기록된 데이터베이스가 물리학자에서부터 컴퓨터 과학자, 수학자, 심리학자 등 여러 전문가들에 의해서 연구 분석되었구요. 더 나아가 우리의 행동 대부분이 자연계에서처럼 어떤 법칙, 패턴이 있어서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거지요. 다만 어떤 법칙에도 예외가 존재하듯이 인간의 행동도 마찬가지인데요. 하산처럼 인간 행동의 규칙적인 패턴을 따르지 않는 경우를 책에선 ‘예욋값(아웃라이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책의 제목이기도 한 'Bursts'는 과연 무슨 의미일까요? 사전을 찾아보면 ‘터지다’, ‘파열하다’라고 되어 있는데요. 저자는 우리 인간의 행동을 분석할 때 중요도에 따라 큰 사건과 작은 사건으로 이뤄져있는데요. 어느 시점에 이르러 갑자기 어떤 사건들이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폭발성을 띄는데 이것이 우리 인간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저희 친정엄마께서 간혹 이런 말씀을 하세요. “오늘은 하루종~일 쌍나팔이 분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요, 하루 종일 찾는 사람도 전화도 없어서 심심한 날이 있는가하면 또 어떤 날은 가족이나 친구들간에 중요한 모임이나 행사나 여러 개 겹쳐서 생기는 바람에 아침부터 정신없이 여기저기 찾아다녀야 할 때. 그래서 그 여러 가지 일 중에서 꼭 가야되는 곳은 가고, 다른 곳에는 못가는 일이 벌어지는 경우가 생기는데요. 저희 엄마가 ‘쌍나팔 분다’고 하는 이런 현상을 저자는 어느날 갑자기, 무작위로 일어나는 것이 아닐뿐더러 이것 역시 우리 인간의 행동에 나타나는 패턴이고 법칙이라는 겁니다. 또 바로 그럴 때 우리에게서 ‘우선순위 결정’이라는 행동이 나타난다고 하는데요. 저자는 책에서 그런 패턴들을 볼 수 있는 여러 경우를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증명해보이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소설인지, 과학서적인지 간혹 분간하기 어려웠는데요. 그건 이 책이 과학과 역사 두 가지 내용 모두를 담고 있어서일거란 생각이 듭니다. 16세기 당시 헝가리의 십자군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죄르지 세케이가 십자군을 이끌고 원정길에 나섰다가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역사적인 사건 앞에서 그가 어떻게 대응했으며 그로 인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알려주는데요. 이는 현대가 아닌 16세기에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려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라는 영화가 생각납니다. 우연히 만난 친구가 자신의 가방에 몰래 넣어둔 디스켓 때문에 사무실에서 해고당하고 모든 금융거래도 중지된 채 순식간에 국가 안보국으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린 주인공(윌 스미스), 그가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국가안보국과 싸워나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였는데요. 그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했던 것은 ‘한 나라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감청과 도청 행위를 하는 것이 법적으로 타당한가?’하는 거였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거리 곳곳에 설치된 cc-tv만 봐도 저것이 우리 시민을 위한 도구인지, 우리를 감시하고 언젠가 위협하기 위한 공포의 도구인지 헛갈리곤 했는데요.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도 사실 충격적이었습니다. 제가 무심결에 한 행동들,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을 읽고 답장을 쓰고, 여러 사이트를 검색하고, 온라인으로 주문할 때, 누군가와 전화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 등의 모든 일상적인 행동이 전부 데이터베이스로 저장, 분석의 과정을 거쳐 제가 어떤 행동의 패턴을 가지고 있으며 미래의 제가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니...실로 놀랍습니다. 동전의 뒷면처럼 과학의 이면을 본 것 같아 섬뜩하지만 그래도 볼 가치는 충분한 책이었어요. 저자의 다른 책 <링크>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