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애들에게 일기 쓰고 자라고 잔소리를 한다.
두 놈 모두 일기가 숙제였던 시절에는 마지못해 조금씩 쓰더니, 숙제라는 짐에서 해방되자
바로 치워버리는게 일기다. 하기야 매일 같은 일상을 뱅뱅도니 별로 쓸말도 없다고 항변(?)
하는 애들에게 이것저것 보고 느낀걸 아무거나 자유롭게 쓰라해도 그저 아빠의 잔소리로
들을게다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 나도 가끔 일기란걸 쓴 것 같다. 지금은 몽땅 다 태워버려서 무슨
일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가물가물하다. 내가 일기장을 태운 것은 책상에 둔 일기를
부모님이 보시고 그날 저녁에 실컷 두들겨 맞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내용은 독서실에 공부하러 가서 도박을 하다가 돈 좀 잃은 내용이었지만, 난
아버지가 분노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질풍노도의 청소년기에 부조리하게 보이던 아버지의
행동에 실망해서 앞으로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장(?)한 다짐이 매를 불렀으리라
그날 이 후 기록물은 나에게 치명적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정말 저렸다)
깨달았고, 그날 이후 일기는 내 일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글쓰기는 일상의 훈련이고 그런 점에서 일기가 내 생활에서 사라지게 된 것은 나에게
많은 상실임에 틀림없다. 그 기억에 난 의무적으로 일기를 쓰라고 강요해도 애들의 일기를
본적은 없다. 보고 싶으면 허락을 구하고 본다. 아무리 어려도 자신들이 숨기고 싶은 일도
있을 것이고, 그런 일들이 부모의 눈에 남김없이 보여진다는 사실이 일기 쓰는 것 자체를
저어할까 두려워서 이다.
글을 쓴다는 건 무얼까? 그 시절 나는 일기를 빙자해서 무엇을 쓰고 무엇을 꿈꾸었을까?
가끔 나의 내부에서 정제되지 않은 여러가지가 부글부글 끓어 오를때, 그냥 끄적이게
된다. 그 글은 세밀하지도 않고 스타일도 없으며, 내가 봐도 그저 잡글일 뿐이지만 그래도
조금씩 끄적이다 보면 무언가 안정되는 것 같기도 하다.
또 가끔은 책을 읽다가 무언가 정리하고 싶은데...게으르고 재주가 없어 그냥 총체적 감상만
끄적거리다 만다. 그래도 책 한 권 읽고 던져 놓은 것 보단, 무어라도 기록하는게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왜 읽고 왜 쓸까? 아직도 난 정연한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읽는 것이 즐겁고.. 쓰는 것도 즐거워 지기 시작한다.
당분간은 그저 좋고 즐겁다는 이유만으로 읽고 쓰고 해야겟다.
그러다보면 무언가 답이 나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