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되지 않았지만 사직서를 냈다. 사직서를 낸 날, 펑펑 울었다. 이를 악물고 입술을 깨물었는데도 눈물이 흘렀다. 도망치듯 외근을 나갔는데, 택시 안에서 소리 내어 울었다. 어깨를 들썩였고 흐느꼈다.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두 택시기사님 모두 내게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왜 우냐고도, 무슨 일이냐고도 묻지 않으셨다. 그저 목적지에 데려다주시곤 영수증을 발급해주는게 전부였다. 우느라 이유를 물었어도 말하지 못했겠지만, 그래도 휴지는 좀 건네주셨다면 좋았을텐데. 급하게 나오느라 지갑과 핸드폰 밖에 들고 있질 않아 손으로 자꾸 눈물을 닦아야 했으니까.
그 날의 나는 엉망이었다.
사직서를 내고 펑펑 울고, 회사 근처에 맛집이라 소문난 레스토랑을 찾아가 스테이크를 먹었다. 먹기전에 식전주라고 화이트와인도 시키고 스테이크와 함께 먹기 위해서 레드 와인도 시켰다. 신용카드로 그 어마어마한 금액을 긁어대면서, 오늘의 나는 충분히 이런 대접을 받을만하다고, 나는 나를 대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일에서 주는 압박이 쌓였고, 이제 결국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해서 사직서를 냈지만, 그렇지만, 나에게 남아있는 대출금과 이자 그리고 할부금들은 어떡하나. 퇴직금으로 그 중 일부를 갚을 수 있겠지만, 앞으로는 어떡하나. 스테이크 먹고 싶으면, 술 마시고 싶으면, 책을 또 사고 싶으면 그러면 또 어떡하나. 아르바이트를 구하겠지만, 그걸로 이 모든 게 감당이 될까. 이렇게 그만두는 건 별로 좋을 게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감정이 이기고 하루는 현실감각이 돌아왔다. 이런 내게 안부를 물어오는 친구들, 그들에게 나는 내 자신이 방황하는 늙은 영혼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올리브는 침대에 누우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외로움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여러가지 방식으로 사람을 죽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올리브는 생이 그녀가 '큰 기쁨'과 '작은 기쁨' 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큰 기쁨은 결혼이나 아이처럼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삶을 지탱하게 해 주는 일이지만 여기에는 위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가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작은 기쁨도 필요한 것이다. 브래들리스의 친절한 점원이나,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있는 던킨 도너츠의 여종업원처럼. 정말 어려운 게 삶이다. (p.124)
엊그제 점심을 먹으러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는데, 3층 직원들을 계단에서 만났다. 인사를 건네고 뭘 먹을거냐 묻는데, 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던 신입직원이 과장님, 하고 나를 부른다. 돌아보니 그가 내게 꾸벅,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한다. 네, 라고 대답을 하며 조금 웃었다. 타부서의 대리 역시 과장님 뭐 드시러 가세요, 살갑게 묻는다. 나는 잘 모르겠다고 말하며 이발했네요, 라고 말을 건넸다. 예뻐요, 라고. 그리고 몇몇 직원들과 점심을 함께한 후 회사 건물내의 까페로 갔다. 그곳은 이 빌딩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커피값을 30프로 할인해준다. 우리 커피나 한 잔씩 해요, 하고 까페로 들어갔는데 거기엔 타부서의 차장님과 부장님 그리고 다른 직원이 있었다. 인사를 하고 주문하기 위해 계산대 앞으로 가려는데, 차장님이 본인의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며 내게 내미신다. 이걸로 해, 라고. 나는 냉큼 차장님의 손에서 카드를 낚아챘다. 네, 라고 대답하면서. 그렇게 커피를 시켰다. 잘 먹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차장님께 카드를 돌려드렸다.
금요일 밤엔 전체 회식이 있었다. 아주 맛있는 소고기를 구워 먹었다. 내가 앉은 자리엔 다른 부서의 신입 사원이 있었다. 사실 나는 아직 그의 이름을 정확히 외우지 못했다. 고기를 먹으며 어, 술이 없나? 라고 할라 치면 그는 어느틈에 소주를 주문했다. 어느정도 술이 돌았을 때, 나는 한 임원의 좋지 못한 광경을 보고 신경이 쓰였다. 내 성격을 아는 다른 직원은 제발 보지 말라고,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고 나는 온통 신경이 그쪽으로 쏠려 더불어 기분이 나빠지고 있었다. 그 때 내 앞에 앉았던 신입이 과장님 자리 바꿔드릴게요, 보지마세요, 했다. 내가 앉은 자리에선 보이지만 그가 앉은 자리에선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아도 소리가 들릴 터. 나는 됐다고 말했지만, 이 모든 작은 일들이 고마웠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끼리 2차를 갔다. 거기엔 나와 함께 오래전부터 일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들 나에게 어떻게 버티느냐고 했고, 그 중에 한 명은 여기 입사해서 내가 우는 걸 처음 봤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또다시 울었다. 누군가는 내가 어떤 성격으로 어떤 것들을 힘들어하는 지 안다는 게 무척 감사했다. 작은 안부와 인사들이 소중했다. 며칠전에는 퇴근길을 동료와 함께 걸었다. 회사에서 양재역까지는 걸어서 십오분 이상이 걸린다. 천천히 걷는 그 길도 좋았다. 걷다보니 오른쪽에 갈비가게가 아주 많이 나왔다. 여기는 갈비촌인가봐, 하면서 걸었다. 집집마다 가르키며 우리 여기도 와보자, 여기도 와서 먹어보자, 했다. 동료는 내게 그만두지 말라고 말했다. 우리 양재동에 있는 맛있는 집 다 가보자고.
이런 모든일들이 나를 버티게 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회사를 다니지 않는다면 이런 작은 기쁨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맛있는 음식점에 같이 가서 술을 마시자고 하는 동료를, 복도에서 마주치면 꾸벅, 인사해주는 후배들을, 까페에서 본인의 카드를 꺼내어주는 상사들을 내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내가 회사를 다니지 않는다면, 대체 어디서 어떻게, 이토록 많은 젊은이들과 함께 술을 마실 수 있단 말인가! 어쩌면 나는 조금 더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사한 새로운 주소로 친구가 핸드로션을 보내왔다. 이사할 때 그리고 짐을 정리할 때 장갑을 끼지 않아 손이 엉망이 되었는데, 이 선물은 무척 감사했다. 다음날에는 옛날 주소로 보내졌던 선물이 새 주소로 다시 왔다. 우체국 택배 기사님께 이사했다고 말하니 새 주소로 보내주신 것. 도착한 선물을 뜯어보니, 오, 거기엔 내가 읽고 싶어서 사야지, 라고 생각했던 책이 들어 있었다. 이 책일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아니 대체 어떻게 이게 여기에 들어있는걸까.
이런게 바로 기적이 아닐까.
몇 주간 책을 읽지 않는 일상을 보냈다. 책을 도무지 읽을 수 없는 일상이었다. 아직 방황하는 마음이 잡히지 않았지만, 일상속에서 나는 버틸 이유를 찾아낼 수 있을것 같다. 나는 그런걸 꽤 잘해내는 사람이니까. 금요일 회식의 내 앞자리 신입 직원이 자꾸 신경쓰인다. 입사한 지 한 달도 안된 직원인데(한달은 됐나?) 회식의 끝무렵, 그 테이블에 그와 내가 단 둘이 남아서 나는 그에게 하소연을 하고야 말았다. 맙소사. 얼마나 진상이었을까, 그 때의 나는. 대체 왜 하필 나를 모르는 사람을 붙들고 하소연 한걸까. 하아- 너무 진상같은 밤을 보낸것 같다. 뭔가 만회하기 위해 기프티콘으로 커피라도 한 잔 보낼까 했지만, 하하, 나는 아직 그의 이름도 외우질 못했고(--) 당연히 전화번호도 모른다. 게다가, 그게 더 진상의 끝으로 향하는 길일것 같아, 차라리 가만있는 쪽을 택해야겠다. 술은 정말 얌전히 마셔야 해. ㅠㅠ
『올리브 키터리지』에는 낭독하고 싶은 아주 많은 부분이 있다. 골라내는 게 무척 힘들었지만, 나는 이 부분을 골랐다.
중간에 잠깐 삑사리(?) 가 있지만, 후훗, 그냥 가기로 한다.
어제 토요일, 엄마랑 둘이 부엌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떡볶이와 파인애플을 안주 삼아 먹었다. 식탁을 치우고 내 방으로 돌아와 책을 좀 오랜만에 읽어보려는데, 아, 너무 졸린거다. 자야겠다 싶을 때, 남동생이 집에 돌아와서는 내 방에 들어왔다. 무한도전을 보면서 캔맥주(500m)를 하지 않겠느냐 묻는다. 그러고 싶은데 너무 졸려, 어떡하지, 고민하는 내게 남동생은 '우리가 이러는게 우리 삶의 깨알같은 재미지 않냐' 란다. 그래서 나는 벌떡 일어나 남동생의 방으로 갔다. 컴퓨터로 무한도전을 보면서 육계장을 안주 삼아 맥주를 한 캔씩 마셨다. 다 마시고 둘 다 꾸벅꾸벅 졸았다. 무한도전을 다 못보고 우리 이제 자자, 하고는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잤다.
우리 삶의 깨알같은 재미, 일상의 작은 기쁨들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그러나, 일어나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내가 그것을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인생은 견딜만한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