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전쟁과 강간 부분을 어제야 다 읽었다. 이제 4장으로 넘어갔는데, 전쟁과 강간 부분 읽는 거 너무 힘들었어. 모든 강간범들이 그렇겠지만, 자기가 하는 일이 잘못이나 혹은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해서 생각하기 보다는, '강간하는 나'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니까 상대를 통제할 수 있는 나, 약하지 않은 나.


특히나 전시에 강간하는 것은 군인들에게 일상이었다.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는 것. 그 사이에서 그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남자 혹은 집단 강간에 참여하지 않은 남자는 이상하고 허약한 남자로 비춰지기 일쑤였다. 말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말린다고 들을 놈들도 아니고, 오히려 지적한 자신이 그들에게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말하지 못한 남자들.


세상은 과거부터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던걸까?



남자들은 마오(피해자의 이름)의 입에 금니가 있어서 재미있다는 이유로 그녀를 골랐다. 그녀는 스무 살 정도의 나이였다. 군인들이 스스로 무슨 의도로 여자를 끌고 가는지 아는 만큼이나 마을 여자들 역시 끌려가면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알고 있었고, 마침내 마오의 손이 등 뒤로 묶이자 여자들은 몸을 웅크리고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붙잡았다. 너무나 애처롭게도, 마오의 어머니가 딸을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는 군인들을 쫓아가서 딸의 스카프를 전해주는 일뿐이었다. 그리고 군인 한 명이 스카프를 받아서 포로의 입에 묶었다.

수색 중이던 다섯 명 중 단 한 명, 스벤 에릭슨 일병만이 마오를 강간하고 살해하는 데 참여하지 않았다. 랭이 이 참극에 대해 쓴 바에 따르면, 마오에게 필요 이상으로 잔인한 행위를 저지른 이유는 남자들이 남성성 내지는 수컷의 쪼는 서열을 두고 경쟁했기 때문이었다. 에릭슨이 윤간에서 자기 차례가 왔을 때 거절하자, 수색 지휘자였던 토니 미저브 병장은 에릭슨이 동성애자에 겁쟁이라며 조롱했다. 범행 추종자 중 하나였던 마누엘 디아즈는 후일 군 검사에게 머뭇거리며 말하길, 웃음거리가 될까봐 두려워서 다른 사람들을 따르기로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래요, 당신이 그 수색대에 있었다고 해봅시다. 당장 이 사내들이 내 앞에 있고 날 비웃으려고 벼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금방 소대에서 왕따가 될 겁니다."

마오를 살애한 후 그들은 "베트콩 하나, 교전 중 사살"이라고 보고했다. 에릭슨은 이 범행이 처벌되지 않은 채로 지나가게 두지 않겠다고 결심했으나, 그가 기지로 돌아왔을 때 상관들은 기묘하게 저항하는 태도를 보였으며, 이야기를 들은 다른 소대원들도 그를 고자질하는 말썽꾼으로 취급했다. (.156-157)



나는 언제나 무엇을 욕으로 하는지를 알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지금 위의 인용문에서도 바로 드러난다. 강간을 하지 않겠다는 사람에게 '동성애자' 라고 욕을 하는 사람. '동성애자'를 욕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끝난 거 아닐까. 그 사람은 동성애자가 놀림거리라고, 욕할 만한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인거다. 동성애자라고 욕을 함으로써 본인은 '동성애자가 아닌 나' 가 되고, 그래서 자랑스러운 사람. 고작 그 정도 밖에 안되는 사람.


그리고, 하고 싶어서가 아닌, 왕따가 두려워 강간한 남자.


세상은 대체 어디부터 어떻게 잘못된걸까.


왕따를 당하면 괴롭겠지. 왕따를 당하면 괴로우니 강간을 하자.... 라는 사고. 왕따를 당하니느 강간범이 되겠다는 것. 그것은 왕따로 사는 것보다 강간범으로 사는 것이 더 쉽다는 증거가 아닌가. 나는 왕따가 두려워 강간을 했다는 마누엘 디아즈에게 '차라리 왕따가 되었어야지!'라며 왕따가 되기를 강요할 순 없다. 그러나, 왕따가 무서워서 차라리 강간을 택하는 사회는 분명 잘못된 사회라는 것은 확실하다. 강간이 왕따보다 안전한 사회라니. 이것은 너무나 이상하지 않은가? 왜 이 이상함을 인지하지 못하는가.



강간하지 않았던 에릭슨에 대해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사내가 되는 일에 관한 한 그는 평균 이하였습니다" 에릭슨이 속했던 소대의 한 병장이 증언했다. (p.157)



강간하기를 거부한 남자는 사내가 되지 못한 남자라니, 사내가 되는 일이 고작 강간으로 증명되다니. 그런 게 사내라면, 그렇게 증명되는 게 사내라면, 사내들이여,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거 아닙니까. 그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강간하기를 거부하면 평균 이하의 사내라니. 평균이란 무엇이며 사내란 무엇인가. 남성성이란 무엇인가. 얼마나 못났으면 강간함으로써 남성성을 드러내. 남성성을 고작 그것으로밖에 못드러내? 너무 찌질하고 너무 못나지 않았어? 세상 한심하다. 그게 남성성이야?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남성성은 없어져야 마땅하다. 멸종하라.



전시에 강간은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강간과 일상이 나란히 쓰이다니, 이 얼마나 좆같은 세상인가.



3소대 분대장이었던 존 스메일은 (강간)이야기를 꺼리는 이유에 대해 철학적인 설명을 내놨는데, 허시는 깊은 충격을 받아 그 말을 고스란히 인용했다. 스메일은 "강간은 일상사"라고 말했다. "강간 얘기를 꺼내면 여기 안 걸릴 사람이 없어요. 누구나 최소 한 번은 했으니까요. 이봐요, 이 친구들도 인간이에요." (p.160)



인간이라서 강간을 최소한 한 번은 할 수 있다니, 인간이기 때문에 하는 짓이니 봐줘야 한다니... 남성성이란 무엇이며 사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인가. 대체 남자들이 생각하는 남자란 무엇이며 남자들이 생각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인간이란 그렇다. 남자든 여자든, '안되는 것 같은데'를 장착하는 사람, 장착할 수 있는 사람. '이건 아닌 것 같다'를 본능적으로 알고 그렇다면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수 있는 사람.


내 옆에 남자가 다른 여자를 강간하려고 할 때, '어, 이건 아닌데' 라고 생각하고 그에게 '그러면 안돼' 라고 말할 수 있는 거. 그게 인간인 거 아닌가. 그게 인간 아니야? 어떻게된게 '인간이니까 뭐' 하면서 그걸 넘길 수 있는거야? 당신들이 생각하는 인간이라는 건 살면서 한 번쯤 강간은 해볼 수 있는 거야? 그게 인간인거야? 나는 그걸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하고 이 세상을 같이 살아가고 싶지가 않다. 멸종하라.



연일 보도되는 사건 의 뉴스들을 보노라면, 남자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큰 범죄를 저지르고 산다는 걸 알 수 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보다 더 최악의 것을 매일 갱신한다. 전쟁 중의 강간에 대해 읽기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때의 강간이 그보다 덜 힘들게 읽히는 것도 아니다. 학원 원장이 미성년자 학원생을 강간한 후에도 가장 이라는 이유로 풀려날 수 있는 나라가 이 나라다. 미성년자를 강간했지만 떡볶이를 사줬다고 화대를 지급한 거라는 나라가 이 나라다. 미성년자가 강간당했지만 애초에 인터넷으로 만난 여자 아이가 잘못이라고 댓글 다는 나라가 이 나라다. 이 나라의 지금과 전쟁 중의 군인들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나?




이 책은 12장 까지 있는데 나는 고작 3장까지만 읽어냈다. 남은 시간은 이 책 읽기에 열중해야 1월 안에 끝마칠 수 있을 것이다. 속도가 더뎌 좀 초조하지만, 11월도 12월도 완독해냈으니 1월도 할 수 있을 것이다. 1월 도서 열심히 읽고 2월로 가면 2월 도서도 열심히 읽어야지. 오늘은 2월 도서들을 주문할 예정이다.



자, 같이 읽는 여러분, 열심히 진행중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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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01-21 10: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자는 서문에서 3장을 제일 심혈을 기울였다. 3장 작업이 제일 자랑스럽다,고 말했는데, 저도 3장이 제일 힘들더라구요.
저번보다 더 힘들어서 이번에는 3장은 살짝 스킵해버렸어요. ㅠㅠ
같이 강간하지 않는 남성에 대한 모멸과 무시하는 말을 읽을 때마다, 악에 대한 동조를 격려하는 그런 말을 읽을 때마다
인간 본성의 끝없는 악랄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저도 부지런히 읽을께요.

다락방 2019-01-21 12:06   좋아요 2 | URL
네, 저도 서문에서 3장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썼던 게 기억나더라고요. 읽으면서 아이고, 진짜 기 빨리는 작업이었겠구나 싶었어요. 전쟁은 강간범들에게 면죄부가 되어주었던 것 같아요. 전쟁중에 우리는 이정도는 해야지, 우리도 인간이잖아, 하면서요. 아 너무 끔찍합니다. 단발머리님이 3장을 재차 읽으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스킵하세요 ㅠㅠ 저는 이제 4장 읽을 차례인데, 4장 읽는다고 뭐가 좀 나을까 싶어요. 이 책도 아까 목차를 보니, 마지막에는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아요. 열심히 읽겠습니다!

블랙겟타 2019-01-22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3장을 읽기가 어려운 챕터였군요. ㅜㅜ
저도 단발머리님처럼 인간이란게 무엇인가.. 라는 의문도 들기도 하고요.. ㅜㅜ
(일본 특유의 시니컬함이 들어있긴해도..) 문득 떠올렸던 것이 일본 만화 ‘기생수‘의 대사인
˝「악마」라는 단어를 책에서 찾아봤는데.. 가장 그것에 가까운 생물은 역시 인간인 것 같아..˝
이네요.
그럼에도 이 순간에도 과거보다 조금씩 진보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만
어떨땐 너무 미미한 속도가 야속하게 느껴지네요.

그러고 보니 1월이 10일채 안남았는데 저도 반도 못읽었네요. 조금 더 속도를 내서 읽을께요!

다락방 2019-01-22 13:22   좋아요 0 | URL
저 어제 4장 조금 읽었는데, 4장이라고 해서 뭐 쉬워지진 않더라고요.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여전히 힘들게 읽고 있습니다. 자기전에 읽는 중이라 맨날 잠이 쏟아져서 몇 장 못읽고 자요. 그런데,

헉... 10일도 채 안남았나요? 오 마이 갓..
저도 속도를 내서 읽어야겠네요. 으앗.
아무래도 내일 부터는 출퇴근길에도 들고 다녀야겠어요. 겁나 무거운 책이지만..
그래야 1월안에 다 읽기를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네, 블랙겟타님 힘내서 읽읍시다!

공쟝쟝 2019-01-27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소심)..... 오늘 제대로 시작해요................ (1월에 개인사가 많아서.. ) 밍기적...

다락방 2019-01-27 10:48   좋아요 0 | URL
저도 주말 내내 앓느라 못읽었어요 ㅜㅜ 저는 제주도까지 들고와서 앓았다는 ㅠㅠ

공쟝쟝 2019-01-27 11:03   좋아요 0 | URL
저도 저번주 내내 제주도였는데!!
앓지마용 락방님 ㅠ0ㅠ//~
 

한번씩 책이 잘 안읽히는 때가 온다. 책이 잘 안읽히고 그래서 별로 읽고 싶지도 않은 그런 때. 내게는 요즘이 그런 때인지라 책을 못읽고 있는데, 그럴 때 만난 책은 당연히 진도가 안나가고, 그렇다면 이 책과 내가 만날 운명이 아닌건가.... 싶어지면서, 책이 먼저 안좋아서 나에게 책 안읽히는 때가 온것인지, 하필이면 책 안읽히는 때에 이 책이 내게로 온것인지...뭐가 먼저인지를 모르겠는 뭐 그런 상태이다. 게다가 어제 퇴근길에는 심지어 책을 회사에 두고 갔어. 음... 지하철 안에서야 비로소 가방 안에 책이 없다는 걸 알고는 음... 이것은 읽기 싫은 나의 무의식의 반영.. 같은 것인가..... 라고 생각했다. 읽기 싫다는 나의 저 깊은 안 쪽의 생각이 책을 안챙기는 행동으로 나타났다. 음....


아무튼,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 그러나 포기하는 책은 바로 이것이다. 그래, 나는 포기를 택했다. 이 책을 읽기를 중단하자. 다른 재미있는 책을 읽자. 그래야 책 읽기를 지속할 수 있다...


















2018년만해도 내가 베트남에 몇 번을 갔지? 세 번 갔나, 네 번 갔나?

아무튼 내가 베트남을 여러차례 다녀오고 베트남 또 가고 싶어하는 사람으로서 베트남의 문학을 읽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딱 골라잡았는데, 이 책이 진도가 안나가는 거다. 아아, 진도가 안나가는 거 붙잡고 있지 말고 과감히 내치자. 지금은 때가 아닌 것이야... 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것은 단순히 운의 문제가 아니라 이 책의 잘못일런지도 모르겠다.




장군은 부인의 말을 못들은 척했습니다. 그녀는 아이 다섯을 낳은 후에도 주판을 튕기는 듯한 사고방식, 훈련교관의 척추, 처녀의 몸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1권, p.12)



처녀의 몸..

처녀의 몸..

아이 다섯을 낳았지만 처녀의 몸.....



언어에는 힘이 있다. 그 단어가 가진 고유한 힘. 이 책에서 '아이 다섯을 낳았지만', '처녀의 몸' 이라고 하는 순간, '처녀의 몸'이라는 워딩을 내뱉어 버리는 순간, 그 반대의 언어를 떠올리게 한다. 뭐야, 칭찬의 의미로 처녀의 몸을 썼으면, 반대되는 건 아줌마의 몸이라는 거야? 처녀의 몸이란 워딩을 내뱉는 순간 처녀를 올려침과 동시에 처녀가 아닌 사람을 내동댕이 치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처녀와 아줌마, 여성 모두에 대한 혐오가 저 안에 들어있는 거다. 그렇다면 올려침이 칭찬이라 볼 수 있을까? 처녀의 몸이라고 내뱉어 버리는 순간 그것은 혐오가 된다. 여자의 몸을 처녀의 몸이라고 칭하는, 묘사하는 순간 그렇지 않은 몸도 생겨버리기 때문에. 하아. 처녀의 몸이라니.. 화자는 만약 그런 몸이 아닌 여자를 본다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또 어떻게 내뱉을까?


처녀의 몸이라니... 맙소사..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냥 읽으려고 했다. 그렇게까지 의욕이 없진 않았어. 아아, 이런 거 일일이 걸고 넘어지면 나는 정말 세상에 읽을 책이 없을거야... 그렇게 읽어나가다가, 아니, 씨부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나 이 욕 안하기로 했는데 ㅠㅠ) 이런 문장을 만나고야 만것이다.




우리가 떠날 때쯤 마침내 비가 그쳤습니다. 뇌수종 환자 같은 해병대원 3인조가 여자의 질처럼 어두컴컴한 곳에서 비틀비틀 걸어 나왔을 때, 우리는 습지의 어귀에서, 그러니까 노천 맥줏집의 출구인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뒷골목에서 마지막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1권,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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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문체가 조용하고 차분해서 내가 좋아라 하는 타입이다. 나는 방방 뜨는 가벼운 문체를 싫어하기에 이런 문체는 내가 좋아라 하는 성질의 것이야. 그런데, 처녀의 몸은 넘어가려고 했는데, 여자의 질처럼, 이라니. 하아-

나는 책날개의 작가 소개를 봤다. 작가는 2016년에 이 책으로 퓰리처상을 비롯해서 이것저것 상도 많이 받았더라. 어둠에 대한 묘사를 고작 여자의 질처럼이라고 하는 작가... 어둠을 묘사할  때 생각나는 게 여자의 질밖에 없었나. 도대체 나는 이런 묘사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 왜 이런 식의 묘사를 할까? 그 머릿속엔 뭐가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걸까? 어둡구나, 여자의 질같다...이런 생각하나? 어떻게 어둠에서 여자의 질이 연관될까? 어느날 섹스중에 상대의 여자의 질을 들여다 보았더니 어두웠나? 아, 이곳은 어둡구나, 좋은 비유를 할 수 있겠어. 뭐 이런 생각한건가? 세상에 내놓는 글에 여자의 질처럼.. 하아- 나는 이 문체가 좋고 소설이 우아할 것 같아서 계속 읽고 싶었는데, 뭐랄까, 그냥 맥이 툭, 끊겨버린 것 같다. 소설의 흐름에 이 부분은 지극히 사소하고 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러니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무시하고 넘어갈만한 걸 도대체 왜 써놨는가.


잘가요, 동조자, 나는 당신을 포기합니다. 베트남 소설 어떤건지 읽어보고 싶은데 지금은 이걸 읽을 기운이가 없다. 세상에 많고 많은 게 소설이고 책인데 이렇게 턱 걸리는 걸 읽어낼 자신이 없어. 모르겠다. 내가 지금 책을 잘 못읽겠는게 이 책의 영향인지, 이 책이 하필이면 이럴 때 내게 걸려든건지.


굿바이-







그래서!


영화를 봤다. 하하하하하. 이거 개봉했을 때 되게 보고 싶었는데 놓쳤다가, 어제 옥수수에 무료로 떴길래 오오? 하면서 보았는데, 와, 오늘 아침 출근길에 보면서 너무 무서워서 ㅠㅠㅠㅠㅠㅠㅠㅠㅠ



adrift


'표류하는' 이라는 뜻의 단어. 그러니까 이 영화속에서 여자 주인공 '태미'는 표류한다. 아.. 그 외로움과 허기, 육체적 고통 앞에 내 신경줄이 진짜 타다닥 끊어져버리는 줄 알았어.


'태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와 여행하며 다닌다. 여행 하는 틈틈이 일을 하고, 그 돈으로 세계를 돌고 있는 중. 그렇게 다시 너무 좋았던 타히티 에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마찬가지로 여행이 삶이고 삶이 여행인 남자 '리차드'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리차드는 자신이 직접 요트를 만들어 그 요트를 타고 항해를 하며 살고 있다. 하아- 나는 예고편으로 그냥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같이 여행하고..뭐 그런건줄 알았는데 여자가 바다 위에서 표류하며 버텨내는 걸줄은 몰랐어. 너무 힘들었네 진짜 ㅠㅠ


아무튼 리차드와 태미는 사랑에 빠지고, 둘다 여행을 좋아하는만큼 함께 항해하기로 한다. 아니, 왜 하필 항해인가. 진짜 이것도 맞아야 하는거지, 나는 내가 아무리 사랑하는 남자가 우리 항해하며 살자 라고 하면, 그것이 설사 프로포즈라 한들 '아니'를 말하겠다. 바다 위에서 얼마가 될지 모르는 시간을 지내는 것도 싫고 항해하는 내내 나와 그와 둘이서만 있는 것도 싫다. 나는 사랑도 연애도 좋고 즐겁고 행복하지만, 세상이 필요해. 내 집안에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면, 그와 웃고 이야기하는 시간도 너무 소중하지만, 집 밖으로 나가 친구를 만나고 마트에 가고 커피를 마시고 도서관에 가고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내게는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이야. 그런데 항해를 하면 그 사람하고 나랑 둘이서만 계속 붙어 있어야 되는건데... 아니, 난 못해. 내가 아무리 당신을 사랑한다해도 그렇겐 못해. 자신의 요트로 홀로 항해하던 남자라면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 게다가 남은 삶도 그렇게 살아갈 사람이라면 진짜 노땡큐..사랑하는 사람과 단둘이 사는 삶과, 사랑하는 사람 없이 세상과 사는 사람 둘 중에 택하라면 나는 고민없이 후자인 것을...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디에서 살아도 누군가를 만들 것이다. 좋은 이웃을 만들고 좋은 지인을 만들것이야. 왜냐하면, 그걸 내가 원하니까. 



리차드와 태미는 항해하며 보내기로 하면서 우리 어디갈까, 여기 가볼까 저기 가볼까 그러던 와중에, 한 미국인 노부부로부터, '우리 요트를 미국까지 갖다 줘, 돈 주고 돌아오는 항공권 1등석으로 끊어줄게' 라는 요구를 받게 된다. 노부부는 갑자기 영국에 가야하는 상황이고, 자신들의 호화요트를 미국까지 가져다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리차드는 태미에게 말했다.



"지구를 반바퀴 돌아 당신을 만났는데, 놓치고 싶지 않아."


지구를 반바퀴 돌아 당신을 만났으면 놓치면 안되는거야, 밥통아. 보고있냐?



아무튼 그렇게 리차드와 함께 이 호화요트를 타고 미국으로 가기 위한 항해를 시작한다. 그러다 허리케인을 만나게 되고...



사라진 줄 알았던 리처드가 저기에 있는 걸 발견하고 열심히 헤엄쳐서 그를 망가진 요트 위로 끌어 올린 뒤, 태미는 살기 위해 노력한다. 리처드는 이미 갈비뼈가 부러지고 다리도 부러져서 움직일 수 없는 상황. 그 넓은 바다 위에서 태미 혼자 좌표를 계산하고, 배를 몬다. 남은 식량을 찾고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애를 쓰는등 살아남기 위한 모든 행동을 태미 혼자서 해야 한다. 리차드는 꼼짝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에. 음식도 다 떨어지고, 태미는 살기 위해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물고기를 잡는다. 그렇게 홀로 바다 위에서 41일간 표류하다 그녀는 커다란 배를 만나 구조된다.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으며, 태미는 지금도 여전히 항해중이라고 한다.



홀로 바다 위에서 식량을 마련하고 좌표를 계산하며 내가 지금 어디쯤 있나 생각해보고(방향키가 고장난것 같아!) 또다시 닥쳐올 폭풍에 대비하는 태미는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하루를 또 하루를 버텨가는 것이 얼마나 힘겨웠을까. 오늘 아침 출근길에 태미와 리차드가 폭풍우를 만나는 장면에서 너무 무서운거다. 춥고 외롭고 무섭고.. 그보다 더 무서운 건 바다 위에 홀로 남게된 태미였다.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해야하는 태미. 그렇게 혼자 살아남는 태미. 포스터 보면 무슨 세기의 로맨스..같은 걸로 얘기해놓은 것 같은데, 뭐, 사랑이 살아남는데 도움이 되긴 했지만, 이것은 여자 혼자 살아남는 이야기이다. 그 넓은 바다 위에서. 아, 진짜 .. 너무 무서웠다. 그 고독이. 



살아남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끝까지 버티고 살아줘서 고마워요.



동조자는 1권의 33쪽 까지 읽고 그만 읽기로 결정하고 다른 책을 오늘 들고왔다.

사무실 책상 위에는 어제 사온 앙버터가 남아 있다. 앙버터 먹어야지. 사실은 이미 먹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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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겟타 2019-01-18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따금씩 그런 고민을 할때가 있어요.
평소에 참 좋아하던 방송인, 정치인.. 혹은 지인인데 젠더의식이 결여된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보고 있자니
와~ 이 사람은 좀 아닌데? 이 사람의 이런 생각까지도 품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었어요.
그 사람의 어떤 면(탁월한 감각, 언변, 지적능력)을 보고 좋아했지만 어떤 면(결여된 젠더의식)에서는 도저히 동의를 못한 경우에 과감히 떨쳐낼 수 있을까? 그런거를 일일히 다 하다보면 진짜 좋아할 사람은 적어지고 방송도 들을 것이 없게되는 것은 아닐까?
고민 끝에 그사람에게 품었던 애정을 단칼에 떨쳐버릴 수는 없겠지만 서서히 멀어지는 훈련(?)을 통해 결국은 포기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일상에서 누구에게 아픔을 주는 말을 하지는 않았는지도 생각하게 만드네요.

다락방 2019-01-18 12:17   좋아요 1 | URL
평소에 좋아하던 사람으로부터 어떤 실망스런 언행을 목격하게 됐을 경우, 저 역시도 고민을 합니다. 지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그런데 뭔가 어떤 넘지말아야할 선 혹은 자신만의 기준 같은게 있잖아요. 저와 다른 생각을 하거나 다른 걸 좋아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살아온 환경이 다를 수 있다고 받아들이는 편이지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건 얘기가 다르죠. 뭐랄까, 이건 안된다, 가 확 찾아오는 것 같아요. 그런 경우에 저는 서서히 멀어지기 보다는 확- 정나미가 떨어지더라고요. 결여된 젠더의식은 제게 넘지 말아야할 선이에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놓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곁에 있습니다. 너무 좋아요!

그나저나,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는 열심히 읽고 계십니까? 네?

블랙겟타 2019-01-18 14:30   좋아요 0 | URL
어쩌면.. 제가 아직도 나이브한 생각을 가진 걸 수도 있겠네요..

아.. 네!. 감기때문에 이번주는 조금 늦게 읽어서 이제야 막 올리게 되었네요. ^^;;;

clavis 2019-01-20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핫.앙버터 맛있겠네요.락방님의 솔직함에 만세를 불러봅니다.

다락방 2019-01-21 09:31   좋아요 1 | URL
앙버터 맛있어요! 비록 버터를 덩어리째 씹어 엄청난 고칼로리이긴 하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일 퇴근 후에 뮤지컬은 괜히 예매해놔 가지고 어제 가는 길부터 너무 피곤하고 짜증이났다. 게다가 파운드케익이 너무 먹고 싶어지는 바람에 가는 길에 제과점에 들러 파운드케익도 샀어. 공연 끝나고 사면 가벼운 발걸음이었겠지만, 공연 끝나면 거의 열한시가 될텐데 문 여는 제과점은 어디에 있을 것이며, 있다한들 빵이 남아 있을 것인가... 생각하니, 퇴근 하면서 사는 게 정답이다. 제가 이렇게 계획적인 사람입니다, 여러분.


아무튼 파운드 케익과 맥주 오백미리 두 캔이 든 쇼핑백까지 들고나니(맥주는 사정이 있어서 들고갈 수 밖에 없었는데, 이것까지 쓰면 너무 길어지니까 패쓰), 한 손엔 책이 들어있는 가방과 한 손엔 파운드케익, 맥주 들어있는 쇼핑백... 아오... 개힘들어 ㅠㅠ 그렇게 나는 공연을 보러 간 것이다.


글을 쓰기에 앞서,

가기 싫다고 징징대는 제게 가라고, 가면 좋을 거라고 얘기해주셨던 트위터와 알라딘의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복받으실 거예요. 가길 정말 잘했거든요. 아이쿠야 좋구먼... 인터미션에 언제껄로 '또' 예매할까, 들여다볼 지경이었어요. 그간 제가 봤던 뮤지컬들중 최고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가라고 해주셨던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일단 원작을 진작에 읽어두고 가길 잘했다. 만약 원작을 읽지 않고 뮤지컬을 보았다면, 책의 내용도 그런 줄 알고 몹시 실망할 뻔 했어.

그렇다. 내용적으로는 별로였다.

왜 굳이 원작에 없던 로맨스를 끼워넣었을까, 왜 선과 악의 대비를 여자 캐릭터를 통하여 표현하고자 했을까.

선한 지킬 박사가 사랑하는 귀족 '엠마'가 있고 악한 하이드가 선택하는 거리의 여자 '루시'가 있다. 너무나 전형적인 캐릭터이며 심지어 굉장히 납작한데, 엠마는 지고지순하며 언제나 지킬을 사랑하고 기다리고 ... 루시는 거리의 여자로 살다가 지킬이 자신을 구원해준다고 생각하는 사람. 하아- 왜, 지킬로부터 구원받는가, 구원받길 원하는가. 나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구원해주는 서사가 진짜 너무 싫다. 연인으로부터 구원받는 것도 너무 싫고 상대가 누가 됐든 구원받는 서사 너무 싫어. 특히 구원을 바라는 건 더 싫어. 루시는 선한 지킬을 만나고 나서는 '내가 진작에 저 사람을 만났더라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텐데' 부터 시작해서 '지킬박사가 나에게 새 삶을 가능하게 해줬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일은 가능하다.

한 사람이 다수를 구원하는 일도 가능하고. 그런 일은 없는 게 아니다.

그러나 '저 사람이 나를 구원해줬다'라고 생각을 하는 순간, 혹은 '저 사람은 나를 구원해줄거야' 하는 순간, 우리는 상대에게 짐을 지움과 동시에 상대에게 얽매이게 된다. 평등한 일대일의 관계가 되기 어려운 것. 구원을 바라고 구원이라 생각한 순간 우리는 상대에게 사랑이 아닐지도 모르는 사랑까지 품게 되고, 상대의 힘이 절대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가장 절대적인 힘을 가진 자는 구원의 탈을 쓰고 오는 법. 가스라이팅과 구원 역시 가깝게 붙어다닌다. 나는 특히나 남녀 사이에서 구원 운운하는 걸 진짜 싫어한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서도 루시는 다른 남자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지킬로부터 치유하게 되는건데, 하아- 그만하자.


아마도 원작에 없는 로맨스 얘기를 굳이 껴넣은 건 뮤지컬이라는 극의 특성상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따로 부르는 노래에서도 같이 부르는 노래에서도 여성들의 목소리가 합쳐져야 했던 게 아닐까. 특히나 결말의 결혼식 부분은 뭐랄까, 가도 너무 갔다 싶고 ㅋㅋㅋㅋ 아무튼.



그러나 뮤지컬은 정말 좋았다. 지킬이 하이드로 변할 때 와- 진짜 너무 좋았어서, 보러 오길 잘했다고 계속 생각했다. 무대도 좋았고 배우의 연기도 좋았다. 마지막에 홀로 무대에서 지킬과 하이드의 싸움을 연기하는 건 압권이었어. 뮤지컬 배우라면 누구나 이 배역을 탐내겠구나 싶은 거다. 뮤지컬 배우로 태어났으면 지킬 과 하이드 연기 한 번쯤은 해봐야지! 뭐 이런 기분? 그 에너지가 활활 타오르는 게 전해져서, 저 배우는 오늘 집에 가서 뻗겠구나... 싶었다. 기절하겠어...


나는 힘을 느끼는 게 좋다. 고대하던 <지금 이 순간>을 들을 때, 역시나 나는 ㅋㅋㅋㅋㅋㅋㅋㅋ제일 처음 들은게 콘서트에서 임태경이 부른 걸 들어서인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임태경이 제일 좋다고 여전히 생각하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어제 배우가 지금 이순간 부르면서 팔에 힘을 똭 주고 휘두를 때, 그 힘이 느껴지면서 엄청 매력적인 거다. 힘.. 힘 너무 좋아. 내가 힘을 좋아해서 근육을 좋아하는 것인가보다... 힘이여, 근육이여...... 난 뭔가 그런 약간 짐승 같은 느낌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일전에 영화 《트와일라잇》에서도 뱀파이어 가족이 다같이 으르렁- 할 때 자지러지게 좋아했더랬다. 으르렁은 너무 좋아. (아, 아이돌의 으르렁은 안좋아합니다) 뭔가 스읍- 으르렁- 크릉- 하는 거 너무 좋아. 나는 부끄럽지만, 솔직히, 으르렁 로망도 있다. 더 쓰면 19금 이므로 여기까지만..



악으로만 이루어진 '하이드'는 살인을 저지르고 다닌다. 아니, 근데.. 왜죠... 왜 통쾌한 살인을 넣죠. 나는 살인을 저지르는 악인 하이드를 보아야 하는데, 악을 처단하는 하이드를 본다. 명색이 '주교'이지만 '미성년자 성매매'를 하는, 미성년자에게 변태행위를 하는 지저분한 놈을 하이드가 처단하는 거다. '화요일에 저 아이의 첫남자가 되겠다'는 욕망에 눈이 먼 주교를 하이드가 죽여버리는데, 와, 나는 너무 좋았어? 그래, 죽여라, 죽여버려!! 이 세상에 수많은 성범죄자들중에 한 명 죽은 거라면 너무 적다. 나는 성범죄자만 찾아가서 엄벌을 내리는 여성영웅이 나오는 영화를 원한다. 그 영화가 흥행하고 시리즈로 만들어지고 비슷한 작품이 계속 나와서, 저절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성범죄 저질렀다가 죽을 수도 있지' 같은 거 좀 알게 됐으면 좋겠어. 자, 다시 지킬 앤 하이드로 넘어가서.



지킬은 점점 통제할 수 없게 되는 악의 힘에 고통스러워한다. 결국 그 악을 없애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도 없어져야 한다는 걸 알고 죽음을 택하는데, 죽어가는 지킬을 품에 안고 그의 약혼녀 엠마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편히 쉬세요."



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는데 편히 쉬세요, 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뭘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대입해 봤다. 나는 그가 죽어가는 와중에 편히 쉬세요 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뮤지컬에서 그러한 것처럼,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스스로의 문제로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어했다면, 살아있는 것이 괴로웠다면, 내내 스스로와의 싸움으로 지쳐있었다면.... 그렇다면 그가 죽음을 택했다고 해서 내가 원망할 순 없는게 아닌가 싶어지는 거다. 어쩌면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말도 '편히 쉬세요'가 아닐까. 당신 여기에서 너무 괴롭고 힘들었지, 고통스러웠지. 이제 그 곳에서 편히 쉬어요.



그러나, 그 다음은? 그 후의 엠마는?



나는 알고 있다. 그가 고통스러웠음을. 그에게 죽음이 오히려 더 편할 수 있음을. 그래서 그에게 편히 쉬라고 작별인사 까지 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고통의 순간들이 끝나고 나에게 다시 오기를 기다려왔는데, 그런 그를 믿고 여전히 그의 옆에 있기를 선택했는데, 그렇게나 사랑했는데, 그런데 그가 이제 이 세상에 없다면.... 그가 다른 세상에서 편히 쉴 거라는 생각에 안도할 수 있지만, 그러나 내 마음은? 그가 없는 나는? 나는 어떻게 될것인가... 나의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될것인가. 불쑥불쑥 외로움과 그리움이 치밀 때마다, '괜찮아, 그는 저 세상에서 편안할 테니까' 하며 나를 다독이는 게 가능할까? 그게 될까? 엉엉 울다가 눈물이 마를 때쯤 그리움과 외로움도 옅어지게 될까? 그 후의 엠마는, 그 후의 나는... 어떡하지?




뮤지컬이 끝나고 극장 밖으로 나오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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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01-17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밤 8시부터 우리집은 <지킬앤하이드> 무대가 된듯 ..... 박은태, 홍광호, 조승우, 임태경, 카이의 <지금이순간>을 감상하고, 달뜬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당신이 나를 버리고 저주하여도!!!를 열창하고 말았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스토리보다 노래에만 집중해서 그랬는지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지킬과 하이드가 오가며 노래하는 그 장면만 또렷합니다.
저도 어제 인터파크 들어가서 전수 조사해보았으나 홍광호 표를 구할수 없어 마구 실망했다고 합니다.

다락방 2019-01-17 11:48   좋아요 0 | URL
아이참 단발머리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그 부분 좋아해요. 당신이 나를 버리고 저주하여도!! 물론 제일 좋은 부분은 ‘신이여, 허락하소서!‘ 입니다. 그 부분에서는 저도 모르게 간절한 마음이 되어 항상 허락해달라고 같이 외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원작을 읽고갔던 게 너무 좋았어요. 뮤지컬을 먼저 봤어도 원작을 읽었겠지만 말예요.

저 어제 박은태로 처음 지킬앤하이드 를 만났는데, 이 사람 너무 잘하는 거예요!! 너무 멋있어요. 선과 악을 오가면서 노래하는 클라이막스에서 진짜 너무 멋있어서. 에너지 완전 파워뿜뿜. 그래서 다른 사람은 어떻게 표현할까 싶어 보고싶기도 하지만, 처음본 박은태만 할까 싶어서 다시 박은태로 보고 싶기도 하고... 엄마랑 같이 보고 싶은데 엄마는 박은태 보여드리려고요. 같이 가서 봐야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19-01-17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쓰면 19금 이라는 부분에서 눈을 번쩍 뜬 저는.. ㅋㅋ
박은태 좋죠 그쵸~~
이야기와 노래와 춤과 볼거리들을 다 담아야 하는 뮤지컬의 특성상 남주인공 서사에서는 여성캐릭터가 납작해지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레베카>와 <엘리자벳> 강추합니다~ 옥주현으로 보세요 옥주현 짱짱

다락방 2019-01-17 13:32   좋아요 0 | URL
박은태 좋더라고요! 저 오전에 또 예매했어요. 엄마랑 둘이 보러 가려고요. 박은태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본 걸 그대로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후훗. 엄마는 그전에 뮤지컬 보신 적이 없어서 엄청 신기해하실 것 같아요. 같이 볼 생각에 설레이네요!

저도 지킬앤하이드 의 여주들이 남주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역할이라 생각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뭐랄까, 너무나 전형적인 여자들이 되어버렸다고 할까요. 극의 재미를 위해 여주를 그렇게 납작하게 만드는 게 한계라면, 그걸 좀 바꿔나갈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지킬은 너무 멋진 캐릭터지만 상대적으로 여자들은... 그 점이 너무 아쉽더라고요.

<레베카>는 책으로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뮤지컬도 기대되기는 해요. 레베카도 꼭 보러가야겠어요. 저는 <파리의 노트르담>도 보고 싶더라고요! 아아, 보고싶은 건 왜이렇게 많은지요?!

독서괭 2019-01-17 13:42   좋아요 0 | URL
전 레베카는 책보다 뮤지컬이 더 재밌고 좋았어요~^^
 

ㅎㅎㅎㅎ

어제 알라딘에 밥통 준다는 페이퍼 쓰고 오늘 알라딘에 향수 준다는 페이퍼 썼는데, 10년전의 나는 CD 준다는 페이퍼를 썼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알라딘이 알려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란 사람, 참 한결같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런 글 썼다는 거 기억 1도 안나고 알라딘이 알려줘서 알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크. 십년 전의 나 맞춤법 틀렸네. ㅋㅋㅋㅋㅋㅋㅋㅋ 되서 가 아니라 돼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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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1-16 1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눔여왕? 나눔여신? 하십시오 정말 복받으실 겁니다 ^^

다락방 2019-01-16 12:10   좋아요 1 | URL
복받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복 받았으면 좋겠네요. ㅎㅎ

syo 2019-01-16 1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눔꾼 -> 연쇄나눔마 -> 장기미제연쇄나눔마

다락방 2019-01-16 12:10   좋아요 1 | URL
이게 바로 접니다. 으하하핫

서니데이 2019-01-16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년전부터 꾸준히 나눔을 실천하시는 좋은분이시군요.
스테디나눔러이십니다.
다락방님, 따뜻한 하루 되세요.^^

다락방 2019-01-16 12:10   좋아요 1 | URL
저도 제가 저 때 저랬는지는 오늘 알았어요. 알라딘이 알려줘서 알았어요. 후훗.
서니데이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단발머리 2019-01-16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진짜 멋져요!
장기미제연쇄나눔여신^^

다락방 2019-01-16 12:11   좋아요 0 | URL
진자 진짜 멋질것 까진 없지만, 네, 뭐 그렇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boooo 2019-01-16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한결 같은 분이시군요.

다락방 2019-01-16 12:11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몰랐는데 제가 한결같더라고요? 하핫

붕붕툐툐 2019-01-16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로나눔러시네용~ 한결같은 락방님^^ 저도 한 번은 꼭 받고 말겠다는 오기가 생기는 건 왜일까요?ㅎㅎ

다락방 2019-01-16 13:14   좋아요 0 | URL
부디 그런 기회가 꼭 오기를 바랍니다!! ㅎㅎ

건조기후 2019-01-16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쇄나눔마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9-01-16 15:28   좋아요 0 | URL
제가 그런 사람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꼬마 너구리 요요 첫 읽기책 13
이반디 지음, 홍그림 그림 / 창비 / 2018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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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상대를 좋아한다고 해서 상대 역시 반드시 나를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요요는 아프게 깨닫는다. 그리고 그것은 ‘상대의 마음‘이라고 결국은 받아들인다. 아주 펑펑 울면서. 어른들도 잘해내지 못하는 걸 꼬마 너구리가 해내고 있어. 아주 잘 성장하고 있다. 코끝이 찡해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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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9-01-16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동화가 이리 슬퍼요..?
아이들은 내가 생각한것 보다 훨씬 더 큰 존재이군요

다락방 2019-01-16 15:29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그래요.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존재입니다.
좋은 동화에요. 많이들 읽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