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전쟁과 강간 부분을 어제야 다 읽었다. 이제 4장으로 넘어갔는데, 전쟁과 강간 부분 읽는 거 너무 힘들었어. 모든 강간범들이 그렇겠지만, 자기가 하는 일이 잘못이나 혹은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해서 생각하기 보다는, '강간하는 나'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니까 상대를 통제할 수 있는 나, 약하지 않은 나.
특히나 전시에 강간하는 것은 군인들에게 일상이었다.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는 것. 그 사이에서 그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남자 혹은 집단 강간에 참여하지 않은 남자는 이상하고 허약한 남자로 비춰지기 일쑤였다. 말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말린다고 들을 놈들도 아니고, 오히려 지적한 자신이 그들에게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말하지 못한 남자들.
세상은 과거부터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던걸까?
남자들은 마오(피해자의 이름)의 입에 금니가 있어서 재미있다는 이유로 그녀를 골랐다. 그녀는 스무 살 정도의 나이였다. 군인들이 스스로 무슨 의도로 여자를 끌고 가는지 아는 만큼이나 마을 여자들 역시 끌려가면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알고 있었고, 마침내 마오의 손이 등 뒤로 묶이자 여자들은 몸을 웅크리고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붙잡았다. 너무나 애처롭게도, 마오의 어머니가 딸을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는 군인들을 쫓아가서 딸의 스카프를 전해주는 일뿐이었다. 그리고 군인 한 명이 스카프를 받아서 포로의 입에 묶었다.
수색 중이던 다섯 명 중 단 한 명, 스벤 에릭슨 일병만이 마오를 강간하고 살해하는 데 참여하지 않았다. 랭이 이 참극에 대해 쓴 바에 따르면, 마오에게 필요 이상으로 잔인한 행위를 저지른 이유는 남자들이 남성성 내지는 수컷의 쪼는 서열을 두고 경쟁했기 때문이었다. 에릭슨이 윤간에서 자기 차례가 왔을 때 거절하자, 수색 지휘자였던 토니 미저브 병장은 에릭슨이 동성애자에 겁쟁이라며 조롱했다. 범행 추종자 중 하나였던 마누엘 디아즈는 후일 군 검사에게 머뭇거리며 말하길, 웃음거리가 될까봐 두려워서 다른 사람들을 따르기로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래요, 당신이 그 수색대에 있었다고 해봅시다. 당장 이 사내들이 내 앞에 있고 날 비웃으려고 벼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금방 소대에서 왕따가 될 겁니다."
마오를 살애한 후 그들은 "베트콩 하나, 교전 중 사살"이라고 보고했다. 에릭슨은 이 범행이 처벌되지 않은 채로 지나가게 두지 않겠다고 결심했으나, 그가 기지로 돌아왔을 때 상관들은 기묘하게 저항하는 태도를 보였으며, 이야기를 들은 다른 소대원들도 그를 고자질하는 말썽꾼으로 취급했다. (.156-157)
나는 언제나 무엇을 욕으로 하는지를 알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지금 위의 인용문에서도 바로 드러난다. 강간을 하지 않겠다는 사람에게 '동성애자' 라고 욕을 하는 사람. '동성애자'를 욕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끝난 거 아닐까. 그 사람은 동성애자가 놀림거리라고, 욕할 만한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인거다. 동성애자라고 욕을 함으로써 본인은 '동성애자가 아닌 나' 가 되고, 그래서 자랑스러운 사람. 고작 그 정도 밖에 안되는 사람.
그리고, 하고 싶어서가 아닌, 왕따가 두려워 강간한 남자.
세상은 대체 어디부터 어떻게 잘못된걸까.
왕따를 당하면 괴롭겠지. 왕따를 당하면 괴로우니 강간을 하자.... 라는 사고. 왕따를 당하니느 강간범이 되겠다는 것. 그것은 왕따로 사는 것보다 강간범으로 사는 것이 더 쉽다는 증거가 아닌가. 나는 왕따가 두려워 강간을 했다는 마누엘 디아즈에게 '차라리 왕따가 되었어야지!'라며 왕따가 되기를 강요할 순 없다. 그러나, 왕따가 무서워서 차라리 강간을 택하는 사회는 분명 잘못된 사회라는 것은 확실하다. 강간이 왕따보다 안전한 사회라니. 이것은 너무나 이상하지 않은가? 왜 이 이상함을 인지하지 못하는가.
강간하지 않았던 에릭슨에 대해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사내가 되는 일에 관한 한 그는 평균 이하였습니다" 에릭슨이 속했던 소대의 한 병장이 증언했다. (p.157)
강간하기를 거부한 남자는 사내가 되지 못한 남자라니, 사내가 되는 일이 고작 강간으로 증명되다니. 그런 게 사내라면, 그렇게 증명되는 게 사내라면, 사내들이여,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거 아닙니까. 그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강간하기를 거부하면 평균 이하의 사내라니. 평균이란 무엇이며 사내란 무엇인가. 남성성이란 무엇인가. 얼마나 못났으면 강간함으로써 남성성을 드러내. 남성성을 고작 그것으로밖에 못드러내? 너무 찌질하고 너무 못나지 않았어? 세상 한심하다. 그게 남성성이야?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남성성은 없어져야 마땅하다. 멸종하라.
전시에 강간은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강간과 일상이 나란히 쓰이다니, 이 얼마나 좆같은 세상인가.
3소대 분대장이었던 존 스메일은 (강간)이야기를 꺼리는 이유에 대해 철학적인 설명을 내놨는데, 허시는 깊은 충격을 받아 그 말을 고스란히 인용했다. 스메일은 "강간은 일상사"라고 말했다. "강간 얘기를 꺼내면 여기 안 걸릴 사람이 없어요. 누구나 최소 한 번은 했으니까요. 이봐요, 이 친구들도 인간이에요." (p.160)
인간이라서 강간을 최소한 한 번은 할 수 있다니, 인간이기 때문에 하는 짓이니 봐줘야 한다니... 남성성이란 무엇이며 사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인가. 대체 남자들이 생각하는 남자란 무엇이며 남자들이 생각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인간이란 그렇다. 남자든 여자든, '안되는 것 같은데'를 장착하는 사람, 장착할 수 있는 사람. '이건 아닌 것 같다'를 본능적으로 알고 그렇다면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수 있는 사람.
내 옆에 남자가 다른 여자를 강간하려고 할 때, '어, 이건 아닌데' 라고 생각하고 그에게 '그러면 안돼' 라고 말할 수 있는 거. 그게 인간인 거 아닌가. 그게 인간 아니야? 어떻게된게 '인간이니까 뭐' 하면서 그걸 넘길 수 있는거야? 당신들이 생각하는 인간이라는 건 살면서 한 번쯤 강간은 해볼 수 있는 거야? 그게 인간인거야? 나는 그걸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하고 이 세상을 같이 살아가고 싶지가 않다. 멸종하라.
연일 보도되는 사건 의 뉴스들을 보노라면, 남자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큰 범죄를 저지르고 산다는 걸 알 수 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보다 더 최악의 것을 매일 갱신한다. 전쟁 중의 강간에 대해 읽기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때의 강간이 그보다 덜 힘들게 읽히는 것도 아니다. 학원 원장이 미성년자 학원생을 강간한 후에도 가장 이라는 이유로 풀려날 수 있는 나라가 이 나라다. 미성년자를 강간했지만 떡볶이를 사줬다고 화대를 지급한 거라는 나라가 이 나라다. 미성년자가 강간당했지만 애초에 인터넷으로 만난 여자 아이가 잘못이라고 댓글 다는 나라가 이 나라다. 이 나라의 지금과 전쟁 중의 군인들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나?
이 책은 12장 까지 있는데 나는 고작 3장까지만 읽어냈다. 남은 시간은 이 책 읽기에 열중해야 1월 안에 끝마칠 수 있을 것이다. 속도가 더뎌 좀 초조하지만, 11월도 12월도 완독해냈으니 1월도 할 수 있을 것이다. 1월 도서 열심히 읽고 2월로 가면 2월 도서도 열심히 읽어야지. 오늘은 2월 도서들을 주문할 예정이다.
자, 같이 읽는 여러분, 열심히 진행중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