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부터 지지리 풀리지 않는 일로 끙끙거리고 있다.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듯이 이해 관계가 틀린 경우 대립은 필연적이고 이것을 풀어나가는
협상력이 중요한 일인데... 그 협상의 실무자로서 딱 하나 느껴지는 건, 역시 자본주의 사회
에서 돈이 걸린 일에는 '피도 눈물도' 없다는 것이다.  

양쪽에게 파김치가 되도록 대화하고 보고하고 시달리다 보니 주말이고 뭐고 쉬는게 쉬는것
같지도 않고 죽을 맛이다. 월급은 스트레스에 비례한다고 하던데....이번 주는 다른 주의
3배의 월급을 받아도 부족해 보인다. (하긴 주지도 않겠지만  --;) 

스트레스는 쇼핑으로 풀어야 하는 자본주의 소비원칙에 따라 스트레스를 풀러 '숨책'에
갔다. 그냥 책 냄새를 느끼려고 간 건데도 막상 건질 책이 없어 아쉬워 하니까, 근무하시던
조까치 (성은 조씨요, 루카치를 가장 존경한다고 해서 내가 붙인 애칭이다) 선생께서 좋은
책을 소개한다고 한다. 귀가 번쩍...ㅎㅎ 뭐냐고 물으니 왠 외국어 전집을 하나 보여주며
15만원이란다... 헉~ 가다머 전집이라던가? 독일어 원서다....이건.. --;
그게 부담되는 그리스 철학사을 사라고 한다 (된장 보여주는 걸 보니 영문판이다. 두께도..헉) 

조까치 선생 내가 갈때마다 칸트, 벤야민, 기타 유명한 저자의 원서를 가지고 놀리더니
아주 재미들린 모양이다. 하긴 나도 놀리는거 알면서도 괜히 발끈한 척 한다.
그래도 돈 모자를 때 외상을 주지 않아도 다음에 올때까지 보관해 달라고 하면 엄청 투덜대면서
보관해 준다. 흠 조까치 선생은 날 미워하진 않는거 같다...ㅎㅎ 

위층에 올라가서 조까치 선생이 읽지도 못할 책만 권하면서 약올린다니까 '숨책'사장님이
읽으려고 숨겨둔 책인데 사가라고 책 한권 권한다.  

그 책이 '파리를 생각한다'이다. 살짝 들춰보니 강신주의  '상처받지 않을 권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리는 내가 유럽에 간다면 가장 가고
픈 도시 일순위이고 그곳에 대한 환상이 있는 곳이라 고맙게 받아 
들었다. 그리고 고른 책이 '탈근대 군주론' 대강 서문만 살펴보니
그람시의 이론을 많이 다루는 듯 해서 골랐다.  


그람시는 개인적으로 많이 좋아하는 이론가다. 80년대 대학시절
그람시 이론에 반해서 선배들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서구 개량주의자'라는 욕을 먹은 경험도 있다.
난 그때까지 개량주의자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다른 어느 사상가
보다 그람시가 전해주는 이론이 가장 타당해 보였다.
지금도 그람시에 대한 믿음은 변함없지만, 한 물 간 사상가 취급
을 당하는 터라 사실 그에 대한 이론서들을 찾아 보기는 힘들다. 그러니 '탈근대 군주론'는 괘나 반가운 책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그냥 좋아 보이길래 골라든 책이 반 룬의 '관용'이다.
이미 '인류이야기'나 '예술사'를 집필한 사람이니 만큼 다시
'관용'을 주제로 세계의 역사를 풀어나간다는 점이 흥미로워 골랐다.  

 

더불어 오늘 헌책방 최대의 대어는 뭐니 뭐니 해도 '상처 받지 않을
권리' 되겠다.

저자인 강신주를 좋아하고 이 책처럼 어렵도 난해한 글도
쉽게 풀어서 지금의 삶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이해하기
쉽게 해주는 책들이 좀 더 많이 출판 되었으면 한다.
남들은 최신 철학자들 (지젝, 바디우, 들뢰즈 등)이 쉽게 이해되는
모양인데... 사실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가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
이렇게 잘 풀어서 설명해 주는 책들이 필요하다. 특히 이 책에서 인용하는 모든 책들은 꼭 한 번 읽어야 할 것 같은 필독서들이라 나중에
리스트를 한 번 만들어 봐야 겠다.  

그건 그렇고 가끔씩 알라딘 중고 서적을 이용하다 한가지 맘에 안드는 점이 있는데....보통 최근
간행된 책이라도 헌 책방의 가격은 정가의 60%를 넘지 않는 것이 관례인 것 같다. 그런데 알라
딘 직송 중고서적 중 최근간행된 책들은 너무 고가로 책정되어 있어, 가끔 이럴거면 차라리
새 책을 사고 말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매입가는 모르지만, 사실 중고책을 애용하는 이유 중 하나가 새책 같은 중고를 헐 값에 매입하는
즐거움 때문인데....알라딘 중고샾은 그 즐거움을 빼앗아 가 버렸다.

역시 중고서적은 헌책방이 최고인 걸까?
알라딘이여 너 아냐.... 난 지금 처음으로 너 한테 불평하는거란거?

당분간 스트레스는 계속 될 것 같고, 책 살 돈은 부족하고... 아... 이거 참 거시기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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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11-11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도 빨리 받아들이고 하도 빨리 낡은 사상이 되니 따라가자면 숨이 찰듯 ㅎㅎㅎ
저는 오늘도 머큐리님께 땡투를 날리고 한권을 질렀어요. 기특하죠.ㅋㄷㅋㄷ

머큐리 2009-11-11 20:02   좋아요 0 | URL
연말까진 책 안산다며 또 뭘 지르신 걸까요?? 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11-11 23:14   좋아요 0 | URL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이요..
그게 음..
오이지랑 크리스마스에 일본에 놀러가니까 관련 여행책을 사려다 보니 5만원 이상사면 오는 사은품이랑 적립금이랑 할인쿠폰(3천원)이 솔깃해서 --;;

다락방 2009-11-12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 책을 판매하는 판매자가 직접 가격을 책정하다 보니 그렇게 정하게 된 것 같아요. 요즘은 나오자마자 사서 읽고 바로 판매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신간의 경우 중고샵에도 같이 뜨는데 가격이 얼마 차이 안나다보니 배송비까지 합치면 중고가 더 비싸지기도 하더라구요.

그런데요 머큐리님. 책 살 돈은 왜 항상 부족한걸까요? 머큐리님도 부족하고 저도 부족하고..왜 그런걸까요? 『파리를 생각한다』살짝 보관함에 넣어둡니다.

머큐리 2009-11-12 09:07   좋아요 0 | URL
개인이 파는 거 말고.. 알라딘이 직접 파는 중고서적들도 최근간은 많이 비싸요..그게 저의 불만인거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