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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악보 - 이론의 교배와 창궐을 위한 불협화음의 비평들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1
최정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최정우의 <사유의 악보>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알 수 없다. 또한 나는 이 책을 꼼꼼히 정성스레 읽었음에도 서평을 쓸 수 있을까 포기해야 했을까. 또한 알 수 없다. 그러나 오직 하나. 내가 이 책의 서평을 쓰는 이유는 루소의 말을 빌려 "때로는 던진 조각이 바로 목표물에 맞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 의도는 반드시 그 목표에 도달한다"는 의심스러운 위로(물론 원문의 조각은 '악의'를 의미하지만)를 믿고, 그래서 뭐든 될 대로 되더라,라는 낙관을 믿고, 더 나아가 서평은 저자와 내가 나눈 대화를 기록하는 것이라는 자위에 기댔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글을 다 쓰기 전에 내가 던진 의도가 부메랑이 되어 자폭할 것임을 안다.

달려라 하니_서곡을 듣는다.

불가능, 폭력, 리셋, 조바꿈, 도돌이표, 오역, 초월, 정밀독해, 불확실한, 불편한, 비평적 농담, 분열, 파국, 중독, 유서. 서곡과 목차를 훑으며 잡아 둔 단어들이다. 저자는

     
  "이 모든 글들은 어쩌면 오히려 소위 '인문학적 사유'나 '철학적 깊이'의 저 진부하고도 암묵적인 강요에 대한 강한 의문, 곧 우리에게 사유해야 한다고 강요하는...자들의 저 역겨운 교훈과 무의식적 이데올로기 그 자체를 어떻게 사유하고 전복해야 하는가 하는 극단적이고 실천적인 질문으로부터 탄생한 기형과 잡종의 것들이다"   
     
라고 쓰면서 
     
  "이데올로기가 바로 그 이데올로기에 대한 해명과 폭로로써만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시대 우리 세대가 지닌....불안과 우울증에 대한 저 깊은 무감각은 그것의 직접적 원인으로 생각되는 것들을 파악하고 제시한다고 해서 절대 깨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여기 모인 글들은 모두 그러한 증폭과 심화, 때로는 어떤 '악화'를 위해서, 심지어 어떤 '폭발'을 위해서 작성된 것들이다"  
     
라며 <사유의 악보>의 서곡을 힘있게 연주한다. 서곡은 감동적이다. 품위의 그늘 따위를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발랄하고 집요하게 달려라, 달려라 하니처럼 달리되 결승점에서 멈추지 말고 냅다 쭉 가봐라, 경기의 룰 따위는 신경쓰지 말고, 이세상 끝까지, 끝이 시작점이 될 수도 있지만 달려라 하니야, 이렇게 독려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일단 달린다.    

달리는 하니_13개의 악장을 듣는다, 따라한다, 혹은 변주한다.  

     
  "신비하지 않은가, 때로는 가장 익숙한 것이 또한 가장 낯설게 날을 세우며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이. 그래서 이 질문(들)은 아마도 '형식주의'에 대한 물음의 형태가 아니라, 더 적확하게는, 물음에 대한 '형식' 그 자체가 될 것이다" (5악장, 테제들의 역사를 위한 현악사중주_166)   
     
이 문장을 만나는 순간 본능적으로 나는 사유의 악보, 제 5악장을 쏘아본다. 그리고,
가장 익숙한 것이 가장 낯설게 날을 세우며 다가오는 순간, 익숙한 것의 날이 내 무능의 몸통을 깊숙히 찌르는 이 감각, 그래서 이 통증(들)은 아마도 '쪽팔림'을 가장하기 위한 어깃장의 형태가 아니라, 더 적확하게는, 불가능과 동거해야 한다는 '신비' 그 자체가 될 것이다,라고 혼잣말을 가장한 대화를 시도한다.
 
폭력, 저자는 소설 <부서진 사월>로 1악장을 시작한다. <부서진 사월>을 읽지 못한 나는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를 떠올린다. <부서진 사월>속에 형이 흘린 피를 회수해야 하는 아우가 있다면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속에는 아버지가 흘린 피를 회수해야 하는 아들이 있다. 이 작품들은 누군가 피를 흘리면 반드시 회수한다,는 상호주의의 원형을 보여준다. '상호주의' 명분 중의 명분이며 뒤끝없는 계산법의 으뜸이라고 발화하고 싶지만 그것이 폭력이라는 단어를 지시하는 순간 복잡해진다. 왜 복잡한가? 폭력의 상호주의는 무엇이 문제인가? 아니 폭력이란 무엇이며 그것의 시원은 어디인가? 그것이 문제라면 폭력은 어떻게 극복되어야 하는가? 누가 어떻게 무엇을 희생하고 용서하는가? 나는 신경증환자처럼 1악장을 또 쏘아본다. 그리고, 
나는 원효가 마셨다는 물 한 바가지를 마시지 않고도 내 복잡한 심중의 밑바닥을 본다. 머리를 다 비워낼 요량으로 생각을 게워내도 소용없음을. 나는 벤야민과 바타유를 최정우를 그리고 폭력의 아포리아를 끝내 온전히 해석할 수 없고 더는 어떤 생각도 적확히 밀어부치지 못했다. 그저 다만 어떤 '폭력'을 행사해야 하는지에 대한, '비폭력'의 미학 안에서 눈뜨기에 대한, '반폭력'의 불가능성을 직시함에 대한, 더 나아가 세계를 해석할 수 없다는 불가능과 동거해야 한다,는 감각만이 미친듯이 증폭하고 있소,라고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4악장 문학적 분류법을 위한 야구 이야기,를 듣는다.

     
  "푸코가 잘 보여주었듯, 새로운 분류법으로 인해 탄생하는 것은 곧 새로운 인식론이며 새로운 담론의 체계일 터. 그렇다면 이사만루와 무타무주 사이의 골이 가리키는 새로운 담론의 체계란 어떤 것일까(그런데 그것은 과연 '존재'하는가)?"(4악장,문학적 분류법을 위한 야구 이야기_144)   
     
낯선 질문과 마주하는 순간. '정지'한다. 정지는 이내 자연스럽고 고통스럽게 사유로 이어지고 내 머리속의 어떤 공 하나가 어떤 담장을 넘는다. 혹은 넘는다고 착각한다. 물론 이 질문에 나는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었지만, 그러므로 '실패'는 반복을 태생적으로 내제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실패'이후에 오는 '완성'은 실재로 내가 시도했던 그 무엇의 결과물이 아닌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이래서 '절멸'이 그리고 '복음'이 쌍을 이루어 세상을 떠돌고 있었군요,라고 나는 이미 놀랄 것도 없는 생각 한 자락을 끌어안는다.

이렇게 쓰니 <사유의 악보>가 독자를 미치게하거나 푸념하게 하는 책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어느 대목은 어찌나 즐거운지 로시니의 오페라를 듣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살짝 들려 드리면 이렇다.

     
  "신이 존재한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 기독교에 비해, 없는데도 마치 '있는 듯이'제사를 올리는 저 공자의 유물론은, 그래서 얼마나 우월한가....그래서 저들은 신에게 아무것도 따질 수 없는 반면, 나는 어제 제사 내내 속으로 구시렁거리면서 변변찮은 영력을 지닌 조상님을 이것저것 따지고 대들 수 있었던 것이다(조상이 돌본다고?)" (7악장, 불가능한 대화를 위한 자동번역기_261)  
     
라든지
     
  "이상하게도 필요란 언제나 적당함이라든지 중간쯤이라든지 하는 것을 전혀 모른다. 언제나 필요는 그 이상을 필요로 한다. 필요는 그래서 무엇을 채우는 것이라기보다는 항상 비어 있는 곳을 찾아내고 만들어낸다....어쩌면 이를 두고 필요의 일반이론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요는 나로 하여금 욕망의 충족보다는 욕망의 결핍을 알게 해준다, 뼈아프게.(정신은 뼈다)." (7악장, 불가능한 대화를 위한 자동번역기_269)  
     
유쾌하지 않은가. 익숙한 것들의 전복.

여전히 달리는 하니_종곡, 입이 없는 것에 귀를 귀울여라, 그리고 뭐든 활용하라.

모든 악장에 대해 하나하나 공들여 대답하고 싶었고, 저자의 질문을 뒤집어 보고자 노력했다.
8악장 초월의 유물론, 변성의 무신론,은 박상률의 문학을 다시 한 번 읽고 하나하나 짚어보고 싶었고, 10악장 불확실한 광장에서 나눈 불편한 우정, 역시 승산은 없지만 거론된 작가들의 이야기와 여전히 떠돌고 있는 문학의 '순정성'에 대해 시간을 들여 다시 생각을 정리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들을 이 공간에 다 옮기는 것은 무리한 일이고, 어쩌면 죄다 '오답'만을 표기한 답안지를 들고 있는 그런 막막함과 쪽팔림을 경험하게 되는 일일 수도 있다. 실은 더 부끄러울 일도 없지만 그래도 나는 늘 내가 창피하고 창피하다는 사실이 또 창피하다.
 
여튼, 이제 종곡을 듣는다. 혹은 읽는다. 내가 내 생각들을 이렇게 딱 꼬집어 쓸 수 없는 사람이었는지 매번 호들갑을 떨며 놀라지면 역시나 또 놀란다. 그럼에도 종곡에서 얻은 어떤 한 문장이 있다면 그리고 마땅치는 않지만 굳이 애를 쓰며 표현한다면 그것은 '몰락'에의 권유, 흥건하지만 침묵하고 있는 여전히 뜨거운 피,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잠시 신형철의 어떤 글들이 떠오르기도 했고, 김영민의 어떤 독한 문장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여튼 나는 '몰락'혹은 '절멸'의 어떤 상태와 그것을 대해는 태도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유는 개인적인 것이라 접는다.
좌우지간에 이 한 권의 뜬금없고 독한 책은 너무 많은 것들을 '조근조근' '잘근잘근' 생각하라고 권한다. 그리고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함께(나는 '중독'이라고 쓰여있는 글자들을 '함께'라고 읽었다) 보자고 꼬시는 것 같았다. 그 유혹에 화답하기로 작정은 하였으나 언제 체념이라는 놈이 역습할 지는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동시에'맹인직문'이라는 말이 있듯이 어쩌면 나는 어떤 문을 그것도 정문을 통과할지도 모른다는 맥락없는 희망을 품는다. 알면 다치고 모르면 썩겠지만, 그 중간에 어떤 샛길이 있지 않을까. 이사만루와 무타무주 사이의 공처럼. 팽팽한 긴장의 샛길. 뭐 그런.  

사족1 : 저자의 어떤 문장들은 시인의 것이었다. 옮기고 싶지만 아까워 싫다.
사족2 : 이것은 서평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글이지만 더는 쓸 수 없다. 나는 늘 실패하니까.
사족3 : 책 274쪽의 포스터, 불온삐라를 보면 즉시 신고합시다!를 본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삐라뿌리듯이 뿌릴 것이다. 삐라를 줍는 긴장과 즐거움을 아니까. 실제로 나는 5살에 송추에서 삐라를 한 바가지 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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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치 2011-05-03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으, 저에겐 왠지 무시무시한 책이에요 ;; 인용하신 문장들로만 봐도 도저히 한국어로 사유한 것 같지가 않아서 ...

굿바이 2011-05-04 14:25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그럴리가요 저도 읽었는데요~
한국어로 사유하지 않은 것 같다,는 말씀 무슨 의미인지 대충은 알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한 번 읽어보셔요. 제가 읽은 책을 보내드릴 수도 있는데, 워낙 밑줄이 많아서... 읽고 싶으시면 말씀하세요. 삐라 뿌리듯이 선물해 드릴께요.

람혼 2011-05-05 09:52   좋아요 0 | URL
또치님, 반갑습니다! ^^ 안 그래도 '한국어'와 관련된 이런저런 불평들(?)을 듣곤 하는데요, 이에 관해 제 입장을 말씀드리자면, 제가 특히 제 책 5악장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저는 '순수한 한국어'란 없다는, 따라서 더 일반적으로는 '순수한 국어'란 없다는 기본적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고유의' 한국어라고 알고 있는 것 역시 넓은 의미에서의 '번역', 곧 언어들 사이의 어떤 '이행'을 통해 성립된 것이고 이는 현재 여러 나라들의 '국어'들 또한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순수한 한국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국민국가가 존재할 수 있기 위한 환상의 장치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이 자체가 나쁜 것은 물론 아니지만, 여기에는 사유할 거리가 대단히 많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제 책이 "한국어로 사유한 것 같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아마도 제 책 자체가 그러한 '한국어'의 환상에 도전하고 시비를 걸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 문체도 그러하고요.

반딧불이 2011-05-03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쓰셨군요. ㅋㅋ

굿바이 2011-05-04 14:26   좋아요 0 | URL
네 ㅜ.ㅜ
반딧불이님의 글도 무척 기대가 됩니다^^

람혼 2011-05-04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스스로는 시인의 영혼으로 쓰고 싶다고 생각하여 쓴 문장들이 있었는데, 그 점을 알아봐주시고 느껴주시니 어떻게 감사와 공감의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야말로 늘 어떤 실패가 예정된 오답의 길을 간다는 느낌을 갖고 있는데, 아마도 바로 이 점이 제가 계속 중독의 이중적 의미를 권유하고 또한 항상 어떤 몰락의 오솔길을 권유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들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므로 이렇듯 깊은 감정이입과 선연한 동병상련을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글을 만났을 때, 저는 어쩌면 오히려 묘하고 짠한 어떤 연대의식을 느끼게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깊고 섬세하게 읽어주셔서, 그리고 그 결을 따라 새롭게 또 다른 사유의 길을 내주셔서,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렇지만 너무 하십니다'라는 태그에서는 실로 오랜만에 파안대소했습니다.^^

또치 2011-05-04 12:29   좋아요 0 | URL
허걱;; 저자가 보고 계신데 난 바보 인증을 했어 ㅠㅠ
저는 람혼님 책은 까막눈이라 못 읽지만 레나타 수어사이드 음악은 무척 좋아합니다. <단식광대>랑 <경성연가> 자주 흥얼거려요. 음반 기다린 지 오래됐습니다. 내시면 제가 석 장 삽니다. (다른 분 서재에서 막 생떼..)

굿바이 2011-05-04 14:36   좋아요 0 | URL
람혼님 제가 웃겨드린 거 맞나요? 이거 좀 신나는데요~^^

우선, 책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제가 아는 것이 짧아 그 재미와 울림을 고스란히 느낄 수 없음이 아쉽고 민망하고 그랬습니다. 물론 그렇기에 자극을 받을 수 있고 조금이라도 더 알아가려고 애쓰겠지만 언제나 후회스럽네요. 무지는 나의 힘,이라고 떠들 일이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어떤 문장들은 시처럼 울림이 컸습니다. 물론 음악을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서 감성의 섬세한 결을 갖고 있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그래도 이러시면 안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열등감에 폭발할 지경이었습니다. ㅜ.ㅜ
여튼, 앞으로도 건필하시고 좋은 음악도 많이 들려주시길 바랍니다.
또치님이 음반 기다리고 있습니다. :)

람혼 2011-05-05 09:55   좋아요 0 | URL
또치님: '바보 인증'이라뇨, 무슨 말씀을... 관심 가져주셔서 얼마나 감사한데요.^^ Renata Suicide의 음악을 좋아해주셔서 너무 반갑고 감사합니다. <단식광대>와 <경성연가>를 좋아하신다니, 제게 너무 큰 기쁨이고 영광입니다. 조만간 단독 공연을 한 번 할 텐데, 그때 찾아주신다면 너무 반갑고 즐거울 것 같습니다.^^ 앨범은 준비 중에 약간의 난항을 겪고 있는데, 아마도 올해 안에는 발매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봅니다.^^

람혼 2011-05-05 10:02   좋아요 0 | URL
굿바이님: '이해할 수 없음'이 일종의 서론이자 결론으로 제시되는 리뷰들도 아주 가끔 보면서 저자로서 일종의 작은 절망을 경험하곤 했는데요, 반대로 굿바이님처럼 섬세하고도 창조적으로 읽어주신 리뷰들을 보면서 정말 큰 힘을 얻게 됩니다. 제게 다음 글을 쓸 수 있는 커다란 원동력을 주셨습니다. 이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저는 책 뒤에 숨지 않고 계속 이렇게 '등장'해서 제 책에 서려(?) 있는 난해함의 요소들을 많은 분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해소하고 싶은, 아니 어쩌면 더욱 심화시키거나 증폭시키고 싶은, 심지어 악화(?)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제게 그 심화, 증폭, 악화란 아마도 독이 약이 되는 변성의 과정일 것입니다. 그 변성의 대화와 이야기들이 제게 소중한 이유입니다. 우리의 이 대화와 이야기들이 삐라처럼 창궐하기를, 함께 기원합니다! ^^

쉽싸리 2011-05-04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데요.(순전히 질투심때문에 좀처럼 추천을 하지 않는 저이지만 클릭합니다. ^^)

맹인직문의 겸손을 말씀하셨지만 '정문'을 돌파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아니, 벌써 돌파하신거 아닌지 싶습니다.
여러가지 화두(치고는 좀 많지만)를 던져준 람혼님 덕분에 이 봄이 더 풍요로워 진것 같습니다.

삐라는 주워서 어찌케 하셨어요?

굿바이 2011-05-04 14:44   좋아요 0 | URL
좋다고 말씀해 주시니 정말 좋은데요 :)

정말 람혼님 덕분에 이 봄이 한결 풍성해진 느낌입니다.

송추에 몇 개월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 근처에 산이 있었습니다. 여튼 그 산 정상에 군부대도 있었던 것 같아요. 삐라를 줍다가 산에서 길을 잃었는데 다행히 군인 아저씨들을 만났답니다. 무지하게 서럽게 울면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삐라를 줍다 길을 잃은 저를 집까지 데려다 주세요'라고 했습죠~ 제가 주운 삐라 한 바가지와 저를 동시에 바라보며 어이없어하던 군인아저씨들의 모습이 잊혀지질 않네요. ㅋㅋㅋㅋㅜ.ㅜ

람혼 2011-05-05 10:03   좋아요 0 | URL
하하하, "조국과 민족을 위해"! ^^ 굿바이님의 유머 감각은 정말 발군입니다! 또 다시 크게 웃었어요.^^

웽스북스 2011-05-12 01:27   좋아요 0 | URL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삐라를 ㅋㅋㅋ 아 언니, 진짜 그랬어요?
그 애국소녀가 어쩌다 이렇게.... (응?)

ㅋㅋㅋㅋ 암튼 완전 웃겨요 ㅋㅋㅋ

꽃도둑 2011-05-04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쪽 좀 팔아도 되겠습니다...^^
람혼님도 쪽 팔고 다니시는데....굿바이 님도 같이.....ㅎㅎ(오해는 마세요..얼굴을 알려라 뭐 그런, 그럴 자격이 된다는 말입니다)
글 좋은데요. 서슬퍼런 칼로 아주 토막토막을 내셨군요. 난 그럴 엄두도 못내었지요.
그냥 퍼런 숲만을 보고 말았지요...아주 퍼렇고 구석구석 누리딩딩한! ㅡ.ㅡ

굿바이 2011-05-04 14:51   좋아요 0 | URL
퍼렇고 구석구석 누리딩딩한! ㅎㅎㅎㅎㅎㅎ 꽃도둑님 표현에 졸음이 쏙 가시게 웃었습니다.

이제야 다른 분들 글을 읽습니다. 집에 일이 좀 있어서 서평도 늦어졌구요.
여튼 마지막 책까지 즐거웠습니다. 그나저나 다른 이유로도 충분히 쪽팔려서 더는 팔아먹을 얼굴도 없습니다. 엉엉~

람혼 2011-05-05 10:04   좋아요 0 | URL
꽃도둑님 말씀대로, 제겐 이렇게 함께 '쪽을 파는' 일이 정말 즐겁고 소중합니다.^^ 모두, 너무 섬세하고 세심하게 잘 읽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One.  
황군이 2박3일 교육을 마치고 돌아왔다. <세련되고 멋진 팀장으로 거듭나기>가 주제였던 모양이다. 여튼 다른 건 잘 모르겠고, 자꾸 이상한 미소를 짓는다. 자연스러운 미소짓기를 배웠다고 하는데 교육을 가기 전 보다 더 이상해진 것 같다. 볼근육과 눈근육 그리고 입꼬리 올리기 방법까지 내게 보여주며 열심히 연습을 한다. 황군의 노력을 팀원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놀리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그렇지만 황군은 말한다. "나는 팀장이다."  

Two.
후배 J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월의 신부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아직 살림을 장만하지 못했다는 후배는 물건 사는 일을 좀 도와달라고 했다. 어머니가 안계시고 형제도 없는 관계로 좀 막막했던 모양이었다. 리스트가 있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한다. 기억을 더듬고 후배의 예산을 감안해 살림살이 목록을 만들었다. 이메일로 보내줬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J가 운다. 나는 울지말라고 했다. 언니들은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거라고. 큰 도움은 안되도 자잘하게 아쉬울 때 그렇게 손 내밀라고 언니들은 있는 거라고. 그러니까 "나는 언니다."  

Three.  
우리 예쁜 조카 귀연양이 말한다. 5월은 어린이 세상이니까, 어린이의 요구를 들어달라고.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배려가 권리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귀연양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다시 말한다. 그러면 부탁을 하겠단다. 아무래도 나는 귀연이를 이길 수 없는 모양이다. 부탁할 것이 뭐냐고 물었더니, 5월 한 달 동안 같은 책을 읽고 그 감상을 토론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아~ 이모가 아무리 만만해도 참.... 여튼 어떤 책을 읽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귀연이가 제안한 책의 제목을 듣고 나는 거의 동시에 "네 요년~!"하고 소리를 질렀다. 귀연이는 키득거린다. 그러나 나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니까 "나는 이모다."  

Four.  
이렇게 봄바람이 부는 날이면 어김없이 The Four tops의 I Can't Help Myself (Sugar Pie, Honey Bunch)를 듣는다. 단언하건데 나는 저 시절에 태어났어야 했다. 그러니까 "나는 모타운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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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1-04-25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정체성들이에요. 나는 언니다에서 살짝 뭉클~!
귀여운 조카가 부탁한 책 제목은 뭔가요?
배려가 권리가 될 수 없다는 말은 명언이에요!

굿바이 2011-04-26 09:48   좋아요 0 | URL
우리 귀연양이 같이 읽자고 한 책은, 그러니까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입니다.
제 책꽂이에 있는 책을 몇 번 만지작거리는 것은 봤지만, 설마 저 책을 읽자고 할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ㅜㅜ

웽스북스 2011-04-26 10:09   좋아요 0 | URL
강귀연 짱이네요 ㅋㅋㅋㅋ 후기도 꼭 들려주세요~

굿바이 2011-04-26 11:24   좋아요 0 | URL
나는 가끔 귀연이가 걱정이야, 뭐랄까 저러다 빨리 지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 어쩌면 내 유년시절이 자꾸 어른거려서 그럴 수도 있고.
물론 우리 귀연이는 나와 다른 아주 다른 아이고, 또 매우 다르게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 혹은 기도가 있지만 그래도 불안한 순간이 많아.

그렇지만 귀연이는 짱이야!!! 후기는 5월 말에 올릴께. 개.봉.박.두. :)

치니 2011-04-25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려가 권리가 될 수는 없다 - 반드시 외워 두었다가 써먹을 겁니다! ㅇㅎㅎ

굿바이 2011-04-26 14:56   좋아요 0 | URL
언젠가 금요일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배려를 권리로 착각하고 더욱 당당해지는 사람들의 행동이 마음에 걸린다구요.그러면서 생각했는데, 저는 아무래도 생활우파가 아닌가 싶어요 ㅜㅜ

다락방 2011-04-26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무래도 나는 귀연이를 이길 수 없는 모양이다' 라는 문장이 좋아요. 히히.

굿바이 2011-04-26 09:53   좋아요 0 | URL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아요 :)
그나저나 다락방님의 천사같은 조카도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나요?

paviana 2011-04-26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굿바이님
저렇게 귀여운 조카라면 <존재의 삼십가지 거짓말>이라도 같이 읽을 거 같아요.
제 조카는 뽀뽀하려고 다가가면 제 머리채를 확 낚아쳐서 바로 입으로 가져가 버린답니다.
언제쯤 저런 대화가 가능할지....

굿바이 2011-04-27 11:0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paviana님 ^^

우리 조카들도 말을 배우기 전에는 지금보다 신체적인 접촉을 훨씬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뽀뽀도 자주 하고, 꼭 안아주기도 하고. 이제는 제법 커서 의사를 꼭 물어봐야 해요.
대화가 가능해지면 새로운 세계가 열리지만 뭐랄까, 원초적인 재미를 잃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합니다 :)

風流男兒 2011-04-27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드디어 팀장의 조건을 완벽하게 구비하셨군요. 멋지신데요 ㅋㅋ

굿바이 2011-04-27 11:05   좋아요 0 | URL
지켜보는 나는 어처구니없소. 이번 달도 어김없이 숙제는 내가 하오 ㅜㅜ

흰그늘 2011-04-29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번에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서 낙관할 수 있다..' 이 말을.. 여전히 생각하고 있는 중이지만.. 오늘은 또 하나.. '배려가 권리일 수는 없다.' 는 말을 곱씹고.. 곱씹어 봅니다..

삶의 여유로움이 없고.. 게을러.. 책을 읽지 않는 요즘.. 저로서는 생각을 해 볼수 있는
말들에.. 참.. 고마움을 배우는 나날들입니다..^^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영어공부 한지가 오래 되어서 그럽니다..
한영사전도 집에 없군요.. 흰 그늘 을 영어로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런지요
.. 제.. 기초적인 단어로는.. white... shade.. 정도 밖에 생각나지 않는데.. 어떤 좋은.. 단어가 없을까 해서요..^^

굿바이 2011-05-02 13:08   좋아요 0 | URL
흰그늘길님, 영어라 하시면 저는 아는 바가 없는지라...ㅜ.ㅜ

혹시, '흰 그늘'이 김지하의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에서 의미를 빌려오신 건지요? 그렇다면, 흰 그늘,은 주몽신화에 나오는 유화를 따라다닌 빛을 의미할 수도 있겠고, 더 나아가 김지하씨의 '빛을 품은 어둠'을 반영하는 의미일 수도 있겠는데, 그렇다면 white shade는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의미를 정확히 알면 조금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죄송해요.

2011-05-02 1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03 1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태양의 서커스 : 바레카이
나타샤 아틀라스 (Natacha Atlas) 노래, 비올렌느 꼬라디 (Violaine Co / 유니버설(Universal)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서커스의 밤,을 말을 잊어버린 밤이라 부르고 싶었다.  
줄 하나에 의지해 추락하거나 비상하는 인간, 인간의 몸, 몸이 뿜는 에너지, 그리고 에너지들의 균형은 내가 속한 세상이 아닌 절대적으로 다른 매끈하고 신비한 세상,이 존재함을 증명하는 듯 싶었다. 그리고 그 풍경을 두고 나는 말을 잊었다. 다만, 나도 그들처럼 몸으로, 몸이 뿜는 에너지로 발화하고 싶었다. 아름답소, 그대들,이라고. 그러나 그럴 수 없는 현실은 또다시 나를 언어에 그리고 그들과 다른 풍경에 기대게 한다. 그것은 일종의 형벌이었다.  

바레카이는 짚시들의 언어로 어디든지,라는 뜻이다.  
어디든지! 어디든지,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바람처럼 가벼워야할 마음이 이내 출구없는 자유를 떠올리며 움츠려들었다. 그렇게 어디로 갈 수 있을까. 그들이 2시간 동안 연출한 신비한 숲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사랑과 종교가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음을 근거로 여전히 흔적이나마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인간의 실존이 어디든지,라는 환상의 연료가 되는 것인가.
말에 기대는 밤, 그 밤에 쏟아내는 불평들은 도착적이다.  

나는 늘 서커스를 모든 예술의 피날레,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무조건 탄성이 나오고 눈물이 흐르고 이내 다른 영감으로 이어져야 할 만큼 기막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장 강한 뼈와 근육이 외피없는 생명보다 유연하고, 날 수 없는 팔이 날개가 되고, 솟구쳐 오를 수 없는 다리가 지느러미가 되어 소리와 빛과 긴장 사이를 유유히 떠도는 것. 종교가 할 수 없는 다독거려진 죽음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창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묘한 빛을 발산하는 창 앞에서 세속의 두 시간은 짧고 아쉽다.  

이카루스가 추락한 어디든지 있거나 어디에도 없는 숲은 철거당한 그대와 나의 꿈과 닮았다.  
잠시나마 어디선가 썩지도 못하고 뒹구는 꿈들이 기묘한 모양으로 나뒹군다.  
서커스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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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04-19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레카이! 바레카이 바레카이 바레카이~

굿바이 2011-04-20 10:12   좋아요 0 | URL
어오~ :) 왠지 마법의 주문 같아요 :)

흰그늘 2011-04-19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참.. 좋아요..^^

.. 바레카이!

굿바이 2011-04-20 10:13   좋아요 0 | URL
늘 그렇게 읽어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흰그늘길님도 오늘은 봄날이시죠? :)
 
맨발의 완 선생 - 그때가 우리에게 가장 자신만만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 4
판샤오칭 지음, 이경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인간의 실존에 대한 독한 관찰과 성찰, 해학적인 세밀화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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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1-04-05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저 이거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어요 ㅋㅋ

굿바이 2011-04-06 11:22   좋아요 0 | URL
우왕~ 우리 완선생이 웬디에게도 사랑받겠구나 :)
 
에르미따
프란시스코 시오닐 호세 지음, 부희령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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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당한역사,거기서살아남은것들의괴기스러움은,어느곳이나같다,필리핀이건한국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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