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세숫대야만한 그릇에 감자볶음과 열무김치, 고추장과 밥을 넣고 슥슥 비벼 크게 떠서 입에 넣고 꾹꾹 씹어먹고 있는데, 식탁 위에 붙여진 스티커가 눈에 띄었다. 분명 그제까지는 없던거였는데...그 스티커는 똥과 변기모양을 하고 있었다. 아, 똥과 변기를 보며 나는 밥을 먹어야 하는건가, 잠깐 생각했지만, 그런 고민은 그저 남들이 하니까 하는 '고민 흉내'였을 뿐, 그냥 계속 밥을 먹었다. 어차피 스티커잖아?
그러니까 그 스티커는 이 책으로부터 왔다.
만날때마다 나의 조카를 위한 책을 선물해주는 ㅁ 님으로부터 받은 책인데, 아니나다를까, 조카는 이 책을 신나게 보고는 맨 뒤에 부록으로 첨부되어 있는 똥 스티커를 들고 다니며 붙이기에 열중한거였다. 스티커는 코끼리모양 똥모양 변기모양 휴지모양이 있었고, 똥은 작은똥 큰똥들이 있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식탁 위에까지 붙였을 줄은 몰랐어!
그나저나 거의 2주만에 보는 조카인데, 그 사이에 조카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2주전보다 훨씬 더, 놀라울 정도로 예뻐져서 우리집에 왔다.
꺅~!! 너 왜이렇게 예뻐졌어!!
조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놀라서는 조카를 끌어안았다. 흑흑. 조카야, 너는 이제 나의 미모를 넘어섰구나. 이젠 내가 너를 따라잡을 수 없겠어.
토요일에는 경향신문을 보다가 두 권의 책을 메모해 두었다. 하나는 칼럼에서 글쓴이가 소개해준 책인데, '에밀리 디킨슨'의 『에밀리』란 책이었다.
그런데 검색해보니 이 책은 '마이클 베다드'의 책인거다. 그렇다면 제목만 같은건가 하고 미리보기를 해보고 책 소개를 보니, 내가 신문에서 본 그 책이 맞다. '에밀리 디킨슨의 에밀리'라길래 에밀리 디킨슨이 동화도 지었구나, 하고 저자를 당연히 에밀리 디킨슨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마도 책 제목 '에밀리'의 모델이 '에밀리 디킨슨'이란 뜻이었나보다. 이 책이 무척 좋을것 같아서, 그러니까 옆집 사는 할머니에게 아이가 씨앗 두개를 건네주는 장면을 그림으로 보고 글로 읽고 싶어져서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씨앗에서는 꽃이 피니까.
또 한 권은 매주 토요일에서 소개하는 책 코너에서 메모해 둔 책이다.
제목이 뻔한것 같아서 패스하려고 했는데, 신문에 실린 소개글을 읽다보니 '엄마도 너를 낳아 엄마가 되어보는게 처음'이라는 문장이 눈에 띄는거다. 정말 그렇다. 엄마 역시 자식을 낳으면서 '엄마'라는 역할을 처음 해보는게 아닌가. 그래서 궁금해졌다. 두 달전이었나, 읽었던 『케빈에 대하여』생각도 나고.
왜 엄마들은 엄마의 역할을 '잘' 하는게, 당연히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교육을 시키는 것이 '마땅한' 게 되어버린걸까? 왜 엄마의 모든 삶을 내팽개치고, 스케쥴을 자식의 스케쥴에 조정하게 된 게 당연하게 되어버린걸까? 엄마자리를 사표내고 싶다고 말하면, 특히 시댁 어른들은 까무러쳐버리지 않을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는것조차 죄책감 들게 되버린게, 결코 당연한건 아니잖은가. 읽어보고 싶어져서 이 책도 장바구니에 넣었다.
역시나 『레 미제라블 2』도 무척 좋아서, 어젯밤에는 넷북을 켜고 페이퍼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날 좀 추운데서 잤기 때문인지(귀찮아서 창문을 안닫았다. 오들오들 떨면서;;) 몸상태가 메롱인거다. 히융. 그냥 일어나서 닫고 잘걸..히융..게다가 요즘엔 부쩍 악몽을 꾼다. 보약을 좀 지어먹어야 하나..( ")
토요일엔 종로 중고샵 앞에서 약속이 있었다. 아주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아주 잠깐 중고샵에 들어갔다가, 정말이지 그 '아주 잠깐' 사이에 책 두 권을 들고 계산해버리고 말았다. 아 씨...이제 안들어가야지...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니, 그 두 권의 책이 하필 거기에 그렇게 한꺼번에 놓여있을줄이야...아 씨.. 미친듯이 책을 팔아대도 책장이 눈에 띄게 텅 비지는 않는건 바로 이런 충동구매 때문일지도...
최근에 여행책 몇 권을 읽으면서 내 취향을 알게됐다. 나는 누가 뭐라고하든, '맛있어 보이는 음식 사진'이 없으면 여행책에 도통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난 그런 여자사람이었다. 최근에 읽은 책에는 '이 나라에 가보고 싶다'할만큼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아무것도 소개되어 있지 않았던 것. 최소한 그 책들은 음식으로 내 흥미를 끌지는 못했다. 역시 포르투갈이 짱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내 운명의 흐름은 나를 스페인에 데려다 놓을지도 모르겠어, 라는 생각을 토요일 오전,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시청하다가 생각했다. 스페인 편이었는데, 사실 그다지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으음, 내가 가보고 싶은 그런 곳은 아니군, 하고 묵묵히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핀초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2/0910/pimg_790343103786686.jpg)
핀초는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애피타이저인데, 핀초만 전문적으로 파는 핀초바가 있는거다. 거기에서 사람들은 원하는 핀초를 접시에 골라 담아서 서서 먹곤 했는데, 그들의 손에는 와인잔이 들려있기도 했다. 이번 여름 마카오에 갔을 때, 프란세시냐를 먹었던 음식점은 굉장히 저렴한 곳이었고, 와인도 엄청 저렴했다. 잔을 거창한 잔에 준 건 아니지만 와인을 그렇게 손 쉽게 마실 수 있다는게 무척 만족스러웠다. 저 핀초바를 보니 저곳에서 서서 핀초를 먹으면서 와인을 마시는 게 무척 신날 것 같은거다. 나는 아직 국내의 와인바 라든가 하는 곳엘 가 본 경험이 거의 없고, 레스토랑에서만 와인을 마셔봤는데, 그게 마시고 싶을때마다 가서 홀짝홀짝 마실 수 있을 정도의 저렴한 가격이 결코 아니었다. 와인은 여전히 내게 부담스런 가격의 술이었고, 그래서 내가 와인을 양껏 마시기 위해서는 마트에서 파는 '2만원에 세 병' 행사 상품을 구입해서 집에서 마셔야 했다. 저 핀초는(사진을 고작 저것밖에 찾지 못했는데:출처는 사진에 다 써있음) 굉장히 종류가 많고 다양했다. 바게뜨 위에 정어리가 얹어진 것도 있었는데, 그런건 패쓰하고 내가 좋아할만한 핀초도 엄청 많을 것 같아서 그것들을 한 접시 가득 담아 와인하고 마시면 정말이지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거다.
나는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도 아니고 맛집에 줄 서는 걸 엄청 싫어하고 요리 블로그에도 관심이 없는데, 왜 여행서적이나 여행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멋져 보이는 음식을 발견하면 정신줄을 놓는걸까...난 왜이러는 걸까.......떠나고 싶다. 흑흑. 이 책 사야지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