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쏜살 문고
아니 에르노 지음, 윤석헌 옮김 / 민음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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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가 불법이었던 시절에 아니 에르노는 임신을 했고 낙태를 해야 했다. 그녀의 나이 이십대초반, 대학생일 때였다. 그녀는 혹여라도 낙태해줄 의사가 있지 않을까 병원을 방문해보지만 언제나 싸늘한 시선을 받고 돌아선다. 엄마한테도 임신이 들킬까봐 초조하고 나는 어째야 하나 고민하다가, 알려진대로 뜨개질바늘을 자기가 스스로 자기 안에 넣어보기도 한다. 이내 포기하지만..


이렇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 그녀를 임신시킨 남자는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고 고민도 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 자리에서 자기가 살아왔던 그대로의 삶을 여전히 그대로 살아갈 뿐. 남자와 여자가 '함께'한 섹스인데 고민과 고통은 모두 여자의 몫이라니. 게다가 육체적 정신적인 피해가 모두 온전히 여자의 몫이라니.


아니 에르노는 별로 친하지는 않지만 이미 기혼인 남자지인으로부터 혹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자신의 비밀을 그에게 털어놓는다. 그는 흥미로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를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너의 일에게 그녀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며 한 여성의 이름을 알려주긴 하지만, 자신의 아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그녀에게 섹스를 제안한다. 그로서는 너무 안전한 일이었다. '이미 임신한 여성이니' 자기가 걱정할 게 아무것도 없었던 셈. 아니 에르노는 그 날의 일을 회상하며 그 남자를 딱히 원망하지는 않는다고 하는데, 나는 사실 아니 에르노를 좋아하고, 그녀의 <단순한 열정>을 매우 사랑하지만, 그러나 .. 오늘 아침까지도 내내, 아니 에르노가 그렇게까지 남자를 사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보면 그녀는 정말이지, '남자 없이 못사나?' 싶을 정도로 남자를 사랑했던 것 같다. 하아.



그녀를 도와줄 여자가 드디어, 나타나고 그녀에게 어디로 가면 수술을 (몰래) 받을 수 있는지 알려주며, 그에 해당하는 비용도 빌려준다. 그러나 그 수술은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병원으로 실려간다.



세상은 모순으로 가득차있다.

성적으로 순결한, 더럽혀지지 않은 여자를 원하는 남자들이 많지만, 그러면서 자기들은 언제나 여자를 만나면 섹스하기를 종용한다. 섹스를 남자랑 여자랑 하는데, 아니 생각을 해봐, 늬들이 섹스하는 상대가 여잔데 어떻게 순결한 여자를 바라는거야? 대가리 텅 빈 부분? 돈주고 성을 사면서, 그러나 성을 파는 여자들을 창녀라고 욕한다. 여기에서 어떤 모순을 감지하지 못하는가? 부끄럽기 짝이 없다. 게다가 그렇게 좋다고 섹스해 놓고서는 임신을 하면 나 몰라라 한다. 낙태를 불법으로 만들어놓고는 사생아는 사생아라며 욕하고. 낙태하면 또 낙태했다고 흉보고. 오래전 읽었던 소설 중에 자신이 사랑한 여자가 일전에 낙태한 경험이 있다는 걸 알고 남자가 몹시 분노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뭐 어쩌라는건지 모르겠다. 어쩌라고? 섹스한 후에 임신하고 출산하는 것도 여자의 몫이고 임신하고 낙태하는 것도 여자의 몫이고, 여기에 들어가는 모든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도 모두 여자의 몫인데 이러거나 저러거나 다들 지랄들이여.. 임신하면 모른척하는 남자도 남자지만, 하아, 이미 임신한 여자니 콘돔없이 안전하게 섹스할 수 있을 것 같아 덤벼대는 남자는 또 세상 무슨 쓰레기여... 그러면서 또 낙태 수술은 안된대.. 세상이 대체 여자한테 어떻게 살라는건지 모르겠다.



낙태수술을 한 여자는 생각보다 많다. 낙태가 합법이 아닌데도 그렇다. 이건 무엇을 의미할까.



젊은 아니 에르노가 고민하는 내내 함께 고민했다. 영화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에서 낙태수술을 하고 나오면서 무너지듯 울던 여자의 모습이 내내 겹쳤다. 낙태수술 한 후에도, 심지어 수술할 때 같이 가주지도 않고 돈을 주지도 않아서 내가 대신 그 자리에 있었는데도, 그 남자랑 다시 만나던 친구도 떠올랐다.

여자들은 자신을 함부로 대한 남자들을 그리고 세상을 너무 봐주면서, 이해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심지어 사랑까지 했어.


보통 한국 사람들에 대해 얘기할때 '한(恨)의 정서' 라고들 하는데, 나는 이 '한'이 세상 모든 여성들에게 있을 것 같다. 다들 가슴속에 홧병 품고 살고 있을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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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hanje 2022-10-07 0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홧병을 품고는 사는데 부르주아적 삶을 포기도 못하죠 ㅎㅎ. 낙태를,, 제 주변에선 미혼은 아니고 기혼녀들 낙태를 몇 번 봤고 저도 따라가본 경험도 있는데 여자들은 순종적 동물들 같이 행동하는 것 같아요. 말 잘 듣는 순종적 동물,, 아니 에르노가 어떻게 살았건 느꼈건 상관없이 제가 본 바로는 그렇습니다. 전 여자들에 대해 연대의식을 버린지 오래에요. 에르노 소설을 읽진 않았지만 대충 이해는 하는 나이가 되서리.. 에르노가 분노를 느끼지 않았다면 그건 아마,, 그녀가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가 아닐까 싶네요. 그것에 분노하기엔 그녀가 너무 많은 걸 겪고 알았기에.. 저도 별로 분노는 느끼지 않았을 거 같아요. 걍 웃기는 작자군 정도.. 그런 수작 거는 작자야 뭐 세상 살다보면 흔하게 보는 작자들이니까요.

junhanje 2022-10-07 0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쁜 일이 너무 많으면 사소한 나쁜 일은 별로 다가오지도 않게 되죠. 슬픈 일이지만요. 그럼에도 그 작자가 그녀에게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됐다면 역시 소홀히 넘기진 않았다는 거죠. 세상은 참,, 그렇게 생각하면서 떠올리겟죠. 큰 슬픔 위에 작은 슬픔,, 을 얹어주는 그 작자,, 슬픔 위에 또 슬픔,, 세상사가 그렇더란. 세상이 나쁘면 절대 나쁜 일들의 연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하리오 플라스틱 드리퍼 - 레드, 1~2인용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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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인게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전문적으로 내려마시는 사람도 아니고 걍 한 번 사보는 거니까 나름 내면의 쇼부를 친건데 아주 잘샀다. 저렴한 것도 마음에 들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무엇보다 드리퍼와 함께 케이스 안에 들어있던 계량 스푼! 12g 까지를 계량해 넣을 수 있는 스푼인데, 이게 완전 쏙 맘에 들어서 이 드리퍼 구매는 별 다섯의 만족감을 주었다. 나 그동안 커피메이커에 내려 마실 때 걍 무작위로 봉지째 부었던 게으른 사람이건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숟가락 있어서 너무 좋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런데 단 한 번 12g  계량해서 원두 넣었고 그 다음부터는 그냥 단순히 퍼서 옮기는 용도로 쓰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숟가락 개마음에듦.


오늘 아침의 뜨끈뜨끈한, 막 원두 덜었던 숟가락 사진 첨부한다. 숟가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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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5-22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숟가락 탐나네요;; 저도 대충 집어 넣는데;;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5-22 11:36   좋아요 0 | URL
숟가락 너무 좋아요. 드리퍼보다 더 좋지 뭡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0-05-22 11:45   좋아요 0 | URL
락방 님께 땡스투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0-05-22 11:46   좋아요 0 | URL
너무 하찮은 금액이 가겠네요. 36원이냐;;;;???

다락방 2020-05-22 11:47   좋아요 0 | URL
아이고 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게 어딥니까. 안주셨으면 없는 돈 아닙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북깨비 2020-05-22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첫 하리오 드리퍼가 윗쪽은 유리로 되고 받침은 플라스틱으로 된 (씻을 때 꼈다 뺐다 할 수 있음) 합체형 모델이었는데요. 오래 썼어요. 근데 얼마전에 보니까 플라스틱 받침 아래쪽 표면 (커피 폿트나 머그컵에 얹을 때 닿는 부분)이 벗겨지더라고요. 오랜동안 수증기에 노출되서 그런건지 씻을때 수세미로 너무 박박 문질러 그런건지 하여간 작은 먼지처럼 바스라진다 해야하나.. 커피속으로 들어가는 거 같아서 찜찜해 가지고 암튼 그래서 얼마전에 돈을 좀 더 써서 세라믹으로 된 것으로 바꿨어요. 저처럼 플라스틱 벗겨질 때까지 너무 오래 쓰진 마시고 써보고 맘에 드시면 세라믹 모델로 업그레이드 추천합니다. 😉

다락방 2020-05-22 13:30   좋아요 1 | URL
오오, 깨알같은 팁 감사합니다!!

저는 제가 이걸 얼마나 쓸지는 모르겠어요. 워낙에 게으른 인간인지라 사실 제가 드리퍼를 이용해 내려마시게 될 일은 아마 없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어쨌든 샀으니까 얼마간 이용은 하겠지만 오래 못갈것 같고.. 혹여라도 제 예상과 달리 제가 오래 사용하게된다면, 북깨비 님의 말씀을 꼭 기억하고!! 좋은 걸로 갈아타도록 할게요. 플라스틱이라는 건 사실 저도 약간 찜찜한 부분이거든요. 후훗. 제가 근면성실하게 커피를 내려 마시는 사람이 되어.. 아니지, 사실 저는 게을러서라기 보다는 성질이 급해놔서 잘 못내려 마셔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마음의 여유를 찾는 사람이 되어 커피를 쫄쫄쫄 내리면서 즐거워하는 사람이 된다면, 말씀하신대로 세라믹으로 업그레이드 하도록 하겠습니다. 뽜샷!!

반유행열반인 2020-05-23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스테인리스에 티타늄 코팅한 드리퍼를쓰는데 종이필터를 안 써도되서 쓰레기도 줄고 커피맛도 종이냄새 안 배어나와 좋습니다. 대신 드리퍼 관리는 신경이 쓰이네요. 내린 커피 마시기 전 뜨거운 물로 드리퍼 먼저 헹구는 부지런함이 있어야...안 그러면 다음커피 내릴 때 막혀서 찔찔쫄쫄...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 은밀하고 뿌리 깊은 의료계의 성 편견과 무지
마야 뒤센베리 지음, 김보은.이유림.윤정원 옮김 / 한문화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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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은 그 자리에 남자들이 더 많기 때문에, 라는 결론이 나온다. 남성 의사들과 연구자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관심 분야를 연구한다. 그러니 남성들에게 흔한 질병을 연구하고 거기에 따른 약을 만들어내고 또 교과서에 싣는다. 생리적으로 남자와 다른 여자는 그렇게 교과서에 실린 증상과는 다른 증상을 보이기 때문에 질병으로 진료되지 못하고, 설사 병명이 나오더라도 그 약이 여성에게 맞지 않을 확률도 높다. 여성에게 임상시험한 약이 아니기 때문에. 


여성들이 호소하는 많은 고통, 통증을 의사들은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것'이라며 환자들을 집으로 돌려보냈고, 그렇게 집으로 돌려보내진 여자들은 다른 의사를, 또 다른 의사를, 또 다른 의사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 돌려보내진 환자들은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이십년까지 자신의 병에 대한 진단을 받지 못한 채 고통을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 드디어 자신이 앓던 고통에 대한 병명이 나오면, 그것만으로도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것인가. 이에 여성들은 '나처럼 돌려보내지고 병명을 진단받지 못한 채 이 병으로 고생하는 여자들이 또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다른 곳에 있는 여성 환자들과 연대하며 단체를 만든다. 그 단체들이 활동하고 연구 기금을 끌어 모으고 그렇게 그 병은 '여성들이 앓는 히스테리'에서 하나의 병명을 갖춘 채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이렇게 활동하는 여성들이 있다는 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지만, 그러나 저자는 끊임없이 재차 강조한다. 그 일은 의료계에서 해야 하는 일이라고, 그러니 여성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여성들의 통증들이 히스테리라고 진단 내려지는 것은 명백히 의사들의 오진이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게다가 여성들은 아프지 않으면서도 아프고 싶어서 아픈 척을 한다는, 말도 안되는 편견을 그들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그런 생각을 하게되면 자신을 찾아온 이 여성환자 역시도 그런 시선으로 보게 된다. 자신이 아는 증상이 아니기 때문이 이 여자는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이군, 하게 된다는 것. 그렇게 여자들은 고통을 당하다가 제대로된 약을 써보지도 못하고 죽는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울증이나 정신과쪽 약을 처방받는 여성환자들 중의 일부는, 아마도 정말 어떤 신체적인 질병을 갖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게 됐다. 의사들이 그동안 보았던 교과서에 없던 증상이라 단순히 '머릿속 증상'이라고 오해하는 게 아닐까. 이 책에서 가장 처음 언급되는 심장질환도 여성에게 더 많이 일어나지만, 그러나 '비전형적'이기 때문에 심장질환으로 진단받기까지 무척 오래 걸린다는 사례가 나오는거다. 심지어 진단 받지 못하기도 하고. 왜 여성의 증상은 교과서에 나오는 증상과 다를까? 왜 여성의 증상은 의사들에게 익숙하지 않을까. 왜 '비전형적'일까. 그것은 환자의 기준이 남성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몸이 아픈 것도 힘든데 의사들은 환자의 고통이 가짜라고 말한다. 내가 아프다는데 왜 날더러 가짜라고 하는거야. 가짜라고 말하는 의사들 때문에 여자들이 죽었다. 여자들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참 다양한 방식으로 죽는구나.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으로만 죽는게 아니라, 비전형적인 증상을 나타내서 제대로 된 진단도 받지 못한채, 자신이 앓는 병이 어떤 건지도 모르는 채로 죽어가기도 해. 


이 책은 당연히 의료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읽어봐야겠지만, 보통의 여자들도 읽어보기를 바란다. 어쩌면 내가 앓고 있는 병이 의사가 말한 우울증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환자의 입장에서 다른 환자들과 연대하며 자신이 앓고 있는 고통을 알리고 이것이 병이라는 걸 인정받는 길은 힘들고 고되다. 의사나 박사라면 어떤 질병에 대해 밝혀내고 연구하기가 환자들보다 수월한것은 너무 당연할 터. 역시 제약회사를 포함한 의료계에도 더 많은 여자들이 자리잡아야 할 것 같다. 환자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의사들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여성혐오가 우선 사라져야 하지만, 교과서의 내용도 달라져야 할테니까. 애초에 공부할 때부터 기준은 여성환자도, 남성환자도 모두 포함해야 한다. 그래야 한다. 

하아. 너무 빡쳐서 글을 잘 못쓰겠다. 이만 쓴다 ㅠㅠ




"나는 인터넷을 찾아 헤매면서 스스로 진단을 내렸고,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의사를 만났으며, 인터넷으로 다른 환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우리는 자주 댄스 수업 같은 곳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먼저 진단받은 후, 인터넷 환자단체에서 추천받은 의사를 찾은 환자들을 만난다. 인터넷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정말로 다행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처음 발견한 이후 이십 년 넘게, 혹은 시작점을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150년으로도 볼 수 있는 시간 동안 극심한 고통을 일으키는 흔한 질병이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것이다. 그 결과 환자가 진단부터 주치의 교육, 질병을 밝혀내고 치료하는 데 필요한 과학연구 지원금 모금까지 모든 일을 스스로 해야 했다. 환자는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 (p.393-394)


지식의 간극과 신뢰의 간극이 상호작용하면서 고치기 어려운 수준까지 고착되었다. 여성에게 더 많이 생기는 질병과 증상, 그리고 여성의 몸에 대해 의사가 단순히 잘 모르기 때문에 여성 환자가 질병을 호소해도 무시하는 것일까? 아니면 의사에게 여성 환자는 신뢰할 수 없다는 무의식적인 선입견이 있어서 여성의 증상을 무시하는 걸까? 지식의 부재일까, 신뢰의 부재일까? 내 생각에는 양쪽 모두다. 지식의 간극과 신뢰의 간극은 이 지점에서 너무나 긴밀하게 얽혀 있어서 동전의 양면이나 다름없다. 의학은 여성의 몸이나 건강 문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여성의 질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여성의 질병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의학은 여성의 몸이나 건강 문제에 대해 잘 모른다. - P28

남성만을 기본값으로 설정한 연구는 모순에 빠지기도 했다. 1960년대 초에 ‘에스트로겐 농도가 낮아지는 폐경기가 오기 전까지는 여성이 심장질환에 걸릴 위험이 낮다‘는 사실을 관찰한 연구자들이 여성 호르몬 치료법이 심장질환에 효과적인 예방법인지를 연구했는데, 연구에는 남성 8,341명과 여성 0명이 참여했다. (의사들은 폐경 후 여성에게 에스트로겐을 무더기로 처방해서 1970년대 중반에는 여성의 1/3이 호르몬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도 여성을 대상으로 호르몬 치료의 임상연구를 최초로 실시한 것은 1991년 이후였다.) - P45

여성건강운동 활동가들은 더 나은 신약 규제와 정보에 대해 충분히 알고 사전 동의하는 것을 연구 대상자의 권리로 요구하는 청원을 했다. 여성에게 잠재적으로 혜택을 줄 수 있는 치료법에 대한 임상시험에, 여성이 스스로 위험을 가늠하고 참여할 수 있는 여성의 ‘행위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정책은 가상의 태아에게 미칠 이론적인 상해를 논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그런 태도는 환자 개개인을 가르치려 드는 것일 뿐만 아니라 여성 전체가 안전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탈리도마이드와 디에틸스틸베스트롤의 대참사는 1977년 식품의약국이 발표한 금지 조항의 기폭제가 되었고, 가임기 여성 전체를 연구 대상자로 꺼리는 상황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사건 모두 가임기 여성 전체가 아닌 임신부만 금지했더라도 막을 수 있는 사건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이런 약을 대중에게 판매하기 전에 충분히 연구하지 않았으며, 위험도에 대한 증거를 무시했다는 점이다. - P52

여성을 배제하고 남성에게만 임상시험을 하고서 약을 여성에게 판매하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논의의 중심이 보호주의 쪽으로 기우는 현상을 신약 임상시험에서는 여성의 과소 대표성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그 외에 다른 생의학 연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심장질환은 여성의 주요 사망 원인이기도 한데, 심장질환의 위험 요소에 대한 미스터피트(다중위험요소조정실험) 연구에서 여성이 배제된 이유를 보호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다. 또 노인 인구의 2/3에 해당하는 여성이 왜 ‘인간의 정상적인 노화 현상‘연구에서 배제되었는지도 해명하지 못한다. (사실 우리는 이에 대한 해답을 한 가지는 알고 있다. 연구자의 해명에 따르면 연구소에 여성 샤워실이 없어서 남성만 연구 대상으로 뽑았다고 한다.) - P52

여성에게 주로 영향을 미치는 질병이 연구 의제에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된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지만 고치기는 쉽지 않다. 여성 건강운동 활동가들은 역구 계획을 제안하고, 연구 자금을 지원하고, 연구 결과를 출판하는 사람이 대부분 남성이기 때문에 자연히 남성의 관점과 관심사를 반영한다고 지적했다. 당시 국립보건원에 있던 소수의 부인과 의사 중에 한 명이었던 플로렌스 하셀틴Florence Haseltine박사는 로런스와 와인하우스에게 "나는 이 현상이 악의적이거나 고의적인 결과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의사들에게 각자 관심 주제에 대해 연구하라고 하면, 50대이고, 남성인 의사라면 모두 심장질환을 연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의학 연구에서 연구자가 ‘관심 있는 주제‘는 연구자 자신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주제이기 마련이다. - P54

1990년에 슈뢰더 대변인이 "사람은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에 자금을 쓴다. 남성이 대다수인 연구 집단은 유방암보다는 전립선암을 더 걱정하기 마련이다."라고 언급했듯이 말이다. - P55

당시 성·젠더의 차이를 그저 ‘일상적인 관행‘으로 무시하거나 하찮게 여기고 승인받아 시장에 나온 약은 수없이 많다. 여성건강연구 사무국장 클레이턴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이 사례는 비단 엠비엔Ambien(졸피뎀의 상표명-편집자)뿐만이 아니다. 이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수많은 약이 성·젠더의 차이를 보이며, 그중에는 잘 알려진 것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도 많다."라고 밝혔다. 수많은 약이 여성을 대상으로는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았거나, 여성을 대상으로 했더라도 차이점을 드러낸 증거가 무시됐다. 그러니 남성과 비교할 때 여성의 50~70%가 약의 부작용을 더 많이 겪는 것도 당연하다. - P71

19세기 말에는 또 다른 새 전공이 히스테리와 신경장애 치료법에서 부인과와 경쟁했다. 바로 신경과다. 초기 미국 신경과 전문의들은 부인과 치료법을 무시하면서 전기요법, 비소나 아편 등의 약물, 실라스 위어 미첼Silas Wier Mitchell 박사의 악명 높은 ‘휴식 요법‘등을 실험했다. 미첼 박사의 환자로 치료에 불만을 품었던 작가 샬럿 퍼킨스 길먼Charlotte Perkins Gilman은 자신의 유명한 단편 소설 <누런 벽지(The Yellow Wallpaper)>에서 미첼 박사의 휴식 요법에 대해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환자는 몇 주 동안 어두운 조명이 켜진 방 침대에 누워 의사와 간호사만 만날 수 있고, 살찌는 음식을 먹는 일과 편지를 받는 일 외에 독서나 글쓰기 등 다른 활동은 금지당한다. 이 치료법은 너무나 ‘쓰디쓴 약‘이라 미첼 박사가 환자에게 치료가 끝나고 병이 나았다고 말했을 때, 환자는 미첼 박사의 말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도 있다. - P100

오랫동안 비평가들은 히스테리든, 신체화든, 스트레스로 인한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이든 심인성 질환이라는 개념에 오진의 위험이 크게 내재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논쟁은 영국 정신과 의사 엘리엇 슬레이터 Eliot Slater 가 1965년에 쓴 사설에서 한 경고다. 히스테리 진단을 너무 자주 내리는 의사는 자신이 수수께끼를 풀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의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경고했다. 슬레이터 본인을 포함한 런던 국립병원에서 1950년대에 히스테리를 진단받은 환자 85명을 추적한 결과, 9년 후 환자의 60%이상이 뇌종양과 뇌전증 같은 기질성 신경계 질환을 진단받은 것이다. 이 중 열두 명은 사망했다. "히스테리 진단은 무지를 위장하려는 것에 불과하며, 풍성한 임상 오류의 원천이다. 사실 착각일 뿐만 아니라 유혹이기도 하다."라고 슬레이터는 결론 내렸다. - P120

이쯤 되면 여성은 자기 충족적 예언의 실현을 위해 붙들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체적으로 보면 의학이 여성 증상의 많은 부분을 설명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여성은 실제로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증상‘으로 더 많이 진단받는 듯하다. 이런 증상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은 약물 부작용일 수도 있고, 남성만 대상으로 연구한 질병의 비전형적인 증상일 수도 있으며, 여성에게 더 흔하다는 이유로 심인성 질환으로 추정해 의학이 거의 연구하지 않은 기능성 신체화증후군 증상일 수도 있다. 의학계에는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을 심인성 질환으로 보는 경향이 깊이 파고들어 있다. 이 지식의 간극은 여성이 히스테리나 건강염려증에 걸리기 쉽고 신체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고정관념을 만들었다. 이 고정관념은 다시 여성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설 때, 환자가 자신의 증상을 설명할 수 있든 없든 간에 의사가 여성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 P136

여성을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증상에 빠지기 쉬운 환자로 분류하는 순간, 의사는 여성의 증상이 ‘스트레스를 받아서‘라고 빠르게 결론 내리고, 의학적 원인을 밝히기 위한 정밀검사를 하는 대신 항우울제를 처방하며 이 끝없는 순환을 악화시킨다. - P136

그러나 불확성실의 시대에 일단 환자를 믿어주고,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이 실제라는 가정이 기본이 되며, 환자가 말하는 증상을 믿고, 만약 이것이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증상이라면 이를 설명할 의무는 의학이 맡아야 할 것이다. 여성에게는 이런 기본적인 신뢰가 너무 오랫동안 주어지지 않았다. - P152

실제로 2000년에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실린 논문은 심장마비 증상으로 미국 응급실 열 곳에 실려 온 수천 명의 환자 기록을 분석해서 오진으로 퇴원당환 환자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이 추정에 따르면 매년 미국에서 오진받은 심장마비 환자가 최소 1만1천 명이라고 한다. 55세 이하의 여성은 다른 환자들에 비해 집으로 돌려보내질 확률이 7배나 높았다. 오진의 결과는 대단히 심각했다. 집으로 돌아간 환자의 사망률이 두 배나 높았기 때문이다. - P165

이는 심장마비의 증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성의 증상은 교과서를 벗어나 더 다양하게 나타난다. 남성 연구를 통해 도출된 대표적인 증상은 극심한 가슴 통증과 왼쪽 팔을 타고 흐르는 통증으로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나이 지긋한 과체중인 백인 남성이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고 의자에 털썩 쓰러지듯 앉는 장면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할리우드 심장마비‘로 알려지면서 문화적인 인식 속에 스며들었다. 이 상황은 의학 교과서에도 수십 년 동안 그대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여성, 특히 폐경 전 여성이라면 심장마비가 왔을 때 ‘비전형적인 증상‘을 더 많이 보이며, 증상이 며칠에서 몇 주 동안 이어지기도 한다. 목, 목구멍, 어깨, 등 위쪽의 통증이나 체한 증상, 숨이 차는 증상, 메스꺼움이나 구토, 발한, 불안감, 눈앞이 깜깜해지는 증상, 어지럼증, 일상적이지 않은 피로감이나 불면증을 들 수 있다. - P171

1996년 국가 차원의 설문조사에서는 의사의 2/3가 증상에서 성·젠더의 차이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12년 미국 여성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1/5 이하만이 메스꺼움이나 피로감 같은 심장마비의 비전형적인 증상을 알고 있었다.
증상의 차이는 여성이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동안 치료받을 시기를 더 늦춘다. - P172

심장질환에서 젠더 격차의 근거가 분명하게 드러나는지 더 이해하기 쉬운 이유가 있다. 이것은 결국 자명하게도 여성은 처음부터 심장마비로 진단받을 가능성이 적기에 심장마비로 치료받을 가능성이 적은 것이다. 베리 메르츠는 트로포닌 검사법의 문제점에 대해 "여성이 치료받지 못하는 좋은 이유와 나쁜 이유가 있다. 좋은 이유는 그 원인을 우리가 해결할 수 있기에 좋은 것이다. 여성과 남성은 다르며, 그로 인해 진단에 차이가 생긴다는 중요한 변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여성의 증상이 교과서적인 사례가 아닌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여성의 위험 요인을 그저 ‘비전통적인‘ 요인으로 인식하고, 여성의 증상을 ‘비전형적인‘ 증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의학이 오직 남성만을 표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 P173

전형적인 자가면역질환 환자가 전형적인 자가면역질환 환자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았는데, 이는 여성이 이미 다른 방식으로 정형화됐기 때문이다. 젊은 여성이나 중년 여성이 피로감이나 다른 모호한 주관적인 증상을 호소한다면? 이 환자는 스트레스를 받아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을 신체화한 것이다. 사실 의사가 스트레스를 줄이라는 권고와 함께 항우울제를 처방해서 집으로 되돌려 보내려는 모든 여성 환자를 대상으로 자가면역질환을 의심해보기만 해도, 최첨단 신기술 진단센터나 수련의 과정의 개선 없이도 자가면역질환 진단율이 크게 개선될 것이다. 자가면역질환이 여성에게 얼마나 흔한 질병인지, 의사들이 이를 얼마나 많이 놓치고 있는지 고려한다면, 이는 상당히 믿을만한 주장일 수 있다. - P213

물론 고통의 심각성을 더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목적이라면, 통증을 가볍게 보이게 하는 전략에는 명백한 위험이 따른다. 만성통증을 앓는 여성은 종종 히스테릭하지 않게 보이려고 통증이 얼마나 심한지를 의료진에게 숨기는 지경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만성통증 관리법에서 의사와 환자 간의 의사소통을 연구한 2007년 논문의 저자들은 "여성 환자는 자신의 통증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일과 부정적인 젠더 전형성으로 인해 의도치 않게 그들의 진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일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더해 로런의 충수염 오진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의사들은 남성 환자에게나 통증을 축소하는 태도를 예상하지 여성 환자에게는 기대하지 않는다. - P266

의료계, 그리고 문화 전반에는 환자의 90%가량이 여성인 섬유근육통 환자를 특히 치명적으로 업신여긴다. 여성 혐오로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외음부통과 섬유근육통 환자인 작가 에이미 베르코위츠Amy Berkowitz는 저서 [압통점(Tender Points)]에서 온라인에서 수집한 섬유근육통 환자에 대한 댓글을 공개했다. "섬유근육통 환자는 장애인 수당을 챙기려는 끔찍하고 뚱뚱한 여자다. ‘일하는 건 피곤하니까, 돈을 주든지 약을 줘!‘라는 식이다. 다른 사람이 열심히 일할 때, 집에 앉아 리얼리티 쇼나 보는 게으른 자들이다. 이들의 71%는 뚱뚱한 여자로,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본 적이 없다. 인정하기 싫어도 이것이 사실이다." "인터넷 기사를 읽을 수 있고 ‘아야!‘라고 11번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 - P286

"직장에서 이런 괴짜들과 일하는데, 그 사람 얼굴에다 대놓고 사기꾼이라고 말해버렸다. 그 뚱뚱한 엉덩이를 움직여서 일해야 한다. 그들은 그저 ‘아프고 싶어서‘ 우는 소리를 하는 것뿐이다."
섬유근육통을 향한 오랜 불신은 의학계가 역사적으로 이런 환자를 어떤 시각으로 봐왔느냐의 맥락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섬유근육통과 관련해서 2012년 기사는 다음과 같이 썼다. "섬유근육통 환자는 의사가 진료하기 싫어하는 환자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계속 의사를 찾아오는 단골 환자다. 유명한 류며티즘내과 과장인 의대 교수가 우리에게 말했듯, ‘이 환자들은 제정신이 아니‘며 이런 시각이 일반적이다." - P286

여성 체중에 대한 불균형적인 우려는 특히 부당하다. 만약 의사들이 성차별적 편견이 아니라 과학에 근거해서 체중을 우려한다면, 반대 현상이 나타나야 정상일 것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더 뚱뚱해도 건강할 확률이 높다는 점을 여러 논문이 계속 입증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누군가의 건강을 체중으로 판단하는 일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2016년 분석에 따르면, 체질량지수를 바탕으로 신진대사 건강을 판단한다면 미국 성인 7,490만명에 대한 그릇된 진단을 초래할 것이다. 특히 여성은 잘못 판단된다. 2008년 연구에서는 과체중인 남성 48.8%와 비교할 때 과체중인 여성의 57%가 대사적으로 더 건강했고, 29.2%의 비만 남성보다 35.4%의 비만 여성이 대사적으로 더 건강했다. - P343

여성의 생식주기와 관련지어 병의 증상을 정상이라고 치부하는 현상은 자국내막증, 외음부통, 그 밖의 만성 골반 통증을 일으키는 환자만 고통스럽게 한 것이 아니다. 어떤 통증이든 ‘아래쪽 그 부분‘이면 얼마나 통증이 심각하든지 간에 월경통으로 치부하고, 성관계 중에 생기는 어떤 통증이든 와인 한 잔으로 완화하라고 한다면, 모든 질병에서 ‘오진 왕국‘이 펼쳐진다. 어쨌드 생식기관은 생명에 ㅈ기결된 다른 기관들과 아주 가까이 있다. - P346

스타일스가 세계자율신경장애협회를 설립한 이유의 가장 큰 부분은 한 번도 제대로 된 진단을 받지 못한 환자들에 대한 생각에 몸서리쳤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스타일스는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백인이었고, 뉴욕시 근처에 살았으며, 지지해주는 가족이 있었고, 연봉이 높고 의료보험이 있는 변호사였으며, ‘돈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병원‘에 갔다. 그래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내가 가난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라고 스타일스는 물었다. "내가 시골에 살았다면? 의사 한 명만 보장해주는 의료보험이었다면? 온종일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하는데, 병원에 데려다줄 가족이 없었다면? 첫 번째 의사에서, 두 번째 의사에서, 세 번째 의사에서 멈춰야 했던 대부분의 다른 여성들을 생각해보세요. 계속 의사를 찾아다닐 돈과 시간이 충분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 P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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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9 19: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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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0 08: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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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강화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좋다는 평이 자자해 읽기 시작했는데 나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만큼 좋지는 않았다. 언제부턴가 젊은 작가들이 '여성 서사', '사이다 서사'에 갇힌것 같았는데, 이 작품집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여성 서사를 써야해, 사이다 서사를 써야해, 라는 생각이 작가들에게 압박으로 다가가고 있는건 아닐까. 여성서사는 더 나와야 하고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읽을 것이지만, 나는 이 작품집의 여성작가들이 굳이 여성서사를 쓰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그저 쓰는 것 만으로도 그것은 여성 서사에 다름 아닐테니까. 기성 남자작가들의 글과는 완전히 다른 글을 써낼테니까. 그러니 좀 더 자유로워져도 좋을 것 같다고 나는 바랐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어디에도 갇히지 말고 하기를 바라는 마음. 문장력도 세상을 보는 섬세한 시선도 이미 탁월한 작가들이니 좀 더 은유해도 괜찮지 않을까.


작품집에 실린 작가들중 최은영을 가장 선호하긴 했는데 굳이 이 작품집에서 가장 좋은 작품을 꼽자면 장희원과 김초엽이었고 가장 별로인 걸 꼽자면 김봉곤 이었다. 김봉곤의 명성을 익히 들어 기존에도 《여름 스피드》라는 단편집을 읽긴 했었는데, 그 때도 느꼈던 감정을 이 작품집에서도 느꼈다. 다른 사람들은 김봉곤 글의 어떤 점이 좋다는걸까? 물음표 천 개 되는 순간이었다.




*리뷰의 마땅한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 그냥 책 제목 붙였다.



‘글 쓰는 일은 혼자 하는 일이어서 좋다‘라는 말을 종종 했다. 그러나 그건 내 착각이었던 것 같다. 내가 두려움에 맞서도록 도와준 사람들, 나의 글을 끝까지 믿어준 사람들, 쓰는 사람으로서의 나를 지지해준 사람들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계속 글을 쓰기 어려웠을 것이다. 친구들에게 고맙다. 나는 나의 행복만큼 내 친구들의 행복을 원한다. 우리가 계속 밝은 곳으로 가려는 마음을 버리지 않을 수 있기를, 자신을 내팽개치치 않기를 바란다. (최은영, 작가노트)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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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3 08: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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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3 09: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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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3 09: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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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3 09: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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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3 10: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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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3 10: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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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3 10: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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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3 11: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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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5-13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김봉곤 두 번째 소설집 매우 애정하며 읽고 있습니다. 취향의 차이란...

다락방 2020-05-13 13:45   좋아요 1 | URL
저는 김봉곤은 이제 더이상 안읽으려고요. 저는 그의 소설에서 소설의 의미를 1도 찾을 수가 없어요. -.-

hellas 2020-05-13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공감. 저도 그분 이미 접음.

다락방 2020-05-13 22:33   좋아요 0 | URL
어떠한 이유인지 출판계에서 과하게 밀어주는 것 같은 느낌인데, 저로서는 이제 안읽어도 좋을 작가인 것입니다. 킁.

hellas 2020-05-13 23:41   좋아요 0 | URL
여운도 의미도 없어서 오독인가 싶어 다시 읽어봤잖아요 ㅡㅡ

다락방 2020-05-14 07:41   좋아요 0 | URL
다시 읽어보시다니 ㅠㅠ 안타깝네요 ㅠㅠㅠ

2020-05-20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20 16: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15 0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지즈코 지음, 나일등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페미니즘에 관심이 생기고부터 지금까지 소설을 제외하고도 80여권 정도의 페미니즘 서적을 읽어왔다. 어렵지 않게 에세이부터 시작해 소위 벽돌책이라 불리우는 책들까지. 그렇게 읽고나니 가끔 어떤 책들에 대해서는 '이건 내가 읽지 않아도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됐는데, '우에노 지즈코'의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도 그중 하나였다. 사둔지는 오래였지만 이제는 '이런 기본적인 건 읽지 않아도 될 것같다'는 생각을 한거다. 그러나 나는 읽었고, 읽으면서는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일본 최고의 여성학자이며 사회학자라는 명성에 걸맞게 우에노 지즈코는 여성혐오에 대해서 아주 날카롭게 파악하고 분석한 것을 이 책에 알기 쉽게 썼기 때문이다. 우에노 지즈코의 책을 전에도 몇 권 읽어본 적이 있던바, 우에노 지즈코는 기득권을 가진 남성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비판하는데도 전혀 망설임이 없다. 이미 유명한 책(혹은 작품)을 보란듯이 비판할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좋았고, 사회현상들 이면에 숨겨진 여성혐오를 보란듯이 까발리는 데에는 속이 다 시원해졌다.


날카로운 분석에도 불구하고 포르노에 대해서는 규제하지 말자고 하는데에서 좀 놀랐다. 우에노 지즈코는 '상상력을 막아서는 안된다'라고 하는데, 나는 이미 포르노라는 것이 여성과 아이 그리고 인종에 대해서까지 혐오표현이라는 페미니스트들과 생각을 같이하는 바, 거기에 대해서는 우에노 지즈코와 의견을 달리했다. 우에노 지즈코는 상상력을 규제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포르노를 금지하자는 데에는 찬성하지 않으면서 그러나 아동 포르노도 안되고, 트라우마를 건드려도 안된다는 등의 조건들을 내건다. 나는 거기서 좀 갸웃했다.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고 저것도 고려해야 해, 라고 한다는 것은 어찌됐든 그것이 어떤 식의 피해를 가져올 것이 있다는 걸 안다는 것일텐데, 그렇다면 '되고' '안되고'의 기준을 대체 누가 어떻게 정할 수 있단 말인가.

우에노 지즈코의 포르노에 대한 입장에 대해서는, 이 책이 10년전의 책이기도 하고 또 우에노 지즈코가 1948년생인만큼, 현재의 포르노가 어떤 식의 영상을 송출하는지에 대해서는, '게일 다인스'가 자신의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 서둘러 부연해 놓아야 하는 것은, 포르노라고 하는 표상 안이라 할지라도 실재하는 어린이를 모델로 사용한 차일드 포르노는 별도라는 사실이다.

모델의 현실과 모델의 연기 사이의 경계는 대단히 모호하다. 살인 현장을 연기로 표현하는 피해자 모델은 살아 돌아오는 것이 가능하다. 미디어에 넘쳐나는 살인 신을 단속하라는 미디어 규제는 존재하지 않지만, 만약 그것이 연기자에게 트라우마적인 체험이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포르노 모델이 시나리오에 없는 실제 강간을 당하게 된다면 당연히 인권침해로 볼 수 있다. 또한 트라우마적인 포르노를 연기함으로써 받게 되는 영향 역시 간과해서는 안된다. (p.101)


포르노에 대해 표현의 자유이며 그것이 가져올 긍정적인 효과들도 있다고 생각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일단 나는 그런 쪽이 아니다. 나는 포르노 반대, 성매매에 반대한다.


내가 그것에 대해 우에노 지즈코랑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이 책이 나쁜 것도 결코 아니고 우에노 지즈코를 비난하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은 페미니즘, 사실 그보다는 '여성 혐오란 무엇인가'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아주 날카로운 안내서가 될것이다. 이미 페미니즘 책을 숱하게 읽어온 사람이라도 다시 읽어보기에 좋은 책이고. 여성혐오가 대체 뭔데,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혹은 '나는 여자 좋아해, 나는 혐오하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읽어보기에 매우 유용하다. 여자라고 여성혐오를 안하는 게 아니고 오히려 여성혐오를 했던 자신을 파악해야 여성주의를 받아들일 수 있으니, 역시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은 도움이 된다.



‘호색‘한 남자가 여성을 혐오한다고 하면 모순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misogyny‘라는 연단어는 번역하기가 힘들다. ‘misogyny‘말고 ‘women hating‘이라는 표현도 있지만, 호색한 남자가 ‘women hating‘하다고 하면 더욱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바람둥이‘라 일컬어지는 남자들을 떠올리면 좋다. 그들은 ‘자기것‘으로 만든 여자의 수를 자랑하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여자라면 누구든 상관 않고 발정할 정도로 여체와 여성기, 여성성의 기호나 신체 부위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도록 조건 훈련된 ‘파블로프의 개‘가 바로 자신이란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그들이 반응하고 있는 것은 여성이 아니라 여성성의 기호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모든 여성을 ‘여자‘라고 하는 하나의 범주에 일괄 처리하는 그들을 이해할 방법이 없다. - P13

나가이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두 평짜리 방의 장지》(1972)에는 몸을 파는 여성에게 쾌락을 부여해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게 해주는 사창가 손님들의 ‘신사적‘ 문화가 그려져 있다. 이 소설은 남성 지배의 궁극적 형태를 언어화한 텍스트인 것이다. - P15

남자들 마음 속에는 ‘여자 없이 어떻게 안 될까‘ 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때문에 이성애 중심의 근대인에 비해 소년애를 칭송했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여성 혐오가 더욱 철저하게 보이는 것이다. 남성성을 미화하는 동성애자들에 대해 내가 느끼는 불신은 바로 여기서 유래한다. - P16

‘자기 여자‘란 말은 참으로 잘도 만들어낸 표현이다. ‘남자다움‘은 한 여자를 자기 지배하에 두는 것으로써 담보된다. ‘자기 마누라 하나 휘어잡지 못하는 남자가 무슨 남자냐‘는 판정 기준은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다.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성적 주체로 결코 인정하지 않는 이러한 여성의 객체화, 타자화-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여성 멸시-를 ‘여성 혐오‘라고 한다. - P37

사실 인간의 역사에는 남성/여성의 이항뿐만 아니라 ‘제3의 성‘이라 불리는 남성도 여서도 아닌 중간적인 젠더가 언제나 존재했다. 북미 인디언의 베르다쉬berdache, 인도의 히즈라hijra, 통가의 파카레이티fakaleiti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이 범주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다. 둘째, 여장女裝과 같은 여성성 기호에 의해 ‘여성화‘ 되어 있다. 셋째, 종종 종교상의 의례적 역할뿐만 아니라 (남성을 상대로 한)매춘에도 종사하고 있다. 그들은 ‘남성이면서 남성이 되지 못한 남성‘ ‘여성화된 남성‘이며 그들의 존재 의의는 오로지 남성을 위한 ‘성적 객체‘가 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제3의 성‘을 ‘n개의 성‘에 대한 증거로 언급해 온 이들이 많으나, 이상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남성과 여성의 중간적 성이라기보다는 성별이원제 하에 존재하는 하위 범주이다. 이들을 ‘제3의 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호칭인 것이다. - P38

누가 생각해낸 것인지는 모르지만 ‘위안부‘라는 명칭은 참으로 절묘하게도 지은 이름이다. 이 ‘위안‘은 오로지 남성의 ‘위안‘이지 ‘위안부‘에게는 지옥의 노예 노동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존자에 의한 증언이 등장할 때마다 "나는 ‘위안부‘가 아닙니다"라고 그 호칭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 P53

‘성적 약자론‘은 진짜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과 연결됨으로써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신체적, 사회적, 경제적, 기타 등등의 약자인 장애인 남성은 성의 자유 시장에서도 성적 약자로 간주된다. 그리고 그러한 성적 약자 장애인의 성욕은 충족될 권리가 있다고 인정되어 장애인의 매춘을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 마스터베이션 혹은 성행위를 위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등이 논의되고 있다. 여기서도 여성 장애인의 ‘성적 약자‘ 문제는, 의도적인지 비의도적인지는 모르나, 간과되고 있다. - P65

‘전원 결혼 사회‘는 여성에게 어떤 의미를 가졌을까? 그것은 결혼이 강제였던 사회, 결혼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선택지가 없었던 시대의 다른 이름이었다. 이 시대 결혼은 여성의 ‘평생 직장‘이라 불렸다.
그에 반해 결혼이 선택지의 하나인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여성의 혼인율은 저하하고 이혼율은 상승한다. 다른 말로 하면 그것은 여성에게 ‘평생 직장‘이외의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원 결혼 사회‘가 종언한 오늘날, 우치다 다츠루나 고야노 돈같은 남성론자가 ‘누구나 결혼 가능했던(해야만 했던) 시대‘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논하는 것, 야마다 마사히로와 시라가와 도코가 《결혼 활동 시대》(2008)를 논하는 것은 시대착오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P70

K군(무차별 살상 사건의 범인)은 말한다.
‘여자 친구가 있으면 일을 그만두지 않아도, 차를 도난당하지 않아도, 야반도주하지 않아도, 휴대전화 의존증에 걸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아직 희망을 가지고 있는 놈들이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여자 친구‘가 모든 부정적인 것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해줄 역전 홈런의 히든카드라 생각하는 그의 사고는 완전히 도착하고 있다. 실제 인과관계는 ‘일을 그만두거나, 차를 도난당하거나, 야반도주하거나, 휴대전화 의존증에 걸리는 놈‘한테 여자 친구가 생길 리 없다, 일 테니까.
- P74

그런데 남자에게 있어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학력이 없어도, 직장이 없어도, 수입이 없어도, ‘여자 친구만 있으면‘ 왜 역전타를 날릴 수 있는 것일까? 어째서 ‘인기‘가 다른 모든 사회적 요인을 웃도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여자 친구만 있으면 ‘나는 남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은 여성에게 선택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제2장에서 논한 세지윅의 호모소셜리티 개념에 의하면 남자는 여자에게 선택되는 것에 의해 ‘남성‘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남자는 남성 집단의 정식 멤버로 인정됨으로써 최초로 남성이 되는 것이며 여자는 그 가입 자격을 위한 조건, 또는 그 멤버십에 사후적으로 딸려 오는 선물 같은 것이다.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은 ‘여자를 한 명 소유‘, 즉 문자 그대로 ‘자기 것을 하나 가지는‘ 상태를 가리킨다. - P74

여자가 교태를 부리며 남자를 조종하는 것을 가리켜 일본어로 ‘코털을 읽는다‘고 표현한다. 말 그대로 남자에게 기댄 채 아양을 떨며 대각선 45도 위를 올려다보면 시선 정중앙에 콧구멍이 오게 된다. - P77

‘여자 친구가 있었으면‘하고 바라던 K군의 외침이 진정으로 ‘사람과 관계를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었다면 그가 선택했어야 하는 행동은 아키하바라에서 타인을 칼로 찌르는 행동이어서는 안 됐다. 그러나 적어도 그의 행동을 근거로 판단했을 때, K군과 J군이 공통적으로 바랐던 것은 자신을 ‘남성으로 만들어주는‘, 독선적인 ‘여성 소유‘욕망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 P84

성욕은 개인의 내부에서 완결되는 대뇌 작용의 현상이다. 전미 성교육 정보 협의회(SIECUS)에 의한 정의와 같이 ‘성적 욕망‘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섹슈얼리티‘는 ‘다리 사이between the legs‘가 아니라 ‘귀 사이between the ears‘, 즉 대뇌 안에 있다. 대문에 섹슈얼리티 연구는 사실 하반신 연구가 아니다. 무엇이 성욕의 장치가 되는가는 개인이나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 육체가 눈앞에 있지 않으면 성욕을 느낄 수 없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나 시렞로는 단순히 기호화된 신체의 일부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으며 완전히 버추얼한 심벌이나 영상으로도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사물이나 기호에 반응하는 즉물적即物的 경우도 있을 것이고 특정 판타지를 요구하는 복잡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완전히 오리지널할 수는 없으며 문화에 의해 학습된 ‘기성품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자기 식의 버전을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 P88

나는 예전에 가부장제를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정의한 적이 있다.
‘가부장제란 자신의 다리 사이로 낳은 아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멸시하도록 기르는 시스템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성을 멸시하는 것은 가능해도 어머니를 멸시하는 것은 남성에게 있어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자기의 ‘근본‘을 더럽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 P147

사람은 ‘여성‘이 될 때 ‘여성‘이라는 범주가 짊어진 역사적 여성 혐오의 모든 것을 일단 받아들인다. 그 범주가 부여하는 지정석에 안주하면 ‘여성‘은 탄생한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란 그 ‘지정석‘에 위화감을 느끼는 자, 여성 혐오에 적응하지 않은 자들을 가리킨다. 때문에 여성 혐오로부터 출발하지 않는 페미니스트는 없다.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이 여성 혐오와의 갈등을 의미한다. - P158

시즈미는 ‘OL위원회‘를 조직하여 젊은 여성의 생생한 목소리를 모아 분석하였는데, 이 책은 ‘아버지와의 관계‘에 관한 약 1,500명 여성의 이야기를 모아 분석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약 50퍼센트의 딸들이 아버지를 싫어하고 있다‘고 한다. - P193

가정 내에서 최약자인 딸의 공격은 강자인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직접적으로 향하지 않는다. 약자의 공격은 더욱 약하고 저항하지 않는 이, 즉 자신의 신체와 영혼, 섹슈얼리티로 향한다. 아들의 공격성이 단순히 타벌 또는 타자에 대한 상해 행위로 향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렇게 자기 신체를 시궁창에 던져 넣듯 남성에게 바치는 성적 일탈(그 안에 매춘 행위도 포함된다)은 섭식 장애나 손목을 긋는 자해 행위와 같은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 P227

프라이버시는 누구를 지키고 있는가? 바로 강자이다. 이 대답은 성추행과 가정 폭력 피해자, 성적 소수자에 의해 밝혀진 사실이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페미니즘이 부정하고 있는 것은 ‘남성성‘이지 개개의 ‘남성 존재‘가 아니다. 만약 ‘남성‘으로 분류되어 있는 자들이, 여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듯, ‘나라는 존재를 긍정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그리고 그것은 누구에게 있어서도 정당한 바람이다-여자들이 여성 혐오와 싸워왔듯이 남자들도 자신의 여성 혐오와 싸우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 P302

‘게이와 페미니즘은 같이 투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다음과 같은 답을 내린 적이 있다. ‘Yes, but 여성 혐오적이지 않은 게이들이라면 가능하다‘. 추가로 ‘섹슈얼리티 여하를 불문하고 여성혐오적이지 않은 남자들이라면‘이라는 조건을 덧붙여도 좋다. 페미니스트가 여성 혐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더욱 신중하게 ‘여성 혐오아 싸우고 있는 남자들이라면‘이라고. - P303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있어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길이었다. 남성에게도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길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 여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기 혐오‘와 싸우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제시하는 것은 더 이상 여성의 역할이 아니다.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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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0-05-12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문 중에 마지막 문구 더 콕콕 와박혀요.

다락방 2020-05-12 17:40   좋아요 0 | URL
수연 님 요즘에 아주 날개달고 책 읽으시더라고요. 쉬엄쉬엄 하세요. 지치지 않으려면 꾸준히 오래 천천히 가야지요. 화이팅!

단발머리 2020-05-12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우에노 지즈코라면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의 하루카 요코가 생각나요. 다정한 선생님은 아닌듯 하지만 ㅎㅎㅎㅎ 좋은 선생님 같기는 해요. 우리에게도 이 정도의 여성주의 학자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 좀 안타깝기도 해요. 학문적 업적, 성과도 있겠지만 우에노 지즈코가 학계에서 자리잡고 일해왔기 때문에 이정도라도 평가받는거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고요.
저도 이 책 읽어보려고요^^

다락방 2020-05-12 17:41   좋아요 1 | URL
전 이 책이 생각보다 괜찮아서 우에노 지즈코의 책들을 천천히 다 찾아서 읽어볼 생각이에요. 날카롭고 거친 태도가 너무 좋아요. ㅋㅋㅋㅋㅋ 이런 분이 일본에 계시다니 한편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 말이지요. 이 책 읽어보세요, 단발머리님. 그리고 우리 우에노 지즈코도 열심히 찾아 읽고 아무튼 세상의 페미니즘 책들 다 정복해버립시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