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안토니오 알타리바, 킴 지음,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 길찾기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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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 아나키즘... 한 개인의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자살로 마무리되는 일생을 만화로 출간되었다.

 

출간 시 19세 이상으로 되어 있어 출판사에서 항의했다는 설이 있었고 논란이 되었던 까닭으로 사실상 판매는 나쁘지 않았다고 들었다. 하기사 아직도 이 땅에서는 무언가 금지 당했다고 하거나 검열당했다고 하면 호기심이 급상승하는 사회니까...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좀 있는 사회이다 보니 검열이나 금지는 판매를 촉진하는 노이지 마케팅일 수 있다.

 

청소년들이 보지 말아야 할 장면이 성애적인 장면인지 이 사회를 지탱하는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대한 반대와 좌절에 따른 냉소인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 체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는매우 불편한 만화임은 틀림없다. 또한 좌편향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불편한 만화임은 틀림없다. 역사는 좌와 우를 뚜렸하게 구분하지 않았다. 최소한 그 역사를 살아간 사람들에게 좌와 우보다는 생존이 항상 문제였던 것이다.

 

농촌의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자란 주인공이 청년이 되어 도시로 나가고 군대를 갔다왔더니 세상이 달라졌다. 인민전선이 정권을 잡고 공화정을 수립한 그 격동의 시기에 프랑코를 주축으로 한 군부세력과 우익이 쿠데타를 일으켜 스페인이 내전으로 들어갔다. 이때 주인공은 징집 후 군대를 탈영하여 인민전선의 의용군으로 전쟁에 참여한다.

전쟁을 겪으면서 주인공은 아나키스트 사상에 동조한다. 프랑스나 스페인에서의 노동자들과 급진사상가들은 마르크스주의보다 아나키즘에 더 많은 지지를 보냈다. 당시에 인민전선의 주축을 이루던 노동조합의 주도권도 아나키즘이 대세였다. 이는 나중에 스페인 내전에 참여했던 소련의 붉은 군대와 불화를 일으키는 요인이 되었고, 그 내분에 대한 기록은 조지 오웰의 '카탈루니아 찬가'에서도 다루어지고 있다.

 

모든 계급을 부정하고 국가와 민족을 부정했던 아나키즘에 경도된 주인공은 내전의 패배 후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겪은 후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 온다. 스페인으로 돌아왔을때는 프랑코 독재가 자리를 잡은 후였고 같이 인민전선에서 싸우던 사람들은 예전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생존에 침잠해있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던 젊은 시절 주인공을 가르쳤던 많은 지식인들과 동료들이 프랑코체제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살고 있었다.

 

사상이 밥을 대신하지 않는다는 뼈아픈 현실에 적응하는 주인공은 바뀐 사람들과 시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지만 그 역시 체제내에 동화되어 간다. 가족, 사회, 국가의 견고한 틀 속에서 하나의 부품처럼 지내는 주인공의 말년은 결국 배금주의와 배신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말년에 양로원으로 노구를 의탁한 주인공이 선택한 자유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그 시대의 역사를 관통하는 어는 평범하면서 평범하지 않은 사람의 일생이 지금의 사회와 겹쳐보이는 것은 그 당시 세상을 변혁하려는 '진정성'이 광주사태 이후 현대를 관통하는 한국의 변혁적 시기를 닮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면의 성찰과 사회의 변혁을 위한 '진정성'이 시대의 굴곡에 따라 어떻게 변질되고 변화되어 가는지 한국 사회도 많은 반성적 사고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진정성이 부담스러운 시대... 자본에 복종하던가 사회를 내파시켜버릴 폭력으로 경도하던가... 적군파와 테러리즘의 노선이 폭력으로 경도 되었다면 신자유주의의 신도로 뉴라이트의 등장은 자본에 항복한 대표적인 태도일테다. 어느 경로를 택하건 미래를 밝혀줄 이데올로기는 사망하고 자본주의 체제내에서의 계속되는 삶이 있을 뿐이다. 그 역사적 경로를 지나오면서 선택해야 할 것이 죽음밖에 없다면 그것 자체로 암담하다. 그럼에도 이 개인의 고백 속에서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할 건 변혁에 대한 '진정성'인지 삶에 대한 '진정성'인지 알 수 없다.

 

세상은 다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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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3-10-10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에는 성애 장면을 가장하였지만 자본주의 체제의 어두운 면을 까발렸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머큐리 2013-10-11 10:23   좋아요 0 | URL
이 땅에서 제일 음란한(?) 사람은 검열을 담당하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요..작품을 보는게 아니라 띄엄띄엄 뭔가 상상을 자극하는 것만 보는 것 아닌지...문학도 영화도 만화도...ㅎㅎ

무해한모리군 2013-11-05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입하러 들어왔다 마침 머큐리님 리뷰가 있어 땡투를 누릅니다.
좌절하는 것이 삶인데 그 좌절에 맞서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요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