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syo 님의 서재에서 '휘파람'이란 단어를 보았다. 아, 휘파람. 내가 최근에, 그러니까 어제나 오늘 언제, 휘파람을 보았다.. 했다. 휘파람을 어디에서 보았지, 그러니까 글자로 나는 휘파람을 읽었는데, 아, 어디었지..답답한 마음으로 출근하면서 나는 시집을 펴들었다. 나는 언제나 내 가방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구나, 생각했다. 가방에는 시집 한 권과 소설책 한 권이 들어 있었다. 소설책을 읽으려고 가방에 넣었다가, 어쩌면 지하철 안에서 시집이 읽고 싶어질지도 몰라, 하고 시집을 넣어두었기 때문이다. 책 두 권을 가방에 넣는 일 모두, 내가 내 스스로 했다. 그러니 이 가방의 무게를 나는 고스란히 견뎌야 했다.




















시는 언제나 어렵지만, 그래도 내가 조금은 시에 익숙해진 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간의 이별이 나를 좀 더 시를 잘 읽는 몸으로 만들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주에는 진은영의 시집을 읽고 이번에는 허수경의 시집을 읽는데, 허수경의 시들이 아프다. 시를 명징하게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적절하지 않은 일일테지만, 그러니 내가 또렷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편이 더 나은 것이겠지만, 어렴풋한 슬픔이 내게로 오면서, 나는 어쩌면 시를 좀 더 잘 받아들이는 몸이 되었는가 보다, 햇다.



죽음의 관광객



한여름에 들른 도시에는 장례 행렬이 도자기를 굽

는 집들이 있는 골목을 지나가고 있었다 하늘로는

도자기를 굽는 연기가 사막 쪽으로 울었다 동쪽으로

넘어가려다 총 맞은 스물한 살 청년이라고 했다



동쪽에는 지나가지 못하는 나라가 있고



이 도시 사람들은 동쪽을 바라보며 희망은 맨 마

지막에 죽는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이라는 것이 너

무나 뜨거워 잡을 수가 없을 때 희망은 사라지는 것

이라고 했다



희망을 신뢰한 적은 없었으나 흠모하며 희망의 관

광객으로 걸은 적은 있었지 별이 인간의 말인 희망

을 긴 어둠의 터널 안에 가두고 먼지로 마셔버리는

것을 본 적도 있었지


눈동자 색깔이 다른 고양이의 고향이라는 도시에

서 택시기사에게 그 고양이를 본 적이 있느냐, 물어

보았으나 그는 미쳤소, 하는 표정으로 숯불에 구운

닭이나 먹다 가시오, 라고만 하더라



그러다가 고양이 고기를 먹게 되는 건 아닐까, 만

화 캐릭터처럼 웃기게 생긴 고양이 기념물 앞에서

저건 사람이 그린 동물일까 동물이 개어놓은 사람의

표정일까를 망설이는 동안 태양이 제 몸을 다 벗다

가 슬그머니 어두운 옷을 집어 입으며 사라지는데



장례 행렬이 지나갈 때 남자들은 울면서 밤하늘을

향하여 총을 쏘았고 하늘에 구멍이 뚫릴 때 청년이

아직 가슴에 피를 흘리며 우주의 난민이 되어 구멍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네



동쪽에는 지나가지 못하는 나라가 있고




어젯밤에는 자기 전에 사진을 보았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꿈속에는 나의 요가선생님들이 나와 있었다. 나는 버스를 타고 요가센터에서 주최하는 야유회에 참석했다. 그런 단체 활동 따위 딱 싫은데, 참석했다. 점심을 먹고 화장실을 가려는데 화장실이 너무 지저분해서, 나는 집에 있는 화장실에 다녀오려고 혼자 움직였다. 집 앞에서 윤여정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잠시 얘기하자 하시는데, 저 빨리 가야해요, 지금 어디 가는 도중에 여기 온 거에요, 하고는 집에 들렀다가 다시 야유회 장소로 갔는데 행사는 이미 다 끝나 있었고 선생님들만 남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미안하다고 했다. 이러려던 게 아니었어요. 어쩐지 나는 엄마랑 같이 와있었고, 선생님들은 모여서 나를 앞으로 불렀다. 다섯 명이었다. 엄마도 따라 오려는데, 엄마, 엄마는 거기서 기다려, 듣지마, 라고 했다. 선생님들은 내게 물었다. 너는 그 남자를 아직도 사랑하느냐고. 나는 그렇다고 했다. 선생님은 타로로 점을 봐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타로 카드 한장을 뽑아내 내게 보여주었다. 그것이 가리키는 바가 무엇인지 몰랐다. 이건 뭔가요, 사랑과 그리움이란 뜻인가요? 선생님은 말했다. 잊으라는 거예요, 그를 잊어요, 그를 잊으라, 그런 뜻이에요. 내가 보는 카드는 그런 의미가 아닌 것 같았는데, 선생님은 그렇게 말했고, 다른 선생님들도 같이 말했다. 잊으세요.



그런 꿈에서 깨어난 오늘 아침, 내가 지하철 안에서 읽은 시는 이런 것이었다.




사진 속의 달



이것은 슈퍼문이다

이것은 언젠가 슈퍼문이 있었다는 증거다

그리고 이것은 네가 내 옆에서

달을 보았다는 증거는 아니다

왜 얼굴 없는 바람은 저렇게 많은 손가락을 가져서

네가 떠난 자리를 수천 개의 장소로 만드는지

왜 네가 떠났는지 말해줄 수도 없다

다만 사진 속의 달이다

달을 기다리며 저 언덕에 서 있다가

우리가 나누어 마셨던 녹차의 흔적도 없다

술 대신 마셨다

네 건강의 슈퍼문이 다쳤다고 했다

구운 고기도 짠 김치도 없는 녹차 잔 속의 슈퍼문

다만 사진 한 장

그 앞에서 널 생각하는 것은 지병이어서

지난밤 베개에 옴폭 파인 홈처럼

이유가 있을 리 없다

지병의 기원을 슈퍼문 사진 한 장이

알려줄 리가 없다




잠들기 전 나는 사진 한 장을 보았고, 꿈에서는 모두가 내게 그를 잊으라 말했다. 나는 모두가 하나 되어 내게 그렇게 말하는데도, 아팠지만 굴하지 않았다. 아프다고 해서 수락하지 않았다. 내가 알아서 할게요, 라고 그들에게 말하고 돌아섰다. 내가 알아서 할게요. 그렇게 나는 허수경의 시집을 읽었다.



사진은 오래전의 것이었다. 오래전이라면 오래전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사진 속의 나는 웃고 있었고, 이런 때가 내게 있었지, 라고 보며 예뻐했다.



오래된 일



네가 나를 슬몃 바라보자

나는 떨면서 고개를 수그렸다

어린 연두 물빛이 네 마음의 가녘에서

숨을 가두며 살랑거렸는지도

오래된 일

봄저녁 어두컴컴해서

주소 없는 꽃엽서들은 가버리고

벗 없이 마신 술은

눈썹에 든 애먼 꽃술에 어려

네 눈이 바라보던

내 눈의 뿌연 거울은

하냥 먼 너머로 사라졌네

눈동자의 시절

모든 죽음이 살아나는 척하던

지독한 봄날의 일

그리고 오래된 일




하마터면 엽서를 쓸 뻔 했다. 엽서를 써볼까, 라고 시를 읽다 생각했다. 엽서가,  

조금 시간이 걸린 뒤에야 당도하겠지. 엽서를 써볼까, 하다가. 그것이 내 그리움의 크기만캄 상대에게 반가움으로 다가올까, 생각하며  

조심스레 생각을 닫는다. 내가 보내는 크기와 상대가 받는 크기가 같지 않다면, 한 쪽에겐 슬픔이고 한 쪽에겐 부담일 테니, 기쁨으로 다가서지 않는 것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니까.

왜 꽃엽서 라는 단어는 봐가지고.



시집 한 권을 다 읽어내고, 다시 앞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드디어 휘파람의 출처를 찾았다. 아, 이거였구나. 내가 그렇게나 휘파람 어디서 봤는데, 했던 그 휘파람이 바로 이것이었어! 이국의 호텔이 내게준 것이었다. 이국의 호텔이 한 일이었어.




이국의 호텔



휘파람, 이 명랑한 악기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우리에게 날아온 철새들이 발명했다 이 발명품에는

그닥 복잡한 사용법이 없다 다만 꼭 다문 입술로 꽃

을 피우는 무화과나 당신 생의 어떤 시간 앞에서 울

던 누군가를 생각하면 된다



호텔 건너편 발코니에는 빨래가 노을을 흠뻑 머

금고 붉은 종잇장처럼 흔들리고 르누아르를 흉내낸

그림 속에는 소녀가 발레복을 입고 백합처럼 죽어

가는데



호텔 앞에는 병이 들고도 꽃을 피우는 장미가 서

있으니 오늘은 조금 우울해도 좋아

장미에 든 병의 향기가 저녁 공기를 앓게 하니 오

늘은 조금 우울해도 좋아



자연을 과거 시제로 노래하고 당신을 미래 시제로

잠재우며 이곳까지 왔네 이국의 호텔에 방을 정하고

밤새 꾼 꿈속에서 잃어버린 얼굴을 낯선 침대에 눕

힌다 그리고 얼굴에 켜지는 가로등을 다시 꺼내보는

저녁 무렵



슬픔이라는 조금은 슬픈 단어는 호텔 방 서랍 안

성경 밑에 숨겨둔다



저녁의 가장 두터운 속살을 주문하는 아코디언 소

리가 들리는 골목 토마토를 싣고 가는 자전거는 넘

어지고 붉은 노을의 살점이 뚝뚝 거리에서 이겨지는

데 그 살점으로 만든 칵테일, 딱 한 잔 비우면서 휘

파람이라는 명랑한 악기를 사랑하면 이구의 거리는

작은 술잔처럼 둥글어지면서 아프다



그러니 오늘은 조금 우울해도 좋아 그러니 오늘은

조금 우울해도 좋아, 라는 말을 계속해도 좋아




내가 이토록이나 이국의 호텔을 사랑하는 이유는 당신을 미래 시제로 잠재우기 때문이었구나. 자연이 아닌 당신을 과거 시제로 노래하고 또 당신을 미래 시제로 잠재우기 때문에 나는 이국의 호텔에 방을 정하고 밤새 꾼 꿈속에서 잃어버린 낯선 얼굴을 찾는다. 과거도 당신이고 미래도 당신이야. 온통 당신으로 가득 차있다.


나는 휘파람을, 이국의 호텔을, 사진 속 얼굴을 시 속에서 찾고 잠 속에서 찾는다.

나는 내가 다 알아서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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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11-05 0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시네 시야...

다락방 2018-11-05 09:30   좋아요 1 | URL
아이고,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저는 겸손을 아는 다락방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태우스 님의 신간이 나온 걸 지난 주에 알고 같이 읽어보자며 친구들에게 선물했다. 일기에 관한 책이라니, 나는 아직 읽기도 전부터 막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나는 알라딘에 페이퍼도 쓰지만 네이버에 일기도 쓰고 있다. 그러면서 종이 다이어리에도 또 일기를 써. 거기에는 네이버에도 쓰지 못하는 은밀한 감정들에 대해 쓴다. 일기라니,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인데, 뭔가 쓰지 않으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고 늘상 생각하는 나이므로 일기를 꼬박꼬박 잘도 쓰는데, 그런데 일기에 대한 책이라니, 너무 기대되는 것!! 



금요일에 산 책을 오늘 사진 찍어 인스타에 올리는 과정에서 어어엇...나는 이미 가지고 있는 책이란 것을 알았다. '앤젤라 카터'의 [피로 물든 방] .. 하아...
















또 이랬다, 또... 또 이랬어... 나여....




어제 여동생네 집에 갔다가 오늘 함께 걷는데, 아파트단지에 낙엽 색깔이 너무 좋은 거다. 너무 예뻐. 여동생은 생물 교사이니만큼, 학생들에게 질문했다고 한다.


"얘들아 단풍이 왜들까?"


그러자 한 아이가


"부끄러워서."


라고 했다는 거다. 그래서 여동생이 빵터졌다고. 그래서 여동생은


"지금은 생물시간이지 문학시간이 아니야" 라고 말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웃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뭇잎 색깔이 변하는 이유를 말해줬다고 하는 거다. 나는 내게도 말해달라고 했다. 여동생은 나에게 설명해줬는데, 너무 재미있어! 나는 다시 한 번 더 말해달라고 하면서 녹음하겠다고 했다. 왜냐하면 내가 용어를 외우지 못할 것 같아서.



그러니까 날이 추워지면 광합성을 하는 엽록소가 대부분 파괴된다고 한다. 그러면 주된 역할을 했던 엽록소가 파괴되는 대신, 카르티노이드계 색소가 드러나게 되는데, 그 카르티노이드계 색소가 노랑색과 주황색이라는 거다. 사시사철 푸르른 상록수 잎들은, 본인의 식물 잎에 삼투압을 계속 높은 농도로 유지하며 한겨울을 지낼 수 있고 밖에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어는점 내림 현상이 있어서 잘 얼지 않아 겨울도 견딜 수 있고 엽록소 파괴도 잘 되지 않는다.



히히 설명 듣는데 너무 재미있고 좋았어. 여동생이 내게 '언니, 과학도 좀 공부해' 해서, '응 그럴게' 했지만.... 과학 까지 내가 어떻게.... 그건 그냥 가끔 여동생한테 설명 듣는 걸로. 여동생 똑똑해 너무 좋아. 그전까지 내가 페미니즘이라든가, 시위에 나가는 이유, 가스라이팅 등등에 대해 여동생이 묻는 것에 대답해주는 편이었는데, 가을에 잎 색깔이 변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동생으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너무 좋아.


"너 내가 사준 랩걸 다 읽었어?"

"아니. 읽다 말았어."

"야 그거 엄청 좋아. 읽어봐."

"응."




















타미는 토욜에 콩쿨했고 3등을 했다. 아이는 콩쿨에 나가기 위해 몇 개월간 매일매일 연주곡을 서른번씩 쳤다고 했다.


"이모, 나 내년에 콩쿨 또 나갈거야."

"타미야, 근데 너가 나가봤잖아. 연습하느라 너무 힘들었잖아."

"응. 근데 힘들지만 대회에 나가야 상을 타잖아. 장학금 같은 것도 받고."


음...

안나가면 연습도 안해도 되는데, 그 편한 길 대신, 아이는 힘들지만 연습하고 대회에 나가는 걸 선택하는 구나... 얼마전에는 독서대회인가..하는 것에도 나가서 상을 타가지고 왔던데, 나는 대회 나가는 것에 관심이 없건만, 이 아이는 왜이렇게 대회를 나가고 싶어하는가... 




남동생은 온라인 쇼핑몰을 오픈했다. 그간 지마켓이나 네이버 같은 곳을 통해 팔아오다가 자신들만의 몰을 오픈한 것. 


http://goodbag.kr/


잘 되어서 나를 호강시켜 줘야 될텐데....는 사실 좀 큰 바람인 것 같고, 자기 먹을거나 제 때 잘 먹을 수 있게 됐음 좋겠다.




주말 내내 운동도 못하고 독서도 못했다. 그렇지만 오늘 낮잠을 좀 자서 체력을 회복해 두었으니, 자기 전까지는 책을 좀 읽어봐야겠다. 무슨 책을 읽을까, 책장 앞에서 고민해 봐야지. 아, 백래시는 필수적으로 읽고!!!


앤젤라 카터 두 권 된 기념으로 앤젤라 카터 읽을까 싶지만, 밤에 읽기에 '피로 물든' 방은 좀 무섭지 않을까? 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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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11-04 2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피로 물든 방‘은 두번 읽으세요. 안 그러면 피로 물든 방의 저주가 있을지어니......

다락방 2018-11-04 21:56   좋아요 0 | URL
힝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한 권 벌써 팔아버렸다고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8-11-04 21:58   좋아요 0 | URL
신속하다😲

다락방 2018-11-04 22:03   좋아요 0 | URL
편의점에 가 택배까지 보내고 왔어요. 생각나면 바로 실행하는 행동파 우두머리 대장입니다!

syo 2018-11-04 22:05   좋아요 1 | URL
그러시다면 다락방님이 피로 물든 방의 저주를 받아 피로 물든 다락방이 되지 않도록, 나머지 한 번은 제가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두 번 채워서 저주를 벗어나자구요.🙄

다락방 2018-11-04 22:07   좋아요 0 | URL
어머! 세상 멋진 제안을 하시는 분..... 이렇게 근사한 책친구라니.. 게다가 저주에서도 벗어나게 해줬어 >.< 같이 읽어요, 그럼! 히히. 언제 읽을지 말해줘요. 히히 ^_____^

syo 2018-11-04 22:15   좋아요 0 | URL
늦으면 금요일 오후쯤이요?? 매우 낮지만 더 빨리 시작할 확률도 있구요 🤓

다락방 2018-11-04 22:16   좋아요 0 | URL
오케! 가능할 때 알려줘요. 저야 책은 준비 되어 있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은 다른 책 좀 읽어야겠어요. 쇼님이 피로 물든 방 시작한다 할 때까지 새로 시작하는 책을 다 읽을 수 있기를!! 후훗

- 2018-11-04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락방님도 인스타 하시는 구나!! (친구해도돼용??///// 수줍)

다락방 2018-11-04 22:19   좋아요 1 | URL
물론이죠! @elbeso77 입니다!! >.<

꼬마요정 2018-11-05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로 물든 방... 좋지요 ㅎㅎㅎ 밤에 읽으셔도 괜찮습니다. (전 한 번 졸았어요 ㅎㅎㅎ)
다락방님 좋아하실 듯 ㅎㅎㅎ

랩 걸.. 사놓고 아직 못 읽었는데, 2018년 가기 전에 읽어야겠어요. 읽을 게 너무 많아요 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8-11-08 09:44   좋아요 0 | URL
저는 곧 피로 물든 방을 읽을 예정입니다. 으아아아. 저도 어쩌면 졸지도 모르겠네요. 일전에 앤젤라 카터의 책을 재미없게 읽었던 경험이 있어서... 시간도 오래 지났으니 이번에는 어떻게 읽게될지 모르겠어요.

랩걸 너무 좋아요, 꼬마요정님!! 정말 좋아요. 얼른 읽으세요, 얼른!!

2018-11-12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13 0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13 0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13 0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게 뭐여 ㅜㅜ 나 싫어 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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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11-04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첨에는 피로물든방 1, 피로물든방 2인줄 알았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뻐요, 아주 이쁜 책들입니다!

다락방 2018-11-04 20:13   좋아요 1 | URL
아 왜 자꾸 이러는 걸까요... 제 자신이 미워요. 흙흙 ㅜㅜ

syo 2018-11-04 20:44   좋아요 0 | URL
나도 ㅋㅋㅋㅋㅋ 1 2권 뭐가 문젠지 몰라서 한참봤어요 ㅋㅋ

단발머리 2018-11-04 20:48   좋아요 0 | URL
오른쪽이 새로 주문한 책이라는데 1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8-11-04 20:49   좋아요 0 | URL
왼쪽이 새로 주문한 거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8-11-04 20:50   좋아요 0 | URL
왼쪽이 전부터 있던 책이라는 데 1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8-11-04 20:50   좋아요 0 | URL
아니라고 왼쪽이 새거라고!!!!! ㅋㅋㅋㅋㅋ

syo 2018-11-04 20:51   좋아요 0 | URL
옛날에 주문한 놈이 저렇게 깨끗하다니..... 이거 직무태만이다...

syo 2018-11-04 20:52   좋아요 0 | URL
심지어 왼쪽 애는 피로 하고 물든 사이에 손톱자국도 있어. V자로.....

다락방 2018-11-04 20:56   좋아요 0 | URL
있는지도 몰랐던 책이니 깨끗할 수밖에요........ (제가 잘못했어요 ㅜㅜ)

단발머리 2018-11-04 21:20   좋아요 0 | URL
이상해요. 오른쪽 애가 더 색이 진한데... 이럴수가... ?!?

다락방 2018-11-04 22:08   좋아요 0 | URL
사진 찍을 때 아마도 빛의 위치 라든가.. 뭐 그런 영향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ㅋㅋㅋ

카알벨루치 2018-11-04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8-11-04 20:22   좋아요 1 | URL
독서인생이란 이렇듯 험난합니다....ㅋㅋ

bookholic 2018-11-04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저는 알라딘에서 예전에 구매한 것을 알려줘서 위기를 모면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양장본과 반양장본 판본이 2개이 경우나, 구판과 개정판인 경우의 중복 구매는 알려주지 않아서, 그런 경우 중복 구매는 운명이려니, 생각합니다.^^

다락방 2018-11-04 23:04   좋아요 0 | URL
저도 알라딘이 ‘이전에 구매한 책입니다’라고 알려주어 여러번 또 사는 경우를 막을 수 있었는데, 제가 알라딘을 통해서만 책을 사게 되는 게 아니라 이런 일이 또 생기네요. 어휴.. 앞으로 신중 또 신중해야겠어요... ㅜㅠ

보슬비 2018-11-07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넘 귀여우세요.
예전에 저도 종종 그랬는데, 지금은 책을 덜 사서인지 이런 경우가 없는것이 좋아해야할지 말아야할지 모르겠어요. ^^

다락방 2018-11-08 09:32   좋아요 0 | URL
저도 가급적 책 사는 걸 자제하고자 해요. 집에 진짜 사두고 안읽은 책이 너무 많아서..이제 더이상 집에 있는 책을 또 사는 건 그만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ㅠㅠ
 















김약국에게는 딸이 다섯 있다. 그중 둘째 용빈은 가장 영특하여 서울로 가 공부를 하는 중인데, 마을의 부유한 집 아들 홍섭과 사귀면서 결혼할 거라 모두가 짐작하는 사이다. 용빈의 큰아버지와 사촌오빠는 용빈이 그 남자랑 결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영 마음에 들질 않지만, 용빈은 오래 홍섭을 알았고 사귀어왔다.


그런데 어느날부터인가 홍섭이 자신을 좀 피하는 것 같고 자신의 눈도 잘 쳐다보질 않는다. 뭔가 쎄한 기분을 느꼈는데, 다른 사람을 통해 그가 미국에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은데 교회에서 마주친 그의 옆에는 세련되고 어여쁜 젊은 아가씨가 서있다. 그를 미국으로 보내주겠다는 서울 목사의 딸이라고 인사를 받으며 그제야 용빈은 아, 일이 그렇게 되어가는 것이구나, 하며 자신의 이별을 직감한다.



그렇게 둘은 만난다.





아 진짜 너무 싫은 거다. 본격적인 악의를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는 척,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가는 거면서 '우리에게 있던 건 형제애일거야' 같은 말로 넘겨버리는, 이별할 용기도 없는 놈.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으니 헤어지자'라는 말은 솔직하기라도 하지, 이건 대체 뭐하는 짓거리인지... 최대한 상처를 덜주기 위해 하는 말인듯 하나, 결국 그가 놓지 못했던건, '여전히 좋은 나, 나쁠 리가 없는 나, 나는 나쁜놈 아니야' 인것이다. 아우 너무 못나서 헤어지길 잘했다고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심정이다.


게다가 자신의 옆에 세워둘 여자가 된 '마리아'에 대해서 자신을 잘 따르는 바람에 그만 '실수'해버리고 말았다고 말하는 남자라니..아 너무 역겹다. 자기를 잘 따랐다며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한 변명. 토할것 같아. 그러면 마리아는 뭐가 되지? '나는 내 남편의 실수'가 되는 게 아닌가. 나는 이 대화속에서 홍섭과 헤어지게 된 용빈도, 그 헤어짐의 감정을 추슬러야 하므로 고통스럽겠다 생각했지만, 마리아의 입장이 더 더럽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의 실수'라는 걸 마리아가 안다면, 대체 어떤 기분일까. 어디가서 내 남편이, 내 애인이 '아, 실수로...그래서 지금 그여자 사귀게 됐어'라는 말같은 거 듣는다면, 와..... 야 진짜 꺼져라 진짜......



쌍욕을 하고 주먹을 휘두르는 것도 나쁜짓이지만, 나는 상대를 배려하는 척 자기 이미지를 놓지 않으려고 하는 유약함도 나쁘다고 생각한다. 아 싫어 진짜.



그렇지만 용빈은 홍섭과 헤어져서 나쁜 놈을 인생으로부터 밀어내기라도 했지, 하아- 김약국의 딸들은 모두 남자들이.. 하긴 뭐 김약국의 딸들만 그러하랴... 지금보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된 1900년대 초반에는 여자들 살기 더 힘들었지.


'김약국'이라 불리는 남자가 아주 아기일 적에, 김약국의 아버지가 외출한 틈을 타 집에 한 남자가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는 김약국의 어머니가 결혼하기 전 그녀를 사모하던 남자였는데, 이미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된 여자를 그립다며 찾아온 것. 게다가 그는 결혼하고 첫날밤에 아내를 그냥 버려둔채로 이 사모하는 여자를 찾아왔던 것이다. 김약국의 어머니는 놀라서 유모를 찾고, 유모는 뛰어나와 '여기가 어딘줄 알고 오느냐, 맘 잡고 살아라, 얼른 돌아가라, 이러다가 주인 어른 돌아오시면 큰일난다' 했는데, 이 남자는 안돌아가고 '한 번만 보고 가자 한 번만..'이러다가 남편이 똭- 집에 돌아온 거다.


워낙에 성격이 개같았던 남편은 이 꼴을 보고 아내를 죽도록 때리고 도망간 과거남자를 쫓아가 그를 칼로 찔러버린다. 아내는 자신이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음에도 남편에게 맞고 결국 자살한다. 그러니까 이 상황에서, 아내가 죽은 이 상황에서 아내를 죽게 만든 건, 남편 혼자 한 일은 아니었다. 가라고 했는데도 가지 않고 버티고 섰던 과거의 남자도 그녀를 죽인 거다. 아내가 '아니라고' 하는데도 그 말을 듣지 않고 아내를 죽도록 때린 남편이 그녀를 죽였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던 남자들이 그녀를 죽인 거다. 가라고 하면 가라. 헤어지자고 하면 헤어져야지. 싫다고 하면 싫은 거고, 아니라고 하면 아닌 거다. 왜 가라는 데 안가고 아니라는 데 듣지 않고 죽이는가. 왜 여자 말을 듣지를 않어, 왜. 가라는 데 가지 않고 '너를 사랑해서 그래'라고 하는 거, 너무 지독한 폭력이다. 그 사랑은 과연 상대를 향한 사랑인가? 그 사랑은 '이렇게나 사랑하는 나'자신을 향한 사랑이다.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해 자존감은 지독히 낮으면서 그러나 '이토록 사랑하는 나' 에 대한 자기 연민만은 가득찬 남자... 욕하고 때리는 남자도 나쁘지만 이렇게 자존감 낮으면서 자기 연민만 가득한 남자도 나쁘다. 다 쓰레기야, 다, 다. 너무 싫어. 끔찍하다 진짜. 휴...




그리고 아, 우리 용옥이...


용란이는 딸들중 가장 예뻤고, 기두는 내심 그녀랑 결혼하게 될 것 같아 기대하고 설렜다. 그런데 용란은 집의 머슴과 바람이 났고, 그게 흠이 잡혀 아편쟁이이며 성불구자인 부자 남자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기두에게 이 일은 너무 우울하고 슬펐고 또 용란이에 대한 마음이 쉬이 접히지 않았는데, 김약국은 그런 그에게 '용옥이와 결혼하라' 하는 거다. 고민하던 기두는 용옥과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고 그 결혼을 실행해 아이까지 낳았지만, 그녀에 대한 애정은 좀처럼 생기지 않아 집에 들어오질 않는다. 자기만 믿고 바라보고 기다리는 용옥이 가엽다 여겨지다가도 보면 밀어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용란에 대한 미련만 남고, 그래서 그는 바닷일을 한다는 핑계로 부산에 가서 통영인 집에 잘 돌아오지 않거나, 돌아와도 아내 옆에 오지도 않고, 어떤 날에는 통영에 와서도 집에 가 아내를 보지는 않으면서 술집에 가 다른 아가씨랑 자고 다시 부산에 가기도 한다. 아내는 통영에 와도 자신에게 들르지 않았다는 걸 알고 너무 슬퍼하는데,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남자를 남편이라고 믿고 계속 살아야 되다니, 너무 비극 아닌가. 그런데다 남편 없는 집에서 시아버지랑 둘이 있는 시간이 너무 많고, 시아버지는 기척도 없이 자꾸만 문을 벌컥벌컥 열고 뒤로 소리없이 다가오고 그런다. 그러다가 밤에 잠자는 며느리를 급기야 덮치기까지 하는데, 소리지르는 그녀의 입을 막고서는 '너만 아무말 안하면 아무도 모른다'같은 소리 지껄이는 거다. 그런 용옥은 어떻게 됐을까?



죽었다.



시아버지를 피해 도망가 남편을 찾으러 갔지만 남편도 만나지 못하고 배를 탔다가 죽었다. 시아버지는 아들에게 '니 여편네가 바람난 것 같다'며 혹여라도 자신의 죄가 발각될까 싶어 거짓말하지만, 기두는 '내 아내가 그럴 일은 없다'고 맞받아칠 정도로 자신에 대한 아내의 정절을 믿고 있었다. 그런 놈이 아내에게 정을 주지도 못하고 다른 여자를 그리워하고 술집가 잠은 다른 여자랑 자고... 기두야, 니 삶은 뭐니?

그리고 니 아내의 삶은 뭐야?



어제는 개인적으로 내 주변의 일 때문에 가슴 가득 연민이 차올랐다. 그런 참에 김약국의 딸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니 연민이 곱이 돼. 이 연민이 가슴속에서 쉬이 사라지질 않고 오늘 아침까지도 너무 아픈 거다. 아, 너무 아프다. 아 너무 .. 어떡하지 이 사람들.. 막 이렇게 되는 거다. 이게 사라지지 않고 너무 내 마음에 연민이 가득 차 있어서 내가 힘들어. 그래서 방금 전에는


아아 안되겠다. 소설 그만 읽자, 너무 그 안에 들어가있다, 소설 그만 읽자...



했다가, 아아, 안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러면 좀 참았다가 읽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막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슬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박경리의 《토지》라는 그 어마어마한 책을 읽으면서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왜 다른 책 읽어볼 생각을 못했을까. 나는 김약국의 딸들 읽다가 알라딘에 들어와 박경리 검색해서 박경리 책 장바구니에 다 넣어두었다. 내가 박경리 책을 다 읽는 걸 나의 독서 라이프의 목표로 삼으리라.


최명희가 《혼불》에서 첫날밤에 아내 옷고름도 푸르지 않고 다른 여자 그리워한 남자를 그려낸 적이 있는데, 박경리 역시 초반에 그런 남자를 등장시켰다. 결국 그리워한 여자를 죽게만들었지. 박경리는 알았다.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이 이렇게 여자들을 죽게 만드는지를 너무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자신이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글로써 해낼 수 있는 것 같다. 박경리가 이런 이야기를 써낼 때는 이미 이 세상이 어떻게 굴러 돌아가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존경합니다.



그리고 기두 생각을 많이 했다. 기두가, 그러니까 애시당초 자신이 흠모했던 용란이 설사 다른 남자랑 결혼 전에 그런 일이 있었어도, 자신이 나서서 '나랑 결혼하자' 혹은 '용란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라고 김약국에게 말했다면, 그랬다면 많은 비극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기두는 자신이 계속 욕망했던 여자랑 살게되고, 용란은 성불구인 남편과 이렇게 죽을 때까지 맞아가며 살아야 해? 라며 비관하지 않았을 것이고, 용옥은 자신을 바라보지도 않는 남자의 아내가 되어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시아버지의 침입에 맞닥뜨리지 않았어도 됐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 '나를 사랑해주는'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만으로는 안돼. 내가, 나 스스로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야 한다. 그것이 자기를 살리고 나랑 함께 사는 사람을 살리는 길인 것이다. 마음속으로 품는 누군가를 둔 채로 다른 사람과 산다면, 나는 여기에도 거기에도 오롯이 존재할 수가 없다. 마음속으로 품는 누군가가 있는 사람과 함께 산다면, 나 역시 온전히 내게 오는 시선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비참할 수밖에 없고. 이건 진짜 모두가 불행해지는 길이야.


기두는 그러면 안되는 거였다. 용란과 결혼하지 못했을망정 용옥과 '그냥' 결혼해서도 안되는 거였다. 사람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기를 선택하는 건, '이사람 대신'이 될 순 없다. 그래서는 안된다. 그것은 둘 모두에게 불행을 불러온다. 종국엔 비극이 찾아온다. 내 마음이 닿는 사람, 그 사람과 함께가 아니라고 해서 '어쩌면 뭐 마음이 닿을 수도 있겠지' 같은 좋아하지도 않는 마음으로 그저 살아보자고 덤벼서는 안된다. 그것은 죽음을 초래한다. 육체적 죽음일 수도 있고 정신적 죽음일 수도 있지만, 비극이 돼. 만약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살 수 없다면,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기두는 유죄다. 기두에겐 죄가 있다. 자신이 사랑하지 못한 사람과 살게된 건 자신의 불행이지만, 그 불행속으로 다른 사람을 끌어들였다. 기두는 유죄다. 아들 없는 며느리방에 들어간 시아버지는 쳐죽일 새끼지만 기두라고 딱히 용서할 만한 놈도 아니다.


김약국의 딸들에 대한 연민이 가슴 가득 차올라 너무 힘든 오전이다. 밖이 저렇게나 환한 데 나는 마음이 너무 아파. 타이레놀을 한 알 먹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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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11-01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소설에 푹 들어가서 읽는 건 언제봐도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전 못하겠어요.
그것보다 더 대단한 건, 그렇게 이입해서 읽으면 도저히 다 읽어낼 수가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끝내 읽어버린다는 것.

과연 그래서 다락방님이 다락방님이지....

카알벨루치 2018-11-01 13:21   좋아요 0 | URL
마자마자 감정이입은 정말 최고입니다!

다락방 2018-11-01 15:30   좋아요 1 | URL
박경리 선생님께서 글을 너무나 잘 써주신 덕에 끝까지 읽어내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다만, 누군가 좀 행복해지는 걸 보고싶었는데 결국 행복해지는 사람들이 없어서...그게 끝까지 못내 아쉽네요. ㅠㅠ

단발머리 2018-11-01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이 페이퍼는
‘살인‘을 ‘사랑‘으로 해석하는 제정신 아닌 모든 남자들에게 들려주고픈 여성들의 외침이라고 생각해요.


결과적으로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던 남자들이 그녀를 죽인 거다. 가라고 하면 가라. 헤어지자고 하면 헤어져야지. 싫다고 하면 싫은 거고, 아니라고 하면 아닌 거다. 왜 가라는 데 안가고 아니라는 데 듣지 않고 죽이는가. 왜 여자 말을 듣지를 않어, 왜. 가라는 데 가지 않고 ‘너를 사랑해서 그래‘라고 하는 거, 너무 지독한 폭력이다.


올려주신 페이지의 홍섭 대사는 진짜 매를 부르네요. 화나는데 자꾸 읽게 돼요.
그나저나 우리집에는 왜 <김약국의 딸들>이 없는겁니까? 대답해봐요! 왜요, 왜!!!



다락방 2018-11-05 08:30   좋아요 0 | URL
‘너를 사랑해서 그래, 너를 너무 사랑해서‘ 라는 핑계를 대는 남자들은 그야말로 자존감이 낮은 형편없는 남자들이라고 생각해요. 자존감은 낮은데 자기에 대한 연민만큼은 하늘을 찔러, ‘거절당하는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거죠. 거절당하는 자신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너를 이렇게나 사랑하는데!‘라고 자기 자신을 포장하죠. 형편없는 남자들이에요. 너무 싫어...

홍섭이야말로 찌질한 남자중에 으뜸이죠. 결혼을 약속한 여자에게도 ‘우리는 형제가 더 나을지도‘ 라면서 도망가버리고, 자신과 동침한 여자에 대해서는 ‘자기를 잘 따른다‘고 그녀의 탓을 하고...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는 상등신 머저리에요. 어우 싫어요..


저는 토지 옆에 김약국의 딸들 꽂아두었습니다!

비연 2018-11-01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으면서, 아주 많이 속상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도대체 뭔가, 이 시절 여자들은 다 바보였나? 그리고 이 시절 남자들은 다 왜 이리 비루한가? 이러면서 답답해졌던 거였죠. 다락방님 글 보니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그 책을 읽던 때의 느낌이.

다락방 2018-11-05 08:30   좋아요 0 | URL
저도 연민의 감정이 차올라 미치겠더라고요. 너무 형편없는 세상속에서 형편없는 남자들 속에서 살아가는 여자들이라니, 인생이 너무 혹독했어요. 세상은 빨리 바뀌었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도 멀지만, 그 때는 너무 멀었어요. 비루한 남자들 때문에 여자들이 고통을 받아요, 비연님...

- 2018-11-02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어지면서 좋은 사람인척 하는 남자들의 이별방식... 그래놓고 이주뒤에 ..자니..? ㅋㅋㅋㅋㅋ 진심 발암.. 무슨 학교 있나.. 다들 왜그럴까요 ㅋㅋ

다락방 2018-11-05 08:31   좋아요 0 | URL
자기 자신 때문에 이별을 하는 거여도 상대에게 끝까지 멋진 남자로 남고 싶고, 그리고 이런 멋진 남자를 헤어진 뒤에 니가 잊을리 없다, ‘자니‘ 문자 하나면 너는 흔들릴 것이다...라는 것 아닐까 싶어요. 멍충이들... 싫어... 싫어요....
 
여성주의 책 같이 읽기 시작합니다.
[백래시] 일요일마다 백래시 올리기
















이틀전 일요일에 백래시 페이퍼를 썼으니, 앞으로 일요일에만 쓰자..라고 마음을 먹었지만, 그냥 닥치는대로 쓰겠다.

그러니까 내가 어제 자기 전에 '백래시를 조금만 읽다 자자' 했는데, 읽다보니 또 딥빡이 온 것이다.



'킴 베신저'는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당시에 섹시한 여배우로 이름을 날렸었다. 내가 아마 내 페이퍼를 통해서 여러번 킴 베신저 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녀의 몸매가 강조되는 영화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그녀가 찍었던 영화 중에는 나도 대학시절 보았던 영화 《나인 하프 위크》가 있다. 나는 어쩐 일인지 이 영화가 그동안 '잘만 킹' 감독의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아, 잘만킹은 와일드 오키드였나?), 아니었다. 《플래시 댄스》와《가면의 정사》의 감독인 '애드리안 라인' 이었다. 감독의 필모를 보니 내가 본 영화가 여러편이던데, 나는 감독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지도 않았네.


















이 책에서는 여성 중심의 영화로 만들 계획이었던 '가면의 정사'가 어떻게 악녀를 만들어냈는지, 어떻게 극장에서 많은 남성 관객들이 '저년을 죽여라!' 소리를 지르게끔 바뀌게 되었는지를 얘기하는데, 그 과정에서 이 감독의 작품 나인 하프 위크 얘기도 나왔다.


자, 여러분, 같이 분노하자.





어제 이 부분을 읽는데 킴 베이신저 생각이 나서 너무 마음이 아픈 거다. 이것이 응당 네가 해야할 일이라는 듯, 촬영 쉬는 시간에도 굴욕을 당해야 하다니.. 그런 영화를 내가 뭣도 모르고 대학시절 보았다니.. 너무 속상한거다. 세상에 이런 영화는 도대체 얼마나 많을까. 아니, 남자가 감독인 거의 대부분의 영화가 이런 식이 아닐까. 게다가 남자 주연 배우 역시 감독의 말을 듣는다. 저 사이에서 킴 베이신저는 어떤 행동을 하고 무엇을 느껴야 했을까.


영화판에서 그리고 드라마 판에서. 그리도 다른 모든 직종에서.

남자들은 대체 여자들을 얼마나 괴롭히고 있는걸까.

그러면서 작품을 위해서라고, 더 좋은 연기를 위해서라고 하니, 그야말로 가스라이팅이 아닌가. 처음에는 '아닌 것 같다'고 하면서도 '이것이 좋은 연기를 위해서라니..'라며 자신을 의심하며 그 순간순간을 견뎌낸 것이 아닌가. 너무 마음이 아픈 거다. 이 일을 알게된 이상 만약 내가 지금 다시 나인 하프 위크를 보게 된다면 아마 펑펑 울게될 것 같은 거다.


나는 포르노를 부러 피한 건 아니었다. 내가 보기 싫어서 보지 않았던 거지. 그런데 내가 간혹 보고싶어했던 에로영화들이, 거기에는 남자와 여자와의 스토리가 있고 그 스토리가 있는 육체적 관계는 좋다고 생각했던 그 영화들이, 그런데 정말 '괜찮았던' 영화들인걸까? 에로 영화에도 여성에 대한 폭력은 계속 있어왔던 게 아닌가.


나는 얼마나 많이 더 화내고, 더 울고, 더 절망해야 할까.


애드리안 감독은 이런 사람이었다.




물론 '마이클 더글라스'라고 해서 애드리안 감독과 별 다를 바 없긴 했지만.



어느 직업을 가지든 어느 직장에 다니든, 여자들은 너무 많은 것들을 견디고 살아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빼앗기는 에너지가 너무 많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싸우자고 하니, 어떻게 연대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백래시》가 너무 두꺼워서, 혹은 너무 어려울까봐 자꾸 읽기를 미뤄두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지금 당장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다. 책장을 넘기면 전혀 어려운 내용이 아니다. 거기에는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세상이 어떤 세상이었는지를 그대로 까발리는 글들이 있다. 이 세상에서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우리가 거기에 적힌 말들을 이해 못할 바가 없다. 우리는 어떤 것들이 우리에게 어떤 압박을 가했는지 알아야만 제대로 싸울 수 있다. 정말이지, 너무나 상투적이지만


일독을 권한다. 재독이어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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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쟁이 2018-10-30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이 분노하자. 라는 말이 갑자기 쿵 와닿네요.

다락방 2018-10-31 07:44   좋아요 0 | URL
무식쟁이님, 같이 분노합시다!

단발머리 2018-10-30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킴 베이신저는 한 명이 아니었겠죠. 그런 생각을 하면 정말 우울해집니다.
견고한 편견, 견고한 벽, 견고한 세상 ..... 여자들에게만 견고한 ㅠㅠ

다락방 2018-10-31 07:45   좋아요 0 | URL
제가 즐겁게 보았던 많은 영화들이 뒤에 저런 사연들을 숨기고 있을거란 생각을 하면 너무나 아찔해요.
세상이 여자들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요? ....

사랑은 야야야 2018-10-30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시절 보지 못한 <오즈의 마법사> 최근 봤는데, 영화는 아름다웠지만, 주인공 주디에게 가한 내용을 듣고 정말 충격 먹고 다시는 이 영화 보지 못할 것 같아요. 미성년인 주디에게 살 빼라고 마약, 담배 권하고, 성희롱까지 있었다니. 이런 개막장ㅠㅠ

다락방 2018-10-31 07:46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사연 어디선가 봤는데 서프라이즈였나... 어느 책에서 봤나..
세상은 그렇게 앞에서든 뒤에서든 개막장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세상 속에서 여자들이 그야말로 ‘버텨내며‘살았던 거죠. 지금과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달라지지 않을까봐 두렵기도 하고 지치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