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vs 역사 - 책이 만든 역사 역사가 만든 책
볼프강 헤를레스.클라우스-뤼디거 마이 지음, 배진아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역사.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기보다 무조건 암기하는 걸로 대신했던 기억 때문인지 역사는 왠지 어려운 학문이란 생각이 컸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불혹을 넘기고 보니 역사만큼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학문은 없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가깝게는 나 개인, 혹은 가족의 태어나고 성장하는 역사에서부터 일상 속에서 늘 접하는 수많은 물건들의 역사,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도시, 나라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역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책의 역사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책’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으며 어떤 것들이 ‘책’으로 남겨졌는지, 그 ‘책’들로 인해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으며 미래는 얼마나 달라지는지 알고 싶은 것 투성이거든요.




마침 이번에 제 궁금증을 풀어줄만한 책을 만났습니다. <책 VS 역사>. 제목이 정말 의미심장하지요? 책장을 넘기기 전에 한참 생각했습니다. 책과 역사에 관한 어떤 이야기가 담겼을까. 표지의 그림과 사진, 거기다 ‘책이 만든 역사, 역사가 만든 책’이라는 부제를 보면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지만 그래서 왠지 더 궁금해지네요.




‘책의 나비효과’.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 수도사들이 목숨을 잃는 이유가 됐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에 대한 이야기로 책은 출발합니다. 세계사에 있어 큰 사건의 중심에 존재했던 인물과 그의 책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짚은 저자는 ‘수많은 책이 의도하는 바는 그 책을 읽는 독자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는 것’이라며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치고 중요한 의미를 남긴 책 50권을 소개합니다.




책은 ‘고대 : 기억의 역사가 시작되다’에서 ‘중세: 중교를 위한 책에서 학문을 위한 책으로’, ‘근대: 세상을 정복한 책’, ‘현대: 생활매체로서의 책’으로 이어지지만 저자는 책의 순서에 상관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읽어도 무방합니다. 그래서 저도 마음이 가는대로, 보고 싶은 책을 먼저 읽었습니다. 제일 처음 소개된 [사자의 서]는 책 제목만 알고 있는 책인데요. 그 책이 역사상 최초의 책이자 사후 인간의 삶과 영원에 이르는 여행을 다룬 여행안내서라니! 뜻밖이었습니다. 고고학적 대사건(?)이라는 하인리히 슐리만의 트로이 발견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연결된다는 것과 [오디세이아]로 인해 영화 ‘스타 트랙’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대목도 흥미로웠습니다. 그뿐인가요?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하학 원론]. 이 책이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은 인쇄 부수를 기록한 책인데,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구조나 설계, 계산이 [기하학 원론]이 있기에 가능했다니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 이 외에도 인류 역사상 최고의 연애 이야기로 손꼽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롯해 황량한 외딴 섬에 난파되었다가 돌아오는 모험을 다룬 [로빈슨 크루소]와 독특하면서도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걸리버를 통해 당시 세계를 풍자했던 [걸리버 여행기] 등의 책에 대해서 작가와 줄거리, 그 책이 당시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려주는데요. 본문의 부분부분마다 해당 책의 내용이나 관련 이야기를 수록해놓고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제가 사랑하는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말괄량이 삐삐]와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었습니다. 주근깨 투성이 얼굴에 양갈래로 땋은 머리의 천방지축 소녀 삐삐. 어린 시절 텔레비전에서 본 삐삐를 보면서 왠지 후련한 기분이 들었는데요. 알고보니 [말괄량이 삐삐]를 통해 당시의 성 역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는군요. 대단하지요?




두툼한 책을 이리 왔다, 저리 갔다 뒤적이며 읽고 나서 생각해봅니다. 책이 만든 역사, 역사가 만든 책. 저자는 50권의 책을 소개했지만 난 그것보다 훨씬 많은 책, 더욱 길고 긴, 광대한 역사의 장면 장면을 지켜본 느낌입니다. 우리의 과거가 어떠했을까요? 현재의 모습은? 미래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그 모든 것이 책에 담겨 있다는 것. 그 속에 흐름이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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