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트 페이션트
알렉스 마이클리디스 지음, 남명성 옮김 / 해냄 / 2019년 5월
평점 :
품절


오?!
이야기가 이런식으로 교차되다니,반전이 숨겨진 소설인줄 몰라서 깜짝 놀라며 재미있게 읽었다.
사일런트 페이션트, 에서 사일런트는 침묵하는 인데 페이션트는 뭐지, 사전 찾아봐야겠다...라고 계속 생각만 하고 안찾아보다가 어느날 갑자기 환자! 라고 퍼뜩 떠올랐다. 크- 침묵하는 환자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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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걸 비포
JP 덜레이니 지음, 이경아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1. 거짓말을 습관처럼 하는 사람들이야 분명 존재하지만, 그래도 '이런 거짓말을 하는 여자'를 꼭 등장시켰어야 했을까. 그게 이 책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이다.


2. 미칠듯한 통제광에 거친 남자도 나쁜 놈이지만, 난 너밖에 없어 너를 사랑해 너를 숭배해 이러는 놈도 나쁜 놈인건 마찬가지. 이놈이나 저놈이나 각기 다른 형태로 나쁜새끼들.

(김숨이 그랬다, 나는 당신의 신이 아니야.)


3. 여자들이 자기 자신을 좀 더 소중히 생각했으면 좋겠다. 도대체 자기애적 소시오패스 새끼들한테 왜 빠져들어.. 휴.. 음모 털을 대칭으로 만들라는 새끼가 왜 좋지?


4. 왜 난자는 정자랑 굳이 만나야만 수정이 될까?

"네 이야기를 들으니 그 사람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제이. 그 사람을 피할 생각은 없어?"
"문제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내가 가볍게 말한다. "나도 있는데."
"문제 있는 두 사람이 만나봐야 온전한 하나가 되지 못해. 지금 네게 필요한 사람은 착하고 든든한 남자야. 너를 아끼고 사랑해줄 사람."
"슬프게도 착하고 든든한 남자는 내 타입이 아니야."
미아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그후로는 연락이 없어?"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전화 안해봤어." 나는 다음날 일부러 가벼운 분위기로 쓴 이메일을 보냈지만 답장이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굳이 꺼내지 않는다. - P133

"당신에게 쾌락을 주는 행위를 왜 거부하죠?"
"사람은 어떤 행위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쾌락을 순간적으로 탐닉하면서도 혐오할 수 있어요. 그게 옳지 않게 느껴진다면요. 당신이라면 누구보다 이런 감정을 이해할 거라고 생각해요."
샤프의 촉이 지진이 없는 평온한 날 지진계의 바늘이 움직이듯 거침없이 부드럽게 앞뒤로 미끄러진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줘요, 제인."
"거친 행동들."
"계속해요."
"기본적으로 멍이 들 수 있는 행위요. 힘을 주거나 압박하거나 피부에 자국을 남기거나 머리를 잡아당기는 것. 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건 알아두면 좋겠어요. 나는 정액은 먹고 싶지 않고 항문섹스는 절대 하지 않아요."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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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토요일은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멤버들과 처음으로 오프라인 만남을 가졌다. 내가 생각했을 땐 멤버중 두명쯤은 수줍은 성격이라 어색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웬걸, 그 자리에 나온 사람들은 저마다 말을 잘했고 만나는 긴 시간 내내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두명이 장소를 못찾아 헤매는 바람에 처음에 네명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와, 보부아르와 제2의 성에 대해 다다다닥 이야기하는 시간이라니, 너무 짜릿한거다. 나중에 두 명이 도착했을 때도 마찬가지. 우리가 같은 책을 함께 읽었고 그래서인지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꽤 만족스러웠다.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고, 어제 전까지는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이렇게 만나서 무언가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건 우리가 같은 책을 읽었기에 가능했고, 이 과정을 같이 해왔기에 가능했다. 아, 진짜 너무 좋지 않은가. 나는 모두에게 몇 번이나 함께 읽어줘서 그리고 이 먼길에 와주어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실제로 한 명은 부산에서 오고 한 명은 대구에서 온것이야. 이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부러 그 먼길을 나선것이다. 아, 정말이지 감사하지 않은가.


우리는 아주 많이 웃었다. 다같이 크게 웃을 수 있다니, 너무 좋다. 처음 만난 사람들인데 함께 크게 웃다니. 내가 잠깐 화장실을 다녀와 자리로 돌아가는 그 찰나에도 다른 멤버들이 함께 크게 웃고 있었다. 크- 우리는 1차에서도 끊임없이 이야기했고, 2차로 이동하는 중에도 계속 이야기했고, 2차에 자리잡고 앉아서도 계속 이야기했다. 술잔이 오고갔고 내기가 오고갔다. (응?)


밤이 깊었고 대중교통이 끊기기 전에 집에 가자며 다들 일어섰다. 각자 가는 길이 달라 지하철 역을 앞에 두고 헤어졌는데, 나를 비롯한 지하철을 타는 멤버들 모두 지하철이 중간에 끊겨버렸다. 내려서 누군가는 버스를 타고 가고 누군가는 택시를 탔는데, 나 역시 왕십리역에서 전철이 끊겨 나가서 택시를 잡아야 했다. 술 마시고 늦은 밤에 택시타는 건 정말 싫지만, 어쩔 수없지. 그렇게 무사히 집에 도착하고 서로의 소식을 전하고 씻고 침대에 누웠는데 한 시가 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시간에 놀랍게도!



멤버중 두 명이 책상 앞에 앉아 제2의 성을 펼쳤노라 했다. 우리중 완독하고 온 사람이 세 명이었고 세명은 다 읽지 못한 채로 왔는데, 그 중 두 명이 올해 안에는 반드시 완독하겠노라 다짐을 하고 약속을 하고 또 내기도 한거다. 그들은 그 시간에 집에 돌아가서 새벽 한 시가 넘은 그 때! 제2의 성을 펼쳐놓고 인증 사진을 올렸어. 아놔 ㅋㅋㅋ 여러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사랑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들 같이읽기를 해서 좋았다고 말해주었다. 이끌어주어서 고맙다고도 해줬고, 그 자리에서 나는 정말이지 많은 칭찬을 들었다. 진짜 넘치도록 들었어. 그자리에서 나는 진짜 졸라 멋진 인간이었다. 흑 여러분 ㅜㅜ 나 멋지게 만들어주어 고마워요 ㅠㅠㅠ

인생을 망치러 온 구원자라는 얘기도 듣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일단 12월 한 달은 쉬고, 여러분 어때요, 이걸 또 해야 할까요? 또 하는 게 좋을까요?



놀랍게도 모두가 다 계속하자고 말했다. 계속하자고. 모두들 다, 그렇게 말했다. 아 여러분... 한 명도 빠짐없이 그렇게 말하는 바람에, 우리는 이걸 계속하기로 했다. 그래서, 내년에도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는 계속될 예정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가 1월에 함께 읽을 책도 정했다. 멤버의 추천이 있었다. 그 책은 이 책이다.


















1월이 오기 전에 다시 한 번 페이퍼로 예고하겠지만, 2020년 1월 같이읽기 도서는 '케이시 윅스'의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입니다. 



히히, 여러분 반가웠어요. 그리고 정말 즐거웠어요.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해요. 독서로도 오프라인 모임으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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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7 1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9-11-18 08:20   좋아요 0 | URL
2020년 1월부터 새로이 시작할것이니 그 때부터 열심히 읽고 쓰시면 됩니다!!

단발머리 2019-11-18 0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시간, 좋은 이야기 감사했어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혼자 많이 큭큭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년 책은 벌써부터 기대되네요. 책, 여성주의와 함께 시작하는 2020년이라니. 최고예요!!!

다락방 2019-11-18 09:25   좋아요 1 | URL
정말 좋은 시간이었죠! 제 생각보다 더 좋았어요.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니, 정말 놀랍지 뭐에요! 진짜 짜릿한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너무 업되어가지고 술을 많이 마신 모양입니다. 아, 막판에 빈 술병 사진찍는다고 했는데 깜빡했네요. 아이구 바부팅이.. ㅠㅠ

좋은 시간 만들어주셔서 함께해주셔서 감사해요, 단발머리님.
마지막에 화장실 따라와주신 것도요...(감동의 눈물 ㅠㅠ)

- 2019-11-18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권하고 좋은 이야기 나누는 좋은 사람들🥰 애정합니다!

다락방 2019-11-19 07:44   좋아요 1 | URL
히히 너무 좋아요!! >.<

psyche 2019-11-19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 읽는 사람들이 직접 모여서 책 이야기라니... 아 부럽네요! 이럴 때는 정말 한국에 살고 싶어요 ㅜㅜ

다락방 2019-11-20 10:28   좋아요 0 | URL
사실... 책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았다는 게 함정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렇지만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고요, 우리 모두가 같은 책을 읽었다는 그 느낌은 짜릿했어요!! >.<

블랙겟타 2019-11-20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으로 이어진 인연이라니
뭔가 대단한 듯(!) 해요. (˶′◡‵˶)

다락방 2019-11-20 12:11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블랙겟타님 이모티콘 보니까 또 엄청 웃기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모티콘의 비밀을 이제 우리는 아니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블랙겟타 2019-11-20 19:00   좋아요 0 | URL
매번 엄선해서 내놓습니다 ㅋㅋ 🤗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 시절 우린 사이가 아주 좋진 않았지만 엄연히 연인 사이였고 무미건조한 감정 외에는 특별한 문제도 없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렇게 말하는 연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했던 걸까. 나는 화를 냈다. 우리가 권태기일지는 모르지만 4년이나 사귄 정이 있는데 누군가를 만나면서 이런 식으로 통보하는 건 너무 무례한 것 같다고. 무주는 설명도 변명도 하지 않고 물었다.

무례? 너 ... 화나긴 해? 그러면 잡아봐. 그 사람 만나지 말라고 말해.

먼저 미안하다고 말해.

뭐가 미안한데? 너 진짜 화나? 날 죽이고 싶다거나 내가 만나겠다는 남자를 죽이고 싶다거나 그래?

무슨 소리야. 

거봐 아니잖아. 넌 그렇게 안 할 거야. 그냥 내 행동과 결정을 흥분도 하지 않고 비판하겠지.

그리고 무주는 떠났다. (p.45-46)




남자는 업무차 오스트리아로 출장을 가게 되는데, 오래전에 헤어진 연인이 스위스에 거주한다는 걸 알고있던 터라 그녀에게 이메일을 보낸다. 그녀는 헤어지면서 어떤 연락도 하지 말라고 했었고 그래서 그렇게 7년간 잘 지켜왔지만, 그녀가 거주하고 있는 곳이 지금 자신이 머무르는 곳 근처라고 하니 뭔가 참을 수 없게 된거다. 연락하지 않은 채 7년을 잘 버텨왔지만 그러나 여기에서는 이메일을 보낸다. 


헤어진 연인으로부터 답장이 올까 기다리고 자신이 왜 메일을 보냈을까 수십번 생각하고 후회하면서 남자는 일을 한다. 나는 순식간에 그 메일을 보낸 사람이 되어 같이 초조했다. 그리고 이건 사실 괜찮은 방법이 아닌가도 생각했다. 헤어진 연인에게 자니? 라는 문자를 보내는 건 좀 찌질할 수 있지만, 7년이나 지났는데, 7년이 지난 후에 이메일로 '나는 지금 네가 산다는 곳 근처에 와잇어' 라고 보내는 거는 좀 괜찮지 않나. 나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거다. 물론 내가 그런 이메일을 보내게 된다면, 그리고 그가 사는 곳 근처에 가게 된다면, 그건 업무상은 아닐 것이다. 내 업무는 출장이 필요없는 일이고, 그러니 출장으로 업무차 어쩔 수 없이 외국의 어느 한 도시에 가게 될 가능성은 전무하다. 나는 그에게 '마침 여기에 와있고 여기는 네가 사는 곳과 가까우니 네 생각이 난다'는 메일을 보내려면, 사실 부러 가야한다. 부러 그곳에 가서는 마치 우연히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온 것처럼 꾸며야 한다. 마침 여기에 오게 되었어, 네 생각이 나네.


남자는 헤어진 연인으로부터 답장을 받는다. 내가 잘못한 건 아닐까 어떡하지 자책을 오만번쯤 할 무렵 그녀로부터 답장이 오고, 그녀는 자신이 사는 동네에 올 수 있다면 오라고 한다. 그렇게 그는 그 뒤의 일정을 포기한 채로 그녀에게로 간다. 헤어진 옛 연인을 7년만에 만나게 되는 거다. 기차에서 내려 저기에 서 있는 여자의 모습을 보고 그녀라고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가 다른 남자랑 살겠다고 떠났긴 하지만, 그녀의 뒤에서 빼꼼, 아이가 나온다. 그 사이, 7년이라는 시간동안 여자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남자는, 옛 연인과 재회 했으나 그녀가 누군가의 아내이고 또 어떤 아이의 엄마인 것을 알고 보게 되는 거다. 그러면, 그러면 마음이 다 정리될까?



나 역시 그런 식으로 그와 재회하게 된다면 이런 식으로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사는 나라에 부러 찾아가서 '어쩌다 보니 여기 오게 되었고, 여기는 당신이 사는 곳 근처이니 마침 당신 생각이 나네' 라고 이메일을 보내 말을 걸었을 때, 그로부터 만나자는 답장이 올 수 있겠지. 그래, 우리 오랜만에 얼굴이나 한 번 보자, 네가 여기까지 왔으니.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나갔을 때, 그는 옆에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 어쩌면 이것이 현실적인 미래일 수도 있을 테다. 시간이 흐르면 많은 것들이 변하니까. 어떤 사람들의 환경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수 있지만 어떤 사람들의 배경은 아주 크게 변할 수 있으니까. 나는 우리가 헤어진 상태에서 어떤 조건이 변하진 않았지만, 상대는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 수 있다. 긴 시간이었으니까, 긴 시간이 흘렀으니까. 새로운 집을 찾아 이사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그전과는 아주 다른 생활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 그 새로운 삶에 익숙해져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 어느날 나로부터 불쑥, 이메일이 도착할 수도 있겠지. 이 책속의 남자가 그런것처럼, 나 역시 그런 상태의 전연인을 만날 수도 있는 것이겠구나. 그러면 마음 속의 모든 것들이 그냥 훅- 정리될까? 그런식으로라도 그를 보는 게 나을까, 아니면 그렇지 않은 게 나을까.



그렇게 처음 시작으로 말랑말랑 내가 나를 넣고 읽을 수도 있는 이 책에서 나는 저 위의 인용문을 보게 되는 거다. 4년간 연애했던 연인이 만나고 싶은 다른 사람이 있다고 이별을 통보하고, 이에 남자가 그것을 무례하다고 말하는 일. 그런데 여기에대고 여자는 너 진짜 화나긴 하냐면서, '날 죽이고 싶다거나 내가 만나겠다는 남자를 죽이고 싶다거나 그래?' 라고 묻는 거다. 여자는 마치 그렇게 죽이고 싶은 마음이 생길정도로 화가 나야만 우리가 사랑했었다, 네가 나를 사랑했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런가? 정말 그런가?



우리는 누구나 어떤 사람에 대해 죽이고 싶다는 감정을 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더러 있다. 그러나 내가 죽이고 싶다는 격한 감정을 품게될 때는 그 사람이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상처를 주는 경우에 한했다. 이를테면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 대한 것. 그러니까 나는 한 번도 나에게 감정적인 상처를 주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화는 나겠지, 서운하겠지, 배신감을 느끼겠지, 너무 속상하겠지. 그렇지만 내가 사랑했던 애인을 '죽이고 싶다'는 감정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거 느끼나? 나는 이게 너무 이상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죽이고 싶어진다고?


이거 너무 이상하지 않나?


내가 무척 사랑했던 사람은, 내가 그 사람을 사랑했던 것만큼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리는 미래는 달랐고, 그래서 우리는 헤어졌다. 내가 바라는 만큼 그가 나에 대해 간절한 마음을 품지 않았다고 해서 나는 그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또한 나랑 헤어진 뒤로 사랑하게 될 그 사람의 새로운 사람에 대해서도 나는 죽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어떻게 내가 사랑했던 사람에 대해서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왜 책 속의 여자는 자신이 다른 사람이 생겨 떠나면서, 이런 자신에게 죽이고 싶은 감정이 드느냐,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걸까? 죽이고 싶다, 죽었으면 좋겠다, 는 마음 같은 게... 어떻게 그런 식으로 생각될 수 있을까? 나는 나랑 헤어진 사람이 계속 살아있기를 바란다. 그가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괜찮다. 내가 바라는대로 우리가 오래 함께였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그가 죽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런 마음은 정말이지 전혀 없다. 내 연인이 안될거라면 죽어 없어져버려! 이런 마음이, 도대체 왜 생기는걸까? 다른 사람들은 보통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해를 입히고 싶어하는걸까?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감히 내게 이별을 말하다니, 화가 난다고 연인을 찾아가 염산을 뿌리고 해를 입히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뉴스에서 종종 듣게 되는 일들이 아닌가. 그런데 나는 그게 정말이지 이해가 안된다. 왜 그러고 사는걸까. 다른 사람의 발을 실수로 밟아도 우리는 미안하다. 죄송합니다, 인사를 하게 된다. 그런데 어떻게 염산을 뿌릴 수 잇을까? 상대도 염산으로 큰 타격을 입고 평생 힘들게 살겠지만, 염산을 뿌린 나는? 헤어진 애인에게 염산을 뿌린 자신은 대체 어떻게 구원 받을 수 있나?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고 싶다, 고통스럽게 하고 싶다, 망치고 싶다, 죽이고 싶다는 마음 같은 것이 어떻게 '나를 사랑하지 않다니'에 대한 그 다음 감정으로 발생할 수가 있나. 내가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면(사랑하지 않았다 해도), 상대가 나를 떠난다고 햇을 때 내가 '죽이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옳은 감정도 아니고 바른 감정도 아니다. 책속의 여자가 울부짖듯이 그것이 나를 사랑한다면 반드시 따라와야 할 감정은 아닌 것이다. 우리는 당연히 속상하고 아프고 화가 나겠지만, 슬퍼서 엉엉 운 채로 두 달간 밥도 못먹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를 떠난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하다니... 그런 마음이 자신 안에 생긴다면 그건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 내 과거의 연인들도 나를 찾아와 죽이고 싶었을까?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는 나를 죽이고 싶어할까? 죽이고 싶어하면서 그것을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해서' 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와, 그거 사랑 아니다. 그런 사랑 하지 마라. 죽이고 싶을 만큼의 사랑이라니, 대체 그런 게 어디있나. 



여자는 7년만의 재회 후에 그에게 '그당시 나는 너를 사랑했지만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것이 아마 그녀가 다른 사람과 떠나고 싶었던 이유일 것이다. 계속 혼자 그를 사랑하는 자신에 대해 수치심도 느꼈다고 했다.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걸 알고 있으므로 자신이 다른 남자와 떠난다고 해도 그는 나를 죽이고 싶어할만큼 화가 나지는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죽이고 싶을 만큼 화가 난다? 너무 화가 나서 죽이고 싶다? 그것은 일반적인 감정이 아니지 않나. 그런데 책속에서 이렇게 나오다니. 사실 이것이 일반적인 감정인가? 사실 사람들은 아주 많이, 헤어진 연인에 대해서, 이별을 통보한 연인에 대해서 너무 화가 나서 죽이고 싶은 마음을 품게 되는가?


어제 여러명의 사람들을 만났고 그 때 물어보고 싶었는데 까먹고 물어보질 못했네. 보통 연인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들으면 너무 화가 나서 죽이고 싶어지나요? 아, 나는 정말이지 '화가 나긴해? 죽이고 싶고 그래?' 라고 물어보는 그 마음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살고 싶고 나를 떠난 연인도 살기를 원한다. 나는 행복하고 싶고 나를 떠난 연인도 행복하기를 원한다. 물론, 나랑 지낼때만큼은 말고.. ( ")  쿨럭.




비가 오는데도 굳이 나가 빵을 사왔다. 커피랑 먹고 싶어서. 세수도 하지 않고 나갔다. 으하하하. 아직도 세수는 하지 않았는데, 오늘 하루만큼은 세수를 하지 않고 지내볼 것야. 일요일은 그러라고 있는 날이 아닌가. 그렇지만 뭔가 더러운 이 기분... 어째야할지 모르겠다. 씻을까.....





만나고 싶고 만나고 싶지 않다. 잊었지만 잊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지만 보고 시다. 만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왜 만나면 안 되는 건지 의문을 품고 있다. 마음의 정체를 도무지 알 수 없어 이쪽으로 저쪽으로 뒤척거리기만 했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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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11-17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비가 오는데도 굳이 나가서 전과 막걸리를 사왔어요! 세수도 하지 않은 채 ㅋㅋㅋ 빵과 커피하고는 참 다른 듯하지만 비오는 날 빵과 커피만큼 잘 어울리는 조합이죠? ㅎㅎ

저는 헤어진 사람을 죽이고 싶다거나 그 사람이 행복하게 지내길 바란다거나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거 같아요. 헤어지고 나면 이상하리만치 상대에 대해 아무 마음도,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데, 아마 사귀는 동안 줄 수 있는 마음을 다 줘서 더는 미련도 후회도 없어 그런 거 같습니다.

다락방 2019-11-18 08:49   좋아요 1 | URL
저는 어제 이 글을 쓰고난 뒤에 샤워를 했습니다. 깨끗한 일요일 저녁을 보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저도 뭐 매순간 그의 행복을 바란다..이런 건 없어요. 그건 제 영역이 아니죠. 그렇지만 야속한 마음에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건.. 와 저는 그것은 정말이지 상대의 배신이 문제가 아니라 본인의 성격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나를 좋아하지 않는 너는 죽어버려.. 이런 마음은, 와, 너무.. 괴상하잖아요? 세상에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적인건데.. 어휴.. 나를 사랑했던 사람의 마음이 나에게서 돌아서버렸다면 물론 너무 슬프지만, 아무튼 참 이상하다.. 생각했어요.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그런 마음이요.


잠자냥 님의 댓글을 읽으니 ‘짙은‘의 노래가 생각나네요. <잘 지내자, 우리> 라는 노래인데요,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분명 언젠가 다시 스칠 날 있겠지만
모른 척 지나가겠지
최선을 다한 넌 받아들이겠지만
서툴렀던 나는 아직도 기적을 꿈꾼다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그럼에도 기적을 꿈꾸는데... 어흑 ㅜㅜ
아무튼 거시기한 날입니다.

심술 2019-11-18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랑 사랑 잘 안됐다고 한 때 사귀던 이의 죽음을 바라는 건
정신병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 병 앓는 이들이 세상에 너무 많다는 거죠.

고미숙 <호모 에로스>를 중학교 교과과정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락방 2019-11-18 16:58   좋아요 0 | URL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힘들고 슬픈 일이지만, 그걸 인정못하고 계속 집착을 보이는 건 분명 정상적인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말씀하신대로, 그러나 그 병을 앓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 호모 에로스를 읽어보지 않았는데 지금 검색해보겠습니다.

심술 2019-11-19 17:02   좋아요 0 | URL
훌륭한 책입니다.

고미숙 모든 책 읽은 건 아니지만 제가 읽은 고미숙 가운데 가장 좋았어요.
아, 물론 다른 책들도 좋아요.
10점 만점에 평균 8점 쯤 되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다락방 2019-11-19 17:03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어제 구입했습니다. 전자책으로 샀어요. 조만간 읽어볼게요!! 추천 감사합니다. :)

심술 2019-11-20 11:41   좋아요 0 | URL
즐겁고 행복한 독서 되시기를.

다락방 2019-11-20 12:11   좋아요 0 | URL
기대하고 있습니다!!

2019-11-18 1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18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녀를 특별하게 돌보고 있습니다. 아무도 나만큼 그녀를 잘 알지 못하죠. 디오메디스 교수님마저도 말입니다."

유리의 목소리에는 자만심이 묻어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런 태도가 짜증스러웠다. 진짜로 앨리샤를 잘 알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저 허풍을 떠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p.66)




유리는 정신병동의 남자 간호사이다. 유리가 말하는 그녀는 현재 정신병원에 몇 년째 입원중인 침묵하는 환자이고. 그녀를 치료해보고 싶어서 데려온 게 이 병원의 원장 '디오메디스 교수'이다. 몇 년째 침묵한 채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는 환자를 치료해보고 싶어서 이 병원에 심리상담사 '테오'가 취직한다. 의지와 의욕이 있으나 침묵하는 환자를 치료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이는데, 유리는 자신이 그녀를 잘 안다고 말한다. 그리고 유리의 그런 단호한 말은 테오처럼이나 나도 짜증스러웠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잘 안다는 것을 어떻게 자신할 수 있을까? 게다가 정말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안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는가? 정말 그런가? 테오는 유리를 안지 얼마 되지 않아 정말 그런지 아니면 허풍을 떠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허풍.



나는 그 허풍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허풍과 허세. 허풍이든 허세든 여자라고 그런 성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유독 남자들에게서 그게 너무 강해서 나는 어릴 때부터 그게 너무 이상했다. 가령 이런거다.


남자1이 여자1에게 지금 나올 수 있냐고 물었다. 여자1은 갑자기 나오라는 말에 씻기도 귀찮아서 나갈 수 없다고 답했다. 그래서 그들은 만나지 못했다. 며칠 뒤 친구들 사이에서는 여자1이 남자1을 좋아한다는 말이 돈다. 어째서 그런걸까.



며칠전에 집에 가 저녁을 준비하면서 아이패드로 영화 《노팅힐》을 틀어뒀다. 적막한 집에서 요리하느니 뭔가 소리가 들리기를 원했고, 텔레비젼은 정신 사나워서 싫고, 이왕 맥켄지 사랑해서 보러갈거면 영어를 공부하자 싶어서 무작정 틀어둔거다. 그렇게 저녁을 만들어서는 식탁 의자에 앉아 재생중인 노팅힐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너무 재미있어서 친구에게 노팅힐 봤냐고 묻고는 노팅힐 꼭 보라고 추천했다. 친구는 다운받는 중이라고 했다.


노팅힐을 다 본 친구랑 다음날 감상을 나눴다. 재미있었다는 감상부터 시작해서 '너라면?' , '나라면?' 에 대한 이야기들도 했다. 친구도 나처럼 극중의 '휴 그랜트' 그러니까 장사가 잘 안되는 작은 서점을 운영하는 그런 보통사람이라면, 슈퍼스타인 줄리아 로버츠의 '사귀자'는 제안을 거절할 거라고 했다. 너무 부담된다, 상처받기 싫다, 휴가 말한 이유가 내가 생각하는 이유다, 라는 이야기를 우리는 나눴다. 그렇지만 친구는 이내 덧붙였다. '그런데 나도 결국 달려가서 애나를 붙잡을 것 같아' 라고. 오! 놀랍다. 나는 .. 나는.. 잡고 싶지만.... 못잡을 것 같아.... 그런 유명한 슈퍼스타는 감당이가 안된다.... 내 행동에 제약이 생길 것이고 무엇보다 헤어지기 싫다.






아 그런데 이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고.



극중에서 애나(줄리아 로버츠)는 윌리엄(휴 그랜트)의 집에 쥬스를 쏟은 옷을 갈아입으러 들렀다가 헤어지면서 갑자기 충동적으로 키스를 한다. 애나의 키스는 윌리엄에게 실제 일어난 일이면서도 윌리엄조차 믿을 수 없는 일이야. 그 후에 그 둘이 사랑에 빠지게 되고 연인이 되기는 하지만, 그들의 이 첫키스가 친구와 나도 좀 갸웃하게 되는 점이 있었다.



왜그랬을까?

충동이었을까?

그러니까 이남자랑 키스하고 싶다가 아닌, 이 남자랑 '키스'하고 싶은, 키스가 하고 싶은 그런 충동?

착하니까 그동안 만난 남자랑 달라서 뭔가 하고 싶었나?



그런 한편 내가 '애나' 라면 저 상황에서 키스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해도 키스할 수 있었을까?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나는 그렇게 못할거라고. 저 놈이 어디가서 나랑 키스했다고 어떻게 떠벌리고 다닐지 어떻게 아냐, 그거 무서워서도 못하겠다고 했다. 섹스도 마찬가지. 어디가서 '내가 슈퍼스타랑 섹스했다' 이딴거 어깨에 힘 가득주고 다닐까봐, 그런 놈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고.. 어휴..



바로 이런 걱정이 그대로 현실이라고 보여준 영화가 《우리가 사랑한 시간》이었다.















영화속에서는 영국에 사는 고등학생 '소피(펠리시티 존스)'가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있는 '로렌(멕켄지 데이비스)' 네 집에 한학기동안 와있기로 한다. 로렌과 소피는 나이도 같고 학교도 같은 학교를 다니고 또 로렌의 방을 같이 쓰면서 점점 친해지게 되는데, 로렌은 학교의 남학생인 '매튜'와 섹스한 사이라고 말해준다. 그런데 섹스 후에 매튜가 친구들에게 '로렌이 유혹했다'고 말을 해버리고 다니는 바람에 자기는 쉬운 여자가 되어버렸다고.


맨하튼을 구경하고 싶었던 소피는 매튜와 구경을 가기로 한다. 소피는 다른 친구들도 함께 가기로 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맨하튼에 도착해보니 다른 친구들이 오질 않아. '다른 친구들은 언제와?' 라고 매튜에게 물으니 매튜는 '걔네들은 안와, 우리 둘이 노는거야' 라고 하는 게 아닌가. 이때부터 슬슬 불안하더니, 같이 춤을 추면서 자꾸 술을 권하고 몸을 터치하려고 한다. 둘다 술이 취해서 매튜가 소피를 집까지 바래다주는데, 차 안에서 매튜는 싫다는 소피에게 억지로 입을 맞추고 강제로 안으려고 한다. 소피는 이러지 말라고 말하고 피하다가 간신히 차에서 내렸는데, 다음날 학교에는 소피가 매튜랑 잤다는 소문이 퍼져있었다. 이 일은 로렌의 귀에도 들어간다. '소피가 매튜랑 잤대'.



하아.

일단 결정적으로 사실만 기술하면 소피는 매튜랑 안잤다. 섹스하지 않았다. 게다가 섹스할 생각도 없었다. 오히려 강제로 섹스를 시도하는 매튜로부터 도망쳤다. 그런데 매튜는 다음날 소피랑 잤다고 말하고 다닌 거다. 이 개새끼가.


나는 도저히 이 심리를 이해를 못하겠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왜 일어났다고 하는가. 왜그러는가 대체 왜. 소피랑 잤다는 걸 말하고 다니면서 이 남자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여자를 내 발밑에 둔다, 내가 정복한다는 건가. 자신의 어떤 남성성이 강하게 드러난다고 보는것인가. 그것은 그에게 자랑이 되고 업적이 되는가? 진짜 이런 남자의 허세가 너무 싫은 거다. 왜그러는거야, 대체 왜? 왜그래? 왜 자지 않았는데, 심지어 거부당해 놓고 잤다고 뻥치는거야?



그 뒤의 일은 내가 모른다. 영화를 보다 말아서. 영화를 더이상 볼 수가 없었다. 저 오해가 풀리는지, 로렌은 소피를 그 다음에 어떻게 대하는지 궁금한하긴 한데, 이 영화에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요소가 들어가 있다. 중년 남자와 미성년여자의 사랑.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아내도 이해못해주는 중년남자를 다른 나라에서 온 18살 소녀가 이해해준다... 그래서 남자도 소녀에 대해 다른 마음이 생겨버려.. 도무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다. 내가 진짜 싫어하는 이야기. 한쪽은 성인이고 한쪽은 미성년자이면서 감정 생기는 거 정말 개싫고 이 소녀와 아저씨의 긴장감이 너무 싫다. 그래서 중간에 꺼버리고 그 뒤를 보지 않았다. 무조건 맥켄지가 나온다고 선택한 영화라 줄거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몇 개 검색해 보았다. 내가 짐작하는 그런 영화로 진행되는지 아니면 내가 괜한 오해를 하고 있는지 싶어서. 그런데 후기마다 다들 이 영화가 너무 좋다고 한다. 아저씨와 소녀가 사랑하는데 어떤 스킨십은 없다면서 그 감정의 교류가 좋다고... 아....그렇다면 나는 안본다. 싫다.




'도리스 레싱'의 단편 중에도 이런 허세에 찌들은 남자가 나온다.















이 책의 첫번째 단편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인데, 50대의 기혼 남자가 잘나가는 30대 여성과 섹스를 하고 싶어하는 것. 그것이 그녀에게 매력을 느껴서라거나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 여자랑 잤다고 말하고 다니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억지로 억지로 그녀에게 강간을 시도하는데, 거부하다가 지친 여자가 '그냥 자줄게 빨리 끝내버려' 라고 했더니, 고추가 식어버린다... 하아- 그렇지만 그녀랑 잤다고 말하고 싶고 세상에 알리고 싶은 남자는, 굳이, 굳이, 굳이, 그녀를 다음날 아침 그녀의 직장에 데려다주겠다고 매달리는거다. 그래서 그녀의 직장 동료들 있는 데에 떠억- 하니 '나 전날 이 여자랑 같이 있었지'를 보이고 싶은 것. 정작 섹스하자 했더니 죽어버린 고추를 가져놓고서는 '이 잘나가는 여자랑 내가 잤지' 알리고 싶어하는 남자라니...


대체 왜그러는거야?

왜?

왜그렇게 세상 찌질한거야?




찌질한 걸 알라기 싫어서일까. 찌질한 게 바깥으로 드러나면 안되는 거라서?


《우리가 사랑한 시간》에서도 매튜는 자신이 예쁘다고 생각한 여자에게 거부당했으나 그 거부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당연히 알리지 않아도 된다, 그건), 대신 그녀와 잤다고 얘기하고 다닌다. 어쩌면 그것은 거부당했다는 사실을 혹여라도 들킬까봐 그런 게 아닐까. 친구들이 다 전날 밤 매튜와 소피가 뉴욕에 갔다는 걸 알고 있는 거다. 그런데 못잤다고? 이걸 들키기 싫었던 것 같다. 그게 뭐라고. 대체 그게 뭐라고.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에서도 찌질한 남자는 자신이 정작 섹스는 하지도 못했으면서 '잘나가는 여자랑 섹스한 남자'라는 타이틀을 갖고 싶어한다. 나는 오십대의 비루한 남성이지만 내가 정복한 여자 명단 중에는 이 여자가 있지 으하하하, 이걸 하고 싶어하는 거다. 세상 찌질한 새끼. 찌질하면 찌질할수록 허풍과 허세에 더 빠져드는 것 같다. 찌질한 자신이 드러날까봐 그걸 감추려고. 참으로 정말이지 찌질함의 명백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그러지말자 진짜.. 그러지마..



위의 단편집 중 두번째 단편 <옥상 위의 여자>에는 또다른 찌질한 삼십대 남자가 나온다. 자신이 여자를 유혹해보지만 여자가 유혹에 응해주지 않자 오히려 여자한테 창녀라고 욕하는 남자..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사일런트 페이션트》의 '유리'도 바로 이런 남자였다. 유리는 결혼해 아내가 있는 남자인데, 길에서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 첫눈에 반한거다. 그래서 그녀를 따라 다니고 말을 건다.



"나랑 가까운 데 사는 여자였습니다. 아주 아름다운 여자였는데, 첫눈에 반했습니다. 길거리에서 처음 봤어요. 말을 걸려고 용기를 내기까지 아주 오래 걸렸습니다. 뒤를 따라가곤 했거든요 ……. 가끔은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사이면서요. 그 여자 집 밖에 서서 지켜봤죠. 여자가 창문에 나타나기를 바라면서요." 그는 웃었다. (p.67)



이에 테오는 불편함을 느낀다. 유리는 계속 얘기한다.



"하루는 말을 걸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한테 관심을 보이지 않더라고요. 몇 번 시도를 했는데, 한다는 말이 괴롭히지 말라는 거였습니다." (p.67)



내가 상대에게 반했다는 것이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는걸까. 모든 일로부터 면죄부를 얻는 일이라도 된다는걸까? 내가 너에게 반했으므로 너는 반드시 나랑 사귀어야 하는가? 내가 반했으니 너는 나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게다가 지켜봐? 그걸 여자 입장에서도 '나에게 반한 남자가 나를 지켜봐 로맨틱해' 할 수 있을것인가? 와- 완전 꼴통이다. 그리고 이 남자는, 도리스 레싱의 남자와 다를 바가 없다.



"받아들이기가 아주 어려웠습니다. 분명히 우리가 함께할 운명이라고 확신했거든요. 그녀는 내 가슴을 찢어놓았고 난 화가 많이 났어요. 아주 미쳐버렸어요." (p.68)



이에 테오는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냐 물으니 그는 아무일도 없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다음으로 진행되는데, 정말 아무일도 없었을까? 이런 남자가 자신이 간호사로 일하는 병동의 여자 환자를 그 누구보다 잘 안다고 얘기하는 거다. 대체 뭔가. 이 간호사는 간호사로서 환자를 잘 안다고 말하는걸까? 아니면 남자로서 여자를 잘 안다고 말하는걸까? 허풍이든 허세든 뭐가 됐든 정말이지 끔찍하지 않은가. 대체 왜들 그러는거야, 왜? 왜그래? 넘나 어이가 없어버려..



찌질하지 말자.

진짜 찌질하지 말자.



고백하자면, 나는 어제 매우 찌질해질뻔 했다. 아 모르겠다, 오늘은 찌질하자, 라고도 생각했다. 사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찌질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럴때마다 참고 참고 또 참는다. 상대로부터 찌질하다는 말을 듣게될까봐. 찌질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싫고 찌질한 거 티내기도 싫어서 버티고 있는데, 어쩌면 찌질해졌어야 되는건 아닐까...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이 나의 찌질함, 내가 감추고자 하는 나의 찌질함은 정말이지 저 남자들과 다르다. 이 찌질함은 조족지혈, 이 찌질함은 애교여... 내가 아무리 찌질해도 자지도 않은 남자랑 잤다고 하고 다니진 않는다. 나를 거절한 남자를 나를 좋아하는 남자라고 뻥치고 다니지도 않아. 참.. 진짜.. 늬들은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거냐 대체.



모르겠다. 머리를 단발로 길릴지 그레이스 사진 가져가서 이렇게 잘라달라고 해야할지. 갈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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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11-15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 놈이 어디가서 나랑 키스했다고 어떻게 떠벌리고 다닐지 어떻게 아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애나‘였다면 했을 거 같아요! ㅋㅋㅋ 말하든 말든 모르겄당.... 이런 심정? ㅋㅋ 암튼 노팅힐 참 좋죠?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자들이랑 섹스하는 횟수 아니, 정확히는 같이 잔 여자의 숫자가 자기 능력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아요. 특히 그 상대가 같이 자기 힘든 상대면 더 그런 듯? 여자를 정복 대상으로 보니까 그렇겠지요. 암튼 그놈의 허세 에휴....
도리스 레싱의 저 단편 두 개 정말 찌찔놈들에 대한 묘사가 극치죠. 이 포스팅으로 다시 보니 또 빡치네요. ㅋㅋㅋㅋㅋ 레싱이 그토록 묘사를 잘하는 걸 보면 실제 경험담처럼 여겨지기도 하는데, 암튼 찌질놈들은 시공간을 초월해 지구 곳곳에 퍼져 있나 봅니다.

그나저나 맥켄지는 다락방 님에게 마술적 존재군요. 운동도 하게 하고, 영어 공부도 하게 하고, 머리도 ? 응? 근데 눈동자는 어쩔 거예요? ㅋㅋㅋㅋㅋ
맥켄지는 락방이를 춤추게 한다~~~

다락방 2019-11-15 17:18   좋아요 0 | URL
노팅힐 진짜 좋아요, 잠자냥 님. 이게 볼 때마다 좋은 포인트가 달라요.
엊그제 볼 때는 윌리엄이 말 바꾸는 게 너무 귀여웠어요. 길을 걷다가 정원에 들어가보자고 하니까 윌리엄이 사유지라고 하거든요. 그랬더니 애나가 ‘평소에 그렇게 규칙을 잘 지켜요?‘ 묻고, 윌리엄이 갑자기 ‘아니요, 다른 사람들이 그러죠. 나는 내키는대로 해요‘ 하고 갑자기 담을 타는 거에요. ㅋㅋㅋ 아 어찌나 웃기던지 ㅋㅋㅋㅋㅋ 귀여웠어요. 잘보이려고 말바꾸고 이 순진한 사람이 어차피 넘지도 못할 담을 기어코 넘으려고 시도하는 거요. ㅋㅋㅋㅋㅋ


섹스가 뭘까요, 잠자냥님? 그게 뭐길래 남자들은 그걸로 기도 죽고 열등감에 휩싸이고 그렇게나 하려고 애를쓰고 강제로 하고 폭력을 써서 하고 안해도 했다고 뻥치고 못해도 잘한다고 우겨댈까요? 섹스에 있어서라면 남자들은 진짜 머저리들 같아요. 머릿속에서 섹스만 지워내도 그들의 모든 능력치가 향상될듯요. 정말 모자라요 정말.


맥켄지는요 잠자냥님. 진짜 와.. 흑흑 ㅠㅠ
제가 어제 오늘 업무적으로 스트레스가 폭발했는데, 가슴속에 바윗덩이가 얹힌 것처럼 답답했는데, 트윗에서 맥켄지 검색해서 다른 사람들이 올린 사진이랑 글 보면서 마음을 다독였답니다. 사랑은 참.. 위대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눈동자를 참.. 네, 뭐 저는 일단 어쩔 수 없이 이 눈동자 가지고 운동도 하고(ㅠㅠ 어제 불족먹으러 갔는데 ㅠㅠ 소주랑 ㅠㅠㅠ), 영어 공부도 해야겠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심술 2019-11-15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입니다.
추운 날씨에 잘 지내시죠?

이 글 읽으니 공자관 감독 <허풍> 생각나네요.
남자들 찌질함을 똘똘하게 풍자한 대한민국 에로영화계의 숨은 명작이죠.

다락방 2019-11-15 17:19   좋아요 0 | URL
ㅎㅎ 심술님은 항상 오랜만에 오시네요 ㅋㅋㅋㅋㅋ
네, 저는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업무에 빡쳤다가 맥켄지 데이비스 보면서 눈이 하트됐다가.. 그러면서요. 심술님은 잘 지내십니까?

말씀하신 영화는 모르겠네요. 에로영화계의 숨은 명작이라니..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핳

심술 2019-11-16 11:31   좋아요 0 | URL
그 동안 쫌 바빠서 잠수 탔다가 오랜만에 오게 되네요.
그래도 어제 그 동안 쌓인 제가 못 읽은 락방님 글 다 읽었네요.

전 잘 지냅니다.
주위를 보니 감기환자들 많아요.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