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책들을 다시 내지 않기로 한 모양이다.   

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410276.html

무소유외에도 많은 저술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고, 입적하시면서 많은 사람들이 새삼스레
스님의 저서를 찾고 있는 분위기다.
그 전부터 구해야지 하면서, 삶에의 가르침이라기 보다 그저 종교서적으로 치부해서 몇 권
읽지도 못했는데 ... 막상 구할 수 없다하니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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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양장본
법정스님 지음 / 범우사 / 1999년 8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2010년 03월 16일에 저장
절판
아름다운 마무리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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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법정 잠언집
법정(法頂) 지음, 류시화 엮음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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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기일회 一期一會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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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3-17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로지 무소유 하나 있습니다.
요즘은 다시 본래의 순오기로 돌아오는 중입니다.^^

머큐리 2010-03-18 19:38   좋아요 0 | URL
저는 무소유도 없어요... --;
순오기 누님이 언릉 돌아오셔야 서재가 밝아지요...ㅎㅎ
 

자정이 지나기 전 오늘은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한 사람을 만난 날이고 

차가운 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던 날이었으며 

따뜻한 온기가 그리운 날이었다.   

 

여전히 음악이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던 날이고 

오랜 통화로 귀가 아픈 날이었으며 

그럼에도 쳇바퀴 돌 듯 길게 길게 돌아서 돌아서 

결국 아무런 결론을 맺지 못한 날이다.  

 

오늘은 다시 돌아오는 내일일 것이고 

계절이 봄으로 바뀌고 여름으로 바뀌더라도  

다시 기억하면 언제나 바람이 세차게 불어 

어디론가 떠밀려 가는 느낌으로 남아 있는 날일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은 

냉정과 상심의 추를 왕복하며  지나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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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10-03-13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데요. 이 時.

새벽은 묘한 힘을 가지고 있죠, 나를 감수성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머큐리 2010-03-14 22:52   좋아요 0 | URL
그렇죠...자정..새벽의 힘은 놀랍죠...깨면 조금 그래서 그렇지..ㅎㅎ

[해이] 2010-03-14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기에요 시에요?? ㅋ 정말 좋네요... ㅎ

머큐리 2010-03-14 22:53   좋아요 0 | URL
그냥 끄적거린거에요...좋았다니 다행이네요 응?!

다락방 2010-03-14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한 사람을 만난 날이었으면 좋았을거에요, 제게도. 그러나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한 사람을 저는 역시 계속 만나지 못했어요.

머큐리 2010-03-14 22:53   좋아요 0 | URL
그런 사람 중 하나가 락방님이에요...ㅋㅋ
 

 <김예슬 대자보 전문>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그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과 좌절감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그 20대의 한 가운데에서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남은 믿음으로.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지만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는 25년 동안 경주마처럼 길고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우수한 경주마로, 함께 트랙을 질주하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친구들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소위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나를 채찍질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멈춰 서서 이 경주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 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우월하고 또 다른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무력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 질주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제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앞서 간다 해도 영원히 초원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트랙임을. 

이제 나의 적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 또한 나의 적이지만 나만의 적은 아닐 것이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임을 마주하고 있다. 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 국가는 다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어,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12년간 규격화된 인간제품을 만들어 올려 보낸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피라미드 위쪽에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이 변화 빠른 시대에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는 우리들은 또 대학원에, 유학에, 전문과정에 돌입한다. 고비용 저수익의 악순환은 영영 끝나지 않는다. '세계를 무대로 너의 능력만큼 자유하리라'는 세계화, 민주화, 개인화의 넘치는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졸업장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학습된 두려움과 불안은 다시 우리를 그 앞에 무릎 꿇린다. 생각할 틈도, 돌아볼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또 다른 거짓 희망이 날아든다. 교육이 문제다, 대학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생각 있는 이들조차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공해서 세상을 바꾸는 '룰러'가 되어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나는 너를 응원한다",

"너희의 권리를 주장해. 짱돌이라도 들고 나서!"

그리고 칼날처럼 덧붙여지는 한 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없는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다. 우정도 낭만도 사제간의 믿음도 찾을 수 없었다. 가장 순수한 시절 불의에 대한 저항도 꿈꿀 수 없었다. 아니, 이런 건 잊은 지 오래여도 좋다.  

그런데 이 모두를 포기하고 바쳐 돌아온 결과는 정말 무엇이었는가. 우리들 20대는 끝없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한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리고 대학에서 답을 찾으라는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깊은 분노로.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유지자가 되었던 내 작은 탓을 묻는다. 깊은 슬픔으로.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받고,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만을 키우며 나를 값비싼 상품으로 가공해온 내가 체제를 떠받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 시대에 가장 위악한 것 중에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나 자신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번 다 꽃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 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자유의 대가로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삶의 목적인 삶 그 자체를 지금 바로 살기 위해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학비 마련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하고 계신 부모님이 눈 앞을 가린다. '죄송합니다, 이 때를 잃어버리면 평생 나를 찾지 못하고 살 것만 같습니다.' 많은 말들을 눈물로 삼키며 봄이 오는 하늘을 향해 깊고 크게 숨을 쉰다.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덕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다.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2010년 3월 10일 김예슬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자퇴하며

출처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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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10-03-13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로그인 안 하고 이 글을 보았네요. 정말 공감되는 글입니다. 슬픈 밤이네요.

머큐리 2010-03-14 22:50   좋아요 0 | URL
공감되는 만큼 슬픈 글이죠...

2010-03-13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4 2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eong 2010-03-15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자유주의가 점점 확대될수록,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소소한 즐거움을 빼앗는줄만 알았더니, 이제는 학생들에게도 빼앗아가는군요.

머큐리 2010-03-15 19:47   좋아요 0 | URL
학생들이 무기력하게 변하게 된 가장 주된 사회적 배경이 신자유주의의 확장이 아닌가 싶어요..
 

 



불안정 노동의 시대, 88세대와 쌍용은 어디에서 만나는가?
<당신과 나의 전쟁 / 개청춘 조인트 상영회 및 집담회>

불안정노동 문제와 세대 담론, 얼핏 들으면 잘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다. 하지만 청년세대의 문제를 경제적으로 접근한다면 비정규직 확산을 포함한 불안정노동 문제는 반드시 언급되어야 하는 문제다. 한편 노동운동의 관점에서 볼 때도 노동시장에 신규 편입되었거나 이를 준비하는 청년세대의 관심은 절실하다. 지금까지 청년세대와 노동운동 사이에는 ‘알바’와 ‘공장노동자’라는 말 사이에 느껴지는 간극만큼의 정서적 간극이 있었다. 이 간극을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청년들은 고용안정이 보장되지 않는 세상에서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가? 노동운동은 어떻게 해야 청년들에게 다가설 수 있을까? 우리는 불안정노동 문제와 세대 문제를 다룬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관람한 후 결코 쉽지 않은 이 문제를 직설적으로 제기해 보기로 한다.


1. 일시 & 장소
- 3월 13일 (토) 15:00~20:00
- 장소 : 성균관대 인문관 308호

2. 프로그램
[1부 (15:00~16:30)]- 다큐멘터리 “당신과 나의 전쟁” 상영
[2부 (16:40~18:05)]- 다큐멘터리 “개청춘” 상영
[3부 (18:15~19:45)] 
             - 집담회 : 불안정노동의 시대, 88만원 세대와 쌍용 노동자는 어디에서 만나는가?

3. 패널 소개
사회자 : 한윤형(뉴라이트 사용후기 저자)
패 널1 : 태준식 (당신과 나의 전쟁 연출)
패 널2 : 반이다 (“개청춘 감독” 공동 연출)
패 널3 : 이창근 (쌍용자동차지부 전 기획부장)
패 널4 : 이류한승 (서부비정규센터)
패 널5 : 최태섭 (투명좌파)
패 널6 : 의미 (성균관대 문과대학학생회장)

4. 주최/주관
주 최 : “당신과 나의 전쟁” 제작위원회
공 동주최 : 성균관대 학생행진
주 관 : 미행美行
후 원 : 성균관대 사회대학생회, 인문대학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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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10-03-15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고 싶었는데... 결국 못가고 말았다. 주말에 왜 이리 여러가지 행사들이 많은지...쩝!
 

오늘따라 몇몇 신문기사들이 눈에 밟혀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합니다.  

고대생이 취업준비생을 기르는 학교를 거부하고 자퇴서를 냈더군요.
88만원 세대의 아픔이 요즘처럼 절절하게 느껴지는 때가 없는 것 같습니다.
20대의 문제지만, 결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이고 교육의 문제이고 또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문제이기도 하지요 

철학이 신학의 시녀로서 지내왔던 중세처럼, 교육은 이제 기업과 이윤의 시녀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솔직하게 내 아이들에게도 공부란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해 말하기 무서운 시절입니다.  

어제 후배와 식사하다가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형 애들이 형이 원하지 않고, 사회 일반적인 통념과는 다른 길을 걷겠다고 한다면
형은 그걸 용납할 수 있나?"
물론 상황과 조건의 구체성이 부족한 상태에서의 질문이지만, 일반 통념과 다르게
자신의 길을 걷겠다고 한다면, 왠지 몰라도 내 스스로가 불안해 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 반대할 확율도 많겠지요...통속적으로 아직 어리고
세상살이 경험이 부족하고... 여러가지 이유를 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일반적 통념이란, 정규교육과정을 마치고, 대학을 진학하고 원하는 자신의
일을 찾아 가는 거지요...여기서 정규교육 도중 이탈이나 대학의 포기 등은 아직
스스로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고, 아마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많이 당혹해 할
것 같습니다.
더구나 대학교가 취업자격증 발급처로 전락해 버린 시절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학교을 졸업하는 것이 정상적이라는 뿌리 깊는 사고을 발견한 셈이지요. 

나이만 먹다보니 어느새 기성세대가 되었고, 기성세대로서 무언가 이루어놓은 것이
없다보니, 후대들의 생활은 점점 팍팍해져 가는 것 같습니다. 자괴감이지요.
관념적인 전진이 아닌 생활 속의 전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직도 내 몸과
사고는 완강한 틀 속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자퇴를 결심한 한 대학생의 문제제기가 타당하고 올바르다고 느끼면서도 그가
뼈저리게 느낀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고 축적된 것에는 이런 사고적 경직성과
현실과 타협한 기성세대의 안이함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학을 거부한 학생의 글에서 참 많은 생각과 반성을 하게 됩니다.
주어진 현실을 걷어차고 자신의 의지를 선택한 그 학생에게 행운이 깃들기를 빕니다.

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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