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의 이해 - 제2판
Ribert C. Merton 외 지음, 박영석 옮김 / 시그마프레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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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M과 APT를 좀 더 알기 쉽게 비교해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각자의 균형가격결정모형을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도움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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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시 - 1976-1985 이성복 시집
이성복 지음 / 열화당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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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로야, 일어났으면 시를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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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자본론 - 정치와 경제의 이분법을 넘어서
심숀 비클러.조나단 닛잔 지음, 홍기빈 옮김 / 삼인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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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industry)과 영리활동(business)을 이렇게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구나. 설명할 수 있는 사람과 설명을 들어야 아는 사람의 이분법이란 이렇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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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으로 이번 주는 휴가다. 연구계획서 발표는 내용과 상관없이 마무리되었고, 참여하던 일거리도 모두 종료되었다. 전화가 오는지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늦잠을 자도 되고, 약속을 잡아도 된다. 신난다. 물론 이래저래 버티느라 너덜너덜해진 몸이 온갖 방법으로 태클을 걸지만 그것도 약이면 약으로 잠이면 잠으로 다스리면 된다. 이또한 신난다. 

 

시간이 허락하면 하려고 했던 일들은 많지만 지금은 그저 뒹굴거린다. 아침은 아침으로 저녁은 저녁으로. 그렇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뒹굴거리다 집안에 온기가 필요하다 싶으면 장을 보고 음식을 한다.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과 맛있게 먹는 내가 있어 이또한 신난다.

 

지난 월요일쯤 함께 공부하는 사람이 드라마를 보라고 그러면 뒹굴거리는 일이 훨씬 재미있을 거라며 드라마 한 편을 추천했다. 이미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라서 흐름을 따라가려고 다운을 받아서 보기 시작했다. 소녀의 웃는 모습이 예뻐서 아무 생각없이 보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웃는 모습에 집착하는 사람이구나 싶다. 내가 좋아했던 모든 소녀와 소년은 웃는 모습이 예뻤다. 그들은 내게 맑은 미간과 작아진 눈매 그리고 주름진 콧등과 하얀 치아로 삶의 에너지를 단 몇 초만에 전달했다. 어떤 풍광보다 어떤 분위기보다 나는 그들의 웃는 얼굴이 좋았다. 지금도 무언가 기억하고 싶을 때는 그들의 웃는 얼굴을 기억해낸다. 그것만으로도 신나고 가끔은 격하게 살고 싶어진다. 그게 얼마나 예쁜지.

 

여튼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웃는 모습이 예쁘다. 처음에는 그러면 된거지 싶었다. 그런데 드라마의 회차가 거듭될수록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뭘까 궁금해졌다. 혹은 드라마 곳곳에 흩어져있는 작가의 기억이라면 기억이고, 욕망이라면 욕망이고, 의지라면 의지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인지? 저 쨍한 미소를 지닌 소녀를 데리고 와서. 하늘 아래 새 것이 뭐 있겠나 싶으니 설정을 가지고 뭐라 할 생각은 없으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좀 신선해도 되는 것 아니겠는지요.

 

작가님, 상상하는 것만으로 따지만 제 유치함을 당신은 이길 수 없습니다. 단언컨데 제가 이깁니다. 뭐 개인적으로 만난 적 없고 비교한 적 없으니 이것도 제 유치한 승부욕이라 하면 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여튼 그렇지만 그 유치함을 혼자 고이고이 모셔두는 것과 세상에 풀어놓는 것은 다릅니다. 이 유치한 상상도 생물이라서 의도와 다르게 자라고 번성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좀 수위를 조절하실 생각은 없으신지. 

 

아니면 정녕 중력보다 더 큰 힘으로 끌어당기는 사랑에 목숨마저 기꺼이 내놓을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혹은 실로 그런 사랑이 있다고 믿거나 그런 사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염원한다면, PPL이라도 조금 줄여주실 수는 없으신지. 뭐 저의 재미를 위해 작가님에게 너무 많은 걸 주문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요리사에게 레시피를 바꾸라는 건 어딘지 건방진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입맛에 안맞으면 안먹으면 그만인 것을. 무례를 용서하시길. 드라마 이야기는 여기까지.

 

여튼 다시 돌아와

웃는 모습이 예쁜 내 소녀와 소년들은 제법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내게 눈부시다. 그리고 그들 덕분에 어제도 살았고 오늘도 산다. 그러니 작가의 말을 빌려오면 그들 모두가 내게 신(神)인지도. 그러니 덕분에 나는 신들의 세상에 살고 있고. 그것도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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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6-12-28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뒹굴거릴 수 있다니, 부럽습니다.
여유가 생겼을 때 해야지 생각했던 일들,
막상 여유가 생겨도 잘 손에 안 잡히더라구요.
그냥 단순히 뒹굴거리는 거 저도 완전 좋아하는데요.
30일까지 꼬박 출근도 해야하고,
출근하면 또 정신없이 일해야 하는 일상이 슬프네요.

굿바이 2016-12-29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이 어수선한 시절 잘 보내고 계신가요? 안부를 묻는 것도 조심스러운 날들입니다.
매일 출근하는 분들에게 죄송할만큼 열심히 뒹굴거리고 있습니다. 해가 바뀌면 다시 생계와 학업을 위해 치열해지겠지만 지금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해. 숫자로 기억하지 않고 그저 그해라 기억하는 유일한 그해. 양희은 여사는 '내 나이 마흔살에는'을 불렀다. 절묘한 암시였을까. 그러나 그해 나는 넋 나간 대학생이었고, 마흔살이라는 나이가 상형문자처럼 읽히던 때였다. 뭐 그럴 수 있었다. 사랑에 빠져 있었으니까. 어찌되었건 기억하건데 노래는 '봄이 지나도 다시 봄, 여름 지나도 또 여름'으로 시작했다. 도대체 이렇게 맹물같은 노래라니. 봄이 지나도 다시 봄이라니, 여름 지나도 또 여름이라니.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있겠냐. 나는 우주의 봄을 살고 있는데 말이지. 곧 우주의 여름이 올 것이고 그 이후는 그냥 우주일 뿐이데. 우주. 알 수도 없고 알 수 있는 밀도와 사이즈도 아니고. 에라이 그냥 나는 우주의 봄이야, 뭐 이렇게 넋이 나가 있었다. 연분홍 치마를 입고 바람부는 언덕에 오르지 않아서 그저 다행인 시절이었다.

 

'봄이 지나도 다시 봄, 여름 지나도 또 여름'이라는 사실을 나는 언제 아차차 소리를 내며 알았을까. 첫사랑을 곰국처럼 달게 우려먹기 시작하던 때였을까. 이제는 하도 자주 우려 맹물처럼 말간 그 기억들을 말이다. 언제였을까. '오늘이 내일과 별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김훈보다 먼저 알았을까 늦게 알았을까. 언제였을까. 그런데 김훈은 왜 불쑥불쑥 중요했을까. 꽃을 피게 하는 힘이 천연덕스럽게 꽃을 몰아간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울었던가, 웃었던가. 그나저나 이런 것들이 뭐 그리 중요한가. 그러니까 나는 다시 살 집을 구하기 위해 누군가의 기억과 냄새가 떠도는 집들에 발을 들여놓아야 하고, 내가 기거하던 집에 부동산중개소 사장과 나처럼 집을 구하는 젊은 부부가 오고, 뭐 이런 어수선한 날 이런 것들이 여전히 중요한가. 차라리 부동산 시세를 보는 게 옳은가.

 

눈을 감고

 

박 준

 

눈을 감고 앓다보면

오래전 살다 온 추운 집이

 

이불 속에 함께 들어와

떨고 있는 듯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날에는

길을 걷다 멈출 때가 많고

 

저는 한 번 잃었던

길의 걸음을 기억해서

다음에도 길을 잃는 버릇이 있습니다

 

눈을 감고 앞으로 만날

악연들을 두려워하는 대신

 

미시령이나 구룡령, 큰이새령 같은

높은 고개들의 이름을 소리내보거나

 

역(驛)을 가진 도시의 이름을 수첩에 적어두면

얼마 못 가 그 수첩을 잃어버릴 거라는

이상한 예감들을 만들어냈습니다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넣어 하나하나 반찬을 물으면

함께 밥을 먹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손을 빗처럼 말아 머리를 빗고

좁은 길을 나서면

 

어지로운 저녁들이

제가 모르는 기척들을

 

오래된 동네의 창마다

새겨넣고 있었습니다

 

몇 시간 전 다녀간 젊은 부부는 집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그럴 것이다. 저녁녘의 한강을 마주하고 서서 다른 생각이 들겠는가. 나 역시 그러했으니 그들도 그러하리라. 그래도 나처럼 삶이 액자이고 저녁 노을이 그림일 수는 없으니 물을 건 물어야지. 선한 눈매의 예쁜 새댁이 묻는다. 춥지 않나요. 내가 대답할 틈도 없이 부동산중개소 사장이 대답한다. 그럼요. 안추워요. 그럴 리가. 나는 새댁을 빤히 보고 말한다. 춥습니다. 올 겨울 추웠습니다. 그렇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결국은 견딜만 했습니다. 새댁은 웃는다. 부동산사장도 후렴처럼 웃는다. 그대는 왜 웃소,라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내 나이 마흔살에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병아리같은 새댁이 또 묻는다. 여름에는 시원한가요. 그럼요. 바람이 달아요. 사실이다. 이 집을 통과하는 바람은 달다. 그렇게 바람을 맞으며 달을 보던 여름 밤 종종 깊이 잠들곤 했었다. 약도 없이. 칭얼거리지도 않고.

 

꾀병

 

박 준

 

나는 유서도 못 쓰고 아팠다 미인은 손으로 내 이마와 자

신의 이마를 번갈아 짚었다 "뭐야 내가 더 뜨거운 것 같

아"  미인은 웃으면서 목련꽃같이 커다란 귀걸이를 걸고

문을 나섰다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

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렵게 잠이 들면 꿈

의 길섶마다 열꽃이 피었다 나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

은 듯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

 

힘껏 땀을 흘리고 깨어나면 외출에서 돌아온 미인이 옆에

잠들어 있었다 새벽 즈음 나의 유언을 받아 적기라도 한

듯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햇빛이 먼

저 와 들고 나는 그 볕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

 

부동산중개소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후에 다녀간 부부가 계약을 하고 싶단다. 이사를 가겠다는 말을 하고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다. 묘하다. 이사를 가겠다고 마음을 굳힌 것도 이야기를 꺼낸 것도 나인데 내가 제일 서운하다니. 이건 또 뭘까나. 그냥 해 본 소리였나. 계속 살고 싶었었나. 그래도 할 수 없는 일. 그나저나 이제 집을 구해야 할 순서인데 까마득하구나. 양희은여사는 마흔살에 알고 있었다. '우린 언제나 모든 것을 떠난 뒤에야' 안다는 사실을. 양희은여사가 알고 있던 사실을 페데르코 가르시아 로르카도 알고 있었다. '포플러나무들은 시들지만 우리한테 바람을 남겨 놓는다'고 말했으니. 분하다. 나만 빼고 저들은 다 알고 있었다니. 마흔으로 흘러들기 4년 전, 나는 이집에서 협박에 가까운 기도와 원색적인 뉘우침으로 밤과 낮을 보냈다. 그럼에도 어리석음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어쩌냐. 그런 것을. 그렇지만 그 어리석음이 결국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어주'기도 했었고, 한철 머물던 자리에 물결무늬를 남기기도 한다. 또 오는 봄은 가고 오는 봄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나는 아직 마흔이 아니고.

 

마음 한철

 

박 준

 

미인은 통영에 가자마자

새로 머리를 했다

 

귀밑을 타고 내려온 머리가

미인의 입술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내색은 안 했지만

나는 오랜만에 동백을 보았고

미인은 처음 동백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 여기서 한 일 년 살다 갈까?"

절벽에서 바다를 보던 미인의 말을

 

나는 "여기가 동양의 나폴리래" 하는

싱거운 말로 받아냈다

 

불어오는 바람이

미인의 맑은 눈을 시리게 했다

 

통영의 절벽은

산의 영정(影幀)과

많이 닮아 있었다

 

미인이 절벽 쪽으로

한 발 더 나아가며

내 손을 꼭 잡았고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미인의 손을 꼭 잡았다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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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3-03-14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집도 서운할게다. 그 집도 자신의 전부를 네게 쥐여주고, 그것을 온통 받아들일 줄 알았던 네가 그리울게다. 그럴꺼야..

좋은 집을 만나길 나도 기도할께..한철의 기간이 얼마이든 (이 참에 평생 머물 좋은 집과 조우할 수도 있을테니), 그 또 다른 한철 동안, 너와 서로 나눌 수 있는 집이 구해지길 기도한다. ~~

이 새벽, 네 마음이 스산하겠으나,
<이건 오롯이 나의 생각이지만 >바람이, 혹은 물결무늬가 남았으니 되었지.. 싶다..

때로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어쩌면 진짜는 아닌 것 같아서..

굿바이 2013-03-14 22:06   좋아요 0 | URL
이렇게 고마운 위로를 넙죽 받네! 염치가 참...
사는 일도 한철일텐데 뭐한다고 이렇게 고단한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잘 지내니? 감기 조심하고 뭐든 잘 먹고.
푹 쉬자. 내일도 살아야하니까.



웽스북스 2013-03-14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는 원래 '집'을 구하는 건 능력자잖아요. 여행에서만 통하는 게 아닐거에요.
그래도, 아쉽네요. 언니 집에서 밤의 한강을 보던 건 무척 좋았는데.

굿바이 2013-03-14 22:09   좋아요 0 | URL
그러게. 그 능력이라도 남아있어야 할 것인데!
다음에는 집을 지을까봐.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 집 지으면 하숙도 하고^^

흰그늘 2013-03-14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글이 좋아요^^

토지를 읽다가 통영의 옛사진을 본적이 있었는데.. '마음 한철'을 읽으니 문득 생각이 나네요
절벽에서 바다를 보던 미인과 토지의 임명희가 마음이 절벽이었을때 서 있었던 통영의 그 바닷가.. 개인적으론 임명희가 서있었던 그 바닷가가 더 와닿았드랫어요^^

집도, 바람도.. 누군가의 기억과 냄새는 어디에든 있는가 봐요?..

밥준.. 저는 어디에 머무를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밥을 지어주는 곳에 머물러야지요^^

한철과 전부.. 그리고 마음..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어질 것 같은걸요..

굿바이 2013-03-14 22:13   좋아요 0 | URL
아~! 통영~! 통영,이라는 말만 들어도 저는 좋습니다.
<토지>를 읽은 게 10년은 더 된 것 같아요.
기억이 나기도 가물가물한 것들도 있구요.

'한철'과 '전부'는 제게는 같은 단어에요.
그래서 늘 이렇게 사는 지도 모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