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들려줘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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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책 제목은 [이야기를 들려줘요] 이고, 제목처럼 책 안에서는 '이야기를 들려줘요' 라는 대사가 많이 나온다. 올리브는 코비드 이후 이 마을에 이제 거주하기로 했다는 작가 루시 바턴을 불러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고 또 루시 역시 올리브에게 자신이 보거나 경험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이들의 만남은 처음부터 호감적인 것도 아니었고 때로 삐끗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가끔 만나 자신의 삶에 혹은 타인의 삶에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하는 일은 계속된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기록되지 않은 삶과 그것에 대한 이야기들이, 계속된다.

밥은 좋은 친구 루시를 만나 늘 이야기를 한다. 함께 산책하면서 그들의 근황을 나누고 일에 대한 얘기도 나눈다. 사실 밥이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는 것도 친구인 루시만 안다. 이 나이에 이런 우정이라니, 감사하면서, 아내에게는 속이는 일을 우정인 루시에게는 말한다. 그러나 우정을 가장한 사랑임을 밥은 깨닫고 있고 루시 역시 마찬가지. 그리고 별 관계없는 제삼자의 눈에도 이들은 서로를 애틋하게 생각하는게 보인다. 어쨌든, 그들도 이야기를 한다.


뿐만 아니다. 모두 이야기를 한다.

밥이 누구를 만나든 그리고 루시를 만나든 그들은 상대에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말하고 또 상대 역시 그래, 무슨 일이 있었어, 얘기해봐, 라고 한다. 우리가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한다는 건, 즉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에게 일어난 일, 내 주변인에게 일어난 일 혹은 세상에 일어나는 일까지. 이야기를 들려줘, 라는 요구가 없어도 우리가 타인과 섞여 살아가면서 하는 일이 그거다. 그게 전부다.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들어주는 일.


그래서 이 책은 초반에 좀 작위적으로 읽힌다. 굳이 이렇게 이야기를 들려줘, 라는 말을 할 필요가 있나, 굳이 이러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나, 하면서 내심 좀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게 되는거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것이 꼭 필요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동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책을 읽어왔다면 마주쳤을 사람들이 이 책 안에 있다. 올리브도, 밥도, 루시도, 이저벨도 이 책안에 있다. 주인공으로서의 그들이 자신의 말들을 그동안 해왔다해도, 우리는 그들을 다 알 수 없다. 자신의 말을 하는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도 책 안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생각하고 그들이 말하는 것만 듣는게 아닌, 다른 사람이 보는 그들에 대한 것도 알게 되는거다. 어떤 사건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도 이 책안에서 더 잘 알게 된다. 그러니까 단순히 이 사건이 슬프다, 라는 식의 결론이 나는게 아니라, 아 그것이 이 사람에게 이런 식의 생각을 줬고 그것을 이렇게 받아들였구나, 하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람의 삶은 이런식으로 이어진것이구나, 다른 사람들과 그래서 이렇게 연결된 것이구나, 하는 것을 더 알게 되는거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냐면,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내가 너에게 그리고 너가 나에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그런데 꼭 마주한 너와 내가 아니어도 우리의 삶은 연결되어 있다. 어떤 이는 특별히 운이 좋고 어떤 이는 다른 사람들의 죄를 먹는 사람이 되어 그들의 옆에 있게 된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쉽게 잊혀지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가 의도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삶에 소중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별 거 아닌 스쳐지나가는 사람이 되는데, 그렇다해도 우리가 마주한 순간 그리고 마주하지 않은 순간까지도 우리는 서로의 의미가 어떤 식으로든 되고 있는 것이다. 


상처가 있다. 그리고 죄가 있다. 그걸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상처와, 죄와, 악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옆을 지키는 사람이 있고 한걸음 떨어져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 시간을 견뎌온 그 사람의 삶을 생각하며 자신의 마음을 부둥켜안는 사람도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은 늙어가고 어떤 식으로든 상실이 일어나는 것이 자명한 이치이다. 상실은, 나이가 들었다고 덜 아파지는게 아니다. 고통을 견뎌오며 살아왔던 삶, 그러나 어느 순간 더이상은 버티지 못해 끝내버리고자 하는 삶이 있고, 이것은 분명 아프지만 나는 괜찮을거야, 하고 이를 악무는 상실에 대한 견딤이 있는데, 그게 이들의 이야기들 속에 다 들어있어서, 사소한 일에도 자꾸만 눈물이 고인다. 일전에도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책을 읽으면서, 아, 진짜 이 작가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하는거지, 했는데, 이번에도 그렇다.


그러니까 올리브는, 매일 이저벨에게 신문을 읽어준다. 그런데 이저벨의 딸이 이저벨을 자신의 집 근처로 데려가겠다고 했다. 이 이별을 받아들이기 위해 올리브는 애를 쓴다. 아흔살이 넘은 올리브지만, 이저벨과의 헤어짐이, 이제 더이상 신문을 읽어주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힘이 든다. 작별인사를 하러 가지 않을거야,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저벨이 떠나는 날, 이저벨로부터 연락이 왔다.


"올리브, 내가 싫다고 했어요. 마침내 내가 말했어요. 애들이 이런저런 양식에 서명할 때 내가 그냥 '나는 안 가' 하고 말했어요. 처음에는 애들이 믿지 않는다는 눈치였고, 결국 내가 아르준에게 나가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리고 에이미에게 말했어요. '잘 들어, 에이미. 네가 나를 가까이 두고 싶어하는 거 알아. 하지만 메인은 내 집이야. 네가 아기였을 때부터 내 집이었어. 남편하고 함께 지낸 내 집이었고, 그리고 지금은 여기가-심지어 요양원이라 해도-내 집이야. 내겐 다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올리브라는 친구가 있어. 에이미. 나는 안 가. " -p.271~272



이 부분을 읽다가 카페에서 눈물이 터졌다. 나는 언제나 손수건을 준비하고 다니기 때문에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 책에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한 일은, 사람들의 삶과 관계와 그것의 소중함을 보여주는 것이었고, 때로는 그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 어떤 것들을 포기하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또 섹스로도 나타난다. 이 섹스가, 마거릿의 입을 빌자면, "섹스가내겐 에너지를 주는데, 당신은 재우네." - P244 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을 하는 순간 사랑을 멈추게 될 수도 있다. 진정한 우정에 감사하다가 폭발할 것 같은 자신의 사랑을 감당해야 하는 밥에게, 짐은 이렇게 충고한다.



"이 글을 읽었던 게 잊히지 않는데 오래전에 읽은 거지만-그 글에서 유명한 영화감독이 말했어. 대화보다 더 섹시한 건 없다. 나는 늘 그걸 기억하고 있어. 그리고 너와 루시가 하는 게 그거야-대화를 하지. 좋아, 이제 잘 들어, 보비.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마. 그런 대화는 하지마. 그렇게 하면, 서로 마음을 고백하기 시작하면, 토끼처럼 섹스를 하게 될 테고, 너희의 세상 전체가 무너져내릴 거야. 마거릿이 그것 때문에 죽게 될지도 모르고, 심지어 윌리엄도 죽게 될지 몰라. 그러니 하지 마, 보비. 그럴 만한 가치가 없어. 그러지 마."

"알고 있어. 하지만 그녀를 원해, 지미. 오, 맙소사."

"이겨내야 해. 진지하게 하는 말이야. 내 말 새겨들어. 내가 유경험자야. 그리고 너를 아는데, 너는 그 사실을 끌어안고 살 수 없을 거야. 아주 어렵겠지만, 그녀를 계속 사랑하면서 살 수는 있어. 하지만 그녀를 안으면, 그런 너로는 살 수없을 거야. 너는 밥 버지스야. 나는 너를 알아." - P433-434



중요한 건 이거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거, 그리고 그중에 아주 많은 부분들이 기록되지 못하고 있다는 거.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그걸 알고, 그래서 그걸 해준다. 수없이 등장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을 증명해주며, 그래서 나쁘지 않은 삶을 살았으나 사실 그 안에 곪아있던 상처에 대해서 꺼내놓고 말을 해준다. 우리는 한 사람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정말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 그런 상처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삶은 나쁜 삶이었나? 우리는 한 사람에 대해 어떤 것도 함부로 말할 수 없으며, 그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보통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기록되지 않고 말하여지지 않은 삶에 대해서 들여다보고 그것을 꺼내준 것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한 일이다. 내 삶을 사느라 들여다보지 못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을 이 책이 해내는데, 그건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가능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충분히 이야기되지 않았던 삶들이, 그리고 부서진 사람들이 여기 있고, 그것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여기 있다. 그게 자꾸 눈물이 나서, 나는 [바닷가의 루시]를 읽을 때 그러햇던 것처럼, 또다시 묻게 된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하나요?



"아니. 그건 악이 아니야, 래리 부서진 사람들이지. 부서진사람이 되는 것과 악이 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어. 혹시 네가 그걸 모른다면 말이다. 그리고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부서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건 네가 잘못 생각한거야. 내가 네게 이걸 말해주는 이유는, 너는 그런 부서진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살면서 운이 아주 좋았기 때문이야."  -p.429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을 먼저 읽은 친구가 있다는 것 때문에 기뻤다. 하, 이 슬픔과 안도의 오락가락하는 감정들을 친구는 벌써 겪었던거겠지? 그리고 또 외로웠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삶을,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져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또 해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전작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전작할거다!!





그들은 친구였고, 그게 다였다. 그들은 인생 후반기에 이런 우정이 찾아와준 것에 감사할 만큼 나이가 들었고, 마거릿과 윌리엄도 두 사람의 우정을 고맙게 생각했다.
동반자들에게 정말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생기면서그들의 삶이 훨씬 수월해진 것이다.
밥과 루시는 실제로 안 시간보다 서로를 훨씬 더 오래 알고 지낸 듯 느꼈다. - P45

우리는 삶이 우리의 통제 안에 있기를 바라지만,
전적으로 그럴 수는 없다. 불가피하게 우리보다 앞서 존재한 사람들의 영향을 받는다. - P48

그들은 거의 네 시간 동안 이야기했다. 해는 이미 졌고, 밥은 배가 고팠다. 하지만 그는 또한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아주 깊은 상실감과 사랑으로 채워진 사람이었고,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녀는 이제 그의 아내가 아니었다. 하지만그녀는 팬이었고, 그녀가 방안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그는 그녀를 자기 삶 속에 둘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그녀에게 같이 집으로 가서 저녁을먹자고 말했을 때 그녀는 "아니, 밥. 마거릿에게 무례를 범하고 싶지 않아. 그녀는 내가 코비드에 걸렸다고 생각할지도모르고, 그냥음, 고마워. 하지만 안 갈래" 하고 말했다. - P116

밥은 루시를 흘끗 보았고, 그녀가 어떤 생각에 깊이 잠겨있다고 느꼈다.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었는데, 평소보다 더느리게 말했다. "밥, 들어봐요. 오래전에, 어렸을 때 어떤 책을 읽었는데 거기 흑백 소묘가 수록돼 있었어요. 그러니 아마 일종의 우화집이었겠죠. 기억하는 건 한 남자의 그림이전부인데, 나이를 좀 먹은 남자였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허리가 조금씩 더 굽었어요.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그가 하는 일이 사람들의 죄를 먹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나는평생 그걸 잊지 않고 있었어요. 올리브가 어제 내게해준 이야기가 죄를 먹는 사람에 대한 것이었어요." - P144

이 시점에 밥과 아내의 관계는 그 성격이 모호하고 아리송했다. 그녀는 그를 안아주었는가? 그는 그녀를 안아주었는가? 솔직히 그렇게 자주는 아니었다. 그들은 친밀한 관계를유지했지만, 밥은 마거릿이 예전만큼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느꼈고, 그것에 대해서는 솔직히 밥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여전히 이따금 친밀한 관계를 가졌지만, 그것이 끝나면마거릿은 밥을 잠시만 끌어안았고, 밥이 잠든 사이 그녀는일어났다. 그녀는 오랫동안 이것에 대해 농담했다. "섹스가 내겐 에너지를 주는데, 당신은 재우네." - P244

하지만 서로를 포옹하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아니, 그들은 더이상 그렇게 많이 포옹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밥이 캐서린 캐스키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를 감싼 그녀의 두 팔을 느낄 수 있는 것. 그는 그런 순간들이 그저 고마웠다.
이런 일들은 충분히 이야기되지 않는 것 같다. 노인들에대해, 노인들이 다른 사람의 손길을 얼마나 고마워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해셀벡 부인만 해도 그렇다. 그녀는 자신의 피부에 닿는 인간의 손길 없이 어떻게 살까? 샬린 비버는 어떻고? 사람들은 그것 없이도 어떻게든 살아가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손길이나 포옹의 부재가 어떤 타격을 주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것은 아주 많은사람들에게 부재하다. - P244

그가 말했다. "당신과 함께 있어서 좋아요. 루시. 당신은 내게 음, 뭐랄까, 삶으로부터의 휴식을 주는군요."
"죄를 먹는 것으로부터의 휴식." 그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주 뿌듯한데요." 그리고 그녀가 덧붙였다. "나도 정확히 똑같이 느껴요. 다만 나는 죄를 먹지는 않죠." - P261

"아니. 그건 악이 아니야, 래리 부서진 사람들이지. 부서진사람이 되는 것과 악이 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어. 혹시 네가 그걸 모른다면 말이다. 그리고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부서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건 네가 잘못 생각한거야. 내가 네게 이걸 말해주는 이유는, 너는 그런 부서진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살면서 운이 아주좋았기 때문이야." - P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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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6-07-06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원서 읽고있거든요! 저도 첨엔 루시와 올리브를 마주하게 한 게 좀 적위적이지 않나 했는데 읽을수록 점점 더 좋더라구요. 정말 스트라우트 어쩔거예요!!

다락방 2026-07-06 12:41   좋아요 1 | URL
제가 [바닷가의 루시] 읽고 쓴 리뷰를 봐도 자꾸 눈물이 난다고 했더라고요. 그런데 이 책 읽으면서도 그랬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가만가만하게.. 독자의 감정을 쥐락펴락 하는걸까요. 정말 대단합니다. 게다가 늙어가는 사람들과 그들에게 부재한 것들에 대해서도 너무 잘 살려줘서(포옹!) 정말 정말 좋았어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진짜 만세만세만만세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