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사(獻辭)
'나보코프'의 『절망』을 가방에 넣고 외출해야 겠다고 생각했던 그 당시, 나는 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이 책을 챙겨 가면서도 내가 읽지는 못할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어쩌면 나는 많은 시간을 멍하니 보낼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지하철 안, 자리에 앉아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첫장을 넘겼을 때, 나는 이런 문장을 보았다.
나의 아내에게 바친다
흰 여백에 쓰여진 단 한줄의 헌사. 간결한 단 한줄의, 단 한명에 대한 헌사는 언제나 내 마음을 흔든다. 마음이 술렁술렁. 나는 이 단 한줄이 좋아서 아주 잠깐동안, 이 문장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좋구나.
나보코프가 아내에게 바쳤다면, 수키 김과 사샤 스타니시치는 부모님께 바쳤다.
수키 김의 『통역사』에는 이렇게 써있다.
부모님께 이 책을 바칩니다.
사샤 스타니시치의 『군인은 축음기를 어떻게 수리하는가』에는 이렇게 써있다.
나의 부모님께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에서 니콜 크라우스는, 자신의 남편과 조부모님께 책을 바쳤다. 나는 그녀가 이런 소설을 썼다는 것 보다는 이런 소설을 써서 그것을 남편에게 바칠 수 있다는 것이 몹시 부럽다. 그러니까 그녀의 남편이 조너선 사프란 포어라는 것이. 아, 나도 그에게 바치고 싶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와 사는것은 대체 어떤 느낌일까.
사라지는 것의 반대를 가르쳐주신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그리고 내 인생 조너선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미셸 깽의 『처절한 정원』은 책의 내용과 일치하는 헌사가 쓰여져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였으며 광부였던 할아버지와
레지스탕스 요원이었으며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두 분은 나에게 공포에 대한 기억의 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또한 두 분은 역사의 흑백논리는 어리석은 짓이라며
나에게 독일어를 배우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르나르 비키에게도 이 책을 바치고자 합니다.
만약 내가 책을 쓰게 되고 그리고 책의 제일 앞장에 헌사를 넣게된다면, 나는, 가족을 넣지는 않을 것 같다. 나는 가족이 아닌 타인을 넣고 싶다. 가족은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고 어쩔 수 없는 이름들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책에 넣는 헌사에까지 가족을 넣고 싶지는 않다. 내가 쓴 책이고 내가 쓴 글이라면, 그것은 온전히 내 마음대로 내가 주고 싶은 사람,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주고 싶다. 그러나 나는 헌사에 '바친다' 혹은 '바칩니다' 라는 말을 쓰고 싶지는 않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고 가장 간단하며 바로 이것이다 싶은 헌사는 '크리스토퍼 프리스트'의 『매혹』에 쓰여진 헌사이다.
리사에게
나는 리사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프리스트에게 리사는 이 책에 헌사로 쓰여질 단 하나의 이름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리사는 그의 아내이거나 그의 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고 한들 그는 '아내에게' 라든가 '딸에게' 라는 이름을 대신하는 위치를 넣지 않았다. 그는 그저 리사에게, 라고 했다. 나는 이런식의 헌사가 가장 마음에 든다. 단 한명의 이름을 넣는것. 상대의 포지션을 넣는게 아니라 이름을 넣는 것.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은 그의 소설 『바람의 그림자』의 헌사에, 이름을 넣었지만 수식어를 함께 넣었다.
보다 좋은 것을 가질 자격이 있는
조안 라몬 플라나스를 위해
'보다 좋은 것을 가질 자격이 있는' 이라는 문장은 그 자체로 참 매력적이지만 이름을 간결하게 넣는쪽이 내게는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이름만 넣으면 그 이름 앞에는 아주 많은 수식어들의 가능성들이 열려있으니까.
조너선 프랜즌은 그의 소설 『자유』에서 내가 원하는 형식 그대로 이름만을 간결하게 넣었다.
수전 골롬브와 조너선 갈라시에게
그러나 두명의 이름이 들어가있다. 수전 골롬브와 조너선 갈라시. 이 책은 미국 내 판매 100만부를 돌파했다고 하며 전 세계 34개국에 판권 계약이 되어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수전 골롬브와 조너선 갈라시는 전 세계에 걸쳐 자신의 이름을 한번씩 읽히게 된다. 자랑스럽고 뿌듯하기도 할 것이다. 이런책이 나에게 바쳐졌어, 내가 수전 골롬브야. 왜 두명일까, 이 둘은 조너선 프랜즌과 무슨 관계일까? 형제도 아닌것 같고 자녀도 아닌 것 같은데. 수전 골롬브와 조너선 갈라시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은 조너선 프랜즌과 어떤 관계일까? 어떤 사이길래, 어떤 감정으로 교감을 나누었길래 미국내에서만 100만부를 돌파하고 여기 대한민국에 사는 내가 읽기도 하는 이 책에 이름이 쓰여지게 됐을까? 이 책을 펼쳐 제일 앞장, 흰 여백에 자신들의 이름이 쓰여진걸 확인한 순간 그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울었을까? 가슴이 벅찼을까?
'필립 베송'의 『포기의 순간』의 헌사는 독특하다.
경계를 넘은 이들을 추억하며
책을 읽기 전에는 이 문장이 무엇을 뜻하는 지를 알 수가 없다. 경계를 넘었다는 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 이 헌사는 그저 아름다운 문장에 지나지 않는걸까? 그러나 책을 다 읽고 이 헌사를 다시 마주하면, 아, 그런 사람들을 위한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어쩌면 이 책속의 주인공들 같은 인물들을 필립 베송은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다 읽고 이 헌사를 다시 보면 이 문장이 얼마나 애틋하게 느껴지는지.
위에도 언급했듯이, 내가 쓰고 싶은 헌사는 '리사에게' 같은 헌사이다. 나는 그 한문장으로 모든게 충분하다고 믿는다. 내가 누군가의 이름을 단 한줄로 넣는 순간 이미 나와 그 사람 사이에는 어떤것들이 오고갔을 거라고 믿는다. 내가 거창한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내가 하고 싶은 모든 말들을 아마 상대는 알 수 있지 않을까.
헌사가 쓰여졌던 책을이 어떤 것들이었지, 하고 책장 앞에 서서 기억을 더듬어 꺼내보다가, 문득, '안토니오 수잔 바이어트'의 『소유』의 헌사는 누구 앞으로 되어있는지 궁금해졌다. 어쩐지 두근두근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책장을 열었을 때 그 책속에 헌사는 없었다. 내가 내 책장들에 꽂혀있는 책들 속에서 내 이름이 쓰여지길 원하는책이 있다면, 내가 헌사를 받고 싶은 책이 있다면, 그것은 『소유』이다.
내가 가진건 왼쪽의 구판인데 개정판이 나오면서 설마 없던 헌사가 들어가있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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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모님한테 말 좀 전해 주려무나. 네가 어느 시인을 만났는데, 그 아저씨가 사실은 무정하지만 아름다운 여인을 찾고 있다가 너를 만나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녀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으며, 이젠 새로운 곳의 숲과 초원을 찾아 떠나는 중이라고 말이다."(「소유」, 하권, P.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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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출근준비를 하고 있을 때 라디오에서 나온 노래는 Karina 의 Slow Motion 이었고, 오늘도 어김없이 비가 내리고 있고,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을 했다. 아직 커피는 마시지 않았다.
추가:
『소유』의 구판에도 헌사가 있었다. 브론테님이 댓글로 적어주신 '이소벨 암스트롱을 위하여' 라고. 다만 표지를 펼치면 다른글이 먼저 나오고 또 그 책장을 넘겨야 나온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아니다. 내가 어째서, 어떻게, 왜 놓쳤을까. 조너선 사프런 포어가 그의 아내 니콜에게 바친 헌사를. B님이 제보해주셨고, 집에 와서 찾아와 보았다. 무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헌사. 젠장.
니콜
내 아름다운 여신
당신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For
NICOLE,
my idea of beautiful
하아-
나의 마음은 황무지 차가운 바람만 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