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꿨다. 꿈에서 그가 내게 만나기를 청했고, 나는 그래서 그가 기다리는 까페로 갔다. 그가 의자에 앉아있는 게 보였다. 그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해주기를 바랐는데, 그는 나를 보면서도 무심히 고개를 돌렸다. 나는 당황했다. 그에게로 가서 그의 앞에 앉아야 할지 아니면 이대로 돌아서 나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까페안의 다른 사람들이 내게 인사를 해왔다. 나는 아는 사람이 혹은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이 까페의 모든 이들이 모두 나의 아는 사람들이었다. 학교 동창들이라든가, 직장 동료라든가 하는 사람들. 그들 모두와 인사를 하는 소란스러운 중에도 그는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분명 그의 전화를 받고 나왔는데. 나는 너무 속상해서 그 까페를 나와버렸다. 그리고 집에 가려고 했다. 집에 가려다가, 아니야, 이대로 갈 순 없어. 내가 가서 인사를 하자, 라고 생각했다. 나 왔다고, 니가 오라고 해서 나는 여기에 너를 보러 왔다고 얘기하자. 자, 이제 나는 다시 까페로 들어갈 것이고 용기를 낼 것이다, 라고 다짐하는데 꿈을 깨버렸다. 

젠장. 

 

 

 

 

 

 

 

 

 

책속에서 남자는 여자를 찾아 해변으로 간다. 그리고 서 있는 그녀를 본다. 그녀의 뒤에 선다. 그러나 그녀가 돌아보질 않는다. 

'그녀는 모르는군...... 짐작도 못 하겠지. 그녀가 내 뒤로 가까이 왔다면 난 알았을 텐데.' (p.268) 

그녀가 정말 몰랐을까?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바로 등 뒤에 있다는 것을 그녀는 정말 알지 못했을까? 그녀가 내 뒤로 가까이 왔다면 난 알았을텐데, 하는 그의 그 안타까움은 내가 느끼는 것과 같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유독 예민해져서 별다른 힌트없이도 그에 대한걸 알아챌 수 있다. 그가 하는 모든 말들과 모든 표정들을 기억속에서 재생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런것들이 얼마만큼의 의미인지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나 역시 이 책속의 남자 '아처'처럼 그는 이런 나를 짐작도 못 하겠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아처가 그녀에게 하는 말들이 좋다. 그녀, '엘렌'도 아처가 하는 말들을 모두 가슴속에 새기지 않을까. 아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으니까. 

"맹세컨대 당신 얘기를 듣고 당신이 어떻게 지냈는지 알고 싶을 뿐이오. 우리가 만난 지 100년은 된 것 같아요.... 다시 만나려면 또 100년이 흘러야 할지도 모르지." (p.290)

 

사랑하는 사람을 마주한 시간은 짧게 느껴지고 보지 못하는 시간은 길고 또 길고 또 길게만 느껴진다. 다시 만나려면 100년이 또 흘러야 할지도 모른다니. 그저 한숨만 난다. 가슴속에 돌덩이가 들어가있는 것 같다. 누군가 그 돌을 꺼내어서 망치로 좀 부수어 줬으면 좋겠다.  

"불행해지면 안 돼요." 그녀가 자기 손을 빼내면서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대답했다. "돌아가지 말아요.... 안 돌아 갈거죠?" 그것만 아니라면 다 참고 견딜 수 있다는 듯이.
"돌아가지 않을게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몸을 돌려 문을 열고 식당으로 통하는 길로 나갔다
. (p.303) 

아, 나도 돌아가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 말할걸. 아 짜증나. 후회는, 일단 그것이 후회인 이상, 언제나 늘 늦다.

이 책속에서 나는 '메이'도 아닌 '엘렌'도 아닌 '아처' 에게 몰입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 엘렌을 가슴속에 품은 채 평생을 살아가게 되니까. 

그 후로 그들 사이에 더는 연락이 없었다. 그는 자기 마음속에 일종의 성소(聖所)를 만들어 놓고 비밀스러운 생각과 열망가운데 그녀를 간직해 두었다. 그곳은 조금씩 그의 진짜 삶이자 이성이 활동하는 유일한 장이 되어 갔다. (p.324) 

누구나 마음속에 일종의 성소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 누군가를 간직하지 않을까? 내가 만들어낸 마음속 성소에도 누군가 있는것처럼.  

"저기, 아버지, 올렌스카 부인은 어떤 분이었나요?"
아처는 아들의 뻔뻔스러운 시선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자, 솔직히 털어놔 보세요. 아버지랑 그분은 보통 사이가 아니었지요? 그렇게 아름다운 분이었나요?"
"아름답다고? 모르겠다. 그녀는 달랐어."
"아, 바로 그거였군요! 항상 그런 식으로 사랑이 시작되는 거죠. 척 보니 다르더라.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몰라도. 제가 패니한테 바로 그런 걸 느꼈거든요."
(p.435)

 

그녀는 달랐어. 그는 달랐어. 항상 그런 식으로 사랑이 시작되는 거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항상 그런 식으로 시작되는 거다. 항상. 그가 달라서, 그리고 그녀가 달라서.  

 

  

『친구와 연인사이』(아, 제목 진짜 싫다. 나는 친구와 연인 사이라는 말 자체도 싫고 이 영화의 제목이 이런것도 싫고 친구와 연인 '사이'라는 것도 싫다. 다 싫어, 다. 친구와 연인 사이라니, 대체 그 사이가 뭐야. 친구면 친구고 연인이면 연인이지..아 짜증나.), 이 영화속에서 생리통을 앓고 있는 여자에게 남자가 컵케익을 들고 찾아온다. 그리고 생리통을 겪고 있는 그녀를 위로할 만한 음악을 구운 CD도 함께 들고서. 생리통을 앓고 있는 여자와 남자가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노래를 함께 부른다.  

내가 생리통을 앓고 있는걸 알고 있는 남자라면, 그 남자는 자신이 좀 '특별한' 사람이란 걸 알았으면 좋겠다. 그는 결코 나에게 '아무나'는 아닐테니까. 나는 '친구'에게는 생리통을 앓고 있다고, 맹세컨대, 단 한번도 말한적이 없다.

 

 

 

영화속에서 그가 그녀를 위해 선택한 노래, 그리고 그녀가 그를 잃었다는 상실감에 도넛츠를 입에 넣고 울면서 따라 부르는 노래는 Leona Lewis 의 Bleeding Love. 

 

 

 

이 영화, 『만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버스에 탄 여자를 남자가 보내는 장면이다. 여자는 버스안에 있고 남자는 버스 바깥에 있다. 남자는 버스 바깥에서 여자에게 손을 흔들고 인사해준다. 여자도 같이 인사한다. 그리고 여자는 앞을 본다. 잠시후 여자는 다시 돌아본다. 남자가 또다시 자기에게 손을 흔들어준다. 그녀가 볼때마다 그가 그 자리에서 손을 흔들어준다.  

나는 바로 그때, '이 남자를 사랑할 수 밖에 없어'라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을 그녀가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나라면 그랬을테니까. 내가 돌아볼때 마다 있어주는 남자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그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뛰어오기까지 했다. 나를 만나기 위해 뛰어오는 남자를 대체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건 피할 도리가 없는 것. 

탕웨이는 기다리는 여자가 된다. 나는 그녀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을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순수의 시대를 다 읽었고, 이제 이십분만 더 있으면 월요일이고, 그래서 나는 도무지 잠을 이룰수가 없고, 눈은 말똥말똥하다. 일요일과 월요일 사이에는 100년의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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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음속 성소(聖所)와 다락방
    from 마지막 키스 2018-10-04 09:05 
    폴은 대학에 입학했던 그 나이에 동네에 사는 오십대 여자 '수전'과 연인 사이가 되었다. 그들은 사랑의 도피까지 감행했지만, 수전은 불행했고 알콜중독에 시달렸다. 수전의 곁에서 수전을 지켜주려고 했지만 점점 지쳐갔던 폴은 다른 여자친구를 사귄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첫연애상대인 수전에 대해서 늘 신경을 쓰고 있고, 그녀의 존재와 또 자신이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새로 사귄 또래의 여자친구 '애너'에게 말했다. '애너'는 폴의 말을 듣고 이해하며 수전에
  2. [백래시] 여자를 괴롭히는 남자들
    from 마지막 키스 2018-10-30 08:51 
    이틀전 일요일에 백래시 페이퍼를 썼으니, 앞으로 일요일에만 쓰자..라고 마음을 먹었지만, 그냥 닥치는대로 쓰겠다.그러니까 내가 어제 자기 전에 '백래시를 조금만 읽다 자자' 했는데, 읽다보니 또 딥빡이 온 것이다.'킴 베신저'는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당시에 섹시한 여배우로 이름을 날렸었다. 내가 아마 내 페이퍼를 통해서 여러번 킴 베신저 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녀의 몸매가 강조되는 영화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그녀가 찍었던 영화 중에는 나도 대학시절 보
 
 
2011-02-20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21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22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22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1-02-21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생리통 있을 때 컵케잌이 좋은 건가요? +_+; 영화 보면서, 술 마신 다음날 라면 -_- 이런 식으로 쟤네들은 생리통에는 컵케잌. 이란 공식이 있는 건가. 하는 궁금증이 들었어요. 저는 그럴 땐 타이레놀과 따뜻한 아랫목에 드러눕는 거 외에는 생각이 안 나더라는.

다락방 2011-02-21 13:15   좋아요 0 | URL
그렇다기 보다는 그냥 컵케익을 다 좋아하니까 사온게 아닐까 싶어요. 그냥 단거? ㅎㅎ 그장면도 엄청 웃기지 않았어요? 다들 생리주기가 같아서 골골 거리는데 문 안열어주려다가 컵케익 사왔단 말에 두말않고 열어주잖아요. ㅋㅋㅋㅋㅋ 저라도 그랬을 듯. 그리고 야, 놓고 가. 했을지도. ㅋㅋㅋㅋㅋ

저는 타이레놀 패쓰. 거의 약 안먹고 침대에 실신해서 드러누워있죠. 완전 널부러진 젖은 휴지가 된달까요. 얼굴도 만신창이가 되요. 다크써클은 더 진해지죠. 표정은 썩어버려요. 하하하핫

레와 2011-02-21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 나 컵케익 사줘요. 엄청 큰걸로.

다락방 2011-02-21 15:45   좋아요 0 | URL
우리 컵케익 쌓아놓고 먹을까요? 기분도 구리구리한데. 먹으면서 막 울고 울다가 노래부르고 그러다 목메면 벌컥벌컥 커피를 마시든가 맥주를 마시든가 하면. 그럼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

아이리시스 2011-02-21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요일과 월요일 사이 100년을 만들기 위해 저는 월요일마다 늦잠을 자요.
새로운 한 주를 늘 남보다 늦게 시작하는 게 첨엔 좀 위화감이 느껴졌는데 이젠 내가 일요일을 늦게 끝내니까 괜찮다고 생각해요. 꿈섬님이 안가르쳐주셔서 다락방님한테 물었는데, 혹시 가르쳐주지 않을까 싶었는데,
두 분 다 왜 현빈이 탕웨이 만나러 못갔는지 안가르쳐줘서 저 너무 슬퍼요.ㅠㅠ

아, 저도 컵케익도 좋고, 돌아볼 때마다 손흔들어주는 남자도 좋은데..
생리통도 싫고 혼자 버스타는 건 더 싫어요, 힝.

다락방 2011-02-21 16:56   좋아요 0 | URL
아이리시스님, 월요일도 벌써 오후 다섯시가 되었어요.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는데, 정말 끔찍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시간이 흘렀네요.
그리고 아이리시스님, 현빈이 탕웨이 만나러 가지 못한 이유(!)라고 까지 쓴 것만으로도 스포일러 일듯 한데, 그걸 말하면 어쩝니까! 봐야지요! 아이리시스님이 직접 봐야지요! 그리고 보고 그 속으로 퐁당 들어가야지요. 그래서 탕웨이가 느끼는 기분, 그리고 현빈이 느끼는 기분, 그거 직접 느껴야지요. 네? 전 끝까지 말씀드리지 않을거에요! 말씀 드리지 않을거라구욧!!

저는 생리통이 아주 고통스럽다고 느껴지지만 싫지는 않아요. 음...변태삘이 느껴지네요. 하핫 ;;

아이리시스 2011-02-22 00:18   좋아요 0 | URL
그러네요, 이제 묻는 것도 그만해야겠다,, 주워들었거든요, 스포일러라고 생각을 안했어요, 푸하하.
나 완전 바보다, -_-;; 고마웠어요, 일깨워줘서.ㅠㅠ

다락방 2011-02-22 13:14   좋아요 0 | URL
하하 바보라고 자책할것 까진 없구요, 아이리시스님.
직접 보는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저는 누가 영화나 책의 줄거리 혹은 결말을 얘기해 달라고 하면 볼건지 안볼건지 먼저 묻거든요. 그래서 볼거라고 하면 궁금해서 미치고 팔짝뛰겠다고 말해도 얘기 안해줘요. 전 잔인하고(응?) 냉정한(응?) 여자사람이니까요.

그나저나,
점심은 드셨습니까! 후훗

따라쟁이 2011-02-25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자꾸 만추의 마지막 장면과 새벽세시의 마지막 장면이 겹쳐져요. 우우웅

다락방 2011-02-25 14:06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페이퍼 봤어요. 새벽 세시랑 만추가 들어가있는 그 페이퍼.
그런데 왜 '에미'를 자꾸 '에이미' 라고 하는거에요, 응? 에미가 되보기도 했던 사람이 왜 이름을 헷갈리는거에요, 대체 왜! 이름 헷갈리지 말아요! 난 이름 헷갈리는거 싫어한단 말이에요!!!!!!!!!!!!!

따라쟁이 2011-02-25 15:07   좋아요 0 | URL
수정했어요. 저는 왜 그녀가 에이미였으면 좋겠죠? 에이미.. 가 더 좋아요. 에미는 왠지 부르다 만것 같아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