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해. 숫자로 기억하지 않고 그저 그해라 기억하는 유일한 그해. 양희은 여사는 '내 나이 마흔살에는'을 불렀다. 절묘한 암시였을까. 그러나 그해 나는 넋 나간 대학생이었고, 마흔살이라는 나이가 상형문자처럼 읽히던 때였다. 뭐 그럴 수 있었다. 사랑에 빠져 있었으니까. 어찌되었건 기억하건데 노래는 '봄이 지나도 다시 봄, 여름 지나도 또 여름'으로 시작했다. 도대체 이렇게 맹물같은 노래라니. 봄이 지나도 다시 봄이라니, 여름 지나도 또 여름이라니.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있겠냐. 나는 우주의 봄을 살고 있는데 말이지. 곧 우주의 여름이 올 것이고 그 이후는 그냥 우주일 뿐이데. 우주. 알 수도 없고 알 수 있는 밀도와 사이즈도 아니고. 에라이 그냥 나는 우주의 봄이야, 뭐 이렇게 넋이 나가 있었다. 연분홍 치마를 입고 바람부는 언덕에 오르지 않아서 그저 다행인 시절이었다.
'봄이 지나도 다시 봄, 여름 지나도 또 여름'이라는 사실을 나는 언제 아차차 소리를 내며 알았을까. 첫사랑을 곰국처럼 달게 우려먹기 시작하던 때였을까. 이제는 하도 자주 우려 맹물처럼 말간 그 기억들을 말이다. 언제였을까. '오늘이 내일과 별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김훈보다 먼저 알았을까 늦게 알았을까. 언제였을까. 그런데 김훈은 왜 불쑥불쑥 중요했을까. 꽃을 피게 하는 힘이 천연덕스럽게 꽃을 몰아간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울었던가, 웃었던가. 그나저나 이런 것들이 뭐 그리 중요한가. 그러니까 나는 다시 살 집을 구하기 위해 누군가의 기억과 냄새가 떠도는 집들에 발을 들여놓아야 하고, 내가 기거하던 집에 부동산중개소 사장과 나처럼 집을 구하는 젊은 부부가 오고, 뭐 이런 어수선한 날 이런 것들이 여전히 중요한가. 차라리 부동산 시세를 보는 게 옳은가.
눈을 감고
박 준
눈을 감고 앓다보면
오래전 살다 온 추운 집이
이불 속에 함께 들어와
떨고 있는 듯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날에는
길을 걷다 멈출 때가 많고
저는 한 번 잃었던
길의 걸음을 기억해서
다음에도 길을 잃는 버릇이 있습니다
눈을 감고 앞으로 만날
악연들을 두려워하는 대신
미시령이나 구룡령, 큰이새령 같은
높은 고개들의 이름을 소리내보거나
역(驛)을 가진 도시의 이름을 수첩에 적어두면
얼마 못 가 그 수첩을 잃어버릴 거라는
이상한 예감들을 만들어냈습니다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넣어 하나하나 반찬을 물으면
함께 밥을 먹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손을 빗처럼 말아 머리를 빗고
좁은 길을 나서면
어지로운 저녁들이
제가 모르는 기척들을
오래된 동네의 창마다
새겨넣고 있었습니다
몇 시간 전 다녀간 젊은 부부는 집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그럴 것이다. 저녁녘의 한강을 마주하고 서서 다른 생각이 들겠는가. 나 역시 그러했으니 그들도 그러하리라. 그래도 나처럼 삶이 액자이고 저녁 노을이 그림일 수는 없으니 물을 건 물어야지. 선한 눈매의 예쁜 새댁이 묻는다. 춥지 않나요. 내가 대답할 틈도 없이 부동산중개소 사장이 대답한다. 그럼요. 안추워요. 그럴 리가. 나는 새댁을 빤히 보고 말한다. 춥습니다. 올 겨울 추웠습니다. 그렇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결국은 견딜만 했습니다. 새댁은 웃는다. 부동산사장도 후렴처럼 웃는다. 그대는 왜 웃소,라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내 나이 마흔살에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병아리같은 새댁이 또 묻는다. 여름에는 시원한가요. 그럼요. 바람이 달아요. 사실이다. 이 집을 통과하는 바람은 달다. 그렇게 바람을 맞으며 달을 보던 여름 밤 종종 깊이 잠들곤 했었다. 약도 없이. 칭얼거리지도 않고.
꾀병
박 준
나는 유서도 못 쓰고 아팠다 미인은 손으로 내 이마와 자
신의 이마를 번갈아 짚었다 "뭐야 내가 더 뜨거운 것 같
아" 미인은 웃으면서 목련꽃같이 커다란 귀걸이를 걸고
문을 나섰다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
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렵게 잠이 들면 꿈
의 길섶마다 열꽃이 피었다 나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
은 듯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
힘껏 땀을 흘리고 깨어나면 외출에서 돌아온 미인이 옆에
잠들어 있었다 새벽 즈음 나의 유언을 받아 적기라도 한
듯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햇빛이 먼
저 와 들고 나는 그 볕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
부동산중개소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후에 다녀간 부부가 계약을 하고 싶단다. 이사를 가겠다는 말을 하고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다. 묘하다. 이사를 가겠다고 마음을 굳힌 것도 이야기를 꺼낸 것도 나인데 내가 제일 서운하다니. 이건 또 뭘까나. 그냥 해 본 소리였나. 계속 살고 싶었었나. 그래도 할 수 없는 일. 그나저나 이제 집을 구해야 할 순서인데 까마득하구나. 양희은여사는 마흔살에 알고 있었다. '우린 언제나 모든 것을 떠난 뒤에야' 안다는 사실을. 양희은여사가 알고 있던 사실을 페데르코 가르시아 로르카도 알고 있었다. '포플러나무들은 시들지만 우리한테 바람을 남겨 놓는다'고 말했으니. 분하다. 나만 빼고 저들은 다 알고 있었다니. 마흔으로 흘러들기 4년 전, 나는 이집에서 협박에 가까운 기도와 원색적인 뉘우침으로 밤과 낮을 보냈다. 그럼에도 어리석음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어쩌냐. 그런 것을. 그렇지만 그 어리석음이 결국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어주'기도 했었고, 한철 머물던 자리에 물결무늬를 남기기도 한다. 또 오는 봄은 가고 오는 봄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나는 아직 마흔이 아니고.
마음 한철
박 준
미인은 통영에 가자마자
새로 머리를 했다
귀밑을 타고 내려온 머리가
미인의 입술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내색은 안 했지만
나는 오랜만에 동백을 보았고
미인은 처음 동백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 여기서 한 일 년 살다 갈까?"
절벽에서 바다를 보던 미인의 말을
나는 "여기가 동양의 나폴리래" 하는
싱거운 말로 받아냈다
불어오는 바람이
미인의 맑은 눈을 시리게 했다
통영의 절벽은
산의 영정(影幀)과
많이 닮아 있었다
미인이 절벽 쪽으로
한 발 더 나아가며
내 손을 꼭 잡았고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미인의 손을 꼭 잡았다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