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의 공동체 - 신형철 산문 2006~2009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애먼 사람 많이 괴롭혔습니다. 문학 따위가 뭘 할 수 있냐고 주제넘게 숱하게 물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서둘러 문학도 문청도 모두 폐허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랄맞은 현실이 만든 폐허가 딱히 싫지도 않았습니다. 폐허 앞에서도 박수치는 사람들이 있더란 말입니다. 물정 모르는 그들의 환호가 고소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폐허 어디쯤의 조등弔燈 앞에서 이렇게 나직히 울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내 따뜻하고 아렸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가 울고 있는 줄 알았는지 궁금하십니까. 그의 비평에는 열등감도 허세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알았습니다. 그가 울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장욱의 시를 이야기하면서 "진실은 존재의 어떤 자세다" 라고 쓰셨더군요. 그 말이 몇 일 밤과 낮을 따라다녔는지 모릅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이장욱의 시집 한 귀퉁이에 저도 그렇게 썼으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때도 지금도 문학은 절망의 형식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전작 <몰락의 에티카>를 집었을 때 제 딴에는 그 느낌을 공유할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제목이 전부다,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어찌되었건 저는 "몰락의 에티카"라는 제목이 책의 거의 모든 것이자 문학의 거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김승옥과 이청준, 황지우와 강정이라는 이름이 그들의 저작을 그대로 들어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보니 신형철이라는 이름의 울림도 나쁘지 않군요. 그럼 이번 책의 제목<느낌의 공동체>는 어떠했냐구요. 말을 빌려오자면 단독성이 특수성으로 나아갔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특별한 문학이 아닌 어떤 문학에 대해서는 비슷한 느낌을 공유할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 느낌의 곁을 내주고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습니다. 물론 모든 문학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동일한 느낌도 아닐 것입니다. 그저 같은 계열에 놓인 그러나 꼭 일치할 필요도 없고 극하게 다르다고 할 수도 없는 그런 느낌일 것입니다. 동일한 느낌을 공유할 필요도 없고 공유한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니 말입니다.

       순서에 매이지 말고 책을 좀 볼까요.  
심보선의 <슬픔이 없는 십오 초>를 더듬는 장이었습니다. 이렇게 쓰셨더군요.

우리가 '엄살'이라 부르는 것은 아픔을 유난히 예민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화려하게 표현하는 능력이다. 이 '문제적 자아의 엄살'에는 계보가 있다. 5.16 이후 김수영의 시가 그랬고, 10년 전 황지우의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문학과 지성사,1999)가, 최근에는 장석원의 시집 <아나키스트>(문학과 지성사,2005)가 그러했다. 이 시인들의 시에는 공통점이 있다. 성자聖者는 못 되겠지만 죽어도 '꼰대'는 아니 될 것 같은 사람들이 쓰는 실존적 '깽판'으로서의 시. 그래서 '형'이라 부르고 싶어진다.....그러나 시적 엄살은 전염성이 높지만 흉내 내기는 어렵다. 아름다운 엄살 이전에는 숱한 몸살의 시간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게 사랑이라지만, 더 많이 아파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 시다.  -.p.126 
 
저는 '실존적 깽판'이라는 표현을 보고 웃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내 머리를 조아렸지만 말입니다. 여튼 시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한 사람만이 입성한다는 직관의 영역에 입성한 듯 싶더군요. 이럴 땐 저야말로 실존적 '깽판'을 거두고 그저 감탄과 존경을 바치면 되는 일이죠.   

안현미의 <옥탑방>을 이야기는 장으로 넘어가 볼까요. 
게다가 나이를 먹을수록 체험도 풍성해질 테니 인생을 모르는 핏덩이들은 더 기다려야 하겠고. 그러나 아니지. 중요한 건 체험의 부피가 아니라 전압이지. 무엇이건 더 강렬하게 체험할 수 있는 능력. 즉 감전感電의 능력. 그래서 생겨나는 언어, 그 언어에 흐르는 전류. 이건 나이와 아무 상관없어. 그 뒤로 20년 정도 더 살기는 했지만 사실상 랭보는 이미 십대 후반에 감전사한 거지. 감전의 천재가 자기 자신에게 타살된 거야. -p.206   

개인적으로 안현미의 시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한 시인의 가능성을 존중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비평이 꼭 날이 서있어야만 좋은 건 아니라는 것을 또 한 번 느끼는 대목이었습니다.  
 
최갑숙의 <밀물여인숙3>과 안시아의 <파도여인숙>에 대해 쓴 글도 좀 볼까요.  
그런 날에는 또 이런 남녀들의 뽕짝 같은 수작들이 위로가 된다. 나만 아는 그런 여인숙, 어딘가에 꼭 하나만 있어서, 사랑이든 신파든, 한 몇 달 살아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렇잖은가, 기적이 없는 세계에 신파라도 있어야지. -p.106 

이런 감성도 있었단 말입니까. 몰랐습니다. 알았으면, 순전한 가정이지만 알았으면 정말 오다가다 발목이라도 잡았겠습니다. 저는 늘 뽕짝 같은 수작에 들뜨는 사람이기에 말입니다.  
 
       책을 나름 필사할 수는 있지만 이곳에 다 옮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또한 문학을 이야기하는 비평가가 현정권이 용산에서 벌인 일을 말하고, 최진실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신경민의 멘트를 옮겨 적고, 가수인지 모르겠지만 여튼 가수 비가 부른 노래말을 논하는 것은 흥미롭다고 말해버리기는 아쉬웠습니다. 사유의 폭이 광폭이라고 하기에도 고종석의 흉내를 내는 것 같아 꺼림칙합니다. 아니 사유의 폭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합니다. 부당함 앞에서 침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지식인을 볼 수 있어 기뻤습니다. 저는 특정한 부조리 앞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며 그것을 중용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뜨거운 불구덩이에 빠지기를 희망하는 사람이기에 말입니다.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문학을 절망의 형식이라 말해주는 이가 있어 행복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시인들이여, 부디 사산死産되지 말고 기어이 태어나라"라고 주문하는 그 떨리는 목소리가 있어 나도 떨렸습니다. 그리보니 당신은 울고 있는 산파였는지 모르겠습니다. 폐허 속에서 태어난 것들을 기쁘게 받아 앉고 그들이 목도해야 할 절망의 현실을 울어주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창동의 <시>에서 "시를 쓴 사람은 양미자씨밖에 없네요."라고 말했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언젠가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지 모르는 '양미자'씨가 있는 한, 그리고 '양미자'가 사산되지 않고 태어날 것을 주문하는 산파가 있는 한 폐허에서 제가 본 불빛은 조등弔燈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것을 무어라 불러야 할 지 모르겠지만 정녕 조등은 아니었을 겁니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잘잘라 2011-05-20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꼭 씹어 먹는다,는 건 이런 거군요! 음..
굿바이님이 저자에게 보내는 연서 같아서 댓글로 끼어들기가 좀 민망하지만, 덕분에 저도 이 책을 읽어보싶어졌으니 고맙다는 인사로 기어이 한 줄 남기고 갑니다. 멋진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굿바이 2011-05-20 18:00   좋아요 0 | URL
제가 더 감사하죠^^
연서라고 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마음일 것 같아요. 이왕이면 비평도 문학적이면 좋겠는데 저자의 책은 전문성과 함께 문학성도 뛰어나서 읽기 불편하지 않아요.
메리포핀스님, 금요일이에요. 뭐든 즐겁고 편안하시길 바래요~


치니 2011-05-20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는 여차하면 눈물 바람부터 하니, 늙은 탓만 하기도 민망합니다. 암튼 또 울컥하게 만드셨어요. ㅠ

굿바이 2011-05-23 09:17   좋아요 0 | URL
저도 요새는 잘 울어요. 혼자 걷다가도 울고, 나무 보고도 울고....
아침에도 머리 감다가 울었어요. 정말 나이드는 탓만 하기에도 민망해요 ㅜㅡ

흰그늘 2011-05-20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다가.. 조등弔燈에 대한.. 생각들로 오랜 시간을 앉아있었드랬습니다..

그것을 무어라 불러주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떤.. 불빛은.. 오랜시간.. 품어왔었던..
그 무언가를 향하여..

나로하여금..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지..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누구나가 품은 '꿈' 은 다르지만.. 꿈조차 추워지는..

조등앞에서 서러워지는 날들에라도.. 여전히.. 마음에 '진심' 을 담아봅니다..^^
위의 글을 읽어며..








굿바이 2011-05-23 09:22   좋아요 0 | URL
그저 느낌으로 짐작만합니다.
상황을 알 수는 없지만, 꿈조차 추워지는 그런 세상은 아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진심'을 담는 분이 있다는 것이 든든하기만 합니다.
여름이 오고 있다고 하네요. 모쪼록 뭐든 즐거운 여름 보내셨으면 합니다 :)

2011-05-31 0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31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꽃도둑 2011-06-01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형철 님의 책이 나왔군요. 굿바이 님 리뷰 때문에 알았네요.
별 다섯개에다 그야말로 애정어린 마음이 촘촘하게 밀도있게 그려저 있네요.
리뷰 좋은데요! 감성 감성,,, 고것이 지금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굿바이 2011-06-02 11:12   좋아요 0 | URL
애정을 들키다니 저는 아직 멀었나 봅니다^^
요즘은 신형철씨 좋아하는 분들이 꽤 많아진 것 같습니다. 괜히 혼자 뿌듯해하고 있답니다. 그나저나 날도 더워지는데 건강하시죠?
 

마르탱 파주 지음, 이상해 옮김, 발레리 해밀 그림 / 열림원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이봄,느닷없이 핑크색 우산을 쓴 남자를 만나면 잠시 멈출 것,우연이 아닐 겁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웽스북스 2011-05-17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 버전 다시 나왔네요! 중간에 긴 제목으로 나와서 마음에 안들었었는데!!!
언니 저도 이 책 너무너무 좋아요~ ㅎㅎ

굿바이 2011-05-18 09:40   좋아요 0 | URL
우왕~ 나도나도. :)
 

그러니까 벌써 지난 금요일 
그러니까 각자 회사에 비슷한 거짓말을 했다. 월차라든가 휴가라든가 뭐 그런 것들을 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 이유없이 하루 쉬겠다고 말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니. 그래서 없는 병을 만들어 만났다. 물론 아프기는 했다. 봄인데 멀쩡하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그 중 나이 어린, 물론 그렇다고 해도 서른 중반인, P가 싱글벙글이다. 우리는 P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녀가 바람이 났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그런 광채는 볼터치나 하이빔으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빛이라는 것을 너무 잘~아니까. 그래도 짐짓 모르는 척 P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며 근자에 읽은 책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정유정의 소설과 신형철의 산문집이 대세인 것 같았다. 다들 <7년의 밤>에 대해 전혀 전문적이지 않은 소감을 말하고 <느낌의 공동체>을 복기하면서 낄낄거리거나 가끔 멍해지기를 반복했다. 드디어 P가 입을 열었다. 그럼 그렇지.  

물론 자질구레한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고 묻지도 않았다. 그저 잘해라, 열심히 해라, 뭐 그런 이야기가 있었고, P는 뭘 잘해야 하나요, 뭘 열심히 해야 하나요, 등등의 말도 안되는 질문을 속눈썹 끔벅거리며 제법 진지하게 물었다. 모르지, 낸들 아냐, 뭘 잘해야 하는지, 뭘 열심히 해야 하는지, 그냥 힘껏 해라, 라고 얼버무렸는데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창피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P는 실망하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나름 실용적인 질문을 했다.
"언니, 주말에 만나기로 했는데, 뭘 입을까요?"
물어보기는 앉아있는 언니 세 명에게 했건만, 다들 나만 바라보니 참! 
"그러게....."
옆에 있던 K가 진짜 의뭉스러운 눈빛으로 말한다. 
"야~야~ 그러지 말고 도움을 좀 줘라. P가 연애한다잖냐"
"P가 연애하면 나한테 떡이 생기냐, 아님 연봉이 오르냐, 아님 뱃살이 주냐?"
옆에 있던 L이 말한다.
"배가 아파서 뱃살이 줄지 않을까?" 
우리는 웃기지 않는 농담을 하고도 뻔뻔하게 웃고 있는 L을 약속이나 한 듯 쏘아 보았다.  

여튼 시작하는 연인들을 위한 복장규정,이라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마다 취향도 다르고 더 중요한 건 내 조언이 오히려 해로울 수도 있을 것 같아 제법 심각하게 고민하고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무조건 흰 블라우스에 검은 치마!"
K와 L은 동시에 나를 보고 합창하듯이 따진다.
"아야~ 왜 고무신도 신으라고 하지?"
이런 무식한 인간들하고 내가 입을 섞고 있다니...다행히 P는 뭔가 느낌이 온 모양이었다.
"언니? 어떤 블라우스 어떤 스타일의 치마?"
나는 K와 L의 구겨진 얼굴은 무시하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블라우스는 일단 단추부터 중요한데, 진주모양 단추가 좋아, 소재는 실크면 좋고, 되도록 몸에 잘 맞지만 부드러워야 하고, 중요한 건 긴팔이어야 한다. 락스를 쓴 것 처럼 하얀 것 말고 크림빛이 살짝 도는 것으로. 치마는 검은 쉬폰이나 실크로 주름이 있는 플레어가 좋고 정강이 중간에서 끊어지는 그래서 발목이 나와야 하지, 블라우스를 치마 속으로 넣어 입고, 신발은 발가락이 보이는 샌들이 좋겠다. 요즘 유행하는 검투사들이 신는 것 같은 그런 징박힌 거 신으면 안되고, 킬힐이니 그런 것도 안된단다. 자연스럽고 조용해 보이는 것으로 신으렴."
말이 끝나기도 전에 K가 나를 흘겨보며 말한다. 
"야~야~ 도인 나셨네, 야! 그러고보니 너 그런 옷 많지? 다 작업용이었냐?"
"나는 한평생 작.업.을 한 적이 없다. 이 무식한 것들아!" 

그러니까 벌써 지난 토요일
그러니까 아끼던 동생의 결혼식이었다. 학교 후배도 아니고 직장 후배도 아니니 결혼식장에서 내가 아는 사람을 만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얼마나 좋은지. 여튼 꼭 그럴 때면 그동안 입지 못하고 고이 모셔둔 옷들을 죄다 꺼내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하게 되는데, 나는 무려 일곱 벌의 원피스를 입어보고 도로 벗었다. 어떤 건 이제 나이와 어울리지 않고, 어떤 건 시상식에나 입고 갈 만 하고, 어떤 건 지퍼가 안올라가고, 어떤 건 장만옥언니나 입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런 걸 내가 왜 샀을까나. 그래서 그냥 늘 입는대로 바지를 입었다.

결혼식장에서 만나기로 한 이제는 식구같은 J는 푸른 원피스를 입고 왔다. 바삐 왔는지 볼이 붉다. 아~ 이쁘다. 나는 J에게 손짓을 해 위치를 알려주고는 생각했다. 그리고 금요일에 만난 P에게 문자를 보냈다. 
"데이트 장소에 푸른색 원피스를 입고 나가라. 그리고 약속장소까지 뛰어라!" 
P에게서 문자가 왔다. "언니, 미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미워하지 마라. 흰색이건 푸른색이건 이제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 나를 너까지 미워하면 우짜겠냐. 더군다나 나는 지금 예식장에서 갈비 한 점 못 먹었다!!!! 

예식장에 함께 있었던 H, L, J 그리고 나는 예술의 전당으로 향해 커피를 마시고, 약속이나 한 듯 저녁을 먹기로 했다. 다름아닌 매화반점! 다른 동네 사는 사람들도 한 번씩은 왔다 간다는 맛집이라는데 정작 동네 주민인 나는 가보지 못했다고 투덜거렸더니 모두 매화반점에 가는 것에 동의했다. 예상했듯이 거의 사십분 가량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칭따오 맥주와 무려 다섯 가지의 요리를 시켜 기다렸던 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오래오래 자리를 뜨지 않았다.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맛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 먹기에 좋았다. 물론 개인적으로 가지튀김을 먹을 수 있어 매우 흡족하였더라는. 

그리고, 여행에 대한 이야기들. 어디로 갈 지 고민했다. 그런데 어디면 또 어떠냐. 물론 이성복의 시를 운운하며 남해로 갈까 싶었는데, H가 이성복시인과 이승복어린이를 헷갈려하는 통에 남해는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언젠가 내가 H에게 보낸 연서에 분명 이성복시인의 시를 적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H는 그때도 이성복과 이승복을 헷갈려했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기형도는 또 어찌 기억할는지. 수학이나 건축에 나오는 명칭으로 알려나. 아이구나.   

* 이 글을 계속 쓰려고 했으나, 오늘 점심 식당에서 밥을 먹더가 돌을 씹었는데 하필이면 치료받은 치아에 걸렸다. 그리고 정말 어이없지만 떼웠던 치아의 부속물이 빠졌다. 그래서 나는 지금 치과에 가야한다. 식당 아주머니는 계속 쌀에 돌이 있을 리 없다고 하시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돌을 씹었고 치아에 끼워둔 금은 빠졌는데. 그런 날도 있는 것이다. 살다보면. 돌이 씹히고, 떼워놓았던 치아의 금이 빠지고, 바람은 불고, 날은 째지고, 점심을 못 먹어 배는 고프고. 아주머니는 그럴 리 없다고 하시고.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치니 2011-05-16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꺅 소리 나게 재미진 페이퍼입니다. 으흐, 굿바이 님, 제 옷도 좀 골라주심 안 될까여?
마지막은 이 무슨 시트콤스런 일이랍니까. 에혀. 부디 돈은 그다지 많이 안 들기만을 바랄 뿐.

굿바이 2011-05-17 09:58   좋아요 0 | URL
허접한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시는 치니님이 저는 꺅 소리가 나게 좋아요:)
그나저나 옷을 골라달라구요? 에에~ 뵌 적은 없지만 스타일이 무척 좋으실 것 같은데 이 무슨 망언이십니까!!!ㅋㅋㅋ
그리고 저는 삶이 그냥 시트콤이랍니다. 아~ 정말~

마노아 2011-05-16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스트 극장 한 편을 본 느낌이에요. 이렇게 드라마틱하다니! 치과 다녀오시고 위로하는 마음으로 맛있는 것 드셔요. 저는 봄날의 수다 2편을 기다리겠습니다.^^

굿바이 2011-05-17 10:02   좋아요 0 | URL
덕분에 치과는 잘 다녀왔습니다. 견적이 생각보다 많아서...ㅜㅜ 에잇!
그나저나 봄날의 수다 2편을 기다리신다니, 참으로 은혜가 강을 건너고 산을 넘고 하늘을 가립니다. 꼭 보답하겠습니다!!! :)

웽스북스 2011-05-16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J의 볼이 붉었던 건 뛰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포지틴트의 도움이었다는 것을 아뢰옵니다. 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치아는 이를 우째요 -_-

굿바이 2011-05-17 10:06   좋아요 0 | URL
엄훠!~ 포지틴트!!!! 당분간 P는 피해다녀야겠다 ㅋㅋㅋ

치아는...망했어. 치아가 깨지면서 부속물이 빠진거라 공사가 크네. 엉엉~

웽스북스 2011-05-17 15:52   좋아요 0 | URL
ㅎㅎ 어쨌든 볼터치도 하이빔도 아니긴 하니까. ㅋㅋㅋ

pjy 2011-05-20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기회에 홈쇼핑이지만 치아보험을 심각하게 고려보셔야될듯 ^^;
굿바이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번주 일욜에 친구? 결혼식장에 가야합니다..저는 신랑쪽인데 들리는 풍문으로는 그 아이의 친구들이 꽤 건질만 하답니다.. 해서......바람불면 날아가는 소녀가 꼭 붙잡고 매달리면 좋은 그런,안습몸매의 소유자로 큰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참고로 크림색의 진주단추 블라우스가 없답니다 ㅠ.ㅠ 물론 파란원피스도 없고, 뛰면 사우나댕겨온만큼 급 땀흘립니다ㅋㅋㅋ

굿바이 2011-05-20 11:2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안습몸매가 아니라 볼륨이 좋은거겠죠.
아무 도움이 안 될 것 같지만, 제 생각으로는 말이죠 체격이 좀 있는 분들은 당당하게 입을 때 가장 멋있어 보이는 것 같아요.

아참 신랑쪽 친구들이 꽤 건질만 하다구요? 눈 밝은 친구들이라면 pjy님의 매력을 금방 알겁니다. 그러니 씩씩하게 다녀오세요^^

pjy 2011-05-20 16:29   좋아요 0 | URL
네, 저 볼륨 죽입니다! ㅋㅋㅋㅋㅋㅋ
날씬한것들은 거적대기를 걸쳐도 미모가 돋보이는법이고~
볼륨몸매는 혼자 멀리 있으면 티 덜 납니다ㅋㅋ; 이래서 제가 왕따를 자초하나봐요~~ 청초하게는 무리군요! 역시 씩씩하게-_-;

굿바이 2011-05-20 18:01   좋아요 0 | URL
저와 함께 씩씩하고 쉬크한 동지들의 모임, 뭐 이런 거 하나 결성하실래요? :)
부디 신나는 주말 보내세요~

잘잘라 2011-05-20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아주머니는 그럴리 없다 하시고'
마지막 문장이 콱- 와서 박힙니다.

굿바이 2011-05-20 18:02   좋아요 0 | URL
정말 자해공갈단이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억울해요, 사는 일이 ㅜㅡ

風流男兒 2011-05-30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훗, 잘 다녀왔습니다 ㅎㅎ
 

싱싱한 봄비가 강가의 늙은 나무 한 그루를 깨운다.  
몇 일 사이 나무 몸통에 부쩍 화색이 돌고 수액이 요동치는 소리가 들린다. 저 기세로 가면 꽃도 피우겠다고 할 판이다. 나는 축축하고 비린 나무에 기대 가만히 듣는다. 까마득한 세월로도 쉬 떨쳐지지 않는 오래된 거짓말-'봄을 기다리지 않겠어'

머리를 말리지 않고 한강을 따라 걷는다.
마음처럼 풀어진 머리카락이 무거운 바람에 자주 들썩인다. 늙은 몸통에 피가 돈다. 이 기세로 가면 강을 헤엄쳐 건너겠다고 할 판이다. 물컹한 흙길을 찾아 밟는다. 눈에 밟히는 기억들이 발등을 타고 기어오른다. 더듬어지는 세월을 앞서는 오래된 거짓말-'모든 걸 다 걸겠어'

김경미의 시집을 읽는다.
시를 읽는다기보다 늙은 나무와 내 거짓말을 위로하는 마음을 읽는다. 

나는야 세컨드 1 

누구를 만나든 나는 그들의 세컨드다 
, 라고 생각하자고 한다
부모든 남편이든 친구든
봄날 드라이브 나가자던 자든 여자든
그러니까 나는 저들의 세컨드야, 다짐한다
아니, 강변의 모텔의 주차장 같은
숨겨놓은 우윳빛 살결의
세컨드,가 아니라 그냥 영어로 두번째, 
첫번째가 아닌, 순수하게 수학적인
세컨드, 그러니까 이번,이 아니라 늘 다음,인
언제나 나중,인 홍길동 같은 서자,인 변방,인
부적합,인 그러니까 결국 꼴찌, 

그러니까 세컨드의 법칙을 아시는지
삶이 본처인 양 목 졸라도 결코 목숨 놓지 말 것
일상더러 자고 가라고 애원하지 말 것
적자생존을 믿지 말 것 세컨드, 속에서라야
정직함 비로소 처절하니
진실의 아름다움, 그리움의 흡반, 생의 뇌관은, 
가 있게 마련이다 더욱 그곳에
그러므로 자주 새끼손가락을 슬쩍슬쩍 올리며
조용히 웃곤 할 것 밀교인 듯 

나는야 세상의 이거야 이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본 Ⅰ-1 코기토 총서 : 세계 사상의 고전 11
칼 마르크스 지음, 강신준 옮김 / 길(도서출판)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본주의적 풍요는 자본주의적 소외를 폭로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영광을 드러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빵가게재습격 2011-05-21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자본>에 대한 가장 멋진 40자평이네요. 추천누르고 갑니당~^^

굿바이 2011-05-23 09:2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대학 졸업 후 얼마만에 다시 읽었는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