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 성소(聖所)에 당신을 간직해 두었지. 난 왜 당신을 좀 더 일찍 만나지 못했을까.















폴은 대학에 입학했던 그 나이에 동네에 사는 오십대 여자 '수전'과 연인 사이가 되었다. 그들은 사랑의 도피까지 감행했지만, 수전은 불행했고 알콜중독에 시달렸다. 수전의 곁에서 수전을 지켜주려고 했지만 점점 지쳐갔던 폴은 다른 여자친구를 사귄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첫연애상대인 수전에 대해서 늘 신경을 쓰고 있고, 그녀의 존재와 또 자신이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새로 사귄 또래의 여자친구 '애너'에게 말했다. '애너'는 폴의 말을 듣고 이해하며 수전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사실 그렇게 기쁘거나 행복한 일은 아니었다. 그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은 온전히 자유롭지 못했으니까. 수전이 술을 얼마나 마시느냐에 따라 그들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폴, 이 말은 해두는 게 좋겠어. 수전 매클라우드 …… 는 사실 나하고 맞는 여자는 아니야."

"알겠어."

"내 말은, 그래도 너를 위해 늘 수전한테 잘해주려고 노력할 거란 뜻이야."

"그래, 뭐, 그건 정말 너그러운 태도지. 이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내가 수전한테 내 인생에는 늘 수전을 위한 자리가 있을거라고 약속했다는 이야기도 해두는 게 좋겠네, 설사 그게 다락방이라 해도."

"폴, 내 인생에는 다락방을 원치 않아." 그러더니 그녀는 그 말을 하고 말았다. "그 안에 미친 여자가 있는 건 더더욱 원치 않아."

나는 마지막 말이 우리 사이에 커져가는 정적을 채우도록 내버려두었다. (p.282)




영화 《몽 루아》에서 여자는 아주 달콤한 남자를 만나 사귀게 되고 함께 살게 된다. 그런데 이 남자에게도 역시 '다락방의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아프고 신경질적이고 그래서 종종 남자는 밤에 잠을 자다가도 그 다락방의 여자에게로 달려간다. 그의 아내는 그것이 몹시 싫지만, 남편은 그 다락방의 여자를 포기하지도 못하고 계속 신경쓸 수밖에 없다. 다락방의 여자를 신경쓰고 챙겨줄 수 있는 건 자신 뿐이라면서.



내가 '애너' 였어도 폴과의 관계를 오래 가져가지 못했을 것이다. 숨겨도 느껴질만한 존재를 가진 사람, 그런데 나에게 '나에게는 다락방에 숨겨둔 여자가 있어' 라고 말하면서 그 관계를 인정하길 바라는 남자와 내가 어떻게 다정한 연인 관계를 가져갈 수 있단 말인가. 몽 루아속 아내도 마찬가지. 어려울 때마다 달려나가야 하는 다락방 여자가 있는 남자를 어떻게 한결같은 사랑으로 인내하며 지낼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사람들은 한 사랑이 끝나고 다음 사랑을 맞이하면서, 언제나 새로운 사랑에게 충실할 수 있다. 과거의 사랑을 묻어두고 혹은 잊은 채로 '지금 사랑이 최고야, 여기에 최선을 다할거야' 하며, 현재의 상대에게 충실하고 최선을 다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나에겐 일곱번째 여자가 가장 강렬했고, 그 전에도 후에도 그런 여자는 없었지, 내 삶에 다른 여자를 아무리 만나도 그 여자만한 여자는 없을 것이고, 나는 그여자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내가 두번째 연애한 남자는 내 인생 남자다, 그 전후에 진행된 연애들에 있어서도 나는 그 사람만큼 사랑할 수 없다' 하고 깊이 각인된 존재가 있을 것이고. 그러나 만약 누군가랑 함께 살기로 했다면 사실 그 존재를 지금 연애의 상대에게 알려서도, 드러내서도 안되는 게 아닐까. 그리야 지금 현재의 사랑이 원만하게 잘 굴러갈 수 있을테니까. 만약 내가 가슴에 품은 다름 사람이 있다는 걸 상대가 알거나 티가 난다면, 그 사랑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을까? 아니, 그것은 사랑일까?



'줄리언 반스'의 책 속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현재의 연애 상대를 아주 미쳐버리게 하는 과거의 존재다. 걸리적거리고 거슬리는 존재. 그러니까 나였어도 도무지 허락할 수 없는 상황. 싫어, 나는 대체품이 되지 않을 거고, 니가 그녀를 가슴에 품은채로 내 옆에 있다는 건 나에게 못할 짓이야, 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디스 워튼은 좀 다르다. 이디스 워튼은 그렇게 성가신 존재를 만들어내지 않았다. 이디스 워튼의 존재가 내게 좀 더 가까운데, 이디스 워튼은 자신의 소설, 《순수의 시대》에서, 한 사람이 깊이 마음에 품게 된 사람에 대해서 '마음 속 성소' 라고 표현했다. 언제나, 세월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사람, 결코 지울 수 없는 사람, 내 삶에 끝까지, 부재하면서도 함께 하는 사람.


'아처'는 '엘렌'을 가슴 속에 품는다.





그 후로 그들 사이에 더는 연락이 없었다. 그는 자기 마음속에 일종의 성소(聖所)를 만들어 놓고 비밀스러운 생각과 열망가운데 그녀를 간직해 두었다. 그곳은 조금씩 그의 진짜 삶이자 이성이 활동하는 유일한 장이 되어 갔다. (p.324)













어떤 사람들은 마음 속 성소를 가만 묻어둔 채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고 웃으며 지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마음 속 성소를 만들어둔 채로 그 성소와 함께 산다. 그런 사람의 경우에는, 아마도,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가 없을 것이다. 내 중심, 내 축, 내 단단한 기둥은 이미 내 성소가 되어버렸으니까. 성소는 내 마음속에 있어서 온통 나를 휘어잡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일상을 살고, 친구들을 만나고, 여행을 하면서도 언제나 그 부재의 상대가 나와 같이 있음을 느끼며, 내 마음속 성소를 단단히 느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다른 파트너를 만나는 순간, 아마도 그 성소는 상대에게 '다락방의 미친사람'이 되지 않을까. 그러니 내 마음속 성소를 있는 그대로, 그 단단함과 소중함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다락방의 미친사람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속 성소가 있다면, 다른 상대를 또 찾는 대신, 마음속 성소와 그냥 함께 살아야 하는 것 같다.




나는 마음속 성소를 가진 사람일 수도 있고, 누군가 나를 마음 속 성소에 넣어둔 존재일 수도 있다. 또한 나는, 마음 속 성소를 가진 사람을 만나 '다락방의 미친사람'존재를 느끼고 분노할 수도 있다. 나는 내가 사랑하게 된 사람에게 다락방의 존재가 있다면, 그 사람을 아무리 사랑해도 그 사람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자 함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아무리 사랑해도 그 사람에게 내가 우선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면, 두 달 내내 울지언정 그 사람에게 이별을 말할 것이다. 그 사람에게 다락방의 존재가 있다는 걸 알면서 내가 곁에 있다는 건, 나에게 할 짓이 아니다. 나를 그렇게 두어서는 안돼. 내 옆에 있기로 했다면, 몸과 마음이 모두 내게 있어야 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난 당신이 수키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건 들으려고 여기까지 따라왔어요. 당신이 이 여자와 섹스하지 않는다는 건 알아요. 수키가 다른 사람에게 빠져 있다는 것도 알아요. 그리고 당신이 나보다 수키를 더 원한다는 것도 알아요. 난 나를 동정하는 남자와 섹스를 하지는 않을 거예요. 나를 원하지 않는 남자와 살지 않을 거예요. 나는 그보다는 더 가치가 있어요. 내 생의 나머지 시간이 다 걸린다고 해도,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없앨 거예요. 당신이 여기 조금 더 머물 거라면, 나는 당신 집에 돌아가서 내 물건을 싸서 사라질게요.」 (pp.212-213)










오늘 저녁에 에피톤 프로젝트의 새앨범이 나온다고 한다. 지난 앨범 에서의 <회전목마>는 나의 시그널 뮤직 이었는데, 이번 에피톤의 새앨범에서도 '앗, 이건 시그널이다' 할만한 곡이 있을까. 너무나 기대가 된다. 두근구든.


그리고 이상하게 마음이 너무 아프다. 매운 족발을 먹으면 괜찮아질 것 같은 마음 아픔이다...










어쨌든 절대 잊지 마세요, 폴 도련님.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는 걸. 모든 사람에게. 대실패로 끝났을 수도 있고, 흐지부지되었을 수도 있고, 아예 시작조차 못 했을 수도 있고, 다 마음속에만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진짜에서 멀어지는 건 아니야. 때로는, 그래서 더욱더 진짜가 되지. 때로는 어떤 쌍을 보면 서로 지독하게 따분해하는 것 같아.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을 거라고는, 그들이 아직도 함께 사는 확실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어. 하지만 그들이 함께 사는 건 단지 습관이나 자기만족이나 관습이나 그런 것 때문이 아니야. 한때, 그들에게 사랑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야. 모두에게 있어. 그게 단 하나의 이야기야." (p.75-76)

나는 펠리온과 오사가 누구인지 또는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보다는 수전의 지식에 내 지식을 쌓는다는 생각에 더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것이 연인들이 하는 일 아닌가, 사실. 연인들은 세상에 대한 서로의 이해를 합했다. 또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어쨌든 성경에서는, 그 사람과 섹스를 한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나는 이미 그녀의 지식 위에 내 지식을 쌓은 셈이었다. 설사 그것이 콩으로 쌓은 언덕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콩으로 쌓은 산의 높이가 얼마든. (p.111-112)

"내가 알아야 하는데 알지 못하고 있는 게 있나요? 수전에 관해서, 또는 수전과 나에 관해서 나한테 해줄 수 있는 말, 도움이 될 만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모든 게 망하고 잘못되어버리면 너는 아마 극복을 하겠지만 수전은 못 할 거라는 거야."
너는 충격을 받는다.
"별로 친절한 말은 아니네요."
"나는 친절한 건 안 해, 폴. 진실은 친절하지 않아. 인생이 시작되면 금방 알게 될 거야." (p.212)

슬픈 섹스는 그녀가 술에 취하지 않고, 너희 둘 다 서로를 바라고, 너는 어쨌거나 상관없이 그녀를 늘 사랑할 것임을, 그녀가 어쨌거나 상관없이 너를 늘 사랑할 것임과 마찬가지로 사랑할 것임을 알지만, 너는-어쩌면 너희 둘 다-이제 서로 사랑 하는 것이 반드시 행복에 닿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때다. 그래서 너의 사랑을 나누는 행동은 위로를 찾는 것이라기보다는 너희의 서로 행복하지 않은 상태를 부정하려는 가망 없는 시도가 된다. (p.231)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살밍 전개되면서, 신중함과 조심성이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조운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가진 적이 있으며, 어떠면 다른 이야기는 이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이제 남녀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그것이 식어버린 뒤에도 오랫동안, 집착하는-많은 경우, 각각 이야기의 서로 다른 부분에-것, 심지어 서로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지경에 이르도록 집착하는 것을 전보다 잘 이해했다. 나쁜 사랑은 여전히 좋은 사랑의 잔재, 기억을 포함하고 있었다-어딘가, 깊은 곳, 그들 둘 다 더는 파헤치고 싶지 않은 곳에. (p.34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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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2018-10-05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읽고 에피톤 프로젝트 들어야지! 라고 생각하다가 잠들어버렸네요. 매운 족발은 드셨나요.. 매운 족발이라도 다락방님의 마음 아픔을 달래줄 수 있었다면 좋겠네요.

다락방 2018-10-05 10:17   좋아요 0 | URL
매운 족발은 못 먹었구요. 내일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후훗.

에피톤 프로젝트 이번 앨범 들었는데요, 좋은 곡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음.. 1,2집 만큼 좋진 않네요. 에피톤 프로젝트는 1,2 집이 최고인 것 같아요!
 
















챈틀 뒤퐁은 패리쉬 섬에 다리를 놓기 위해 스카우트를 이용하게 된다. 스카우트는 도시 남자로 이 섬에 잠깐 들른 것이었는데, 어쩔 수없이 부상을 입은 채로 챈틀 뒤퐁의 명령에 수긍하게 되고, 그렇게 그들은 한집에서 살면서 서로에게 아주 강력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스카우트가 챈틀 뒤퐁에게 거침없이 들이대고 다가갈 때마다, 챈틀 뒤퐁도 너무나 그를 원하지만, 그러나 도시에 잘 나가는 그의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나는 너 약혼자 있는데 그렇게 한 번 자는 그런 여자가 되진 않을거야' 하고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욕망을 억누른다.


그러나 다리가 완성되고 축제가 벌어지던 날 밤, 축제의 기운과 그동안 참아왔던 모든 욕망이 화산처럼 폭발하고, 챈틀 뒤퐁은, 아아, 그가 이제 가버릴 사람이지만 나는 어쩔 수가 없다, 하고 자기 욕망 앞에 무릎 꿇는다. 그렇게 스카우트를 유혹해, 그들은 그날밤 베리 핫한, 엄청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아침, 스카우트는 챈틀 뒤퐁이 자는 사이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가 도시로 간다.



챈틀 뒤퐁은 그럴거라 생각했지만, 그걸 알면서도 그런거지만(우리 모두 이런 거 알잖아요?), 그러나 그가 정말로 그의 약혼자에게 돌아갔다는 사실에 매우 상처 받는다. 어차피 부족들을 위한 다리도 완성되었고, 그녀는 도시의 자기 일자리로 간다. 그녀는 어느 대학의 교수였고, 임무도 완수했고 어차피 그와 사랑으로 연결될 것도 아니니 사요나라, 굿바이- 떠나버리는 것.



오오, 그러나 우리의 스카우트는 이렇게 강렬한 만남, 이런 뜨거운 사랑을 생전 한 번 느껴보지 못해, 나름대로 관계 정리를 하기 위해 도시로 돌아간 것이었다. 도시로 돌아가 약혼자에게 우리 끝내자고 말하기 위해서,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기 위해서 간 것이었다. 자신이 약혼한 상태이면서 챈틀 뒤퐁과 계속 만나고 사랑한다는 것은 챈틀 뒤퐁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고 약혼녀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으므로. 게다가 그 자신에 대한 예의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 역시 순수한 싱글 그 자체로 그녀앞에 서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게 순수한 싱글로 그녀 앞에 나타나, 정식으로 사귀자고 하고 싶었던 거다. 그러나 이 모든 정리를 하고 섬으로 돌아왔을 때 챈틀 뒤퐁은 없었다.



그는 미칠것 같은 마음으로, 초조한 마음으로 그녀를 찾아 헤맨다. 알만한 사람에게 물어 물어 그녀가 대학 교수로 있는 곳까지 갔지만, 이미 그녀는 퇴근한 뒤였고, 그녀의 비서에게 갖을 설득을 다해 그녀가 사는 곳을 알아낸다.



챈틀 뒤퐁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집 앞 바닷가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곳에서 전혀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너무 그리워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냐고 묻고 그들은 재회의 대화를 시작한다. 나는 나의 다른 관계를 정리하고 너에게 오려고 했고, 그런데 니가 없었고, 찾아 헤매다가 이렇게 왔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고. 챈틀 뒤퐁이 일어날 거라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이 기적처럼 일어난 것이다.




나는 이 소설 속의 챈틀 뒤퐁을 좋아한다. 엄청 끌리면서도 이렇게 부적절한 관계로 진행해서는 안된다고 이를 악무는 챈틀 뒤퐁을 좋아한다. 그 답답함과 고지식함이 나를 닮아서 내가 다 아플지경이다. 나 역시 챈틀 뒤퐁과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면서, 그러면서 챈틀 뒤퐁에게는 '이 여자야, 그깟 섹스가 뭐라고, 육체가 뭐라고, 자신을 던져버려, 즐겨!1' 막 이렇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챈틀 뒤퐁 역시, 만약 스카우트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아마 '에헤라 그냥 오늘밤 나를 던져보세 닐니리맘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어느 한 순간의 사람으로만 있는 게 싫어 이를 악물고 참았을 것이다. 내게 의미 있는 사람이니, 나 역시 당신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이렇게 순간의 기분에 나를 던져서는 안된다..같은 것.



그런 그녀에게 기적처럼 그가 찾아든다.



얼마전에 제주에 갔을 때 친구와 연신 '좋다, 좋다' 하면서 나는 친구에게 물었었다. '너는 베트남이나 제주에서 살 수 있다면 어딜 선택할래?' 친구는 '나야 제주도지' 하고 고민없이 말했다. 나 역시 고민없이 '나는 베트남'이라고 말했다. 나는 뉴욕에서 살고 싶었고, 베트남에서 살고 싶었고, 프라하에서 살고 싶었고, 포르투갈에서 살고 싶었다. 한 번도 제주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러나 이번에 제주에서 바다를 보고, 하늘을 보고, 해가 저무는 풍경을 보고, 바람을 느끼고, 그 한적함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면서,



'챈틀 뒤퐁이 있었던 곳은 아마 제주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챈틀 뒤퐁이라면 제주도지... 라고. 챈틀 뒤퐁이 스카우트가 올 줄도 모르고서 스카우트를 기다리던 곳은 제주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챈틀 뒤퐁은 제주도.... 이렇게 된 것이다. 챈틀 뒤퐁이 되기 위해서는, 챈틀 뒤퐁같은 진행을 위해서는 제주여야 하는 것인가......








(위는 모두 2016년의 제주, 표선)




(위는 2018년의 제주, 구좌읍. 챈틀 뒤퐁이 있었던 곳은 표선보다 이곳에 더 가까울 듯)



제주의 챈틀 뒤퐁.

챈틀 뒤퐁 이름도 너무 좋아.



지난번 제주에 다녀온 이후로 자꾸만 챈틀 뒤퐁이 생각난다. 챈틀 뒤퐁은 제주도 같은 곳에 있었을 거야, 스카우트는 제주도에 찾으러 왔을거야, 바로 여기가 그녀가 머물만한 곳이지.....




나는 서울에 있다.


나는 서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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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챈틀 뒤퐁과 인생의 정점
    from 마지막 키스 2018-11-16 09:39 
    '챈틀 뒤퐁'은 패리쉬 섬에 다리를 놓기 위해 도시에 사는 남자 '스카우트'를 이용한다. 그 과정에서 스카우트에게 어마어마한 호감을 느끼게 되는데,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 그러나 스카우트는 도시에 약혼녀가 있는 상황. 서로 엄청 끌리면서도 '이러면 안돼'가 그들 사이에 있다. 정확히는 챈틀 뒤퐁에게. 그를 안고 싶지만, 그는 약혼녀가 있지... 하고 그에게로 끌리는 자신을 애써 막아보려 하는 것. 그렇게 욕망에 시달리는 낮과 밤을 보내다가, 그들은 섬의
 
 
비연 2018-10-01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스산합니다. 나는 서울에 있다. 제주가 아니고 베트남이 아니고 서울.

다락방 2018-10-04 07:37   좋아요 0 | URL
지금 네덜란드에 사는 한국사람이 쓰는 책 읽고 있는데 네덜란드 가고 싶네요? ㅋㅋㅋㅋㅋ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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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다닐 때 극기훈련을 간 적이 있었다. 정확히 그것을 어떤 용어로 부르는지 모르겠는데, 교관이란 사람은 모든 학생들을 세워두고 여러가지 훈련을 시켰다. 누웠다 일어나기도 있었고 팔벌려 뛰기도 있었다. 너무 힘들면 줄에서 빠져 뒤로 나가 서있으라 했는데, 속속 힘들어 뒤로 나가는 아이들이 생겼다. 물론 그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이제 끝이라고 할 때까지 교관이 시키는대로 했다. 나 역시 어떻게든 버텨내는 많은 아이들 중 하나였고. 다음날엔 근육통에 시달렸었다. 체육시간도 자습하느라 많이 써버렸었는데 이런 갑작스런 몸의 움직은 우리들에게 근육통을 당연히 가져올 터였다.


이게 어떤 특별한 기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도 가끔 생각난다. 극기훈련 초반, 교관이 술 가진 애들 다 내놓으라며 했던 말들보다도, 캠프파이어의 모닥불과 울던 아이들보다도, 그러니까 그런 것들은 억지로 기억해야만 기억나는데, 교관이 시키는대로 다 따라하고 다음날 근육통에 시달렸던 그 시간들은, 이상하게도 뜬금없이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이 소설, 최은영의 《내게 무해한 사람》을 다 읽고, 뒤에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또 이 일이 생각났다.



나는 한때 그런 아이들 중 하나였다. 운동장 조회 시간에 일렬로 신발주머니의 줄을 맞추고, 친구들이 일사병으로 하나둘 쓰러져나가도 부동자세로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야 했던 아이, 수련회에 가서 유사 군사훈련을 받으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국가에 충성하고 여자로서 순결을 지키며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다나까'로 말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던 아이.

그때 내가 하고 싶었던 건 개인행동이었다. 그 반듯한 줄을 탈출해서 멀리로 달려나가고 싶었다. 운동장에 줄을 선 신발주머니들로부터, 국기에 대한 경례로부터, 야, 너, 51번, 차렷, 열중쉬엇, 앞으로나란히, 앉아, 일어서, 앞으로 나와, 싸가지 없는 년, 너희 부모가 돈이 없어서 이런 동네에 살지, 뭐, 너 같은 게 뭐가 되겠어? 지껄이는 입들과 너무 가벼운 손찌검들로부터 멀리, 아주 멀리로 가고 싶었다. 개인행동을 하고 싶었다. 나의 개인행동은 아무도 해치지 않으리라 믿었다. 나는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주는 고통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몸으로 느꼈으니까.

그러나 그랬을까, 내가.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 오래도록 나는 그 사실을 곱씹었다. (작가의 말, p.323-324)




고등학교 시절,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조회를 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한 학생이 옆자리 학생과 수다를 떨었다. 그 때 덩치가 큰 미술선생님이 달려와서, 그 전교생이 있는 데에서, 그 아이의 머리를 확 때렸다. 나는 너무 무서워 그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못했다. 워낙 폭력적이기로 유명한 선생님이었고, 그 학생이 맞는 걸 내가 직접 겪으면서 '꼼짝하지 말아야지, 얘기하지 말아야지, 조용히 해야지' 나는 그런 생각만 했다. '내가 아니라 다행이다' 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나는,


무해한 사람이 아니었다.



최은영의 단편들을 차례로 읽어가노라면, 최은영이 과거의 자신, 의도야 어떻든 무해하지 않았던 자신을 떠올리는 것이 그대로 내것이 된다. 나는 특별히 못된 아이는 아니었지만, 못되게 굴지 말자고 생각하는 편에 가까운 아이었지만, 최은영의 말처럼, 그러나 그랬을까, 내가?



어른이 되어서, 이만큼의 나이를 먹어서 후회하는 일들이 많다. 선생님이 그렇게 학생을 과격하게 때리는 걸 보았을 때, 그러는 건 아니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나는 겁에 질려 있었다. 요즘 십대 학생들이 교사로부터 당한 성추행에 대해 얘기할 때는, 내가 고스란히 당했던 그 시절에 그걸 공론화 하지 못해서, 그러면 안되는거라고 말하지 못해서, 그래서 지금 학생들도 그대로 피해자가 되었고, 그로부터 지금까지 몇십년간 피해자들이 줄줄이 생겨, '살면서 성추행 한 번 안당해본 여자가 어딨냐'는 말이 기정사실이 되게 만들었으니, 나는 너무나 미안하고 부끄럽다. 나는 무해한 사람이었을까? 나쁜 걸 유지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은 아닌가.

의도가 그렇지 않았다 해도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무심하게 상처 입혔을까.


그래서 이 소설속 최은영의 반성이 나의 반성이 된다. 나는 같이 반성했고 그렇게 매만져주는 최은영의 손길을 한껏 받았다. 그 손길을 따뜻했고, 결국 내 어딘가를 건드리고야 말아, 정확히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로, 울고 말았다.



특히 <지나가는 밤> 이 좋았다. 세상에 둘 밖에 없는 자매가 그러나 소원한 사이가 되어 서로를 가장 의지하고 싶은 순간에도 의지하지 못하고, 그리워하면서도 그립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러는 사이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상처입고 힘든 삶을 살고 있었다. 어린시절 제게 손을 내밀 때 그 손을 잡아주지 못했던 것을 두고 두고 생각하는 언니의 마음 같은 것, 손을 내밀었지만 아무도 잡아주지 않았던 동생의 마음 같은 것들이, 깊은 밤 내게 찾아들어 나는 그냥 훌쩍훌쩍 거렸다.



<아치디에서> 는 브라질 청년의 입장에서 쓰여진 소설이라, 처음에는 '대체 왜 이런 화자를 만들어낸걸까' 좀 갸웃했었다. 그러나 그가 아일랜드에서 한국인 '하민'을 만났고, 서로의 과거에 대해 조용히 속삭이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등장인물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겠구나 했다. 한국에서, 그야말로 '착취당하는 딸과 직장인'으로 살아오면서, 그녀의 '희생'이 당연시 되면서, 그리고 그것을 어린 여동생만이 상황파악을 제대로 해주고 그녀의 말을 들어주는 데에서, 또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비로소 브라질 청년도 자신의 입장과, 자신 때문에 억압받았을 누나에 대해 떠올린다.



<601,602>는 최은영식 '82년생 김지영' 정도로 봐도 되겠다. 여성의 삶이라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그런 식으로 가야만 했던 것처럼, 어린 딸로서 핍박 받으며 사는 이야기, 그리고 그것에 주변 어른들이 반발하지 않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어른이 되어 결국 <아치디에서>의 '하민'의 삶으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싶어졌다.




최은영은 이 단편들을 통해 그리고 이 단편들을 엮은 이 단편집을 통해 해야할 이야기들을 했고,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았고, 어쩌면 자신이 무해한 사람은 아니었을 거라는 반성을 했고, 그렇게 독자의 마음을 매만져주었다. '매만지다' 라는 단어는 최은영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단어라고 생각이 들만큼, 이 소설은 가만가만 스며든다.



이 책을 사두고도 오래 머뭇거렸다. 《쇼코의 미소》는 좋았는데, 그녀의 두번째 단편집이 그보다 좋지 않으면 어쩌지..하는 쓸데없는 걱정 같은 것이 내게 있었다. 그러나 웬걸, 읽으면서는, 아아, 역시 최은영이구나 했다. 그래, 이런 이야기여야 해, 라고도 생각했다. 아직 국내작가중 가장 좋은 작가가 누구인지 물어오는 질문에는 최은영을 답할 수는 없겠지만, 다음에 나올 최은영과 그 다음에 나올 최은영도 계속계속 읽고싶다.



좋은 독서였고, <지나가는 밤> 은, 다른 사람들도 꼭 읽었으면 좋겠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가져본 핸드폰도 여자가 준 선물이었다. 부모님께는 비밀로 하라면서 준 그 선물을 들킬까봐 혜인은 핸드폰을 언제나 무음으로 설정해 가방에 넣어놓았다가 베개 밑에 두고 잤다. 여자는 혜인에게 "뭐하고 있어?"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여러 기호들로 만든 토끼, 수박, 별, 가아지 같은 그림을 보내기도 했다. 전화를 안 받으면 음성 메시지를 남겨서 자기가 겪었던 웃긴 이야기들을 했다. 그 모든 것들이 혜인에게 위안을 줬다. 사람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행복이 얼마나 위태롭고 위험한 것인지 여자로부터 배운 셈이라고 혜인은 종종 생각하곤 했다. 사람은 그런 식으로 쉽게 행복해질 수 없는 법이라고. (손길, p.226)

그때의 여자의 나이가 되어 혜인은 생각한다. 여자는 어쩌면 자신에게 삶의 무거움을 미리 알려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자신이 세상과 인간에 대해 미리부터 겁을 집어먹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고, 그저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그렇게 행동했는지도 모른다고. (손길, p.231)

사랑이란 무엇일까. 이 소설(‘아치디에서‘)은 사랑은 다만 상대 앞에서 자신의 가장 약하고 수치스러운 감wjd을 노출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 그 곁에 침묵하며 함께 서 있는 것, 대신해 우는 것, 조금씩 속도를 늦춰 걷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듯 하다. (해설,강지희,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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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0-01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쇼코의 미소>보다 <내게 무해한...>이 더 나은 듯합니다

다락방 2018-10-01 11:29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의 책장을 덮으면서 , ‘으음, 쇼코의 미소보다 이게 더 좋은가?‘ 했더랍니다. 후훗.

카알벨루치 2018-10-01 11:44   좋아요 0 | URL
제가 <내게 무해한 사랑>을 먼저 보고 <쇼코의 미소>를 봤는데 조금 degrade되는 느낌 ㅋ 그래도 최은영 좋아요~한주 힘차게 생활하세요!
 
여름, 스피드
김봉곤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에는 '본격 게이 로맨스'라는 이름을 붙여 따로 하나 장르를 주어야함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런식으로 매 단편마다 '나는 게이야'를 드러내는 문학을 읽어본 적이 없으니, 이렇게 계속해서 '나는 게이야' 라고 드러내며 '나는 남자가 너무 좋아' 외치는 소설에 대해서 이 작가가 아마도(?) 처음이 아닐까 싶고, 그렇게 이 단편집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고, 의의가 있고, 필요가 있다 하겠다.


실린 단편을 순서대로 읽었는데 첫 단편을 읽고서는 오 신선하다, 그리고 문장이 아름답다! 하고 감탄했다. 이어지는 두 변째 단편 까지도 으음, 하면서 읽었더랬다 그러나 그 다음도, 그 다음도... 작가는 매 주인공마다 자신을 이입해서 쓴 것 같았는데, 그러니까 그냥 한 명의 연애와 섹스가 반복되는 것으로만 읽힌다. 로맨스라는 장르는 당연히 사랑과 연애 섹스가 주를 이루겠지만, 책 한 권 내내 저 남자 좋아, 사랑해, 섹스해...만 나오니까, 어느 순간 질려버린달까. 어쩌면 이 책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 자리에서 한 권을 내리 읽는 게 아니라, 한 편씩 시간 날 때마다 끊어 읽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른 책들 읽다가 이 책의 단편 하나 읽고, 다른 책들 읽다가 이 책의 단편 하나 읽고..그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나는 한 권을 다 끝내야 다음 권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중간 이후부터 매우 힘겨운 독서였다...


다만 작가가 여느 남자 작가들과는 다르게 꽤 디테일하고 감성적이라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작가도 마지막 단편에서 자신이 글쓰기와 사랑을 좋아한다고 언급하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작가는 정말 글쓰기를, 그리고 사랑을 인생의 주요 목표로 삼는구나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사랑하면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 기억하고 떠올리는 것에는 굉장히 섬세하다. 그런 디테일까지 잘 기억하는 건 나만 할 수 있는 줄 알았지... 하하하하하.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건데,

나는 소설을 사랑하지만, 그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그러나 그 감상에 있어서는 꽤 혹독하고 가차없는 사람이구나... 싶다......



내 인생에서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할당되어 있다면 그 총량의 구십 퍼센트를 나는 영우에게 써버렸다. (p.66)

"형, 사실은 친구가 되어달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나는 영우의 눈을 마주보다 곧바로 대답할 수 없어 물 아래로 한 차례 깊이 들어갔다 나왔다.
"넌,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물론이에요. 저는 그러고 싶고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믿어요."
"누구 맘대로?"
섹스는 하기 싫고, 고매한 너의 취향에 맞춰줄 말 상대는 필요하고, 앞으로 네 입장에서 잘될 위험은 없는 남자를 찾고 있었던거니?
"넌 날 좋아하지 않앗어. 그건 잘못이 아니야."
"맞아요. 인정할게요."
"근데 친구가 되어달라는 말에는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영우는 천천히 팔을 저으며, 동시에 조금은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어째서 네가 그 표정까지 짓는 걸까. 그 표정까지 가지려는 걸까.
"난 친구가 많아. 많지는 않지만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있어." (p.87-88)

그가 없는 내 삶에 대해, 그가 없는 채로,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믿을 수가 없다. (p,209-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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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9-30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syo님 페이퍼 봤을 때 인용부분 읽고는 뭐랄까, 이전에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던 글이라서 그런지 간지러우면서도 신선하고 그랬거든요.
다락방님이 인용해주신 부분도 그런 것 같아요.
평범하고 쉬운 문장인데 목에 탁 걸린다고 할까요. 독특한 느낌이 있네요.
읽게 되면 다락방님 안내에 따라서.... 한 편씩 한 편씩^^

다락방 2018-09-30 19:47   좋아요 0 | URL
한 권을 내리 읽어내기엔 제겐 무리가 있는 책이었어요. 그래도 기존 문학과는 좀 다른 문학이라 아마 이 책을 계기로 이런 책이 더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들더라고요. 뭣보다 나는 게이야, 나는 남자가 너무 좋아, 라고 말하는 남자 작가의 글을 읽는 그런대로 또 시원한 맛이 있었어요. 감춰야 하고 숨겨야 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드러내는 책이라서 말이지요.

네 한 편씩 천천히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흐흣

책읽는나무 2018-09-30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이런 내용이군요??
인스타에서 작가가 소설을 냈다는 광고를 보았어요.동료작가들이 축하해 주면서 홍보를 하긴 하던데~저는 그냥 그러려니~했어요.
음......기회를 봐서 읽어봐야 겠군요.
한 편씩....나눠서!!!^^
요즘 단편집들은 그렇게 읽어 내는게 더 낫더라구요.끈기가 부족해서ㅋㅋ

다락방 2018-10-01 09:01   좋아요 0 | URL
책나무님, 전혀 다른 결이긴 하지만 저는 어제 잠자기 전에 읽고 오늘 출근할 때 읽은 ‘최은영‘의 [내게 무해한 사람]쪽이 훨씬 훨씬 좋네요. 전혀 다른 성격의 글이지만 역시 최은영이구나..생각하며 울면서 읽었어요 ㅠㅠ

최은영을 추천합니다!

- 2018-09-30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남자가 너무 좋아! 라는 부분에서 저도 묘한 이질감을 느꼈어요. 게이여서가 아니라...(페미니즘의 여파인가) 한국 남자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그냥 순수하게 막 너무 좋아하기엔 너무 멀리와버렸나 봅니다 ㅠㅠ
전 물리적으로 동등한 관계의 연애라는 것에 대해 좀 생각했어요.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잠수를 타도 조금은 다른 느낌이지 않을까. ㅎㅎㅎ

다락방 2018-10-01 09:06   좋아요 0 | URL
무슨 말씀이신지 너무나 잘 알겠어요! 저도 발기한 성기 느끼면서 남자 너무 좋아 이럴 때 음.. 뭐랄까 딱히 공감할 수 없더라고요. 하하하하하. 저도 예전에..남자 너무 좋았고, 난 진짜 남자 너무 좋아! 이랬던 사람인데, 이제 정말 너무 멀리 와버렸나봅니다. 저는 이제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지만, 누군가는 ‘남자가 너무 좋아!‘라고 한다니, 어쩌면 세상은 그래서 공평한 것일 수도 있겠구요.

물리적으로 동등한 관계의 연애라는 것에 대해서 저는 처음, 레즈비언의 관계에서 생각했었거든요. 레즈비언이라면 둘이 함께 살아도 뭐랄까, 가사노동이나 육아에 대해서 상대에게 불만을 가지게 되는 게 이성애랑 다르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렇다면 이성애보다 오히려 더 업그레이드 된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이제는 이성애든 동성애든 사랑을 하면 누군가는 반드시 상대보다 ‘더‘ 사랑하고, 그 사람은 약자가 되고... 갈등을 일으키고 불만을 갖고 헤어지고 그러는 것은, 으레 사람이라 모두 그렇구나 하게 됐어요.
 
인생을 글로 치유하는 법 - 위대한 작가들은 어떻게 삶의 혼돈을 정리하고 빛나는 순간들을 붙잡았을까?
바바라 애버크롬비 지음, 박아람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는 회고록이나 에세이 그리고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가 필요한지, 어떤 마음 가짐이 필요한지 잘 나와있다. 한 페이지당 하나의 조언들이 적혀 있는데, 어쩌면 이렇게 글쓰기에 비유할 게 많을까 싶을 정도로, 작가 '바바라 애버크롬비'는 글쓰기에 그야말로 숙련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겠다. 게다가 각각의 조언(혹은 글을 쓰기 위한 방법?)에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글쓰기를 생각했는지도 덧붙여두어, 이 사람은 스스로가 글을 잘 쓰기 위해 공부하고 연구한 사람이지만 그만큼 다른 사람들의 글도 많이 읽고 들었구나 싶어 존경심마저 든다. 확실히 글을 쓰기 위해서 이 책은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나는 왜 굳이 글쓰기에 매춘을 비유하는지 모르겠다. 매춘(혹은 포주)에 글쓰기를 비유해 설명하는 게 내 기억으로 한 네 번정도 나오는데, 처음 나올 때도 불편했는데 또 나와서 이건 뭐지 싶었다. 그러지 마세요, 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싶었달까. 왜그럴까? 나는 매춘이 유머 소재로도 쓰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글쓰기 책에 비유로 데리고 와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매춘을 글쓰기에 비유하면서 자신들이 세상 힙하다고 생각했을까? 나로서는 이해가 안되고, 다 읽고 책장을 덮고나니 그 많은 유용한 조언들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고 찜찜함만이 남는다. 이런 것을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가져다주는 장점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내내 찜찜함을 가지고 있다.



'출판'은 "세상에 내놓는 것"을 의미한다. 온라인으로 출판해 영원히 사이버 공간에만 가둬둘 수도 있고, 자신의 프린터로 출판해 친구들에게 한 부씩 건넬 수도 있으며, 출판사나 잡지사와 계약하여 그쪽에 모든 것을 맡길 수도 있다. 주문하면 출판해주는 회사를 통해 자가 출판을 할 수도 있다. 그들은 돈을 내면 책을 만들어준다. 결국 어떤 방법을 택하든 자신이 쓴 글을 사람들이 읽게 하고 싶다면 자신의 마케팅 담당자가 되어야 한다. 달리 표현하면 '마케팅 매춘부(또는 포주)'가 되라는 얘기다. (p.345)



위의 인용문에서 굳이 마케팅 매춘부가 되라는 얘기를 덧붙이지 않아도, 그 문장을 들어내도 무슨 말인지 완전 잘 알겠고 고개 끄덕여지는 말인데, 왜 굳이 마케팅 매춘부가 되라는 거지? 이 페이지에 작가가 가져온 다른 작가의 인용문은 이것이다.


글을 쓰는 것은 매춘과 같다. 처음에는 사랑을 위해 하다가 그다음에는 몇몇 가까운 친구들을 위해 하고, 그다음에는 돈을 위해 한다. - 몰리에르 (p.345 재인용)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몰리에르는 매춘이 뭔지 모르나? 매춘을 사랑을 위해 하다가 친구들을 위해 하나? 도대체 왜 글을 쓰는 걸 매춘과 같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글쓰기가 신성한 영역이다, 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에 대해 얘기할 때, 그게 무엇이든, 지금처럼 글쓰기이든 운동이든 음주든 여행이든 그게 뭐든, 그것을 매춘에 비유할 필요가 전혀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마케팅 매춘부라니...어처구니가 없다 진짜.





매일매일 글을 쓰면 어떤 점이 좋을까? 글을 쓸 때에는 항상 위험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당신의 세계관을 부정할 수도 있고, 당신에게 화가 나서 인연을 끊을 수도 있으며, 당신 자신이 웃음거리가 되거나 너무 많이 혹은 너무 적게 드러낼 수도 있다는 걱정이 따른다. 픽션의 장막과 가면으로 가린다고 해도 자신의 진실을 글로 표현하는 일은 언제나 위험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해방감이 들 것이다. 머릿속이나 가슴속에서 요란하게 울려대는 이야기를 글로 써내지 않으면 그 이야기는 자취를 감춰버린다. 당신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p.0 들어가는 말 중에서)

내 수업을 듣는 학생 중에는 성공한 미스터리 소설가가 있다. 그녀는 글쓰기와 자기 단련에 대해 더 이상 배울 게 없는데도 글쓰기 연습, 즉 훈련을 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수업에 출석한다. 그녀는 이 수업을 자신의 집필 ‘운동‘을 위한 ‘체육관‘이라고 부른다.
배우들이나 음악가들, 무용수드로 모두 훈련을 한다. 작가라고 훈련하지 말란 법이 있을까? (p.10)

나는 사생활에 대해 아주 편안하다. 사생활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않기 때문이다. ... 록 그룹 그레이트풀 데드Grateful Dead의 작사가인 존 페리 발로는 사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생활을 완전히 노출해서 숨길 게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레너드 클레인록 (p.20, 재인용)

나는 멘토들의 선례를 통해,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다른 사람들을 통해 여전히 배우고 있다. -제이 파리니 (p.42, 재인용)

나의 어린 시절 기억 가운데 가장 창피한 것은 1학년 토론수업 시간에 엄청난 거짓말을 했다가 그 거짓말이 학교 저네로 퍼져나간 일이다. (나는 유명한 영화배우들과 형제지간이라고 했다.) 한 번 거짓말을 하면 그것을 뒷받침하려고 줄줄이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일찌감치 배웠다. 거짓말로 이뤄진 구조물 하나를 통째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은 소설을 쓰는 일과도 비슷하다. (p.55)

줄리언 반스는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주 7일을 글을 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주말은 작업하기 좋은 시간이다. 사람들이 내가 놀러간 줄 알고 방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도 마찬가지다. 모두 나가서 노느라 아무도 전화하지 않는다. 나는 매년 크리스마스 아ㅣㅁ에 일을 한다. 일종의 의식이다." (p.61)

가슴 속에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인내를 가져라. 그런 의문 자체를 사랑하려고 노력해라. 그것은 잠가놓은 방과도 같다. 외국어로 쓰인 책과도 같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p.84, 재인용)

소설을 쓰고 있다면 이름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냥 전화번호부를 펼쳐 이름 몇 개를 추려낸 다음, 소설 속 인물들에게 옷을 입혀보듯 하나씩 붙여보면 된다. 앤 라모트는 소설 속 인물이 자신이라고 주장할 만한 남자들이 있다면 소설에서 그 인물의 성기가 아주 작다고 묘사하면 된다고 말한다. (p.91)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재능, 인내, 엄청난 노력은 좀처럼 구분되지 않는다. -데이비드 베일즈와 테드 올랜드의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중에서 (p,92, 재인용)

무엇이 됐든 그것에 열정을 갖고 있다면 절대 그 길에서 눈을 떼선 안 된다. 꾸준히 그 길을 걸어 반드시 가야 할 곳에 당도해라. (p.139)

대개는 책을 읽다가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글을 쓰겠다는 충동을 자극하는 것은 대개 독서이다. 독서, 독서에 대한 사라이 바로 작가의 꿈을 키워주는 것이다. -수전 손택 (p,186, 재인용)

캐롤라인 냅의 회고록은 술을 끊고 양친 부모를 잃고 개르르 사랑하게 된 후 자신의 세계를 재정의하게 된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책의 마지막 문단은 결론을 제시하지 않고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당신에게 공허함을 주는 것은 무엇이며 충만감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연결된 느낌이나 위로받는 느낌 혹은 기쁨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혹은 누구인가? 친구는 얼마만큼 필요하며 고독은 얼마만큼 필요한가? 무엇이 옳다고 느껴지고 무엇이 충분하다고 느껴지는가?" 냅의 개 루실은 이러한 질문들에 답해주지 못하지만, 냅은 루실이 자신을 그 답이 있는 곳으로 조금씩 끌어당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가들에게 질문은 언제나 출발점이 된다. (p,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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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틈에 2018-09-30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왜 하필 굳이 당췌 매춘인지 모르겠네요;; 원문이 궁금할 정도로...

다락방 2018-09-30 19:41   좋아요 0 | URL
저도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돼요. 여기에서 매춘 얘기가 대체 왜 나오는지..

책읽는나무 2018-09-30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했었던 책이었는데......아쉽군요!!!

다락방 2018-10-04 07:37   좋아요 0 | URL
글쓰기에 유용한 점들을 많이 짚어주긴 하지만, 저에겐 거슬리는 부분이 너무 컸어요...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