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송승헌에 대해서는 언제나 '대단히 잘생겼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그가 잘생겼다고 해서 매력적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배우라는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는건 그야말로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게 대단히 잘생겨서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에겐 매력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워낙 내가 드라마를 안보긴 하지만, 그가 어떤 드라마에 나왔었는지 기억도 안날뿐더러, 그가 드라마에 주연으로 나왔다한들, 드라마속의 캐릭터가 크게 여자들을 움직였던 것 같지도 않다. 그건 아마도 그의 도무지 발전할 줄 모르는 연기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나는 그를 '잘생겼지만 개성이 없고 연기도 못하는' 배우라고 생각해왔고, 그래서 밋밋하게 느꼈었기 때문에, 새로 개봉하게 될 영화 《인간중독》이 '야하다'고 해도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송승헌의 야한 연기는 기대되지 않았으니까.


그러다 우연히 이 영화의 예고편을 잠깐 보게됐는데, 오, 맙소사, 송승헌이 군인..으로 나오는거다. 군인장교! 장교가, 부하의 아내를 사랑하는, 그런 내용인거다. 오...이건...끌려. 내용적으로 끌려! 당장 달려가 보고 싶었다. 제복에 가려진 탄탄한 몸, 제복을 입고 장교라는 지위가 주는 거부할 수 없는 카리스마,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에로틱함...이라니. 아니, 설정만으로 숨이 막히지 않는가 말이다. 그래서 나는 '현빈' 주연의 《역린》도 보러가지 않았으면서, 송승헌 주연의 이 영화는 보러 극장을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음..역시 안봐도 될뻔했군, 했다. 아...정말....하아- 송승헌은 내면의 감정을 살려내는 연기도 못하고 육체를 쓰는 연기도 못한다. 배드신은 실망스럽고-그런 남자랑 자고싶지 않다-, 숨을 못쉴것 같은 아픈 감정을 토로하며 울 때 관객은 웃는 현상이 발생하고 마는것이다. 게다가 결말의 오글거림은, 연기를 보완하기 위해 억지로 짜낸 것 같은 스토리랄까. 작위적이라 지나치게 실망스럽다. 어처구니가 없더라. 하아- 답답..하다.  뭐 이쯤하고.



초반에는 '군인'이란 직업이 주는 특성 때문에 영화를 보지말고 나갈까, 하고 생각했다. 헌병들의 거친 막말과 군인들의 폭력성을 보는게 너무 힘이드는거다. 시대적 배경은 아직 월남전중이던 그때이지만, 지금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아, 내가 왜 보러왔지, 싶을만큼 장갑을 끼고 상대를 엄청나게 폭행하는 군인을 보는 장면이 너무 힘들었다. 아, 이게 앞으로 계속 나올지도 모르는데, 이걸 어떻게 보고있지, 싶어서 엄청 고민했다. 나갈까, 볼까, 나갈까, 볼까...



극중 송승헌은 월남전에서는 대단한 활약을 보이고 살아남은 전쟁영웅이지만, 지금은 다른 군인들의 폭력성을 참기 힘들어하며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다 부하의 아내를 좋아하게 되는데, 덩치 커다란 군인이 꽃을 사들고 여자에게 문병을 가는 장면이, 꽃을 그냥 두면 시들텐데 라는 말을 듣자마자 꽃병을 찾아내 꽃을 꽂는 장면이, 통조림을 따주는 장면이, 라이터가 예쁘단 말에 '가질래요?' 라고 묻는 장면이 좋아서, 그 장면들을 볼때는 아, 어떡해, 나 좀 두근거렸다.. 부하의 아내에게 성희롱하는 고참을 보며 안타까워하던 장면 같은것들도. 그 장면들에는 두근거렸어...크고 강하고 힘있는 남자가 고분고분 여자의 말을 잘듣고 신경쓰는 건 진짜 멋진것 같다.




















영화 《빅 피쉬》는 내가 좋아할만한 영화는 아니다. 영화속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지나치게 환상적이라 그다지 내 마음에 들지 않달까. 물 속을 헤엄치는 나체의 여인, 엄청난 체구의 거인, 커다란 물고기, 이상한 마을, 시인이자 은행 도둑인 남자 등등. 그의 아들이 그런 아버지에게 불만을 품고 '진짜 이야기'를 해달라고 말하는 게 무리가 아닐만큼, 그의 아버지는 이야기를 지어내고 또 지어낸다. 그런 아버지를 못마땅해하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말한다. '네 아버지가 말하는 것들이 다 거짓은 아니란다' 라고.


아내는 남편이 어떤 사람인줄 알고 있는거다. 아내는 남편과 긴시간을 함께 해왔으면서 남편에게 '그런 이야기는 그만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내는 남편이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인 줄 알고, 그런 사람을 사랑한다. 내내 옆에서 한결같은 사랑을 쏟아주는데, 그 마음과 사랑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 바로 욕조장면이다.





몸이 아파 점점 약해지기만 하는 남편이 욕조에 들어가 옷을 입은 채로 쉬고 있는데 아내는 그 욕조 앞으로 찾아와 자신이 신던 구두를 벗고는 옷을 입은채로 그 욕조에 들어가 그의 위로 포개어진다. 아내는 남편에게 옷이 젖을테니 나오라고 말하는대신, 자신의 옷을 적셔가며 남편에게로 간다. 휴식을 취하기 위해 옷을 입고 욕조에 들어가는 남자를, 아내는 알고 있다. 그가 그런 남자라는 것을. 그런 남자를 그녀는 사랑하고 한결같이 사랑해왔다. 그리고 그런 남자에게로 자신이 움직인다.



너는 그런 사람이야 나는 네가 그런 사람인걸 알아 내가 너에게로 갈게.



욕조에 들어가있는 남편을 바라보다 결국 자신의 구두를 벗고 그 욕조 속으로 함께 들어가는 그녀의 마음은 바로 그런게 아니었을까.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아름답고 좋은 장면이었다. 기억에 남는.




아침을 먹고 나왔지만 점심 먹기전까지 분명 배가 고플테니 빵을 좀 사가자 싶어 회사 근처에 평소에 들르던 빵집으로 갔지만, 빵집은 없었다. 다른데로 이전을 한 모양인지, 늘 있던 자리에 빵집이 없었다. 허탈해졌다. 나는 이제 빵을 어디서 사먹지. 결국 빵을 사들고 오지 못했고, 뭐 먹을게 없나 냉장고를 뒤적이다 며칠전에 사둔 검은콩두유를 마셨다. 책상 위에는 어제 친구가 보내준 웨하스가 있다. 저걸 흡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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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4-05-21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빅피쉬를 봤는데, 저 장면은 기억이 안나고..;;

다락방 2014-05-21 10:54   좋아요 0 | URL
아, 난 저 장면이 너무 좋았어요! 이 영화를 나한테 추천해준 직장 동료가 있는데 자기도 그 장면이 제일 좋았다고 해서 잠깐 이야기 나눴었네요. ㅎㅎ

자작나무 2014-05-21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중독 다락방

다락방 2014-05-21 10:54   좋아요 0 | URL
여름휴가때 미국갈까 고민하다 비행기표 알아보고 마음을 접었어요. 흐..-

자작나무 2014-05-21 12:59   좋아요 0 | URL
전 여름휴가는 없는데 8월에 뉴욕가요.

다락방 2014-05-21 13:04   좋아요 0 | URL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부럽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언제부터 언제까지 갔다오세요?

자작나무 2014-05-21 14:58   좋아요 0 | URL
8월말에 일주일이요. 중국비행기로 110만원에 구했어요.

다락방 2014-05-21 17:20   좋아요 0 | URL
중국비행기로 가면 반값이네요...

무스탕 2014-05-21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떠~억! 광고하던 그것마저도 별로였군요. 하도 '벗은 송승헌'을 팔아먹길래 훌떡 넘어가 볼까..? 했었는데 패스~

다락방 2014-05-21 10:56   좋아요 0 | URL
옷입고 매력 없으면 옷 벗어도 별로 매력 없는것 같아요. --;;

2014-05-21 1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4-05-21 13:05   좋아요 0 | URL
여자주인공이 송승헌보다 더 연기를 잘하드만요. 배드신도 여자가 더 잘하고.. 쩝..
제가 원래 얼굴 안보고 사람을 좋아하긴하지만, 송승헌은 뭔가 안타까워요. 저렇게 잘생겼는데 매력이 없을 수 있다니... 매력은 얼굴 따라 가는건 아닌것 같아요. -0-

건조기후 2014-05-21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린은 계속해서 안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 한 두 개 마음이 뺏긴 장면은 있었지만 (등근육씬은 아닙니다 ㅋㅋㅋ) 스토리가 너무 산만해서 대체 뭘 이야기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배우들 연기도 혹평이 많던데.. 현빈도 현빈이지만 한지민이 너무나도 월등해서 보는 내내 감탄했네요 ㅡㅡ

다락방 2014-05-21 14:40   좋아요 0 | URL
ㅎㅎ 역린이 그래도 인간중독보다는 나을거라 장담합니다, 건조기후님. 결말이 작위적이야.. ㅠㅠ
한지민이 월등하다니..하아- 인간중독 여주도 예쁘더라고요. 작고 가녀린 스타일이랄까. 제가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스타일. 저는 우피 골드버그 삘인데...히융

자작나무 2014-05-21 14:55   좋아요 0 | URL
저 우피 골드버그 팬인데

건조기후 2014-05-21 15:17   좋아요 0 | URL
한지민은 예쁘죠. 참 예쁜데, 예뻐서 감탄한 게 아니라 연기를 너무 못해서 감탄했다는 뜻이었어요. 현빈 연기도 연기지만 한지민이 압도적..이더라고요 -_ㅜ

다락방 2014-05-21 17:23   좋아요 0 | URL
아하. 연기가 메롱이란 뜻이었구나. 걍 젊고 뛰어난 외모 때문에 주연으로 딱딱 박는거 별로 안좋은 것 같아요. 조연부터 밟아나가게 해야지. 에잇. 송승헌이 연기를 못하니까 그 배역에 공감이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자기는 슬프다고 우는데 관객은 하나도 안슬프고..이게뭐에요.. ㅠㅠ

2014-05-22 1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22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부만두 2014-05-23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쩜 관사의 다른 사람들이 눈치를 못채는지....그게 제일 웃겼어요.

다락방 2014-05-26 08:37   좋아요 0 | URL
저도 초반부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쩜 저렇게 아무도 몰라 아무도...
송승헌이 미역국 냄비 가지고 여자의 집에 갔을때, 그 미역국 먹고 냄비는 자기 집에 다시 가져갔을까..그게 궁금하더라고요, 전. 그 냄비가 거기서 발견되는 순간 소문 퍼지는 건 순식간인데... -_-
 
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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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 앙리 피에르, 그리고 나, 이 세사람 중에 우리 어머니 헬렌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바로 나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내가 더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주 일찍부터 어머니는 나에게 어떤 의무라도 지우듯이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네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게 해줄수 있는 법이야. 그러니 항상 행복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행복해지려고 참으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언젠가는 정신분석 전문가한테서 이런 말까지 들었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신인줄 아시나 보네요"라고. 물론 이건 농담이겠고, 아무튼 어머니의 사랑과 행복으로부터 큰 힘과 희망을 얻은 것은 사실입니다. 훗날 어떤 곤경에 처했을 때도 이 힘과 희망만은 결코 잃은 적이 없습니다. (p.54)

참여의 방법은 다양합니다. 그중에 가장 간단한 것은 어느 한 정당을 지지함으로써 확실히 참여하는 방법입니다. 정당은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으려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의 강력한 지지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이 자기 뜻에 맞는 정당에 투표를 통해 지지를 표명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기권하지 말고 꼭 투표해야 합니다. 이것이 첫 번째 형태의 참여입니다. (p.66)

언론이 점점 더 부자 주주들과 그들을 뒷받침하는 사람들의 손에 좌지우지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나는 언론 독립을 수호하려는 노력에 있어 언론 종사자들이 제몫을 해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 프랑스인들이 해방 직후 얻어냈던 것, 즉 독자와 국가가 적극 뒷받침하는 능동적 언론은 지금 너무도 심각하게 훼손되었습니다. 진정 독립적인 언론사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참여하는 일, 그 일이 다시금 정치하는 사람들의 최우선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건 비단 정치인들만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치러야 할 전투이기도 합니다. (p.6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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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4-05-21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해야죠. 암요 꼭 해야죠!



근데, 경남 하고도 창원시... 찍을 사람이 없어. 없어도 너무 없어. 돌아버리겠어..
보온상수, 막말 꼴통 준표. ㅡ.ㅡㅋ
여론조사는 압도적이라 절망스러움.

다락방 2014-05-21 10:56   좋아요 0 | URL
나도 꼭 할건데 사실 꼭 뽑고 싶은 누군가가 있는건 아니네. 뽑기 싫은 정당은 있어도.. ㅠㅠ

아무개 2014-05-21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찍고 싶은 사람이 전혀 없는데도 해야하는건지..
요샌 대의민주주의도 이젠 끝이란 생각이 들어 투표도 시들합니다.



다락방 2014-05-21 13:06   좋아요 0 | URL
찍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 안찍으면.. 더 멍청한 나라가 되어있지 않을까요. 사실 저도 시들하긴합니다만..Orz

유부만두 2014-05-23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어려워 보여서 .....

다락방 2014-05-26 08:37   좋아요 0 | URL
어렵더라고요, 저도 ㅠㅠㅠㅠㅠ
쪽수는 얼마 안되는데 머리가 팽팽 돌았어요. 지금도 제가 뭘 이해하기는 한건지 알 수가 없어요. ㅠㅠ
 
빅 피쉬 일반판 (1disc) - 아웃케이스 없음
팀 버튼 감독, 이완 맥그리거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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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은 사랑이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둘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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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2014-05-20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보단 셋이지요.

-글루미 선데이-

아무개 2014-05-20 12:46   좋아요 0 | URL
전 홀수엔 반대!

다락방 2014-05-20 12:50   좋아요 0 | URL
전 글루미 선데이 보다가 재미없어서 포기했으므로 반대.
그리고 셋은 골치아파요... 감정소모전은 딱 질색이에요. -_- 반대.

자작나무 2014-05-20 13:04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수많은 남자들 가운데 딱 한명만 선택할 수 있단말?

다락방 2014-05-20 13:08   좋아요 0 | URL
당연하죠. 설거지 잘하는 사람으로 선택해야죠. 설거지 잘하고 설거지 좋아하고 돈도 많은 남자로다가.. ( ")

자작나무 2014-05-20 14:23   좋아요 0 | URL
돈도 많아야 하는 거였군요...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
서민 지음, 지승호 인터뷰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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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라딘 활동을 시작할 때 마태우스님은 이미 서재내에서 유명인이었다. 사회적으로 대단한 위치에 놓여있으므로 한껏 어깨에 힘을 주며 거들먹거리는 것이 그 정도 위치의 사람이 보여주게 될 태도라 생각했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개그의 소재로 삼고, 본인이 얼마나 좋은 학교를 나왔으며 얼마나 유식한지와는 별개로 무척이나 쉽고 재미있는 글을 썼다. 꽤 신기한 캐릭터라고 생각하며 호감을 가지게 된건 당연했다. 또 본인의 부끄러운 과거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툭툭 털어놓아 나는 은연중에 그를 많이 안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던가 보다. 사람이 어떻게 다른 한 사람을 다 알 수 있을까. 매일 얼굴을 마주대하는 가족에 대한 것도 다 알 수 없는데, 나는 왜 내가 마태우스님을 거의 안다고 생각했을까. 대체 이 오만은 어디서 근거한 것일까. 나는 이 책을 몇 장 읽지고 않고 굉장히 부끄러워졌다. 나는 그의 아주 단편적인 모습들밖에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 책의 리뷰를 쓸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밝혀내기 힘들었던 그의 프라이버시를 이 책으로 인해 드러냈기 때문에, 리뷰를 쓰는 것은 마치 '나는 이제 너의 그 과거를 알아' 하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이 될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는 안될것 같아 나는 이 책은 다 읽어도 리뷰를 쓸 수 없을거야, 했던거다. 그러나, 어떤 위안 같은 것이 찾아왔다. 인간은 누구나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고, 그것에 예외는 없다는 사실 같은 것. 그간 꾹꾹 참아오며 말해지 못했던 것은, 누가 그것을 욕할까봐 두려워서가 아니라 사실은 본인이 본인에게 스스로 감추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자신의 치욕스런 과거를 숨기며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그 치욕은 누가 나에게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그렇게 느끼는거다. 그걸 바깥으로 드러내는 순간 사실 그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말하지 않기 때문에 비밀이 되고, 숨기기 때문에 큰 일이 된다. 그러나 드러내면, 그것은 더이상 숨길 과거도, 비밀도 아니다. 안타까웠던 것은, 그걸 이 책을 통해 말하기까지 그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했던 부분에 대한거다. 말을 해서 분명 후련해졌겠지만, 이제 이 책을 읽게 될 사람들은 그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다. 그 사실은 약간의 두려움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그러나 입밖으로 낸 이상, 이제 그간의 짐을 털어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에 드러난 그의 고백에 오히려 더 그가 가깝게 느껴졌다. 뭐랄까, 나도 그런 거 있는데, 남들이 몰랐으면 좋겠는 그런 거 있는데, 당신도 있었네요. 우린 어차피 같은 사람들인거에요, 하는 기분. 덕분에 나는 뜻밖의 위로를 받았다.



게다가 의료민영화와 의학상식에 대한 부분은 상당히 도움이 된다. 특히나 얼마전에 엄마와 미혼모 이야기를 하다 서로 큰소리로 다툰적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싸웠다면 엄마를 더 잘 설득시킬 수 있었을거란 생각이 드는거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읽었으면 하는 부분에 밑줄을 그었고, 이 책을 이제 엄마에게 읽어보라고 권할것이다. 



남자들은 미혼모를 여자가 방종을 한 결과라고 하는데, 정자를 주는 것은 남자라는 말이죠. 그리고 관계도 대개 남자가 하자고 들이대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미혼모 문제에서 진짜 문제는 남자들이에요. 남자들이 피임을 하지 않기 때문에 미혼모나 낙태 문제가 발생합니다. (p.71)


'미셀 윌리암스' 주연의 《블루 발렌타인》이란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남자와 여자는 만나는 사이었고, 콘돔도 없이 갑작스레 섹스를 하게 됐는데 여자의 안에 사정을 해버린거다. 여자는 당황하고 남자는 대수롭지 않다는듯 미안하다고만 하고 자리를 뜨는데, 그때 여자는 임신을 하게 된다. 물론 그 남자와 결혼을 한 건 아니고. 아, 생각하니까 또 빡치네..이런 개새...


이 책을 읽다가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상식들을 접하게 되는데, 특히나 콘돔에 대한 것은 대단히 놀라웠다. 무려 우리나라가 콘돔을 가장 잘 만드는 나라라니!! 초박형 콘돔을 우리나라에서 만들다니. 아니 그런데 왜 콘돔 리뷰는 그렇게나 일본 초박형 콘돔에 대한 것이 많은지?????????  <사가미 002>가 최고가 아니라니!!



우리나라의 낙태가 세계적으로 상위권이라고 하는데, 70퍼센트가 기혼 여성이거든요. 남편이 콘돔을 안 썼다는 이야기죠. 여성의 피임은 정말 어려워요. 한 달 중 21일을 호르몬제제를 먹어야 되는데, 우리 호르몬이 아주 정교한 시스템에서 가동되고 있거든요. 외부에서 호르몬을 투여하면 호르몬 체계가 흔들릴 수 있어요. 피임약 먹고 그러다 불임이 되는 거는 그런 이유입니다. 반면 콘돔은 껍질만 쓰면 되는 거니, 얼마나 쉽습니까?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콘돔을 잘 만드는 나라입니다. 콘돔을 쓰면 느낌이 안 좋다고 하는 애들이 있는데, 꼭 잘 하지도 못하는 애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설사 느낌이 안 좋다고 하더라도 여자들을 위해서 느낌을 요만큼만 양보하면 되잖아요. (p.71)


거듭 이야기하지만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좋은 콘돔을 만드는 나라거든요. 0.0015밀리미터 정도 되는 최고로 얇은. 사람들이 그걸 쓰다가 빠진 줄 알고, 잊어버린 줄 알고, '어디 갔지?' 하고 찾는데, 끼워져 있는 거죠.(웃음) 그 정도로 느낌이 좋은 콘돔을 만드는 나라에서 콘돔 사용률이 미국의 10대보다도 못하다는 사실이 어이없는 거예요.(p.190)



일전에도 지승호의 다른 인터뷰집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인터뷰에 앞서 정말 철저하게 준비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엄청 강하게 든다. 상대의 저서를 다 챙겨보는 것은 물론이고 블로그의 글, 그 글에 대한 댓글까지 싹- 다 읽고 인터뷰에 임하는거다. 와, 어느 책에서 어떤 말을 하고 어느 글에서 어떻게 대응하고 하는 것을 보노라니, 인터뷰도 아무나 하는게 아니구나 싶어지는거다. 그리고 그렇게 사전 조사를 철저하게 했기 때문에 적절한 질문과 또 적절한 추임새를 정말이지 적절한 때에 꺼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서민'도 '지승호'도 알라딘에서 활동을 했던지라, 이 책은 '친알라딘'적이다. ㅎㅎ 알라딘에 대해 자주 언급되고 심지어 다락방에 대한 언급도 두 번이나 나와서!!!!!!!!!!!!!!!!!!!!! (꺅) 매우 좋은 책임에 틀림없지만,



그러나 이 책의 일독을 권하는 것은 리뷰의 처음에 밝혔던 이유로 꺼려진다. 의학적인 상식 부분에서, 또 재미 부분에서 이 책은 큰 만족을 주지만, 한 인간의 프라이버시-비록 그것을 '밝힌'것이라 해도- 를 다른이에게 권할 수 있을까, 를 생각하면 머뭇대게 되는것이다. 그러나 거듭 말해서, 그렇기 때문에 그가 우리랑 다르지 않은 삶을 사는 한 사람의 보통 사람임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독자에게는 위로를 준다. 책의 말미에, 이 책은 서민 본인의 책이다, 라고 했는데, 진심으로 그러기를 바란다. 이 책이 서민 본인의 그간 삶을 정리하고 앞으로 한 발 더 나아가게 되는 계기가 되는, 그런책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앞으로도 그의 행보를 있는 힘껏 응원해주고 싶다. 




마지막으로...꼭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다.

잘생긴 남자는 정말....설거지를 안하나요?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덧. 118쪽의 오타. 

'크게 사람을 죽이지나 하지는 않기 때문에' → 크게 사람을 죽이거나 하지는 않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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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4-05-20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지금 당장 읽고 싶어 미치겠네요.
오랜만에 당장 읽고 싶은 책을 만난 것 같습니다. 책이 도착하기도 전에 이렇게 설레다니..
한편으론 어떤 비밀일까 걱정도 되지만 락방님 만큼 저도 서민님을 응원하는 마음이 크니깐 읽어보겠습니다.

^^

다락방 2014-05-20 10:14   좋아요 0 | URL
책이 아주 술술 잘 읽혀요. 어제 퇴근하는 지하철안에서 내리기 싫을 정도로 몰두해 읽었습니다. 여러가지 복합적인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무쪼록 레와님도 즐독!

자작나무 2014-05-20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생기고 좋은 남자와 잘생기고 나쁜 남자 중에 고르라면 다락방의 선택은...???

다락방 2014-05-20 12:45   좋아요 0 | URL
저는 그동안 늘 못생기고 좋은 남자를 선택해왔습니다.....

아무개 2014-05-20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저는 왠지 이책을 읽고 마태우스님이 더 멀게 느껴지던걸요.(그리 가까운 사이도 아니였지만 ㅡ..ㅡ)
아니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었나. 이렇게 강한 사람이었나 싶은게....

2.저기 어딘가에 그런 내용도 있지요?
'콘돔을 쓰면 느낌이 안나서 싫다 라고 그러는데, 잘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꼭 그런다.
하지만 나는 콘돔을 애용한다' 이런 글이였던거 같은데 책이 없어 확인불가 ^^:::::::

3.네 잘생긴 남자가 설겆이를 좋아하지 않을 꺼란말에 100만원 겁니다.
다락방님도 설겆이 싫어 하잖아요. 뭐 똑같은 이유가 아닐까요 ㅎㅎㅎㅎ

4. 그나저나 마태우스님은 락방님을 너무 싸릉하시는거지 그렇지...

다락방 2014-05-20 13:06   좋아요 0 | URL
2. 저기 위에 제가 인용한 문장이 그 문장입니다. 71 페이지요.

콘돔을 쓰면 느낌이 안 좋다고 하는 애들이 있는데, 꼭 잘 하지도 못하는 애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설사 느낌이 안 좋다고 하더라도 여자들을 위해서 느낌을 요만큼만 양보하면 되잖아요. (p.71)


3. 저는 설거지하는 잘생긴 남자를 꼭 만나고 싶습니다!! ㅎㅎ

4. 저도 마태우스님을 사랑합니다. ㅎㅎ

자작나무 2014-05-20 13:05   좋아요 0 | URL
전 설거지를 잘하지만...

다락방 2014-05-20 13:07   좋아요 0 | URL
설거지를 잘하지만...



여자입니까? ㅋㅋ

자작나무 2014-05-20 14:24   좋아요 0 | URL
돈이 없습니다 ㅎㅎㅎㅎ

다락방 2014-05-20 16:27   좋아요 0 | URL
안타깝네요..

마태우스 2014-05-20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다락방님... 저랑 시비돌이님의 그저그런 책을 가지고 이런 신적인 리뷰를 쓸 수 있다는 건 님의 리뷰 능력이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뜻일 거에요. 권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리뷰에 쓸 수 있는 분, 그리 많지 않을 거에요. 그게 다 저자에 대한 애정이 작용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거 말고도 제 마음을 대변해주는 구절이 여럿 있어서, 고맙다는 말밖에 드릴 말씀이 없네요. 원래 이런 글은 비밀글로 해야 딱인데, 님이 신이란 걸 잘 모르시는 분들이 계실까봐 그냥 씁니다.

다락방 2014-05-20 13:12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님, 책 정말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마태우스님의 다음책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릴거에요.
신적인 리뷰라뇨, 무슨 그런 어마어마한 말씀을. 신적인 리뷰랑은 완전 거리가 멀고요,
이 책 읽으면서 이생각 저생각 복합적으로 되게 많이 했거든요.
무엇보다 내가 왜 이런 고백에 놀라야 하는가, 였어요.
그건 제가 이 저자를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된거였죠. 그래서 엄청 충격이었어요.

저자에 대한 애정이라면, 네, 엄청납니다. 그건 확신하셔도 됩니다. 정말로요.
:)

무스탕 2014-05-20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요, 처음부터 끝까지 두 분 인터뷰 내용만으로 이루어져 있나요?
찾아봤더니 300쪽이 훨씬 넘는 분량이던데 그 긴 시간동안 두 분이 수다를 떠셨다고요? =3=3=3
다락방님 리뷰를 읽다 보니 '서민=기생충' 이라는 무조건반사공식에 뭔가가 더 추가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다락방 2014-05-20 16:11   좋아요 0 | URL
네, 무스탕님. 인터뷰 내용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승호님이 물으시고 서민님이 답하시는거죠. 기생충에 대한 것과 사생활에 대한 부분, 의학상식과 의료 민영화 또 글쓰기까지 다양한 질문과 대답이 거기에 있습니다. 재미있어요. 생각할 것도 많고 말입니다.
:)

페크pek0501 2014-05-20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 님과 다락방 님의 빠른 행보를 보고 갑니다. 책을 낸 사람과 리뷰를 쓰는 사람으로서의 행보를.
저는 요즘 책을 사지 않으니(집에 쌓여 있는 책을 읽고 있어요.) 이런 새 소식도 모르고 말이죠.
으음~ 이 책 역시나 마태 님의 유머가 반짝이고 있겠죠. (마태 님, 축하드려요...) 리뷰는 여전히 맛있고...

잘생긴 사람이 설겆이는 모르겠고(저는 이런 걸 안 시켜요. 못 믿어서요. ) 청소는 잘 한답니다.
청소할 때 즐겁게 해요, 우리 남편이요... 남편이 청소기 돌려 줄까? 이런 말 자주 하거든요. (이런 말 해도 되나요?)
잘생긴 편인데, 사실인데... 꺄욱~~~

다락방 2014-05-21 11:04   좋아요 0 | URL
아 페크님. 저도 집에 쌓여 있는 책을 좀 읽어야 할텐데요. 자꾸 사대기만 하니 큰일입니다. 엊그제도 한박스가 도착했고, 내일 또 올거에요. ㅠㅠ 게다가 수시로 중고샵 가면 꼭 몇권씩 사들고 나온답니다. 저는 아마도 '사는' 행위 자체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아요. 어휴..

ㅎㅎ 청소기 잘 돌리는 남편이라니, 좋으네요. 당연히 그래야지요!! 저희 아빠랑 남동생도 청소기 하나는 기가막히게 잘돌립니다. 물론 걸레질도 ㅋㅋ. 게다가 설거지 앞에 두고 제가 또 씩씩대고 있으면 남동생이 자기가 한다 그래요. 제가 너무 설거지하면서 화를 내가지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리고 저희 가족은 유전적으로다가 미모가 좀 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맞다, 이거였다, 이래서였다.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 지금의 터질듯한 긴장감. 이것 때문에 나는 내가 만난 단편들의 김 숨을 장편으로 만나고 싶었던거였다. 왜 읽고 싶었었지? 하며 책장을 넘기다가 다 읽고나서야 아, 이것 때문이었구나, 했다. 이 긴장감을, 김 숨을, 나는 또 찾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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