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화이자 2차 접종을 했는데 어제는 괜찮더니 오늘은 아침에 눈 뜨는게 괴로웠다. 어제는 하루 백신 맞겠다고 연차를 냈고 오늘은 아니었는데 정작 내야 하는 건 오늘이었던 것 같다. 꾸역꾸역 출근준비를 하고 가는 내내 바람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아팠다. 내가 내 손으로 살며시 내 팔위에 얹으면 그 팔이 또 아팠다. 친구들이 안부를 물어주고 조금 괴롭네, 답하면서 눈물이 핑 돌았는데 그것도 백신의 부작용일까? 회사에 도착해 보쓰의 출근 후, 내가 아프니 집에 가겠노라 말했다. 그리고 조퇴를 했다. 집에 오는 길 내내 몸이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머리도 멍해지고. 집에 와서는 얼른 밥을 챙겨먹고 타이레놀을 먹고 침대에 누웠다. 깊은 잠을 내리 자고 싶었는데 얼마 안가 깼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지만 아까보다 몸 상태가 나은 것 같아 일어났다. 이건 타이레놀의 힘인것 같다. 아마 약발이 다 떨어지면 다시 아파지겠지. 자기 전에 타이레놀을 또 먹고 자야겠다. 그리고 책을 펼쳤다. 하루종일 어떤 글자도 읽고 싶지 않았엇는데, 이제 좀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샐리 루니의 책 Conversations with friends (친구들과의 대화)를 읽는 일이 썩 유쾌하진 않다. 대체 왜 그러는걸까 에 대해서 연신 생각해야 하니까. 지난주 할당량에서는 프랜시스가 아파 병원에 입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녀는 하혈을 했고 병원에서는 임신 가능성을 묻는다. 덩어리 같은 것도 보였기 때문에 어쩌면 임신을 하고 유산을 했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병원에서는 피임에 대해 물었고 피임을 했지만 항상 완벽한 건 아니었다고 프랜시스는 답한다. 프랜시스는 아프고 고통스럽고 그렇게 병원 침대에서 나에게 아기가 생긴걸까 그런데 유산되는걸까 고민하면서 닉에게 전화를 한다. 그런데 닉은 너한테 전화온 걸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전화했냐, 날 난처하게 만들려고 작정한거냐면서 짜증을 낸다. 프랜시스는 자신을 임신하게 했을지도 모를 남자, 그런데 유산했다면 역시 그 절반의 몫을 가진 남자에게, 내가 지금 아프고 고통스럽고 이런 상황이라는 걸 알릴 겨를도 없다. 그가 짜증을 내는 통에.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전하지도 못하고 끊는다.
내 고통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 아니라 그와 내가 함께 한 일 때문에 벌어진 것일수도 있는데, 그런데 아픈건 지금 나 혼자만의 몫인데, 그런데 상대는 내 말을 들을 생각조차 못하고 자기 상황이 난처하게 됐다며 짜증을 낸다. 너무 화나잖아? 나는 이 부분에서 너무 짜증이 나서 미쳐버릴 것 같은 거다. 왜 이런 관계를 견디고 있는 거냐고 프랜시스의 어깨를 잡고 흔들고 싶었다. 아무리 사랑하고 아무리 친해도 우리가 항상 급박한 순간에 상대의 옆에 있어줄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삶의 영역을 가지고 있으니까. 회사를 다니고 친구들을 만나고 또 가족도 있다. 그러니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해서 늘 당신이 필요할 때 언제나 달려갈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이건 성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당신의 아이를 임신했을 지도 모르고 또 유산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고통스러운데 당신에게 이걸 전할수조차 없다면, 내가 전하기 위해 말을 걸었는데 자기가 지금 곤란하다고 짜증을 내면, 그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내 사랑은 그간 어떤 것이었나? 그리고 앞으로 어떤 것이 되려나? 이 사랑은 지속할 '가치'가 있나? 사랑의 가치는 오로지 네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에만 있는 건 아니지않나? 이런식으로 나를 저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버리는데 그 사랑을 왜 계속하는가. 며칠 뒤 닉이 다정하게 다가오면 프랜시스는 또 녹아버린다. 이런 걸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나 역시도 애인에게 싦망하거나 서운하거나 서러웠다가 다시 풀어지곤 햇던 일들이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나를 바닥으로 내팽개치는데에야 그 다음의 다정함으로 끌어올려질 수 있단 말인가?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해놓고?
Go ahead, I said. Live your life. -p.188
닉에게 니 삶을 살아라, 가라, 라고 통화중에 말할때 닉의 삶에 프랜시스는 없다. 프랜시스는 최근에 닉과 가장 많이 섹스하는 사람인데 정작 닉이 live my life 할 때는 프랜시스가 없다. 그렇다면 프랜시스는 닉의 어디쯤에 있는 것인가. 그토록 친밀하게 옷을 벗기고 툭하면 섹스하고 한 침대에 들고 웃지만, 그렇지만 나를 배제한 채 너의 삶을 살러 가라고 말하는 그런 기분과 그런 상황은 대체 왜 스스로에게 허락해야 하는것인가.
What did they talk about? Did they amuse each other? Did they discuss their emotional lives, did they confide in one another? Did he respect Melissa more than me? Did he like her more? If we were both going to die in a burning building and he could only save one of us, wouldn't he certainly save Melissa and not me? It seemed practically evil to have so much sex with someone who you would later allow to burn to death. -p.201
무슨 이야기를 할까? 즐거운 시간을 보낼까?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서로 비밀을 털어놓을까? 닉은 나보다 멀리사를 더 존중할까? 그녀를 더 좋아할까? 멀리사와 내가 불타는 건물에 갇히면 닉은 분명 내가 아니라 멀리사를 구하지 않을까? 나중에 불에 타서 죽게 놔둘 사람이랑 이렇게 섹스를 많이 한다는 것은 정말 나쁜짓 같았다. -p.201
그녀와 내가 함께 불에 타고 있다면 그녀를 구하겠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를 사랑하는 건 .. 뭘까? 사랑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일까? 프랜시스는 닉 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하지 않을까? 이 모든 구절구절들이 진짜 너무 스트레스인거다. 내가 그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아닌걸 알면서도 그를 사랑하는게, 친구들이 알게 될까봐 조마조마하면서도 그를 사랑하는게.
이 사랑은 대체 어디서 온것일까. 닉은 프랜시스에게 프랜시스가 갖지 못한 그 모든것의 실현이었다. 알콜중독인 아버지는 집을 쓰레기통처럼 해놓고 살고-그래서 아버지 집에는 가기가 싫다-,다정한 사람도 아니다. 엄마랑도 살가운 모녀관계가 아니며 친구라고는 전애인이었던 보비와, 같이 인턴쉽을 하고 있는 필립이 전부이다. 자기가 혐오하는 아버지로부터 용돈을 받아 쓰고 있고 보비 아니면 다른 인간관계도 없고, 항상 보비랑 함께 다니는데 예쁜 보비는 언제나 인기가 많고 사람들을 웃게 한다. 프랜시스와 함께 있는 보비는 언제나 더 돋보이는 존재이다. 그런데 닉은 어떤가. 매우 잘생겼고 어릴 때 영재 프로그램에 나온 적이 있고 무엇보다 영화배우고 그래서 검색하면 이미지나 기사를 볼 수 있는 사람이다. 부자이며 좋은 집에 산다. 프랜시스가 갖지 못한 모든 걸 가진 사람. 프랜시스가 닉에 대해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된 데에는 주변에 프랜시스를 제대로, 깊게 봐주는 사람이 없는 외로움과, 그런 상황에서 자기랑 대화를 시도하는 닉에 대한 고마움과 호감이 섞였을 것이고, 게다가 자기가 갖지 못한 잘생김과 인기와 부유함. 이 모든 것이 거기에 섞였을텐데 게다가 섹스를 할 때면 자기가 주도권을 쥔 것 같은 느낌까지. 게다가 보비도 닉도 프랜시스를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그걸 인정하고 봐주는 사람이라 그 안에서 허우적대는걸까.
프랜시스도 다른 남자를 만나 섹스를 해봤다. 그 섹스의 경험 자체가 별로였는데 이 일에 대해 얘기하자 닉은 화를 낸다. 너가 다른 남자랑 잤다고??????????????
You're fucking married, I said. -p.216
나는 결혼했고 아내가 있고 아내를 사랑하지만, 뭐, 니가 다른 남자랑 자??? 그걸 내가 알게 해???
프랜시스는 자해를 한다. 나는 그녀가 왜 자해를 하는건지 잘 모르겠다. 나는 다치고 아픈거에 늘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혹여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치거나 아플까봐 늘 걱정이 많다. 그런데 프랜시스는 자기가 자기를 할퀴고, 급기야 닉에게 나를 때려달라고(hit me) 말한다. 닉은 그게 니가 원하는 거냐고 하지만, 프랜시스는 당신이 원한다면 나를 때려도 된다는 거에요, 라고 말한다. 닉은 당황스러워하고 혼란스러워 한다.
Do you think I want to hurt you? -p.215
내가 널 아프게 만들고 싶을 것 같아?
닉은 프랜시스를 때리지 '않는다'.
나는 샐리 루니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걸까, 설거지를 하면서 계속 생각했다. 왜냐하면 샐리 루니는 자신의 다른 소설 [노멀 피플]에서도 이와 똑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나를 때려달라고 말하고 남자는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아, 라면서 거기에 응하지 않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이번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나를 때려줘, 니가 원한다면 때려도 돼, 라고 말하는 여자와 내가 너를 상처입히고 싶을 것 같니? 라고 말하면서 그에 응하지 않는 남자.
이 장면에서 샐리 루니는 뭘 말하고 싶을까? 자신의 소설에 연달아 이런 장면을 넣었다는 것은 이 장면이 무언가를 말해주기 때문일텐데, 그게 뭘까? 대체 왜 노멀 피플에서도 이 책에서도 이런 장면을 그린걸까? 그렇게 한 이유가 뭘까? 이 장면을 통해 샐리 루니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걸까? 나는 잘 모르겠는 거다. 그런데 노멀 피플에서는 이런 장면이 나왔었다. 여자는 실제로 자신을 섹스중에 때리는 남자와 연애한 적이 있는 거다.
그는 그녀에게 그렇게 섬뜩한 짓을 하면서, 정말로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믿는 걸까? 사랑이라는 게 가장 비열하고 가장 모욕적인 형태의 폭력과 구분이 안 될 만큼, 세상은 그렇게 사악한 곳일까? (p.246)
때리는 건 폭력이라는 건 아는데 나를 때려줘, 니가 원한다면 그렇게 해도 돼, 라고 말하는 심리는 도대체 무슨 심리인걸까? 게다가 프랜시스는 섹스중에 닉의 손을 자신의 목에 갖다 대기도 한다. 나는 이 마음이, 이 심리가 뭔지 모르겠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면서 너를 행복하게 하라는걸까, 내 고통이 드러나야만 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걸까. 이 마음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뭘까, 자신이 자신을 학대하는 것도 보는게 괴로운데, 섹스중에 남자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는 건 더 보기가 괴롭다. 나에 대한 타인의 폭력을 오케이 할 수 있다고? 그렇게까지 하면서 섹스를 해야 하는걸까? 때리고 맞는 것에서 섹스의 쾌락이 더 크게 온다면, 기꺼이 그 길을 선택해야 하는걸까?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서 아나스타샤는 변태새끼 그레이를 사랑하게 됐다. 그래서 웬만하면 그가 하자는대로 다 내버려두었다. 그러다 급기야 그가 채찍이었나 혁대로 그녀의 벗은 엉덩이를 때리겠다고 하고 그걸 하게한 뒤에, 아나스타샤는 울면서 그에게 말한다. 이게 니가 정말 원하는거냐고, 나를 때려서 아프게 하는게 진짜 니가 원하는 거냐고.
내 목을 졸라서 나를 한동안 숨막히게 하는일-설사 그게 남녀 모두에게 쾌락을 가져온다해도-, 나를 때려서 나에게 상처를 내는 일, 내가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는 일을, '나를 사랑하는 당신'이 원하는 일이라고? 그러면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렴, 두어야 하는건가?
프랜시스는 잘생기고 돈많은 유부남을 만나면서 자신을 정서적으로 학대하고 (나 아내랑 있는데 전화하면 어떡해!) 그 순간순간 자신을 육체적으로도 학대한다. 그런데 그게 그녀 자신의 선택이면 타인이 학대라 이름 붙여서는 안되는걸까? 내가 원하는 때에 전화할 수 없어도 괜찮아 내가 사랑하니까... 라고 하면 그래 파워 오브 러브.. 가 되는걸까. 그리고 왜, 원한다면 때리라고 할까? 왜? 왜 전화했냐고 닉이 짜증낼 때가 최고 스트레스인줄 알았는데 원한다면 날 때려요 할 때 최고 스트레스 갱신했다. 하아. 후...잘 모르겠다. 여성에 대한 남성폭력으로부터 여성을 구해야 한다고, 그런 일이 없어야 된다고 열심히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데, 그런데 섹스에서는 원한다면 그래도 되는거라고 해야되는걸까? 어느 순간에는 허용되는 폭력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는걸까? 샐리 루니는 닉이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무엇을 보여주려고 한걸까? 여자가 때려달라고 해도 때리지 않아야 된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걸까? 노멀 피플에서도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남자주인공들은 여자의 때려달라는 말에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때리지 않는다. 모름지기 남자 주인공이라면 그래야 한다는걸까? 그래야 주인공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범죄자 조연으로 빠진다는 걸까? 나는 여자들이 나를 때려달라는 말을 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고, 너를 때려도 되냐고 묻는 남자들에게 그래도 된다고 허락하지 않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나를 때리는 사람을 멀리했으면 좋겠다. 내가 나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을 만나고 또 내 스스로 나를 귀하게 여겨도 살아봤자 백년인 것을....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나쁜 사랑을 했을 때는 내 자존감이 가장 바닥에 가 있었다.
하아-
머리가 아프다. 타이레놀을 또 먹어야겠다.
며칠전에 알라딘 중고샵 가서 책을 샀고 또 어제 주문한 책들이 오늘 도착해서 이렇게 작고 귀여운 책탑이 생겼다. ㅋㄷㅋㄷ
그런데 정작 내가 읽겠다고 꺼내온 책은 몇 년전에 사둔 책이니 내가 책을 사는 것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과연 있기는한건가........
약 먹고 잠이나 자야겠다.
10월 첫째주면 샐리 루니도 완독할 수 있게 된다. 유후~ 그러면 나 원서 완독 네 권. 영어 실력은 어떻게 됐나요? 모르지롱~~~~~~~~~~~~~~~