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토요일은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멤버들과 처음으로 오프라인 만남을 가졌다. 내가 생각했을 땐 멤버중 두명쯤은 수줍은 성격이라 어색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웬걸, 그 자리에 나온 사람들은 저마다 말을 잘했고 만나는 긴 시간 내내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두명이 장소를 못찾아 헤매는 바람에 처음에 네명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와, 보부아르와 제2의 성에 대해 다다다닥 이야기하는 시간이라니, 너무 짜릿한거다. 나중에 두 명이 도착했을 때도 마찬가지. 우리가 같은 책을 함께 읽었고 그래서인지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꽤 만족스러웠다.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고, 어제 전까지는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이렇게 만나서 무언가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건 우리가 같은 책을 읽었기에 가능했고, 이 과정을 같이 해왔기에 가능했다. 아, 진짜 너무 좋지 않은가. 나는 모두에게 몇 번이나 함께 읽어줘서 그리고 이 먼길에 와주어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실제로 한 명은 부산에서 오고 한 명은 대구에서 온것이야. 이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부러 그 먼길을 나선것이다. 아, 정말이지 감사하지 않은가.
우리는 아주 많이 웃었다. 다같이 크게 웃을 수 있다니, 너무 좋다. 처음 만난 사람들인데 함께 크게 웃다니. 내가 잠깐 화장실을 다녀와 자리로 돌아가는 그 찰나에도 다른 멤버들이 함께 크게 웃고 있었다. 크- 우리는 1차에서도 끊임없이 이야기했고, 2차로 이동하는 중에도 계속 이야기했고, 2차에 자리잡고 앉아서도 계속 이야기했다. 술잔이 오고갔고 내기가 오고갔다. (응?)
밤이 깊었고 대중교통이 끊기기 전에 집에 가자며 다들 일어섰다. 각자 가는 길이 달라 지하철 역을 앞에 두고 헤어졌는데, 나를 비롯한 지하철을 타는 멤버들 모두 지하철이 중간에 끊겨버렸다. 내려서 누군가는 버스를 타고 가고 누군가는 택시를 탔는데, 나 역시 왕십리역에서 전철이 끊겨 나가서 택시를 잡아야 했다. 술 마시고 늦은 밤에 택시타는 건 정말 싫지만, 어쩔 수없지. 그렇게 무사히 집에 도착하고 서로의 소식을 전하고 씻고 침대에 누웠는데 한 시가 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시간에 놀랍게도!
멤버중 두 명이 책상 앞에 앉아 제2의 성을 펼쳤노라 했다. 우리중 완독하고 온 사람이 세 명이었고 세명은 다 읽지 못한 채로 왔는데, 그 중 두 명이 올해 안에는 반드시 완독하겠노라 다짐을 하고 약속을 하고 또 내기도 한거다. 그들은 그 시간에 집에 돌아가서 새벽 한 시가 넘은 그 때! 제2의 성을 펼쳐놓고 인증 사진을 올렸어. 아놔 ㅋㅋㅋ 여러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사랑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들 같이읽기를 해서 좋았다고 말해주었다. 이끌어주어서 고맙다고도 해줬고, 그 자리에서 나는 정말이지 많은 칭찬을 들었다. 진짜 넘치도록 들었어. 그자리에서 나는 진짜 졸라 멋진 인간이었다. 흑 여러분 ㅜㅜ 나 멋지게 만들어주어 고마워요 ㅠㅠㅠ
인생을 망치러 온 구원자라는 얘기도 듣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일단 12월 한 달은 쉬고, 여러분 어때요, 이걸 또 해야 할까요? 또 하는 게 좋을까요?
놀랍게도 모두가 다 계속하자고 말했다. 계속하자고. 모두들 다, 그렇게 말했다. 아 여러분... 한 명도 빠짐없이 그렇게 말하는 바람에, 우리는 이걸 계속하기로 했다. 그래서, 내년에도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는 계속될 예정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가 1월에 함께 읽을 책도 정했다. 멤버의 추천이 있었다. 그 책은 이 책이다.
1월이 오기 전에 다시 한 번 페이퍼로 예고하겠지만, 2020년 1월 같이읽기 도서는 '케이시 윅스'의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입니다.
히히, 여러분 반가웠어요. 그리고 정말 즐거웠어요.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해요. 독서로도 오프라인 모임으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