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끓던 애도가 잦아든 거리, 강경 진압에 저항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슬픔은 켜켜이 쌓이고 쌓이네

지난해 촛불은 아무리 거리에서 외쳐도 이명박 정부가 듣지 않는단 사실을 알려줬다. 그렇게 촛불은 두 번의 실패를 통해서 교훈을 얻었다. 의회에 맡겨서 안 되니까 거리로 나왔는데, 거리로 나와도 안 되니 다시 의회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촛불은 똑같은 방식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5111.html 

 2008년 촛불, 2009년 정치적 탄압에 따른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결코 잊지 못한다. 그 한계와 과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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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이 방아간이면, 난 영락없는 참새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책에 대한 욕심을 줄이고자 하지만 이건 머 영락없이 습관처럼 진행이 되는거다. 들르지 않으면 일보고 뒤을 닦지 않은 것처럼 계속 찜찜하니 이건 거의 강박관념처럼 느껴진다. 최근엔 더욱 더 집착이 심해졌다. 마음을 좀 가다듬고 주말에는 헌책방 보다 운동을 하나 해야겠다고 결심해본다.  

일본 학생운동이야 예전에 분열로 망한 대표적인 케이스로 많이 지목당해서, 다른 나라 운동사는 연구해도 일본학생운동은 연구하지 말라는 우스게소리까지 있었지만....그래도 68혁명의 한 축을 담당했던 지라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다.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멋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산히 분열해서 자멸했으니 구호는 구호일 뿐 실천의 문제가 핵심적인가 보다.  

 

 

 

 

 

 

 

 

 

 

 

 

 

 

 

 

 

 

 

 

 

 

 

 

 

 

 

 

 

 

 

역사학자 중 한홍구와 박노자의 저서는 될 수 있음 읽어보려고 노력한다. 흠...관점이 너무 편향되어 지려나? 

그래서 가끔은 이덕일의 책들도 즐겨본다.  

 

 

  

이 책들 말고도 그야말로 돈이 없어서...사정하고 맡겨 놓고 온 책들이 몇 권 더 있다. 흠 토요일에 방문하여 맡아 달라 부탁했는데 일요일에 찾아가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넘기겠다고 으름짱을 놓길래 꼭 들르마 약속했는데...결국 못갔다. 아마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면 넘겨 버릴지도 모르겠다. 나도 남들이 맡겨 논 책들 중 우격다짐해서 몇 권 가져온 책들이 있으니 원망이야 못해도 헌책방을 드나들려면, 그 정도 손해는 감수해야 하는 건 아닌지...ㅎㅎ 

원하는 책이 있어 정확한 타이밍에 적절한 돈을 지급해서 가져가지 않으면, 그 책을 다시 헌 책방에서 만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물론 쉽게 쉽게 다시 보이는 책들도 있지만...좀 탐이 나는 책들은 역시 쉽지 않다. 그러니 모두들 불을켜고 사가는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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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 2009-06-08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어있는책엔 카드 안되죠? ㅋㅋㅋㅋㅋ 적절한 현금이 필수입니다.
 

허공에 몸을 던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 땅의 민주주의의 후퇴를 증언했다면, 일생을 통일운동에 바친 강희남 목사는 자살을 택함으로써 남북관계의 총체적 난국을 증언했다. 이명박 정권은 경제를 살린다더니 반민주적 권위주의를 되살렸고, 실용을 주장하더니 이분법적 냉전 이념을 되살렸다.

오로지 힘의 논리로 무장한 이명박 정권을 떠받쳐주는 것은 공익의 탈을 쓴 사익추구 정치집단인 ‘조중동’만이 아니다. 지배세력에게 ‘지금 여기’의 민생문제는 지금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미래에 성취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제수치에 종속되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지배세력에게 지금 여기의 문제를 회피하게 하는 “민생을 살리는 경제”라는 그들의 주술이 우리 사회에서 폭넓게 관철되는 것은 왜일까? 오직 부자들을 위한 감세정책을 펴고 ‘비즈니스 프렌들리’에 충실할 뿐인 ‘강부자’ 정권이 민생을 말하는 역설이 통하는 것은 왜일까?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은 언제인가?”라고 물은 톨스토이는 “바로 지금이다”라고 스스로 답했다. 가장 소중한 시간인 ‘바로 지금’을 온통 저당 잡힌 채 사는 것은 우리 학생들만의 일이 아니다. 안전망이 허술한 사회 환경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조건을 개별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구성원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확실하게 보장하겠다는 일념으로 오늘을 저당 잡힌 삶을 살아간다. 미래에 저당 잡힌 오늘의 일상 속에서 ‘오늘의 나’에게 성실할 수 없고, 이웃에게는 더구나 성실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웃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을 때 그 문제를 정면에서 바라보기보다 외면하는 경향을 갖는다. 사회구성원들은 점차 ‘이웃에 대한 상상력’을 상실했고 민생 문제를 지배세력이 요구한 대로 지금 여기가 아닌 미래의 일로 돌리는 데 동참했다.

양극화 사회에서 소득격차가 격심해지고 비정규직의 노동조건과 서민들의 삶의 조건이 열악해져도 지금 여기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에 해결할 문제일 뿐이다. 지금 여기에서 점점 멀어진 사람들의 눈에 140일이 지난 오늘까지 장례도 치르지 못한 용산 참사나 건당 30원 인상 요구를 거부당하고 해고당한 대한통운 택배노동자 박종태씨의 삶과 자살은 잘 들어오지 않는다. 거꾸로 지금 여기의 문제 해결을 위한 노동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의 투쟁을 지배세력이 미래를 그르친다면서 억압할 때 침묵하거나 동참한다.

뿐만 아니라 ‘지금 여기’의 모순을 한꺼번에 해결하겠다는 혁명적 미래지향 또한 지금 여기의 문제를 미래의 문제로 돌리는 데 일조한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은 백번 옳다. 설령 성공한다고 해도 주인만 바뀔 뿐 지배 구조는 거의 바뀌지 않는 혁명의 과정 없이도 구조의 변화를 조금이라도 이룩하려면 ‘지금 여기’의 문제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탈정치가 혐오스런 정치를 극복할 수 없듯이 무관심은 결코 중립이 될 수 없다.

20대 중반에 나치 수용소에 갇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으나 일흔 가까운 나이에 결국 자살을 선택한 프리모 레비는 괴물은 분명 있지만 위험할 정도로 숫자가 많지 않다고 했다. 정작 위험한 것은 의심도 품어보지 않고 믿고 행동하는 기계적 인간들이라고 했다. 서울대 교수들의 기자회견장에 등장한 ‘어버이’들이 보여주는 열성에 비해, 또 우리 집 초인종을 마구 두드리는 “함께 교회 가자”는 사람들이나 돈 줄 테니 “‘조중동’을 구독하라”는 사람들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열의와 관심을 갖고 있을까. 지금 여기의 문제에 관해.


홍세화 기획의원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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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8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토리텔링의 비밀 - 아리스토텔레스와 영화
마이클 티어노 지음, 김윤철 옮김 / 아우라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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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즐기는 나로서는 언젠가 팔리지는 않아도 괜찮은 영화하나 만들어 보면 어떨까하는 망상(?)을 할 때가 있다. 나의 기대가 망상인 이유는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아는 것 하나 없으면서 (심지어 연극대본이나 시나리오 대본조차 읽어 본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 막연하게 이러저러한 소재로 영화 한 편 찍으면, 괜찮지 않을까하는 그야말로 평범한 잡생각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은 시나리오를 잘 쓰기 위해 읽은 책이라기 보다 어떻게 영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의식으로 집어든 것인데 의외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대한 학습까지 겸할 수 있어서 일타쌍피의 소득을 올렸다.  

이 책의 저자는 헐리우드 스토리 애녈리스트이고 저자의 경험에 의하면 시학에서 자신은 무궁무진한 배움을 얻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극적인 이야기 구조와 근본요소를 아주 면밀하게 탐구했는데, 아직도 많은 할리우드 제작자들은 이 책을 '시나리오를 쓰기 위한 바이블'로 여긴다" 그래서 "시나리오를잘 쓰고자 노력하는 모든 사람과 '시학'이 담긴 진리를 공유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친절하게 "이 책은 학술연구서가 아니다. 이 책은 시나리오를 잘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시학'입문서이며, 찬란하게 빛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수많은 개념을 분석하여 극적인 이야기 구조에 관한 그의 테크닉이 현대 영화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할 뿐이다" 라고 한다. 도전해 볼 만 하다고 유혹하는 것이다.  

이 책의 첫머리에 나오는 '액션 아이디어'란 말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롯을 짜는 능력 또는 강력한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았다.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에게 행동 Action을 이야기의 아이디어로 생각하라고 가르친다. 실제로 그는 행동이 사람, 곧 인물보다 더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액션 아이디어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 하나를 잘 붙잡고 일관되게 이끌고 나가도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액션 아이디어를 설명한 후 나머지는 플롯과 관계되어 여러가지 효과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플롯이 얼마나 정교하게 짜여져 있느냐의 문제이고 플롯을 정교하게 짜기 위한 '시학'의 지침들을 나열하고 있다. 이 대목들은 읽어봐야 이해하는 부분이고 내 재주로는 설명해 낼 수 없는 부분이다. 이 플롯에 대한 이해를 설명할 정도면, 난 이 책을 볼 필요가 없는 사람일 것이고 영화에 관한 한 도통한 사람일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플롯을 이해하기 쉽게 영화의 예를 들어가면서 설명했기 때문에 쉽게 이해된 듯 하게 느껴지나, 결코 만만하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이론서 보다는 쉬울 것이라는.....거기서 사실 난 살짝 절망한다.  

물론 시학에서 설명하는 이론에 어긋나는 걸작들도 많다는 걸 저자는 인정한다. 그렇다고 여기서 말하는 원칙들이 손상을 입느냐... 그건 아니라는 이야기. 기본을 알지 못하면서 비트는 것과 기본적인 효과를 명확하게 인식하면서 비트는 것과는 하늘과 땅차이다. 결국 기본을 알아야 비틀어도 제대로 비틀 수 있다는 것. 이 점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공감하면서, 그 기본을 찾기가 너무 힘들다는 푸념을 달고 싶다. 사실 이 책을 통해 시나리오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은 자신이 시나리오를 써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써보지 않고 단순하게 책만 읽는 다면 건질 건 자잘한 이론일 것인데... 그래도 모르는 것 보다는 하나라도 아는게 영화를 보는데 도움이 되는건 사실이다.  

저자는 글을 쓸때 영혼을 걸고 쓰라고 한다. 누군들 글쓰는 사람이 전부를 걸고 쓰지 않을리는 없을테고...단 영혼을 걸어도 기본을 알고 걸라는데는 할말 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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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주미힌님 서재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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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회도 없고 수련회도 없는 휴일은 외려 잠이 일찍 깨요.
아무 일도 없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언제부터 저는 평화가 실감나지 않는 삶을 살게 된 걸까요.
아무 일도 없는 이상한 토요일.
아니나 다를까. 텔레비전 화면에 뉴스속보가 뜨는군요.
“노무현 전 대통령 뇌출혈로 입원”
검찰조사가 시작되면 입원으로 시작해서 휠체어나 마스크가 구명보트처럼 등장하는 꼴을 늘 봐오긴 했습니다만 당신은 그런 쇼를 할 사람은 아닌지라 스트레스가 어지간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10여분 후 “노무현 전대통령 사망한 듯”이라는 자막이 뜨고 그제서야 뒹굴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나날이 일구 우일구하기 여념없는 시시껍절한 방송이 중단되고 속보가 이어지더군요.
경호원, 사저뒤편, 부엉이 바위, 세영병원, 양산부산대병원, 심폐소생술, 열상 따위의 일상과 밀접하지 않은 단어들이 바퀴벌레처럼 툭툭 튀어나와 소름을 돋게 했습니다.
정신적 공황상태까진 아니었지만 불면 탓으로 약간 멍한 채로 이틀을 보냈고 월요일 아침 부산역까지 가긴 했으나 조문은 못하고 역 광장을 몇 바퀴 빙빙 돌다 왔습니다.
선뜻 신발을 벗고 절을 하는 문상객들의 거리낌없는 몸놀림이 참 부럽다고 생각하며. 잠이 안오대요.
다음 날 다시 부산역엘 갔습니다.
역 광장을 또 빙빙 돌다가 그냥 돌아가면 다시 닥칠 불면의 밤이 성가셔 문상객들의 뒤에 얼른 붙어 섰습니다.
방명록에 몇 줄 쓰기도 했습니다. 잠을 자야하니까.
“오랜 세월 동지였고 짧은 시간 적이었습니다.
90년 변호사 접견 오셨을 때처럼 봉하마을 어딘가에 앉아 각자의 위치가 만들어 낸
그동안의 원망과 미움들을 두런두런 털어낼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곧..
고맙고 죄송합니다.“
 
90년. 제가 첫 징역을 살 때였습니다.
접견을 오셨었지요.
보통 변호사 접견은 재판 전날 와서(사실 재판 전날도 안 오는 변호사도 많습디다만)
재판절차를 일러주고 이빨도 맞추고 하는데 재판날짜와는 아무 상관없는 시기였던지라
많이 의아했던 만큼 20년 전인데도 이리 생생하네요.
접견실에 먼저 오셔서 기다리시더군요.
보통은 재소자들이 한 시간 이상씩 주리를 틀면서 기다리는데.
요샌 교도소 반찬이 뭐가 나오냔 얘기, 여사에선 뭐하고 노냐는 얘기, 변호사가 해주던 징역살이 얘기, 남사에선 뭐하고 논다는 얘기,
법무부 시계도 가니까 재밌는 놀이를 많이 개발해서 징역을 잘 깨라는 얘기.
변호사가 접견을 와선 재판이야긴 한마디도 없이 노닥거리기만 하다 그 더디기로 유명한 법무부시계가 세상에 한 시간이나 흘렀습니다.

“가야겠네” 일어서시길래 하도 황당해서 물었습니다.
“왜 오셨어요?”
“진숙씨 징역살이 힘들까봐 놀아 줄라고 왔지요”

그리고 당신은 정치권으로 갔고,
정치권으로 갔다는 건 권력을 탐하는 변절로 규정하는데 한치의 주저함도 없었으니
변호사비용을 거침없이 떼먹고도 사기꾼의 돈을 떼먹은 것 마냥 일말의 부채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복직하면 갚으마. 유전 발견하면 갚으마. 보물선 찾는대로 갚으마. 막연한 약속이 선임비였던 시절이었으니.
그게 인권변호사의 당연한 책무였으니.
이제와 생각해보니 상실감이었어요.

그 시절 당신은 우리들의 유일한 빽이었는데.
공돌이 공순이 편을 들어주는 가장 직책 높은 사람이었는데.
당신이 있어 우린 수갑을 차고도 당당할 수 있었는데.
그때 직감적으로 생각했어요.
이제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겠구나.
재판장 앞에서 수갑을 찬 채 잔뜩 주눅 든 우리를 향해, “피고인은 무죕니다.”
외쳐 줄 사람이 이젠 없겠구나.
이제 재판에서 지더라도 찾아가 울 데도 없겠구나.
노동자들이 그들의 부엉이바위인 크레인 위에 올라갈 때 따라 올라가지도 않겠구나.

그리고 당신을 잊었습니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없어서 혼자 진행했던 1심 재판에서 당연히 지고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왜 항소를 안했어요?” 라는
질문에 “항소가 뭔데요?” 라고 되묻던 저에게 “노동자가 항소를 알면 그건 노동자가 아니지.” 하던 말도 잊었고,
노동자도 이론이 있어야 세상을 바꾼다며 함께 했던 소모임도 잊었고,
군사정권 시절 해고된 노동자의 그 막막한 눈빛을 들여다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유일하게 내 얘기를 그대로 들어주던 무료법률 상담소도 잊었고,
어느 날은 밤에 오라 길래 밤에 찾아갔더니 그날이 전태일이라는 노동자의 기일이라고
변호사 사무실 구석에 조촐한 제상을 차려놓고 아무 말도 없이 유령들처럼 절을 하던
그 뭉클하던 밤도 잊었고,
함께 같은 거리를 달리던 6월 항쟁도 잊었고,
최루탄 가루가 싸락눈처럼 내린 범냇골 국민운동본부 옥상에서 막걸리를 나누던 걸판지던 뒤풀이도 잊었습니다.

그리고 침례병원이 초량에 있을 때였습니다.

노동조합 조합원 교육에 초청을 받았는데 앞 시간 강사가 당신이었더군요.
당신은 내려오고 나는 올라가던 계단에서 마주쳤습니다.
난 참 어색하기가 짝이 없습디다.
그냥 모른 척 할라고 했습니다만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지요?”
굳이 손까지 내미시더군요.
그때 대답을 했거나 웃기라도 좀 했으면 지금 잠을 이루기가 좀 쉬었을까요.
 
그리고 당신이 출마한 대선에서 전 4번을 찍었습니다.
단 한 번도 단 한순간도 고민하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외포리를 한번도 벗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평생 1번을 벗어난 적이 없는
큰언니가 전화를 했더군요.
“이 노무헤니가 그 노무헤니지? 니 벤호사. 그 사람 찍었다. 너 인쟈 깜빵 안가지? 복직두 되갓지?” 얼른 대답할 말이 떠오르질 않더군요.

제가 왜 “내 변호사”를 놔두고 4번을 찍었는지 우리 큰언닌 죽을 때까지 이해 못할 거예요.
2번과 4번의 극심한 차이를 설명하는 일도 이리 막막한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그 미세한 차이를 설명하는 일은 저의 재주로는 난망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뻐서 우는 사람도 있습디다만 이회차이가 당선된 거보다 노무혀이가 당선된 게 노동자들에게는 더 힘들 거라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고립은 깊어졌고 고착화되었습니다.
김영삼이가 당선되었을 때 운동권이 1/3이 떨어져 나갔고, DJ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른바 재야가 사라졌고,
당신이 대통령이 되면서는 그야말로 오롯이 노동자들만 남았습니다.
한 사업장에서 수천 명이 한꺼번에 해고될 때 그 무지막지한 자본을 향해 호통쳐주는 어른 하나 없습디다.
노동자들이 핏발 선 눈으로 거리로 나설 때 역성들어주기는커녕 죄 우리만 나무랍디다.
그거 아세요. 당신은 조중동이랑 열심히 싸우셨습니다만 우리에겐 조중동이랑 한편처럼 보인 거.

 “야~ 기분좋다!” 시며 봉하로 가셨을 때 오리농법보다 더 중요한 일은 농민들의 삶의 실상을 들여다보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왜 목숨 걸고 한미 FTA를 반대했는지.
그리고 전용철, 홍덕표 그들의 죽음에 당신이 늦게나마 사과를 하면 참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랬다면 제가 봉하마을을 갔을까요. 아마 갔겠지요.
그리고.. 김 주익 얘기도 했을까요. 아마 그 얘긴 못했을 거예요.
말로 꺼내긴 크나큰 상처였으니까.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 말씀.
유난히 노동자들에겐 가혹하셨습니다.
2003년도 한진중공업에서 저는 한꺼번에 두 명의 지기이자 동지를 잃었습니다.
김 주익은 600여명 조합원의 명퇴에 맞서 2년을 싸웠고 노사가 합의를 했고
그 합의를 회사가 번복을 했고 그래서 크레인에 올라갔고 그 크레인 위에 129일을 매달려 있다가
아시다시피 목을 맸습니다.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런 시대는 정말 지났을까요.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들에게 종종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조각인 것을..

저는 당신을 부정한 게 아니라 당신을 넘어서고 싶었습니다.
착한 사람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지배가 없는 세상을 꿈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시대에 그 꿈은 가장 허황되고 지리멸렬해졌습니다.
때론 우리가 품은 꿈이 너무 초라했고 궁색했습니다.
당신의 시대에 가장 많은 노동자가 짤렸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구속됐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비정규직이 됐고 그리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귀족으로 격상됐고 그들은 언론과 자본은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조차 적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이기주의를 꾸짖으십디다만 동료가 수백 명씩 짤리는 걸 목격한 노동자가 비정규직에게 내밀 손이 남아 있겠습니까.
저 살아남는데 써야지.

징역을 살 때 만난 사형수가 있었어요. 이 여잔 영치금이 한 푼도 없는 개털이었는데 새로 신입이 들어오면 아주 불쌍한 표정으로 샴푸나 속옷을 사달라는 거예요.
출소한 사람들이 쓰다만 물건들도 다 그 여자 차지였죠.
언제 죽을지 모를 사람이 사소한 물건에 집착하는 게 도덕의 눈으로 보자면 참 추접스럽습디다.
그 여자 집행되고 보니 샴푸나 속옷 나부랭이가 구석구석에서 쏟아져 나옵디다.
백분의 일도 못쓰고 죽었죠. 생에 대한 나름의 집착이었던 거죠.
샴푸 생길 때마다 빌었겠죠. 이거 다 쓰고 죽자.
정규직 노동자들은 삶의 벼랑에서 그런 심정으로 잔업하고 철야를 합니다.
얼마가 남았을지 모를 정규직의 삶을 그딴 식으로 저축하면서.
그 무렵쯤이었을 거예요.
변호사비용을 이제 그만 갚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당신의 시혜나 은전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 건.
적이 될 거라면 호적수이고 싶었습니다.
실력도 한참 모자라고 열정도 전만 못하고 진정성마저 잃어 그리 되진 못했습니다.
그게 참 부끄러워요.
똑똑한 사람들은 다 떠나 우리를 속속들이 아는 가장 무서운 적이 되었고 남은 자들은 동네북이 되어 초딩들마저 두들겨대고 천덕꾸러기가 되어 크레인엘 올라가고 굴뚝엘 기어 올라가도 언놈 하나 눈길주는 놈이 없어졌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고등학교 밖에 못나온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입 달린 사람은 죄다 침이 마릅디다만 고등학교도 못나온 저 같은 노동자들은 당신의 시대에 대부분 절감해야 할 원가가 되어 구조조정 당했고 효율화를 위해 비정규직이 됐습니다.
차라리 군사독재 시절엔 대드는 노동자만 짤렸으나 당신의 시대엔 남녀노소가 짤렸습니다.
서민의 벗이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나 부자와 빈자의 간극은 훨씬 더 까마득해졌습니다.
당신이 변호사에서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24년의 세월 동안 전 아직 복직도 못한 해고노동자로 찌질한 50대가 됐습니다.
생각해보니 짧은 시간 동지였고 오랜 세월 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뜨겁고 바른.
만고 씰데없는 소립디다만 그래서 대통령 같은 거 하지 말았으면 참 좋았겠단 생각 지금도 해요.

불안하고 불길한 기운으로 떠돌던 예감이 당신의 죽음으로 확연해집니다.
한 시대가 갔다는..

이제 상고출신이 변호사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양양한 가도가 보이고 그 길을 편하게 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의 있습니다!”
외칠 때, 그 외침에 뒤돌아보는 사람도 이제 더는 없을지도 몰라요.

만 명이 울어주면 천국에 간다했던가요.
천국에 가셨을 거라 믿어요. 진심으로.
김주익 곽재규 배달호 김동윤 최복남 이용석 이해남 이현중 정해진 하중근 박수일 허세욱..
당신의 시대에, 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서러움으로 억울함으로 목 놓아 울었던
죽음들입니다.

당신처럼 벼랑 끝에 내몰렸던..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죽음을 당신이 이해해주길 바란 적이 있었어요.
하도 야속해서. 노동자의 삶을 안다는 사람이 어찌 저럴 수가 있나 너무 미워서.
아무리 야속하고 미워도 그런 바람은 품지 말걸 그랬다 싶어요.
애증도 부질없어 졌습니다.

언젠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말들이, 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말들이 기형도의 시처럼
떠돌다 때때로 부딪히겠지요.
이제 변호사비용은 영원히 안 갚아도 되게 생겼습니다.
 
다음 생에 오실 땐, 너무 똑똑하게 오지 마시구려.
사법시험 같은 것도 합격하지 마시구요. 그냥 태생대로 기름밥 먹는 노동자로 만났으면 해요.
저는 당신에게 변절이라 손가락질 할 일 없이, 당신은 절더러 경직되었다거니 세상을
모른다거니 한심해 할 일 없이. 떠날 일도 보낼 일도 없이 그냥 내내 동지로.
그래서 언젠가 하셨던 말씀대로 자본가가 지는 해라면 노동자는 뜨는 해다.
그 멋진 말씀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순수한 열정, 남다른 정의감 그대로 만날 수 있길.
다시는 미워할 일도 상처 받을 일도 이렇게 미어질 일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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