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의 글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정희진 선생님은 일전에 김혜리 기자가 글을 잘 쓴다는 얘기를 하신 적이 있고, 그래서 김혜리 기자의 책을 사두었는데 아직 못읽었다. 그런참에 김혜리 기자의 책이 새로 나왔다는 걸 알게되어 어머 이건 사야해, 하고 샀다. 게다가 책에 대해 얘기하는 책이었어. 하.. 책에 대한 책이라니. 미쳐버려. 김혜리 기자의 팟빵 매거진을 구독하다가 지금은 안하고 있는데, 팟빵에서 책에 대한 코너를 다루다가 그것을 이렇게 책으로 낸 모양이었다. 지금은 제일 처음 신형철과의 대화 부분을 읽었는데, 와, 읽는 내내 진짜 어찌나 지적인 대화가 고프던지! 나도 지적인 누군가를 만나서 지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간절히 생각했다. 하.. 지적인 대화가 고픕니다. 나는 이런거 주기적으로 해줘야 해.. 


각설하고,

신형철이 들고온 책은 '시그리드 누네즈의 책과 폴 윤의 책이었다.

















일전에 시그리드 누네즈의 책을 읽고 나는 좀 별로였던지라 이 책에 대해서도 딱히 관심을 가지진 않았었는데, 김혜리와 신형철의 대화를 읽고는 어디 한 번 읽어보자 했다. 그런데 더 관심이 가는건 폴 윤이었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이며 1.5세대라고. 이 책은 단편집이고 에도 시대 배경이거나 미래 배경이라고 해서 사실 배경 자체에는 혹하지 않는데, 나는 디아스포라 정서에 대해 관심이 많다.  이 책을 관통하는게 디아스포라 라고 해서 너무너무 읽고 싶어지는거다. 그런데 오늘 출근길 읽은 부분에서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그때그때 단편을 쓰고 모이면 책으로 내는 작가도 있고, 아예 기획해서 내는 작가도 있는데 폴 윤 작가는 후자인 것 같아요. 작가의 인터뷰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는데요. 할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월남했고, 본인은 남한에서 태어나서 미국으로 건너갔어요. 그런데 아버지한테 할아버지와 다른 친척들에 관해서 질문하면 속 시원하게 얘기를 안 해주더라는 거예요. '삼촌은 어디로 가다가 아마 죽었을지도 몰라' '누구는 어디로 이민 갔을 텐데' 이런 식이었다고요. 그래서 오히려 그 가족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었을까 자꾸 상상하게 되더라는 거예요. 부모님이 말을 안 해줘서 이야기를 채워넣고 싶어진 거죠. 세계 지도를 펴놓고 할아버지는 이 나라 가서 살았을 것 같다, 이런 식으로 구상했대요. 처음에는 한 권의 책으로 써보려고 생각했는데 한 호흡의 장편이 될지 짧은 이야기들이 연결될지는  쓰다가 알게 됐다고요. -p.56



위의 부분은 폴 윤이 어떻게 작품을 썼는지에 대해 얘기하면서 나온거다. 그러니까, 어디로 갔는지, 어떻게 사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더 상상하게 되는것. 나는 이 부분을 읽는데 , 내가 오래전에 너무너무 좋아했던 소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없게 가까운] 이 생각이 났다.

















아홉살 꼬마가 911 사고로 아빠를 잃었다. 아빠가 정확하게 어떻게 죽은건지를 몰라서, 소년은 자꾸만 아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이렇게 죽었을까? 저렇게 죽었을까? 더이상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면, 아빠가 어떻게 죽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모르면, 자꾸 상상하게 된다. 찾아보니 왼쪽 구판으로 2008년에 읽었다. 벌써 이십년 전이네. 나는 이 소설을 정말 사랑했더랬다.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니 자꾸 상상해야 하는 소년의 마음이, 당시에 손에 잡힐듯했다. 왜 그런거 있잖나, 가지기 전까지 계속 생각하게 되지만 막상 갖게 되면 더이상 쳐다보지 않는 것처럼. 물론 이런 비교가 썩 잘 어울리는 건 아니지만, 만약 아빠가 어떻게 죽은건지 알았다면, 소년은 아빠의 죽음을 자꾸 상상하는게 아니라 애도에 열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빠는 이렇게 죽었을까? 저렇게 죽었을까?



온 세상이 거기 있었다. 마침내, 떨어지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들을 찾아냈다.
이건 아빠였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누가 됐든 간에, 그건 사람이었다.
나는 책에서 그 페이지들을 뜯어냈다.
마지막 장이 제일 앞에 오고, 제일 앞의 장이 맨 뒤로 가도록 순서를 거꾸로 뒤집었다.
책장을 휙휙 넘기자, 그 사람이 하늘로 떠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pp.454-455)



저 소설을 읽을 때 너무 좋아서, 너무 좋다는 말을 정말 수차례 하고 다녔던 것 같다. 그런데 소년의 바로 그런 마음을, 나는 폴 윤으로부터도 듣게 되는 거다.


일전에 김영하가 유퀴즈에 나왔던 일부를 짧게 영상으로 보았더랬다. 우리가 느꼈으나 어떻게 표현할지 잘 모르는 감정을, 우리는 소설 안에서 찾을 수 있다고 김영하가 그랬었다. 어, 내가 느낀게 바로 이거였어!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책에서 소년이 느꼈던 것을, 폴 윤이 삶에서 느끼고 있는 거다. 김혜리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샀으면서, 그러나 책에 대한 책을 읽는건 사실 즐겁지만 이제 더 안해도 되지 않나, 했다가, 신형철과 김혜리가 나누는 이야기가 너무나 지적이고 좋아서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즐겁게 읽고 있다. 아직 한꼭지 읽었다.



책이 좋다.

책 읽는게 좋다.

책 읽는게 진짜 너무너무 좋다.

책 안읽는 사람들은 이 좋은걸 어떻게 안읽고 살 수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 너무 좋지 않나? 이토록 많은 이야기와 감정과 생각들이 그 안에 있는데, 책장을 넘긴다는 간단한 행위만으로 만날 수 있는데, 너무 좋지 않나요... 사랑합니다, 책읽기. 



그래서,



책을 샀다. (읭?)


















[데미지]는 오래전에 영화로 보았더랬다. 인상깊은 장면은, 제레미 아이언스와 줄리엣 비노쉬가 바닥에 앉아서 섹스를 하는 장면이었다. 그냥 섹스를 위해 만난 것 같은 느낌적 느낌. 옷도 찢어버리고... 나는 섹스할 때 옷 찢는 장면이 나오면, 영화든 책이든 되게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하, 집에 어떻게 가냐.. 뭐 이런 고민을 하게 되어서 말이지. 오래전에 읽었던 로맨스 소설속에서도 남주가 자꾸 여주 팬티를 찢어서 내가 몹시 괴로웠더랬다. 브랜드 팬티던데 그만 좀 찢어라. 그 때 다 읽고 스트레스 받아서, '아 되게 스트레스 받아' 하고, 당시에 연애중인 칠봉이한테 말했었는데, 그 때 칠봉이가 내게 말했었다.


"왜 니가 스트레스 받아?"


그 말에 갑자기 빵터진 나... 아, 내 팬티 찢어진거 아니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데미지, 라고 하면 그 장면이 가장 먼저 생각나고, 스포일러 되니까 결말을 말하지 않겠지만, 하여간 그런 일(?)을 겪은 뒤에 마지막, 제레미 아이언스가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인데, 그 장면도 되게 인상깊었다. 누가 데미지 영화를 다시 보고 싶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할 것 같고, 누가 인상깊은 영화나 좋아하는 영화 물어보면 데미지는 생각하지도 않겠지만, 그런데 이게 책이 원작이라니, 너무 읽어보고 싶어서 샀다. 어마어마한 크기로 예상컨대, 영화보다 책이 천 배는 좋을 것 같은거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2]는 네 달에 걸쳐 e 와 이 시리즈를 읽기로 했기 때문에 샀다. 아직 읽지는 않고 있다.


[의약품 살인사건]은 재미있을 것 같다. 나는 어떤 약에 대한 부작용이 있고, 그 약을 복용하면 얼굴이 부어오른다. 메탈에 대해서도 알러지가 있고, 지난 토요일 동료의 결혼식에 가느라 오만년만에 목걸이 했다가 지금까지도 목걸이 한 자리가 도돌도돌 올라온게 가라앉지 않아 연고를 바르고 있다. 가짜를 해서 그런게 아니라, 나는 그냥 금,은,동, 뭐가 됐든 닿으면 이렇게 되어버린다. 간지러움 올라오는 것 같아서 반나절도 안돼 뺐는데 하.. 사흘동안 앓고 있다. 제기랄... 피부 왜이럼? 아무튼, 의약품 살인사건 재미있을 것 같다.


















[가장 파란 눈]은 파란 눈을 갖고 싶은 못생긴 흑인 소녀의 이야기라니, 읽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 샀다. 세상에. 이렇게 단 한 줄 썼는데 벌써 가슴이 답답하네.


[일리아스 좋아하세요?]는 어떻게 알게 됐는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궁금해서 사봤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내가 좋아할만한 제목이나 책이 아닌데, 인스타그램에서 이금희가 이 책에 대해 언급하는 걸 듣고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금희는 이 책의 캐릭터를 좋아한다고 했다. 괴테에 집착하는 점, 그러니까 어느 하나에 푹 빠졌다는게 너무 좋다는거다. 나, 그거 궁금해..


[아무튼 새벽]은, 이른 아침을 좋아하고 새벽을 좋아하는 내가 읽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 샀다.
















[작약과 공터] 는 허연 시집의 시라니 사지 않을 수 없어서 샀다. 자목련 님 서재에서 알게된건데, '작약' 하면, 어쩐지 자목련 님이 떠오른다. 자목련 님 서재에서 작약을 자주 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여간 자목련님의 서재에서 자목련 님이 떠오르는 [작약과 공터]라는 시집을 만나서 샀다. 시, 시, 시, 시를 읽자! 만세!!





하.. 이렇게 책을 샀다고 쓰면서, 또 책을 사고 싶어서 너무나 초조하다. 빨리 페이퍼 쓰기를 마치고 책을 사야겠다. 책, 책, 책, 책을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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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26-06-09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읽다가 갑자기 떠올랐는데 <황금방울새> 읽어보셨어요?

다락방 2026-06-09 13:47   좋아요 0 | URL
아뇨. 안읽어봤어요. 하- 세상에 읽을 책 너무 많은 거 아닙니까!!

2026-06-09 1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6-06-09 13:48   좋아요 0 | URL
돈 낭비에 환경 오염까지. 이게 무슨 짓이란 말입니까!!

잠자냥 2026-06-09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님은 옷 찢는 게 왜 스트레스인지 좀 궁금했는데 ㅋㅋㅋㅋ (아니 뭐 자극적이고 좋지 않은가 싶은데 ㅋㅋㅋㅋㅋㅋ) 이제 알겠다. 집에 갈 때 입을 거 없어서 스트레스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집에 가지 않아도 될 곳에서 해보세요. (응? 뭘?ㅋㅋㅋㅋㅋㅋㅋㅋ)

<괴테....> 저 책 유행이긴 하군요. 어제 퇴근길에 전철에서 이 책 읽는 청년을 보았는데...... 책 읽는 사람이 하도 드물어서 책 읽는 사람 보면 저는 일단 뭘 읽는지 책표지 살피고 관찰하는 편인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놔- 이 청년,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을 들고 자꾸 주변 여자들만 관찰(신경 쓰는)하는 게 너무 티 나더라고요. 30분 동안 한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더라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책을 읽지 않고 들고만 있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6-06-09 13:50   좋아요 0 | URL
저는 그런 자극 정말 진짜 필요없고요, 멀쩡한 옷 찢기에 반대입니다. 그런 커플들 찾아가서 푯말들고 시위하고 싶어요. 겉옷도 찢지 말고 속옷도 찢지 마라! 멀쩡한 옷을 대체 왜 찢냐!! 하고 말이지요. 그거 그냥 다 쓰레기 되는거잖아요. 입을 땐 옷이지만 찢어지면 쓰레깁니다. 아 너무 싫어. 인간은 자기 쾌락 위해서 옷도 찢는 존재.. 으.. 저는 옷찢기 반대합니다. 천 아까워... 스트레스.. 돈도 아깝고 옷도 아깝고 세상은 쓰레기로 덮이고... 너무 싫다.....
아무튼 뭘 하라는 말씀이시지는 제가 정말 진짜로 잘 모르겠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하하하. 퇴근길에 전철의 그 청년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책을 읽는게 아니라 ‘책읽는 나‘를 전시하는 거였네요. 전시용으로 책읽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아마도 제목에 ‘괴테‘가 들어간걸 골랐나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6-06-09 14:27   좋아요 0 | URL
충격 다락방 남들 섹스하는데 피켓 시위 “옷 찢기 반대” 그러나 속내는… 훔쳐보기로 밝혀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