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노트북은 윈도우8인것 같은데, 여기서는 그림판이 어디있는지를 모르겠어서(예전에 친구가 알려줬는데 까먹었다 -_-) 캡쳐를 하지 못하겠다..제기랄.. 여튼, 그러니 캡쳐 대신 다 풀어서 써야겠다. 내가 다른 알라디너의 서재에 달았던 댓글이 길어서 캡쳐 하려고 한건데..
지난주에 한 알라디너의 페이퍼에서 [매드맥스]가 왜 페미니즘 영화인지 갸우뚱하다는 글을 보았다. 그래서 나도 그렇다고 댓글을 달았더랬다. 나도 이 영화가 페미니즘영화로 불려지고 있다는 걸 알지만 '왜'그런지는 알지 못하겠기에 갸웃, 했었던 거다. 아마도 그동안의 영화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한 여자들의 캐릭터가 나와서가 아닐까, 라는 댓글을 달고는 다시 업무로 돌아왔는데, 자꾸만 여기에 신경이 쓰이는 거다. 왤까? 왜지? 어떤 것 때문일까? 뭔가 더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지금 잡지 못한 그 뭔가가 뭐지?
그 댓글을 달고 한시간여가 지났을때, 그때 갑자기 '딱'- 하고 한 장면이 떠올랐다. [매드 맥스]의 그, 한 장면. 그건 임모탄의 여자들이 탈출하고 나서 정조대를 끊어버리는 장면이었다. 그러자 아! 하면서, 이 영화는 페미니즘을 담고 있다!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영화속 여자들은 남자의 소유물이었다. 그들의 성적인 것부터 다른 사람들보다 안락하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까지(어떤 여자는 돌아가고 싶어하기도 한다, 순간이지만), 이 모두가 임모탄의 권력 아래서 행해졌다. 그러나 그녀들은 그것이 '옳지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거기서 탈출하고자 한다. 탈출하는 과정은 당연히 힘이 든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탈출했을 때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이미 탈출해 있었던 얼마 안되는 다른 나이든 여자사람들' 이었다. 아, 이것은 페미니즘이 여태 걸어온 길이 아닌가. 힘들게 걸어서 여기까지 온, 바로 그것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이렇게 걷는 중에 대부분 남자사람들의 멸시를 받지만, 그 와중에도 도와주고자 하는 남자들이 있다. 영화에선 그걸 맥스가 하고 있지 않나. 맥스도 처음부터 도운 건 아니지만, 그들의 옆에서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보고 그들과 함께하며 돕지 않나. 또한 그녀들은 어떤 걸 선택하고 결정했나. 더이상은 스포일러가 되니 말하지 않겠다. 다만, 임모탄의 여자들이 걸어가는 길, 또 걸어갈 길, 그것이 바로 페미니즘이 아닌가 싶었다. 아, 조낸 힘들었다. 총 열나 쏴가지고 ㅠㅠ 군대를 끌고와 ㅠㅠ 어휴....
정조대를 끊는 바로 그 장면(우리의 성은 너의 소유가 아니야!)을 떠올리고 나자 그 앞뒤의 장면들까지 휘리릭 눈앞에 스쳐가면서, 아, 말하고 있었구나, 보여주고 있었어! 하는 깨달음이 뽝- 왔다. 그러다가 오잉? 이런걸 스스로 깨닫다니, 나란 인간이 많이 똑똑하구나!! 하는 깨달음도 왔다(응?). 아...그동안 책 읽어가며 공부한 보람이 이런건가.. 내가 페미니즘의 도전을, 빨래하는 페미니즘을,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읽어서 이런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게 된 게 아닌가. 역시 책 속에 길이 있는건가. 책을 읽으면서 나는 십년전보다 이년전보다 어제보다 더 똑똑해지고 있는 게 아닌가. 멋지다!!
더 읽자!!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일부 남자들은 솔직히 "나는 안 그런데" 라고 말하고 싶어서거나 아니면, 현실의 시체나 피해자는 물론이거니와 현실의 범인을 논하는 문제로부터 방관자 남성들의 안락함을 보호하는 문제로 대화의 초점을 돌리기 위해서 그런 반응을 보인다. 한 여성은 격분해서 내게 말했다. "남자들은 대체 뭘 바라는 거예요, 여자를 때리거나 강간하거나 위협하지 않는다고 상으로 과자라도 받고 싶은 거예요?"
여자들은 늘 강간과 살해를 두려워하면서 산다. 때로는 그런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남자들의 안락함을 보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제니 추(Jenny Chiu)라는 여성은 트위터에서 이렇게 말했다. "물론 모든 남자가 다 여성 혐오자나 강간범은 아니다. 그러나 요점은 그게 아니다. 요점은 모든 여자는 다 그런 남자를 두려워하면서 살아간다는 점이다." (p.182-183)
십년도 더 전의 일인것 같다. 이십대중반. 친구들과 늦게 까지 술을 마시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때, 남자사람친구1이 내가 타고 갈 택시를 잡아줬다. 택시의 앞문을 열어 기사의 옆자리에 타고는 그와 인사를 하고 택시가 출발했다. 택시기사는 내게 '저사람이 네 남자친구냐' 물었다. 그는 나의 애인이 아니었지만, 이 기사가 묻는 의도가 뭔지를 모르겠던지라, 혹여라도 내게 집적대려는가 싶어 '그렇다' 라고 답했다. 그러자 '사귄지 얼마됐냐'고 또 묻는 거다. 뭘까, 의도가 뭘까, 왜 이런걸 물을까? 싶어 '삼년'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삼년이면 잘 거 다 잤겠네' 라고 기사가 내게 말했다. 그때 온 몸에 털이 다 서는 느낌이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걸까? 이건 뭐지? 그 말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는데 기사는 계속 얘기했다. 그러면 젖꼭지 색깔도 찐하겠네? 라고. 나는 너무 무서웠다. 차에서 내리고 싶었다. 여기서 세워주세요, 라고 말하고 내려서 다른 택시를 타고 싶었지만, 그 말을 하는것조차 너무 무서웠다. 만약 그렇게 말했을 때 이사람이 나를 내려주지 않는다면, 운전대를 그가 쥐고 있는 상황인데 나의 이 말을 오히려 기분나쁘게 받아들인다면, 나는 이제 뭘 어떻게 해야하나. 무사히 귀가하는 게 내가 바라는 가장 큰 일이었다. 기사는 대답없는 나에게 '왜그러냐, 우리나라도 여자들이 이제 성에 대해 개방적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라고 말하며 계속 얘기했다. 신혼여행 가면 남자들은 여자들 젖꼭지 색깔로 여자가 처녀인지 아니인지를 알 수 있다, 여자들은 그래서 속이면 다 들통난다, 이렇게 말하는 내 말이 불편하냐? 그러면 안된다, 개방적으로 다 얘기해야 한다... 정말이지 죽을만큼 무서웠다, 내려달란 말도 못할만큼 무서웠다, 내려달란 말했다가 기사가 화를 내면 그게 나에게 더 크게 화가 되어 돌아올까 무서워서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꿀먹은 벙어리마냥 앞만 쳐다봤다. 이러다 나를 건드릴까봐 무서웠고, 운전대를 다른데로 돌릴까봐 무서웠다. 집으로 가는 길은 맞는지 계속 앞을 봤다. 집 근처에 다다랐을때 여기에요 라고 말하고 계산하고 내리면서 눈물이 터질 것 같았지만, 울면서 밤늦게 집에 들어오는 나를 또 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이 일에 대해 그 후에 친구들과 얘기했을 때 모두가 내게 그랬다. 왜 앞자리에 앉았냐고, 뒷자리에 앉아야 하는 거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부턴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에 다짐을 했다. 지금이라면 경찰에 신고한다든가, 바로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든가, 택시 회사에 전화를 건다든가 어떤 행동을 취했겠지만, 당시의 나로서는 내가 집 앞에 무사히 내렸다는 것, 그게 너무도 큰 다행이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왜 남자들과 내가 같이 술을 마셨고 같이 밤늦게 들어가는 데 나는 무서워해야 하나, 밤늦게 집에 가는 내가 왜 잘못인건가, 내게는 택시 앞자리에 타는 게 왜 잘못한 일이 되는 걸까? 왜 내 실수인걸까? 만약 내가 남자사람친구와 같이 탔다면, 그때도 택시기사가 내게 여자도 개방적 운운하며 젖꼭지 색깔을 얘기할 수 있었을까?
내가 지금보다 젊었을 때, 드넓은 대학 캠퍼스에서 여학생들이 강간을 당하자 대학 측은 모든 여학생에게 해가 지면 밖에 나가지 말라고, 아니면 아예 나돌아다니지 말라고 일렀다. 건물 안에 있어라. (감금은 호시탐탐 여성을 감싸려고 대기하고 있다.) 그러자 웬 장난꾸러기들이 다른 처방법을 주장하는 포스터를 내붙였다. 해가 진 뒤에는 캠퍼스에서 남자들을 몽땅 몰아내자는 처방이었다. 그것은 똑같이 논리적인 해법이었지만, 남자들은 겨우 한 남자의 폭력 때문에 모든 남자더러 사라지라는, 이동과 참여의 자유를 포기하라는 말을 들은 데 대해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p.111)
며칠전 친구가 내게 그랬다. 너는 네 감정이 앞서는 사람이라 세상을 필터링해 보질 못한다,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그렇다, 라고. 아! 필터링해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네가 살아온 세상이고 네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택시타는 것조차도 무서워해야 하는 내가 사는 세상에서는, 필터링해서 페미니즘에 접촉할 수가 없다. 내게는 이게 삶이고 바로 현실이니까.
물론, 그 기사를 제외한 다른 많은 기사들이 내게 그런 식으로 무서움을 직접적으로 주진 않았다. 그 기사 하나보다 더 많은 좋은 기사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택시탈 때 무섭지 않을 수는 없다.
물론 여성도 온갖 심각하게 불쾌한 짓을 저지를 수 있고, 여성이 폭력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 폭력에 관해서라면 이른바 성(性)의 전쟁은 유달리 일방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현임(여성) 총재는 전임(남성) 총재와는 달리 고급 호텔에서 직원을 성폭행하지 않을 것이고, 미국 군대의 고위 여성 장교들은 남성 장교들과는 달리 성폭행으로 고발된 일이 없으며 스튜번빌의 남성 풋볼 선수들과는 달리 젊은 여성 운동선수들은 의식을 잃은 남자아이의 몸에 소변을 볼 것 같지 않거니와, 남자아이를 겁탈한 뒤 그 사실을 유튜브오 트위터에서 동영상과 글로 떠벌리는 일은 더더욱 하지 않을 것 같다.
인도에서 여성 버스 운전사가 친구들과 작당해 남성 승객을 심하게 성폭행함으로써 피해자가 그 후유증으로 사망하는 사건은 한번도 없었고,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여자들이 때로 몰려다니면서 남자들을 습격함으로써 뭇 남성들을 공포에 떨게 한 일도 없었으며 전체 강간 사건의 11%를 차지하는 친아버지나 의붓아버지의 강간에 대응하는 어머니들의 강간은 없다. 미국의 수감자들 가운데 93.5%는 여성이 아니다. 물론 그중에 꽤 많은 수는 애초에 그렇게 갇혀만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겠지만, 어쩌면 그중 일부는 폭력성 때문에라도 그렇게 갇혀 있어야 옳을 것이다. 우리가 폭력성을, 나아가 그들을 더 잘 다룰 방법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이름난 여성 팝 가수 중에서 자기 집에 들인 젊은 남자의 머리를 총으로 날려버린 사람은 없다. 필 스펙터(Phil Spector)는 그랬다. (스펙터는 라나 클라크슨 Lana Clarkson을 엽총으로 살해한 죄로 예의 93.5%의 대열에 끼었는데, 그녀가 그의 구애를 거부한 게 이유인 모양이었다.) 여성 액션 영화 스타 중에서 가정폭력으로 고발된 사람은 없다. 앤젤리나 졸리는 멜 깁슨이나 스티브 매퀸이 했던 짓을 하지 않는다. 유명 여성 영화 감독 중에서 열세살 아이에게 약을 먹인 뒤 아이가 계속 "싫어요"라고 말하는데도 성폭행한 사람은 없다. 로만 폴란스키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p.58-59)
SNS를 하는게 내게는 공부가 된다. 다른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하고 경험한 바를 들려주는 것을 계속 보고 있다. 책을 읽고 내 경험을 얘기하고 또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걸어가다 보면, 나는 매드맥스의 스쿠터 여자전사들처럼, 그렇게 앞에서 길을 닦아주고 있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앞에서 스쿠터를 타고서 기다리다가, 정조대를 끊고 옳지 않은 세상에서 도망치는 여자들을 맞아주며 안아주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와 또 정조대를 끊고 도망치는 많은 여자들은 또다른 맥스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임모탄의 부하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되겠지만, 맥스도 늘어갈 것이다. 눅스가 그들에게 있었던 것처럼, 또다른 눅스를 우리는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일요일이 이제 16분 밖에 남질 않았다. 일요일 밤에는 늘상 일찍 자려고 하는데, 밤만 되면 잠을 잘 수가 없어..하아- 일부러 낮잠도 안자는데 다 소용없고 부질없다. 잠이 안와... 우앗, 이렇게 쓰는데 15분 남았다. 일요일 밤의 시간은 잘도 흘러가는구나. 이제는 침대로 가 누워야겠다. 차일드44영화에 대한 것도, 리틀 포레스트 영화에 대한 것도 쓰고 싶은데, 오늘은 이만 잠자러 가자. 페이퍼는 근무시간에 쓰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