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왜 내 실수인걸까?
일부 남자들은 솔직히 "나는 안 그런데" 라고 말하고 싶어서거나 아니면, 현실의 시체나 피해자는 물론이거니와 현실의 범인을 논하는 문제로부터 방관자 남성들의 안락함을 보호하는 문제로 대화의 초점을 돌리기 위해서 그런 반응을 보인다. 한 여성은 격분해서 내게 말했다. "남자들은 대체 뭘 바라는 거예요, 여자를 때리거나 강간하거나 위협하지 않는다고 상으로 과자라도 받고 싶은 거예요?"
여자들은 늘 강간과 살해를 두려워하면서 산다. 때로는 그런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남자들의 안락함을 보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제니 추(Jenny Chiu)라는 여성은 트위터에서 이렇게 말했다. "물론 모든 남자가 다 여성 혐오자나 강간범은 아니다. 그러나 요점은 그게 아니다. 요점은 모든 여자는 다 그런 남자를 두려워하면서 살아간다는 점이다." (p.182-183)
일전에 연애를 시작하던 초기에, 상대가 내게 '이것만은 안된다'는 게 무어냐 물어본 적이 있었다. 사실 나는 연애를 하면서 어떤 조건으로 사귀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므로, 없다고 답했다가, 이내 하나가 있다고 했다. 일베 회원이 아닐 것. 내가 아무리 상대를 좋아해도 상대가 일베 회원이라면 그 남자와는 연애를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랬다. 그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나와는 맞지 않음', '용납할 수 없는' 건 일베가 다였다. 새누리당 당원도 나랑 맞지 않을 것이지만 지지하는 정당, 추구하는 이상향이 달라도 대화가 안되는 건 아니니까. 그러니 '일베만 아니면 돼' 라고 했더랬다. 그런데 나는 이제 알게됐다. 일베보다 더 끔직한 게 있음을. 내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세계가 단단히 자리잡고 있다는 걸 알고 눈물이 핑돌았다. 하- 무려 백만명 이상의 유저들이 있다는, 소라넷이 그것이었다.
막연히 소라넷에 대해서는 트윗상으로 몰카와 스와핑들의 게시물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저분한 사이트구나. 그게 내가 아는 전부였다. 그러다 어제 트윗상으로 소라넷에 올라온 게시물을 보았다. 말 그대로 경악스러웠다. 문맥상 흐름으로 '술 마시고 의식을 잃은 여자'를 그들은 골벵이라 칭하는 것 같았는데, 그런 여자들을 발가벗겨 강간한 뒤에 인증샷을 찍어 올렸더라. 여자의 성기에 빗이며 라이타, 담배 같은 걸 꽂아 올려놓고서는 응원을 바랐다. 그러면서 '악플은 싫다'고 하더라. 심지어 어떤 남자는 여친이 바람피면 죽여버리겠다는 뜻으로 식칼의 손잡이를 박아 사진을 찍었다. 아, 진짜 이걸 쓰는 것도 끔찍하다. 놀랍게도 상대 여자들은 모두 자신의 여자친구이거나, 친구의 여자친구이거나, 본인에게 호감을 가진 여자후배이거나 했다. 그런데 그랬다. 그런데 술 취해 의식이 없다며 강간하고 인증샷을 찍어 올렸다. 그러면서도 '악플 금지' 란다.
그 게시물에 달린 댓글들은 그 글을 좋아하고 있었다. 벗겨진 여자의 육체를 보고 품평을 했고, 강간범들을 응원했다. 어떤 남자는 지금 모텔에서 실시간으로 하고 있으니 여자친구 성기에 무엇을 넣으면 좋을지 댓글로 말해달라기도 하더라. 남자친구가, 남자친구의 친구가, 좋아하는 선배가, 그 짓들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게시물이 당당히 올라오고 서로를 응원하는 그 사이트에 가입자가 무려 백만명 이상이라더라.
여자들은 곳곳에서 성추행,성폭행,강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얼마전 최몽룡 교수의 성추행사건처럼, 교수집에 술 먹으러 갔다가도 내 신체의 일부를 자기 멋대로 주무르는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때 들을 수 있는 변명이란 것이 고작 '나는 원래 그런다' 이다. 미친.. 원래 그러니까, 뭐? 게다가 원래 그런다면, 그 교수랑 술 마신 숱한 학생들 중에 피해자들이 많다는 거 아닌가. 말도 못하고 끙끙 앓았을 피해자들. 직업적으로도 성희롱,성추행의 위험에 놓여있고, 낯선 사람에게도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고, 일전에 내가 썼던 것처럼, 택시 안에서 또 희롱을 당할 위험도 있다. 나는 택시안에서, 지하철안에서, 버스 안에서 숱한 성추행을 만났었고, 어릴 적에는 교회 목사에게도 노출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들만이 아니란다. 내가 좋아하는 선배, 내가 사귀는 남자친구, 내 남자친구의 친구로부터도 강간을 당할 수 있다는 거다. 게다가 내 벗겨진 육체가, 어딘가에, 내가 모르는 사이 공개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이상한' 남자들만 소라넷에 가입한걸까? 그 백만명이 모두 사회에서 만났을 때 '소라넷 가입하게 생긴' 사람일까? 내 여자사람 직장동료는, 어디서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또라이들이 아닐까, 평범한 남자들, 우리랑 같이 회사다니고 우리랑 같이 술마시는 그런 남자들이 거기에 가입되어 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저 백만명 중에는 당연히 내 옆의 직장 동료, 내가 아는 남자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모르는 사람,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에서의 강간확률은 하- 이렇게나 높구나. 내가 봤던 게시물, 그 혐짤이 가득한 주소를 링크한다. 링크를 열기전에 마음 단단히 먹을 것을 부탁한다. 그리고 자신 없다면 이 링크를 열지 마시라.
링크를 올리는 것이 2차 가해라는 댓글이 달려서 링크는 지우겠습니다. (2015.11.10)
이제 연애할 상대가 '네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건 뭐야?' 라고 물으면 소라넷을 먼저 말하게 될 것 같다. 지금 소라넷 폐쇄 서명운동 중이더라.
소라넷 폐쇄 서명운동
소라넷이 그간 어떤 게시물들을 올려왔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가 링크한 저 끔찍한 글은 분명 범죄다. 의식이 없는 여자를 강간하고, 사진 찍어 모두가 볼 수 있게 올리는 것. 게다가 여자들의 성기에 물건들을 넣어대는 것. 저건 범죄다. 저걸 '우리끼리 재미삼아 하는 것' 이라고 한다면, 정말이지,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진심 미러링을 해주고 싶다. 너 똑같이 당해볼래? 소라넷 폐쇄를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소라넷 회원중 어떤 이는 '우리는 뭐 피해주는 것도 없는데 왜 없애라고 하냐'고도 하던데, 피해가 무엇인지 정녕 모르는 것일까? 글쎄, 저 사이트를 없앤다고 해서 저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저들이 소라넷 때문에 저런 생각을 가지게 된 건 아닐테니까. 그러나 저런 사이트가 있고, 저런 게시물을 올리면 호응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분명 부추기는 역할을 할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런 사람들에게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는 얼마나 눈엣가시일까. 나만해도 저건 옳지않다고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나온김에, 메갈리안 회원들이 미러링으로 글을 쓰는 걸 보면서 '너네도 그러면 똑같아지는거야' 라고 말하는 남자들에게도 진짜 한숨나온다. 미러링이 나쁘고 미러링이 똑같아지는 거라면서, 왜 그간 여성혐오의 글들에는 잠자코 있었는가. 그들은 무엇을 바꾸었나? 뒷짐지고 서가지고는 '저거 나쁘지만 너네도 나빠' 하는 꼴들이라니. 그래서 세상 많이 좋아졌냐? 응?
형, 문제가 있는데도 들고일어나지 않으면 그건 그 문제에 기여하는 게 돼.-줌파 라히리, 저지대, 53쪽
사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나가야 저런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게 될런지 모르겠다. 여태 살아온 삶의 기본 바탕이 저런 식이었다면 대체 이제와 뭘 어떻게 더 바꾼단 말인가. 사람은 잘 안변하는데... 식칼이 꽂힌 채로 사진 찍힌 여자는 다음날 남자친구로부터 그런 사진을 받아본 뒤에 어떤 생각을 하게 됐을까. 이런 세상에서 '전부다 강간을 당하는 것도 아닌데 왜 강간 당할까 무서워하냐'는 말은, '걱정이 오버다' 같은 말은, 제발이지, 그만 듣고 싶다.
월요일 아침부터 이런 글이라 미안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