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개 회사의 인사발령이 사회적 논란이 되어 버렸다.
그 회사는 나라의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방송사이고 방송사의 통상적으로 보이는 인사발령은 시사교양국 내부의 피디수첩 소속 피디들의 인사였다. 평범하게 보면 별 일 아닌듯 보이는 이런 인사발령이 사실상 중요한 의미들이 담겨 있다.
방송이 가진 사회비판적 정화기능을 죽여 버릴 수도 있다는 점.
얼마전 피디수첩 20주년을 기념하며, 그동안 피디 수첩에 온 몸을 다바쳐 헌신했던 피디들에 대한 인터뷰를 엮은 책이 나왔다. 그 책속에서 20년 동안 피디수첩을 지켜왔던 낯익은 얼굴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고뇌와 책임감,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감행해야 했던 그들의 노력을 들을 수 있었다.
한겨레 신문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윤길용. MBC 시사교양국장.... 그도 역시 피디수첩을 이끌어온 피디출신이다. 그는 '소쩍새 마을의 진실' 등 종교적 영역에 감추어진 비리와 치부를 사람들에게 고발해온 강성 피디수첩의 피디출신이다. 그런 그가 시사교양국장이고 이번 인사 발령의 중심에 서 있다.
» <문화방송>(MBC) 시사교양국 피디들이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 시사교양국장실 앞에서, ‘피디수첩’ 최승호 피디를 제작진에서 제외한 인사 발령에 항의하는 뜻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이들 앞으로 윤길용 시사교양국장(맨 앞 손에 휴대전화 든 이)이 지나가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미 피디수첩에 대한 견제나 연성화는 이명박 정권 출범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권력의 입장에서 진실을 밝히는 언론은 언제나 껄끄러울 수 밖에 없는 것이고 힘이 있는 이상 자신이 부담스러워 하는 대상에 대해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은 이른바 권력의 속성이다. 더구나 정권인수 초기부터 상대방에 대한 인정이 없는 현 정권하에서 탐사보도를 통한 진실을 알리는 피디수첩에 대한 호감을 가질 이유는 전혀 없고 결국 광우병 보도로 피디들을 구속 수사하기에 이른다. 그것도 정책추진자에 대한 '명예훼손'이란 명목을 걸고....
강성탄압은 항상 저항을 불러 일으킨다. 따라서 연성탄압이 필요했나 보다. 피디수첩에 대한 검찰고발은 광범한 저항을 불러 일으키고 언론자유에 대한 새로운 학습의 장을 열었다. 결국 이런 강성조치로 정권이 얻을 수 있는 건 없었다. 더구나 그들이 그토록 목메게 외치는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해서도 명분이 있을리 없다. 따라서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사안이 아닌 사람의 교체와 조직의 연성화.... 그것이 이번 인사발령의 본질이 아닐까 한다.
논란이 분분하다. 피디수첩에 대한 악의적 공격자들은 피디수첩이 무슨 성역이냐고 외친다. 오히려 회사의 순수한 의도를 저항하는 피디들의 의도가 수상하다고 한다. 포탈에 양비적 시각을 통해 이런 쓰레기 같은 이야기를 퍼트리는 신문들의 의도는 뻔하다. 내부문제로 축소시켜 피디수첩을 고사시키는 것... 균형을 잡은 듯한 양비적 논리에 역겨움까지 느껴진다.
군사정권시절과 같은 폭압적 탄압이 나타나진 않아도 정권 초부터 뚜렷하게 드러나는 경찰국가화의 경향과 언론에 대한 지속적인 탄압과 무력화는 정말 민주주의를 20년 전으로 후퇴시킨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땅의 소수자와 탄압받는 자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놓지 않고 권력과 불화해온 피디수첩이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이라 보았을때 피디 수첩의 연성화 또는 개편은 이 정권이 언론에게 마지막으로 보내는 치명타일 것이다.
권력에 길들어진 방송은 이미 언론의 기능을 상실한 셈이다. 시사와 교양... 진정한 교양은 부당함에 저항하고 정당함에 연대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교양이란 죽은 지식일 뿐이고 지적 허영일 뿐이다. 피디수첩이 기로에 서있다. 아니 언론이 압사 상태에 처해 있다. 항상 되묻는 질문은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일 수 밖에 없나보다.
이번 인사발령의 최대 쟁점이 된 최승호 피디의 인터뷰 기사
: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